영화촬영장소의 컷장면 그때 그 시절_아카이브 ver.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 비극의 무대로서 by.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어 시간에서 접했을 소설 『오발탄』(이범선, 1959). 1959년 발표된 이 작품은 출간 직후부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듬해인 1960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1961년 봄 개봉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레이션의 껍데기로 지붕을 이었다”라는 원작의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묘사가 보여주는 해방촌의 모습처럼, 전후 서울의 실상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사실적 재현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오발탄>(유현목, 1961)을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치는 원작의 뛰어난 영화화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오발탄>은 당대 서울의 도시 공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함으로써, 도시사와 도시계획사 연구에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서울은 국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서의 도시계획과 고도경제성장의 동력 속에서 매해, 아니 매달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감안했을 때, 1960년 하반기에 촬영된 <오발탄>은 6.25 전쟁과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던 서울의 민낯을 참으로 절묘한 시점에 카메라에 담아낸 셈이다. 덕분에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 직후 서울의 모습을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보듯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이제 영화가 포착한 서울의 다양한 면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철호의 판잣집과 계리사 사무실

영화 초반, 카메라는 주인공 철호(김진규)가 산비탈의 판자촌 사이를 걸어 나오는 모습을 비춘 뒤, 곧장 서울 도심의 계리사 사무실을 비추는 시퀀스를 보여준다. 사는 곳은 무너져가는 판잣집이지만, 일터는 시내 한복판의 말끔한 오피스 빌딩이라는 점에서, 당시 서울의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투영된 도시 공간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철호의 계리사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 입구에는 ‘대한상공회의소’라는 명판이 걸려 있는데, 2025년 현재까지도 상공회의소는 남대문 바로 옆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비탈의 판잣집을 내려온 철호가 서울의 중심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그가 아침저녁으로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치라 해석할 수 있다.
 
판잣집 사이로 내려와(상) 계리사 사무실(대한상공회의소 건물)로 들어서는 철호(하)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1957년에 준공되어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現 흥국생명빌딩)은 영화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등장하는 건물이다. 카메라가 남대문을 잡으면 반드시 화각에 들어오는 탁월한 입지 덕분에, 1966년작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에서도 남대문 주변 전경을 비출 때면 이 빌딩이 당당히 중앙을 차지한다. 건축가 나상진(1923-1973)이 정성 들여 설계한 오피스 빌딩으로, 지금 보아도 유선형 외관이 인상적이며, <오발탄> 촬영 당시에는 더욱이 초현대적이고 세련된 자본의 상징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극중에서 철호의 동생 영호(최무룡)는 이 빌딩을 올려다보았다가, 후반부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마침내 은행강도를 감행하는데, 이 두 시선의 대비를 통해 감독은 전후 제대군인들의 비극적 처지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현대식 빌딩을 의도적으로 대조한 것으로 보인다.
 
<오발탄> 중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한국산업은행 남대문지점 터에 현재 자리한 흥국생명빌딩 (사진: 필자 제공)

철호가 내려다본 서울

러닝타임 63분경, 철호는 집에 들어가려다 노모(노재신)의 “가자, 가자” 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려 남산 중턱에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본다. 남산 중턱에는 판잣집이 들어서기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부유층을 위한 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주택지의 거주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철호와 같은 판잣집 주민들은 언덕 한참 아래 한강로의 전차 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철호가 내려다보는 서울의 전경은 부의 상징이 아닌 가난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부유한 이들이나 관광객이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과, 산비탈 빈민이 도심을 ‘마지못해’ 내려다봐야 하는 현실의 차이를 이 시퀀스는 절묘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철호가 내려다본 서울 전경

영호의 도주

영화 후반, 은행강도를 감행한 영호의 도주 장면은 경찰 무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종로2가와 청계천4가, 5가, 달리는 노면전차의 궤도, 그리고 종암동으로 이어지는 추격전은 당시 구간별로 진행 중이던 청계천 복개 공사 현장에서의 총격전까지 더해져 강렬한 긴박감을 자아낸다. 1930년대 후반 시작되어 전쟁 이후 1958년에 재개된 청계천 복개 공사는 자재와 예산 부족으로 부분적으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영호와 같은 도망자가 복개된 지하 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제공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전차를 타고 도망가는 영호의 모습 대신, 카메라가 어지럽게 뻗어나가는 전차 선로를 속도감 있게 포착해 낸 장면이다. 특히 쭉 뻗어나가던 선로에서 갈라져 나가는 분기점을 담아냄으로써, 감독은 영호의 돌이킬 수 없는 일탈을 은유적으로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복개된 청계천의 지하 공간
 
전차가 빠르게 달리는 와중 포착된 선로의 분기점

철호의 배회

영호는 결국 체포되고 부인은 출산 중 사망한 상황에서, 넋이 나간 철호는 서울 도심을 정처 없이 배회한다. 러닝타임 95분경, 딸에게 사주고 싶었던 신발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철호의 뒤로 반도호텔(1938년 준공, 1976년 철거)과 미도파백화점(現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의 세련된 외관이 드러난다. 당시 이 거리의 랜드마크였던 미도파백화점과 반도호텔 중 반도호텔은 롯데호텔로 재건축되며 그 흔적을 감췄지만, 미도파백화점은 리모델링을 거쳐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로 남아있다. 덕분에 지금도 을지로입구역에서는 영화 속 장면과 동일한 구도로 <오발탄>의 의도를 마주할 수 있다.
 
극중 반도호텔이 등장한 자리의 현재 모습 (사진: 필자 제공)
 
극중 미도파백화점과 현재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명동본점 (사진: 필자 제공)
유현목(1925-2009) 감독은 생전 인터뷰에서 영화 속 판잣집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해방촌을 방문하여 영호네 집과 같은 실제 거처를 물색했다고 밝혔다. 감독은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생략된 서울의 도시공간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오발탄>은 시간이 흘러도 당시 서울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빈민들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는 마치 ‘서울의 도시 공간’이라는 이름 없는 배역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것과 같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무언의 명배우의 연기를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2025-02-28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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