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푸는 한국영화사 미스터리] 명탐정 코ㄴ..아니, 코파의 추리쇼!

by.이수연(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2024-11-15조회 2,173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과거의 사건은 때로,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분명 그걸 그곳에 갖다놓은 누군가가 있고 또 그렇게 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냥 ‘그것이 거기에 있음’이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리 듯,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라며 그 자체를 하나의 시대성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가 딱 아시안게임, 올림픽 겹치면서, 비디오가 보급되고, 말 그대로 80년대 초반부터 컬러 방송은 있었지만,
시각문화적으로 정권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를 만들어라!”
호돌이 캐릭터 만들고 그래서 완전히 애니메이션 영상이 그 이전에서 그다음으로 확! 업그레이드 되는, 예.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이용배, 2020, 79쪽


위 구술을 통해서도 충분히 1980년대 중후반의 한국 애니메이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저 말들 하나하나에는 또 다른 의문들을 달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의 문화’ 중에서도 왜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꾀했는가? 그 직전까지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방송국에서는 어떻게 저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을 당시 MBC에서 애니메이션 연출PD를 담당했던 황선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87년에 정부에서 KBS하고 MBC한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라는 권유사항이 내려온 겁니다.
근데 KBS하고 MBC는 “우리 제작비 많이 그래서, 못 하겠다.” 전부 그냥 사양했죠.
방송국은 언론기관이니까, 못 하겠다면 못 하는 거죠, 뭐 어떡해. 나라에서 어쩔 수 없죠.
근데 정부에서는 “내년이 88올림픽 대회 아니냐. 그러니까 외국에서 관객들이 와 가지고,
호텔에 묵으면서 텔레비전을 틀면 맨 노랑 머리, 빨강 머리, 그 외국 애니메이션만 나오니까,

우리 애니메이션을 해서 보게 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권유사항이 내려온 거예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KBS, MBC가 “그러면 한시적으로 출발하자.
내년 올림픽 때까지만 제작을 하고, 그리고 이제 끝! 안 하겠다.” 이렇게 한시적으로 출발을 한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한국 TV 애니메이션이 시작이 된 거죠. 개인이 기획한 것이 아니죠.


- 황선길, 2020, 76쪽


위 구술에서 정책결정자의 저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호텔에서 TV로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상황에 대한 상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는 평소 한국의 어린이들이 외국 애니메이션만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국제 행사를 앞두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텔레비젼 방송을 바라보며, ‘영화나 드라마, 쇼 프로그램은 자국에서 만들어 방영을 하는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모두 외국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산업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도 생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은 어떻게 국내에서 수입⋅방영이 가능했을까? 분명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그중에서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1⋅2⋅3차 개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고, 2004년 4차 개방 대상에 들어가긴 했지만,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6년에서야 전면 개방 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수입⋅상영이 불가능했던 반면에, 왜 시리즈물은 그 이전부터도 가능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2020~2021년 진행한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에 참여했던 45인의 구술에서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던져준 이들은 있다. 조금 지난하지만, 지금부터 하나하나 그들의 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말이 주는 단서들 속에서 각자 그 이유를 재미있게 추리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건의 실마리 1: <손오공의 대모험>

KBS는 1970년 4월 16일부터 <손오공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아동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인 6시 30분에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무시’ 프로덕션과 ‘후지’ 텔리비전방송회사가 공동제작한 30분짜리 39편의 어린이용 천연색 만화영화를 흑백으로 방영한다. 우리나라선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제 필름. … 비록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등장인물 중 일본 인명이나 사물 명칭의 일본어 사용 등은 문제가 있을 듯.
- 《경향신문》, 1970. 4. 16. 8면 기사

당연하게도(?) <손오공의 대모험> 방영은 여러 가지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아이들의 동심이 ‘일본색’으로 물드는 것을 걱정하는 한편, 문공부가 한국영화제작자협회에서 추진 중이던 ‘일본영화감상회’는 허가해주지 않으면서, 정작 산하기관인 KBS에서는 버젓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어, 문공부의 일본문화 규제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또한 공영방송에서 일본(만화)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방영하게 되면, 이후 민간상업방송에서 각종 일본(만화)영화를 들여올 수 있게 되는 구실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논란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그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다. <손오공의 대모험> 이전에도 분명 <황금박쥐>(야나기다 큐지로, 1968), <요괴인간>, <마린보이(바다의 왕자 마린보이)>(토미노 요시유키, 1969)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방영된 바 있는데, 위 기사는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본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래의 기사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TBC TV의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MBC TV의 <마린보이> 등은 완제품이 아니고 보세가공식의 한일합작이었지만 조심스럽게 일본 작품을 도입했던 케이스들. KBS는 민방이 이미 일본만화를 방영했다는 전례를 구실로 삼고, 또한 우리의 동화산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록 일본영화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건전한 영화를 도입하는 쪽이 어린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1970. 4. 22. 6면 기사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손오공의 대모험>은 중도 폐지되지 않고 39회차까지 방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일으킨 파장은 방송계에 한동안 영향을 미쳤다. TBC와 MBC는 미국의 애니메이션들(<우주철인 사이퍼>, <자니 게스트의 모험> 등)을 수입⋅방영했고, 심지어 <우주소년 아톰>(린 타로, 1963)을 미국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것처럼 소개하며 방영하기도 했다.*주1 KBS도 <손오공의 대모험>이 종영된 이후에는 프랑스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틴틴의 대모험>(스테판 베르나스코니, 1991)을 방영했다.*주2 하지만 논란이 있고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타이거 마스크>(타미야 타케시, 1969), <철인 28호>(1963)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하청(OEM)을 받은 작품들을 합작인양 은글슬쩍 방영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TBC 방송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타츠토코 거 <독수리 5형제>다, <개구리 왕눈이>다, 수입을 하는데
한국에서 수탁 가공(OEM)을 해서 한 그거를 이 회사에서 수입을 해왔다 해서 수입허가가 떨어져요.
제가 또 수입대행사가 된 거예요. … 애니메이션 영화를 갖다가 유니버설아트가 수입을 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췄어요.
유니버설하고 상관도 없어요. 그런 서류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정병권, 2020, 132쪽


<손오공의 대모험>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당시 한국사회 내에 여전히 일본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이를 의식한 정부 당국의 규제 또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한국에 준 하청 작업물들을 ‘합작’ 또는 ‘보세가공품’이라는 이름으로 편법 승인을 받아 방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레레,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런 눈치 보이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가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방영하려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 방영주체인 방송국의 입장을 들어보자.
 
   
<독수리 5형제(과학닌자대 갓챠맨)>(토리우미 히사유키, 1972~1979)의 국내 개봉 포스터(좌)와 <개구리 왕눈이>(사사가와 히로시, 1973)의 한 장면(우).
두 작품 모두 일본 타츠노코 프로덕션 작품으로 유니버설아트 프로덕션에서 하청을 맡아 작업했다.


사건의 실마리 2: KBS⋅MBC

1980년대 초 KBS에 입사하여 영화부에서 <우주 해적 캡틴 하록>(린 타로, 1978), <딱따구리>(사이드 마커스 등 5인, 1957), <개구쟁이 스머프>(레이 피터슨 등 4인, 1981) 등의 해외 애니메이션 더빙 연출과, <떠돌이 까치>(조봉남, 1987), <달려라 하니>(홍상만, 이학빈, 1988) 등의 녹음 연출을 담당했던 최수형은 1970~80년대 국내 방송국에서 미국⋅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로 방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80년대 초중기, 이때는 일본만화영화가 굉장히 싸게 공급이 됐었어요. (중략)
우리한테 거부감 없이, 전 세계에 거부감 없이 배급할 수 있는 만화가 뭐였냐면,
세계명작동화’가 원작인 만화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많이 보급했는데.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압박을 받았던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은 기모노만 봐도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견디지 못하시고 텔레비전, 영화에 기모노가 나왔다 해서 전화하시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이런 거를 꼭 내보내야 되느냐구. 그러니까 그런 애니메이션은 방송사에서 소개할 수가 없었죠.
그러니까 대부분 동화나 명작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소개했었던 거 같구요.

미국과 일본의 컨텐츠가 많이 소개된 이유는 이 두 나라가
비즈니스 시스템이 참 잘돼 있어요.
그리고 일본어나 영어에 능통한 인구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있고 그러니까 비즈니스 하기에 참 편했던 환경이었고.


최수형, 2020, 40쪽


구술자는 첫째로 일본만화영화의 수입 단가가 매우 저렴했다는 것, 둘째로 비즈니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수입과 방영을 위한 절차들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방송국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애니메이션도 수입하고 그랬는데, 수입을 해보면 미국 애니메이션도 있고, 유럽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틀면은,
시청률이 많은 차이가 나요, 일본 애니메이션은. 왜냐? 미국하고 유럽 쪽엔 정서적인 차이가 있고,
근데 일본은 우리랑 가깝잖아요. 모든 게 가깝고, 스토리든 뭐든 가까우니까 일본 애니메이션이 시청률이 높은 거예요.
그래서 거의 7~80프로,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을 하죠. 특히 유럽은 너무 루즈하고, 스토리도 쳐지고 그래서 별로 유럽은 안 하고.
유럽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있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많이 하죠. 근데 거의 수입 안 하고, 미국 것, 디즈니 같은 건 좀 하고 그랬죠. 


- 황선길, 2020, 105쪽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굳이 내가 보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의 제작국가가 어딘지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묘하게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은 구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스누피Peanuts>(1965)의 캐릭터도 좋아하고, <컴퓨터 형사 가제트Inspector Gadget>(데이브 콕스 등 5인, 1983)나 <핑크팬더Pink Panther Show>(게리 치니퀴, 프리츠 프레렝, 1969)도 재미있게 봤으며, 일요일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디즈니 만화동산>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번쩍 떠지고 그랬지만, 그럼에도 기억 속에서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수입하고 OEM 작업을 진행했던 애니메이션 회사의 입장을 들어볼 차례가 된 것 같다. 
 
   
1983년 MBC에서 방영된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박시옥, 1983/좌),
1987년 KBS에서 방영된 <떠돌이 까치>(우).두 작품 모두 대원동화에서 제작했다.


사건의 실마리 3: 대원동화

물론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일본 대중문화개방 이전에도 수입과 방영이 가능했었는지를 물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음은 대원미디어의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안현동과 구술 면담자의 대화이다.
 

(면담자) 《슬램덩크》를 연재할 당시에는 일본만화 수입개방 전이었는데요, 어떻게 수입을 하게 되고
또 일본만화 개방 전이기 때문에 이름도 일본어 이름이 아니라 우리식 이름으로,
‘강백호’ 이렇게 바꿔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과정들은 생각이 나시나요?

(구술자) … 한일문화개방이 아직 안 된 시점이라도 도에이 작품 같은 경우는 우리가 얼마든지 들여와서,
개방되기 전에는 규제나 이런 게 좀 따랐지만은 … 


(면담자)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인데 <은하철도 999>(린 타로, 1977)나 그런 애니메이션,
(구술자) 그건 순전히 OEM만 제작을 갖다 한 거예요. 우리가 거기 제작이 돼서 관여할 수도 없고.
그다음에 우리가 여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는 거고. … 일본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왜 연락이 왔냐면 우리가 수출을 하는 것도 좋지만은 이게 일본하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
천년여왕> (니시자와 노부타카, 1981)같은 경우는, 작품의 어떤 기본적인 컨셉이 여러 가지 일본하고,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이런. …
그래서 우리를 조사를 하겠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대사관에 가서 설명을 했죠. 그 작화하고 다 갖고 가서.
우리가 여기에 권리가 하나도 없다. 우린 단지 수출, 가공해 가지고 다시 거기 갖고,
직원들 인건비 주고 이런 거지, 여기에 대해서 없다 전혀. …
이것도 누가 이제 계통에서는 ‘대원이 일본 앞잡이 아니야?’ 이렇게 돼서 그때 한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고 그렇죠.


(면담자) 근데 당시 말씀하신 것처럼 반일 감정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처럼 인식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방영이 계속되었잖아요.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을 계속했었구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뭐였었나요?

(구술자) 근데 원작이 너무 특이하고 재밌어요. 일본에 그 원작은 우리가 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다가.
<드래곤볼>이라든가, <슬램 덩크> 라든가, 뭐 <원피스> 이런 것들은 너무 작품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다 보니까 이 작품을 방송을 한다던가 하게 되면은 시청률도 높고 이러니까, 이걸 뭐 안 할 수가 없고. 그런 상황이 돼 버리는 거죠.


(면담자) 그럼 정부나 심의기관이나 이런 곳에서도,
(구술자) 이걸 방송하는 데 큰 하자가 없고, 문화개방 안 돼도 이 작품이 들어와서 유익하고, 뭐 시청률도 높고 이러다 보니까 한 거지.
안 그러면 이게 문제가 되면은 컷이 됐겠죠. 근데 그러진 않았어요. 


- 안현동, 2020, 119~121쪽


이 대화 속에는 아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문화개방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면담자와,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 구술자 간의 숨막히는 줄다리기.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쫓고 쫓기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구술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원동화는 1970년대 그 전신인 원 프로덕션 시절부터 일본의 영화회사 도에이(東映)와 전속계약을 맺고 하청을 맡았다. <우주전함 야마토>(마쓰모토 레이지, 1974),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같은 작품들이 그렇게 진행된 작품들인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OEM을 진행했던 작품들을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보세가공품’으로 국내에 허가를 받아 방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일본’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회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져 이야기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점이 오히려 구술자가 질문의 내용과 자신이 하고 있는 답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술자가 이야기하는 <천년여왕>은 1983년 1월부터 MBC에서 방영되던 중, 같은 해 3월 전체 42회차 중 10회를 방영한 후 돌연 개편을 핑계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그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다.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용 공상과학 만화영화가 대부분 일본에서 그곳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게 제작됐거나 심지어는 일본의 설화를 원전으로 삼은 것도 섞여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MBC TV는 일본 동영동화주식회사가 제작, 동영주식회사를 통해 배급한 <은하철도 999>의 방영에 이어 같은 제작⋅배급망을 거친 <천년여왕>을 지난 1월 23일부터 매주 일요일 상오8시에 내보내고 있다. (중략) <천년여왕>은 MBC가 방영에 앞서 미 유니버설 작품이라고 밝혔었고 방송심의위원회도 그렇게 알고 있다. 방송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천년여왕> 심의 당시 유니버설 작품으로 돼있었다고 밝히고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일본극영화의 수입이 허락되지 않으며 한국영화에 일본 배우의 출연도 막고 있다. 그런데도 만화영화만은 예외인 듯 방송망을 타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일보》, 1983. 3. 10. 12면 기사
 
 MBC TV는 23일 어린이 대상의 공상과학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도중하차 시켰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 만화영화가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어서 어린이 교육 상 문제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이 프로를 도중에서 폐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후략)
- 《한국일보》, 1983년 3월 24일자 12면 기사

사실 《한국일보》의 기사 이전에 이 작품이 ‘일본 작품’이라는 데에 문제를 제기한 이는 시청자였다.*주3 하지만 이 글을 쓴 시청자는 일본 작품의 방영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일본의 만화영화가 방영되면서 일본식 표현을 번역함에 있어 미흡함이 있음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기사 속 방송심의위원도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TV를 통해 많은 일본 작품들이 국내에 방영되고 있고 그 자체를 문제삼는 분위기는 아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천년여왕>은 일본 대사관까지 그 문제를 조사하고 나설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주4 1982년에는 제2차 한일경제협정안을 놓고 양국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득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실이 드러나며 1983년 초까지도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구술자가 들었다는 ‘일본 앞잡이’라는 표현도 당시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주5

다시 말해, 평소에는 일본만화영화를 가져와서 방영을 해도 눈치껏 잘 넘어가주던 방송심의위원회에서도 이렇게 외교적으로, 그리고 국민정서 상 일본문화에 대해 반감이 커지는 시기가 오면 갑작스레 방송 중단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애니메이션 하청⋅수입업자의 입장에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때 하나의 문화가 산업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 정책에 따라 규제가 뒤따르기는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권익을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기업적 규모의 인력이 투여되어야 하는 문화의 경우 산업으로 인정받고 장려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업자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당시 정부는 미래의 먹거리로 ‘소프트 산업’을 지목하며, 제재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지원은 최대로 한다는 정책방향을 세우고,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애니메이션 종사자들도 구술을 통해 ‘실제로 김대중 정부 때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기에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면, 일본만화 및 그와 관련된 콘텐츠를 수입⋅배급하던 회사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사업을 양지화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시기 대부분의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작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일본 콘텐츠에 대한 수입⋅배급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이는 VCR이 국내 널리 보급되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여러 모로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980~90년대 대원동화에서 애니메이션 연출과 기획팀장으로 일했던 황정렬은 1990년대 말, 일본대중문화개방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구술자) 사실은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 수입이 정식적으로, 공식적으로 돼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특히 대기업 같은 경우는 뭐 일본영화라든가 일본만화라든가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죠.
그리고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일본애니메이션이나 일본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사실 대원이 거의 유일했었어요.
70년대 말부터 대원 같은 경우는 애니메이션 OEM을 시작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든가 
그 제작사하고 연계된 캐릭터 사업을 하는 회사라든가 ‘반다이’ 같은 회사들, 그런 회사들하고 계속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해왔었기 때문에 사실 대기업이 아무리 뭐 해외지사가 있고 정보 수집 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대원을 따라갈 국내 기업은 없었다고 봐요. (중략)
문화개방을 풀려면 제일 먼저 부딪쳐서 해결해야 될 부분이 공무원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문화관광부 담당 공무원들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저하고 회장님하고 같이 했었는데,


(면담자) 그러면 정책이 나오고 나서 대원은 ‘대중문화 개방 됐으니까 수입하자’가 아니라 좀 더 발빠르게 ‘수입해야 하니까 정책을 만들자’ 이렇게,
(구술자) 그렇죠. 현실적으로 일본문화가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고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만화라든가 애니메이션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것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막는다는 게 무슨 시효가 있겠느냐,
차라리 개방을 해서 (사이) 양지로 끌어올려가지고 정말 정서적으로 저해가 되는 것들은 법으로 막고
다음에 그 수입을 자유롭게 해야 우리나라의 캐릭터 시장이라든가 애니메이션도 경쟁력이 생겨서
나중에는 오히려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냐, 그런 논리로 계속 설득을 했죠. 


- 황정렬, 2020, 120~122쪽


   
   
<드래곤볼>, <슬램덩크>, <달의 요정 세일러문>(사토 쥰이치, 1992), <포켓몬스터>(유야마 쿠니하코, 1997)는
모두 대원동화(현재 대원미디어)에서 수입⋅배급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자, 여기까지가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TV에서 방영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구술자들에게 들었던 단서들이다(그리고 이보다 많은 단서들을 한국영상자료원 2층 영상도서관에 비치된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코난은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고 외치지만, 사실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은 진실의 뚜렷한 실체를 들여다 보는 것보다는 그 실체가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원래의 실체가 어떻게 생겼던 것일지를 추리하는 일에 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방영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냥’이라든가, ‘심의기관에서 굳이 막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같은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반 마련이 정책결정자의 작은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럼 구술채록문을 보며 추리와 상상을 쌓아가다 보면 또 다른 출발점이 보일지도 모르니, 다들 시도해보자!  


※ 인용된 구술채록문들
김성희⋅이은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2권: 안현동』, 한국영상자료원, 2021.
나호원⋅임정연,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8권: 이용배』,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배수경⋅남기웅⋅박현선,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35권: 정병권』,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박경진⋅현찬양⋅공영민,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2권: 최수형』, 한국영상자료원, 2021.
장유진⋅김은하⋅한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4권: 황선길』, 한국영상자료원, 2021.
맹우영,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5권: 황정렬』, 한국영상자료원, 2021.




***
주1.
“KBS 명화극장에 액션 사극물 <코사크>”, 《조선일보》 1970. 9. 20. 8면 기사. 이 기사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을 미국 NBC-TV의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2.
“[하일라이트] TBC TV 예그린뮤지컬 <재미있는 세상>, KBS TV 어린이 만화영화 <틴틴의 모험>”, 《경향신문》, 1971. 1. 20. 8면 기사.

주3.
“[민성-독자가 만드는 조선일보]일서 수입한 TV만화 용어까지 그대로 방영”, 《조선일보》 1983. 2. 12. 8면 기사.

주4.
사실 <천년여왕>의 방영 중단을 놓고, 일본 대사관이 이를 문제 삼아 조사를 했다는 구술자의 말은 조금 의구심이 남는다. 물론 도에이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항의를 하고, 이를 일본 대사관이 대원동화에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일본 대사관에서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국내 기업을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시간이 지나며 구술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관련 기관을 잘못 말한 것이거나, 실제로는 ‘조사’가 아닌 흔히 ‘초치’라고 표현하는 외교 상 강력한 항의를 받는 수준의 대처를 과장하여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주5.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을 주로 담당했던 구술자들이 들었던 비난으로 ‘친일’과 함께 자주 언급했던 표현 중 하나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미국의 애니메이션 하청을 주로 맡았던 구술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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