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을 주기로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 ‘도큐멘타 14(documenta 14)’의 예술 감독인 아담 심지크(Adam Szymczyk)가 도큐멘타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헨리에트 갈루스(Henriette Gallus)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갈루스는 심지크에게 “그녀는 영악한 짓을 하고 있어요. 우리와 자신을 묶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심지크가 대꾸한다. “영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가 우리와 함께 가라앉을지도 모르니까요.” 1년 후, 그들이 말하는 ‘그녀’에 해당하는 아네트 쿨렌캄프(Annette Kulenkampff)는 540만 유로의 적자를 빌미로 도큐멘타 CEO 직(職)에서 물러났으며 이 스캔들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행사의 성취를 통째로 가려버렸다. 독일 언론으로부터 ‘무모한 침입자’로 묘사된 심지크는 도큐멘타 14가 남긴 적자의 원흉으로 공격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나친 예술적 야심이 화를 불렀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예술계에서 비난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끈기와 주견, 고독, 창의성을 지닌 별종들이 있다. 심지크는 그런 인물이며, <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exergue - on documenta 14)>(디미트리스 아티리디스, 2024)는 이 별스러운 인물에 관한 캐릭터 연구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현대적 예술 제도의 존재 양식과 가치 기준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제시한다. 도큐멘타 14는, 심지크의 담대한 결정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카셀과 그리스 아테네, 두 도시에서 나눠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적자가 났고 정치인과 미디어 기관의 공격이 쏟아졌다. ‘아테네에서 배우기’라는 제목 하에 개최된 이 웅대한 프로젝트는 유럽 역사에서 식민주의를 탐구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었고, 미투 운동과 테러리즘, 유럽발 경제위기, 폭력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열렸다. 어떤 다큐멘터리도 특정 행사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지만, 14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것을 해냈다. 디미트리스 아티리디스 감독은 큐레이터들의 회의, 스튜디오 방문, 기자회견과 프레젠테이션 따위의 공개 행사, 예산 문제, 설치 과정, 파티를 횡단하면서 위기에 처한 기관의 속살을 들추어낸다. 2015년 여름부터 2017년 가을 도큐멘타 14가 종료될 때까지를 따라가며 14개의 장으로 구성한 이 영화는 사명감에 불타는 예술 큐레이터의 행적을 시간순으로 기록하였다. ‘아트 바젤’의 디렉터였던 심지크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는 대신 카메라를 벗어나거나 화면 가장자리에 휴대폰을 두고 사진을 찍는다. 예술이 정치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예민하지만 편집증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돈’이라는 주제를 피하지 않지만, 예산은 큐레이터들 간의 대다수 대화에서 나타나는 유령처럼 보인다. 오히려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는 거대한 논쟁을 낳은 열네 번째 에디션이 예술 전시의 개념에 대해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꾀한 내력을 초점으로 한다.
미술 전시 큐레이팅에 대한 14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볼만한 가치가 있는가? 확실히, 그렇다. 디미트리스 아티리디스가 이룬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매력적이고, 긴장감 넘치고, 시의적절한 문제의식이다. 3년 넘게 아티리디스는 폴란드 출신의 예술 감독이 전 세계 국가를 돌며 뛰어난 작품을 찾고, 창의적인 큐레이터 팀과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유력한 지식인, 예술가, 영화 제작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금을 조달하는 기관과 협상하고, 작품을 설치하고, 정치인과 만나고, 언론에 답변하면서 도큐멘타 14를 조직하려는 노력을 조명한다. 이것은 흥미롭고 신명이 나는 광경인 동시에 끔찍한 시간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구조와 큐레이션 담론을 묘사하는 정밀성을 통해 심지크의 큐레이션 팀은 선동적인 정치가 무참하게 무너뜨린 것(예술의 본원적인 가치)을 구제하려고 했다. 이런 종류의 거대한 예술 이벤트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 이벤트의 연속성을 조각조각 모으려는 이 영화의 엄청난 노력은 검열이나 부채로 인해 가려지는 것들, 예술가와 큐레이터의 이상적인 협업 모델, 시대의 쟁점을 가시화하는 과정에 대해 말해준다.
2017년 나는 ‘도큐멘타 14’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다양성과 깊이를 갖춘 전시의 모든 레퍼토리에 감동을 받았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의 방들, 스탠리 휘트니(Stanley Whitney)의 추상화와 어니스트 만코바(Ernest Mancoba)의 수채화, 올루 오귀베(Olu Oguibe)의 오벨리스크, 기차역의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에게서 받은 영감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화려한 축제의 뒷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는 만성적인 위기에 시달리는 예술계, 이 역설과 씨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고고한 에디터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사례를 언급할 수 있겠다. 베이루트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전 큐레이터들은 지붕을 타격하는 총소리를 듣는다. 그리스의 극우 정당인 ‘황금의 새벽’은 도큐멘타 본사 바로 앞에 있는 노점상에 불을 지르고 도큐멘타 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본다. 베이루트에서 작가 카엘렌 윌슨-골디(Kaelen Wilson-Goldie)와 미술계의 순회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심지크는 “파티는 끝났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심지크의 허탈한 말과 달리 도큐멘타 14의 현란한 주제 설정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폐허, 다중적 시간성, 장애 연구, 반정신의학, 섹슈얼리티의 정치, 트랜스 페미니즘, 포스트 포르노 정치학, 에너지 정치, 죽음과 애도, 의식의 기술, 샤머니즘, 다중 자연주의, 자유의 발명을 위한 프로토콜로서의 건축, 범 아프리카주의, 흑인 전통, 반 식민지주의와 탈식민지주의 지식, 원주민, 토착주의, 급진적 교육학.’ 시대를 통찰하는 예술 행사의 문제설정에서 비판과 창의성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전설적인 피터 왓킨스(Peter Watkins)의 <레산(Resan)>(1987)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다큐멘터리로 기록된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는 예술 시장과 외교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연구 작업을 만들어냈다. 지적인 야망을 품고 관료주의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뚫고 가는 이들의 용기가 한 편에 있지만, 독점적인 접근을 통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빛나는 예술 작품의 큐레이션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힘을 얻는 것도 예술의 힘이다. 영화에는 숱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리고 두려움, 분노, 기대, 좌절, 기쁨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 시를 읽거나 그림에 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거나 무언가를 발명할 때 느끼는 것도 감정이다. 오늘날 영향력 있는 예술 콘텐츠는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다른 수준에 존재하는 예술, 지적이고 영적인 희망을 줄 수 있는 예술의 감정에 관해 묵상하게 한다. 축제 기획자이자 큐레이터로서 나는 이런 주제를 말하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였다. 정부 지원 이벤트의 큐레이터가 정부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공공 예산을 사용하는 예술 이벤트의 큐레이터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예술과 대중의 간극을 극복할 방법은 있는가? 이것은 혁신가 아담 심지크의 고뇌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예술 전시 축제의 기획자로 일하는 모든 이들의 뇌리를 맴도는 질문이다.
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l
영화주간지 《필름 2.0》 편집장,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영화글을 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