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의 ‘한국 독립영화’는 가능한 문제일까? 사사로운 기분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지면에 어울리지 않는 난데없고 거창한 질문이다. 하지만 2020년대의 절반을 지나치는 이 시점에 짚어볼 만한, 그리고 한국 독립영화의 관객인 우리에게도 여전히 불투명한 질문이라고 느낀다. 대체 2020년대는 무엇일까?
2010년대를 여는 첫해에 낯설고도 특별한 다큐멘터리 <
보라>(2010)를 공개한
이강현 감독은 2010년대의 마지막 해에 낯설고 특별한 극영화 <
얼굴들>(2017)을 개봉한다. 개봉 당시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 영화는 2023년 3월에 사망한 이강현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다. 그는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지만 미완의 기획으로 남았다. 공교롭게도 <얼굴들>이 개봉한 이듬해 세계는 대규모 전염병이 일으킨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도래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전면 봉쇄, 흰 마스크가 표상하는 대면의 불가능성과 접촉 금지는 우리를 불투명한 얼굴(들)과 비대면의 세계로 이끌었다. 텅 빈 영화관과 차단된 연결. 전염병의 유행은 수많은 얼굴을 차단하는 형태로 세계를 재구성했다.
한 영화감독의 때 이른 죽음과 전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 사태는 물론 서로 무관한 사건이다. 하지만 우연히 맞물린 두 사건을 겹쳐두는 데서 2020년대 한국 독립영화가 잃어버린 것과 되찾은 것의 틈새가 있다. 그것은 얼굴이다. 이강현이 포착한 ‘얼굴들’과 전염병이 봉쇄하고 차단한 ‘얼굴(들)’을 몽타주하는 것은, 영화 속의 얼굴이라는 공통의 기반이 무너진 시대의 표상에 대한 한 가지 단서를 마련할 수 있다는 가설을 소환한다. 세계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하고 미스터리한 대상이 되었다. 영화가 여전히 얼굴과 또 다른 얼굴을 결합하는 것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장치라면, 두 얼굴을 결합할 수 없는 시대의 영화는 무엇을 표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한낮의 공원에서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풍경의 변화를 묘사하는
손구용의 <
공원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그의 카메라는 마치 곤충학자 같은 시선으로 비인간적이고 비인칭적인 장소의 단면을 소묘한다.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서 시집을 읽고, 한 남자는 나무 근처에서 서성인다. 하지만 그들의 독서와 배회는 명확한 목적을 갖는 행위로 결정되지 않고 끝없이 지연된다. 그들은 계속해서 시집을 읽고 나무 근처를 움직인다. 공원에는 빛이 드리운 잔디밭과 나무, 물을 내뿜는 분수, 돌아다니는 고양이, 구름이 지나가는 하늘이 있다. 영화는 장면들 사이에 오규원의 시 「뜰의 호흡」의 텍스트를 삽입한다.
얼핏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공원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단면을 무작위적으로 이어 붙이는 듯 보인다. 영화의 카메라는 엇비슷한 몇몇 장면의 연쇄로 세계를 정밀하게 포착하는데, 미묘하게도 연속된 장면들이 영화에 도입하는 효과는 역설적이다. 그것은 눈에 비치는 세계의 불확실성을 덧씌운다. 카메라는 정밀하게 단면을 포착하지만 그럴수록 영화가 지각하는 세계의 총합은 모호해진다. 관객은 장면의 구체적인 세부를 하나씩 지켜볼수록 카메라 앞에 놓인 공원이 어떤 공간적 구조로 이루어진 것인지, 장면과 장면이 어떤 시간 관계로 접속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까다로워진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숏은 그 자체로 투명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다른 모든 숏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모호한 비결정의 상태에 위치한다. 세계는 한없이 열린 미확정적인 상태로 팽창하는데, 팽창하는 시공간은 물리적으로 닫혀 있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는데 정작 어느 것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손구용은 다큐멘터리적인 상상의 세계라는 형용 모순의 가능성을 발명한 것 같다.
<공원에서>는 오후의 공원이라는 일상적 시공간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단순한 작업이면서 동시에 그 이미지들을 반복적이고 무작위적으로 배치해 방향감각을 상실한 영화적 시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추상적 실천이기도 하다. 정독도서관 전경이라는 구체적 현실은 영화가 새롭게 창출한 허구적 질서 속에서 픽션화된다. 영화는 현실의 정돈된 질서를 훼손하고 현실의 단면을 프레임 안에 집어삼킨다. <공원에서>의 허구적 프레임 속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흉한 구도가, 현실의 기록과 추상적 형상이, 빛의 움직임과 물의 흐름이, 문학의 문장과 영화의 화면이, 물리적으로 선행하는 시간과 감각적으로 멈춰 있는 시간이 공존한다.
장면이 하나씩 덧붙여질수록 <공원에서>의 고정된 지각은 거듭해서 위태로워진다. 화면에 담기는 풍경은 카메라에 포착된 장소의 이미지이지만, 물이 튀기는 수면을 가까이에서 찍은 장면처럼 구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이미지의 한 단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가 창안하는 공간은 깊이감이 부여된 실제 공간이지만, 구름이 지나가는 흑백의 하늘을 찍은 장면처럼 깊이가 제거된 모노크롬의 평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인 분류를 따르자면 이 영화는 세계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에 속하지만, 결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업은 아니다. 손구용은 반복된 숏의 조합 아래서 거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행위를 지속하는 세계를 창조한다.
<공원에서>는 일상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장면을 조각내어 배열함으로써 한없이 느리게 지속되는, 마치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직면하게 한다. 영상 매체인 영화의 시간은 불가피하게 장면 위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인물의 행위와 공원 전경의 총합은 달라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과 움직이는 빛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지만 장면은 계속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질문은 영화의 근원적인 속성으로 향한다. 화면의 움직임에 기반한 영화는 정말 변화하는 시간을 포착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얼굴 없는 영화는 한 뼘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던 영화를 지우고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던 또 다른 규칙의 영화를 창조하는 작업에 가까워진다.
무엇보다 <공원에서>의 매혹은 단지 구조적이고 개념적인 영화적 세계를 창조했다는 측면에만 달려 있지 않다. 이 영화는 영화적 프레임 안에서 재구성된 세계의 풍경을 눈으로 보게 만들고, 세계의 소음을 귀로 듣게 하는 지극히 쾌락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여기서 이미지를 보고 사운드를 들으며 영화의 가장 기초적인 실천을 생경하게 다시 마주한다. 이 영화는 얼굴이라는 공동의 기반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영화가 지탱할 수 있는 장소가 감각적 공동체의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환기한다.
한국 독립영화의 2020년대가 얼굴의 투명한 결합을 상실한 비대면의 시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얼굴이 아닌 다른 매개로 영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몸짓을 발명할 수밖에 없다. <공원에서>는 인간 중심적 서사의 습관이 달라붙은 장면을 활용하는 동시에 공원 곳곳에서 생겨나는 비인간적인 얼굴들의 생경한 표정을 나란히 배열한다. 이로 인해 영화가 다루는 얼굴과 장소의 초점은 다수의 형상으로 분리되고 인간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의 질서는 무너진다. 숏이 창출하는 순열과 조합의 수학적이고 감각적인 질서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손구용은 단 하나의 현실을 한없이 길게 늘어뜨리지도 않고, 극단적 감각으로 채워진 현실이 카메라 앞에 존재한다고 강변하지도 않으며 세계에 대한 지각적 반응을 매 순간 조정하고 갱신한다. <공원에서>는 비인격적이고 비인칭적인 시각을 매개로 인간의 얼굴을 다시 만나게 한다. 카메라와 풍경을 매개로 지켜본 시각에서 공원 속 인간의 표상은 마치 영화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모습처럼 낯설어진다.
<공원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단독적인 얼굴과 얼굴의 결합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풍경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을 허구적 공간 위에 배합하는 것으로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혹은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손구용은 인간중심적 감각에서 이탈한 낯선 얼굴들의 결합을 통해 불투명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영화의 몸짓을 갱신한다. <공원에서>는 쾌락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의 수단을 동원해 인간적인 얼굴의 특권을 무너뜨린다. 나는 작년에 공개된 한국영화 가운데
정재훈의 <
에스퍼의 빛>(2024)과 더불어 <공원에서>가 보고 듣는 감각의 경험을 낯설게 재배치하는 얼굴 없는 영화의 연대기를 작성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쩌면 이 영화들로부터 2020년대의 한국 독립영화를 다시 가늠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김병규(영화평론가) l 2018년 《Filo》 신인평론가에 선정되고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만든 영화로 단편 <늦은 산책>(2023), <오후>(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