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FA 특강노트] 한국영화의 재현 변화 양상: 언술 행위의 표현력과 신체의 의미에 주목하며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 안진수

by.신재영(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2025-02-20조회 283
 
작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로 만나보세요.
 
안진수 교수는 영화이론 전공으로 학계에 입문한 후 한국학의 관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해왔다.
한국의 언어와 사회, 문화가 영화와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언어의 사용을 통해 발휘되는 표현력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한국영화에서의 일제강점기 재현 방식을 분석한
Parameters of Disavowal: Colonial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n Cinema(2018)가 있다.


영화학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한국학자로

강연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 한국영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크게 세 가지 변곡점을 떠올렸는데, 첫 번째로는,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스티븐 스필버그, 1981)를 중앙극장에서 처음 관람했던 시점을 들 수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였고, 극중 트럭 추격씬에서 8분간 이어지는 존 윌리엄스(John Towner Williams)의 장엄한 음악이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후에 동일한 제작자 조지 루카스(George Walton Lucas, Jr.)의 <스타워즈> 시리즈에 매료되었다.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를 책방에서 구입해, 조지 루카스에게 쓴 영문 편지를 루카스 필름의 주소로 발송해보기도 했다(지금의 K-POP 팬들처럼). 그때 형성된 영화적 취향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인 액션영화들에 이끌리는 것 같다.
 
   
<레이더스> 중 / <스타워즈>(조지 루카스, 1977) 중
사진: "Raiders of the Lost Ark", "Star Wars", IMDb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고,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지역 내 도서관이나 예술영화 상영관에서 꾸준히 영화를 봤다. 같은 시기 영화문화가 융성했던 1990년대 한국을 살아간 시네필들과는 다른 경로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 것이다. 그리고 UC 버클리에 영화 전공으로 입학해, 잡지나 책으로만 접했던 영화이론을 공부하였다. 특히 영문학 또는 영화학과의 교수님들로부터 ‘장르영화’를 분석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배움의 범위를 대중적 영화의 영역으로 넓혔던 경험이 유익했다. 완성도는 떨어지는 작품이더라도 이를 문화 안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를 이어간 ‘지성’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 시기였다.

학부를 마친 후, 영화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UCLA 영화이론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이때 서구의 영화이론과 한국영화 사이에 모종의 괴리가 존재함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UCLA에는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 중인 한국학 연구자들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들과 함께 민족주의에 관한 세미나에 참여하고 관련 강연을 들으며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담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박사논문의 주제로 ‘1950~6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의 대중 논리’를 설정했다. 박사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를 위해 1년 여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이때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을 자주 방문하여 한국고전영화를 보았다. 당시에는 연구자들이 한국고전영화를 보려면 영자원이 개최하는 ‘좋은 영화 보기’ 행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개인이 영화를 선택하여 볼 수 있는 영상도서관을 아직 영자원에서 개관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옛날 작품을 무작위로 보면서 오히려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일종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 영화 역사가나 평론가에 의해 비중 있게 거론된 적이 없었던 좋은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상당했다(예를 들어, 인공적 세트를 너무나 아름답게 활용한 <그 여자의 일생>(김한일, 1957)을 꼽고 싶다).
 
<그 여자의 일생> 중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뉴욕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고, 이후 한국어 강사로 1년간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영화와 관련하여 오늘 말씀드릴 주제(영화 속 일상언어와 언술행위)를 연구하게 된 데도 당시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 싶다. 2007년부터는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에서 영상영화전공 교수로 영화이론과 영화사, 그리고 게임을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에 대해 강의했고, 2012년부터는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현재 미국 학계 안에서 한국영화는 한국학과 영화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학 전반이 그렇듯이 한국학에서도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한국영화는 앞으로 영화학보다 한국학의 범주 내에서 더욱 활발히 연구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학에서는 언어, 즉 소통의 수단을 넘어 특정 지역민들의 삶의 형태 전체를 배운다. 영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려면 영자원과 같은 아카이브에서 1차 자료를 접해야 하고, 이외에도 그 지역의 언어로 작성된 수많은 연구 성과를 익혀야 하므로, ‘언어’를 다루는 한국학은 한국영화 연구를 위한 유용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영화에 관한 학술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주체는 여전히 대부분 한국학 관련 기관이며,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학과에서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국영화’로 옮겨가는 현상도 자주 관찰된다. 다만 한국학과 같은 지역학의 관점에서 영화를 연구할 때 발생하는 한계도 있다. 한국영화를 한국사회와 역사의 단순한 반영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지역학 전공 학생들은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강의 전에 이에 관한 개념을 먼저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에 관한 최근의 연구 주제 역시 다양한데, ‘감응’과 ‘정동,’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집중한 (OTT와 같은) ‘플랫폼’의 문제, ‘재현의 정치,’ 요즘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는 ‘포스트 휴머니즘’과 ‘신유물론’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또한 특정 지역의 영화를 보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간(間)국가적 영화제작 및 문화 연구도 이뤄진다. 나의 한국영화 연구 이력을 소개하자면, 먼저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가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분석한 적이 있다(Parameters of Disavowal). 그리고 지금은 영원히 매료될 만한 소재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상한 느낌의 문어체 대사는 무척 흥미롭고,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번져 다른 한국영화들의 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Parameters of Disavowal: Colonial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n Cinema(2018)


말문이 트인 한국영화, 대중을 만나다

<기생충>(봉준호, 2019)이 보여줬듯이, 2000년대 이후 많은 한국영화들이 대중성과 예술성의 동시 달성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요즘 주목받는 감독들의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확인되고 있는 이러한 한국영화의 특성은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지난 20~30년간 한국사회는 전면적이고도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정권의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시장 주도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되거나 분출될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 환경 역시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영화산업의 구조와 기술 또한 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와 함께 한국영화를 주도하는 세대 또한 교체되었다. 그간 많은 영화학자들이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변화에 대해서 두터운 지식과 논의를 생산해왔다. 예컨대, 1970~80년대 청춘영화에서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을 읽는다거나 1990년대 뉴 코리안 시네마를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과 연관지어 분석하는 경향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 변화의 주된 양상

200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이 형성된 계기는 앞선 시대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당시 한국영화에게는 ‘대중성’ 확보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는데, 동시에 새로운 표현력까지 갖추고자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나는 이 대중성과 표현력을 모두 아우르는 변화의 단초를 신체와 언어의 표현 방식에서 찾는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한국영화에서 차츰 다르게 반영되어왔다. 가령 <바보선언>(이장호, 1983)과 같은 작품은 무성영화와 흡사할 정도로 대사가 적다. 대신 관객은 <바보선언>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듯, 인물들의 억압된 몸짓에 응축되어 있는 상징적 의미를 두텁게 읽을 수 있다. 영화 속 언술을 감시하는 ‘검열’이 강력했던 시기인 만큼 영화에서 의미심장한 ‘말하기’가 진행되기 어려웠다는 점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파업전야>(이은기, 이재구, 장동홍, 장윤현, 1990),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1990), <이재수의 난>(박광수, 1998) 등 말수가 적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선을 보였다. 영화를 이미지의 매체로 보려는 경향, 즉, 말이 없더라도 심도 깊은 주제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공유되었던 시대였다고 본다. 다만 200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가 이룬 성취를 보았을 때, 더 이상 이러한 믿음이 통용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수가 적은' 한국영화 <바보선언>, <파업전야>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1990년대에 들어서며 나타난 <서편제>(임권택, 1993)나 <꽃잎>(장선우, 1996)과 같은 진지한 예술영화들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주변화하고 착취하며,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몇몇 작품들을 시작으로 한국영화에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개같은 날의 오후>(이민용, 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1998), <주유소 습격사건>(김상진, 1999) 등이 그것이다. 독특한 말과 함께 욕설도 등장하는 <넘버 3>(송능한, 1997/이상한 말투로 화제가 된 송강호가 이 작품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욕설을 십분 활용한 <황산벌>(이준익, 2003) 역시 인상적이었다.
 
극중 대사와 욕설의 비중을 늘린 대표적 한국영화 <넘버 3>와 <황산벌>

대사가 급증한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대중성을 ‘언어’의 사용에 초점을 맞춰, ‘말문이 트인 영화’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싶다. 먼저, 영화 속 언어와 관련된 몇 가지 전제를 언급하려고 한다. 영화는 문어가 아닌 구어, 즉 일상어에 의해 진행된다. 언어의 의미는 실제로 ‘사용됨’으로써 습득된다는 일상언어철학의 관점을 따른다면, 언어의 특유한 의미는 인물들이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맥락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발화자의 ‘신체’를 볼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의 언어는 신체와 결합된 채 지각된다. 신체유물론을 주장한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에는 외부와 관계를 맺고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가 집합되어 있다.*주1 삶을 통해, 혹은 노동 및 관계의 형성과 마찰을 통해 얻은 감각은 이 복합적인 물질 덩어리인 신체에 매번 아로새겨진다. 영화는 인물의 신체와 결부된 언술 행위의 직접적인 의미작용을 통해 그와 같은 중층적인 신체의 의미를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신체의 의미를 알레고리와 같은 좁은 경로로 한정하여 표현했던 것과 달리,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한국영화는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언어와 신체라는 두 가지 표현의 축을 비비고 충돌시키며 고유한 사실감각과 공감, 정서를 일구어냈다. 또 다른 전제는 언어와 세상이 접착되어있다는 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에서 언어와 세상이 ‘직조’되어있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둘의 긴밀한 관계를 더 강조하고자 ‘접착’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 더불어, 역시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의 의미는 문자화된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사용’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와 대사: 보고 듣는 재미의 본격화

나는 지금까지 나열한 이 전제들이 영화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는, 명민한 작가들에 의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언어가 사용되며 표현력이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해 한국영화 고유의 현실감각과 주제적 심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언어의 기발한 사용 방법이 한국영화에서 빛을 발한 몇 가지 순간을 소개하려고 한다. 각 작품 속 개별 장면들에 나타난 개성 가득한 언술이 얼마나 재치 있게 또는 날카롭게 현실감각을 끌어내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당거래> 중

먼저 <부당거래>(류승완, 2010)의 그 유명한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를 보자. 극중 주양(류승범)은 타인에게 그리 호의적인 인물이 아님에도 이 대사 한 줄만은 유독 큰 관심을 받아왔다. 해당 언술이 사회 현실의 어떠한 측면을 덩어리째 노출했기에 관객이 그 사실성에 깊이 공감했다고 본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내재된 근본적인 문제, 즉 예의와 선의를 다하면서도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에서 생생한 현실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의 대사에 당대 한국의 체험적 현실이 접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베테랑> 중

류승완 감독은 액션들 사이에 묻어나오는 간결한 대사로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문제를 손쉽고도 재치 있게 해석한다. <베테랑>(2014)에서 범죄 현장에 나타난 서도철(황정민)을 본 중고차 매장 업주(배성우)가 “아까 낮에, 저기... 사장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주 유쾌하다. ‘사장님’을 명칭이 아닌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 소장(정만식)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피하라고 권하는 최 상무(유해진)에게 “나도 듣는 귀가 있어요, 상무님아. 여기 배고프고 성실한데 겁 없는 애들 많아”라고 받아친다. 상무님이라는 호칭에는 ‘님’이 붙어 존대의 의미가 있지만, 그 뒤에 손아랫사람이나 짐승 따위를 낮춰 부를 때 쓰는 ‘아’라는 호격조사가 붙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호칭과 개인의 폄하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처럼 위계상 낮은 위치에 있는 인물의 말문이 트이도록 설정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중 인물의 특성이 명확히 나타나는 대사와 행동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에서 박두만(송강호)의 공중 발차기와 함께 들리는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도 인상적이다. 극중 박두만이라는 인물의 특성을 대사와 행동으로 간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으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물음’만을 던지는 폭력적인 공권력의 현실을 한꺼번에 품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포착해 낸 1980년대 삶의 형태는 이 짧은 언술로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영화 속 언어의 사용 방식을 관찰하면서 참고할 만한 개념으로 ‘교감적 소통(Phatic communication)’도 소개하고자 한다. 교감적 소통은 자신의 물음에 대해 상대가 실질적인 답을 전해주기를 요구하지 않고, 서로가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진행하는 소통을 가리킨다. 상대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자신 역시 동일하게 대답하는 상황, 사실 그가 정말 안녕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서로가 소통하고 있음을 인지하고자 행하는 언술이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소통은 사회에 깊이 스며든 관습이기도 한데, 이를 영화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맥락으로 사용하여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에서 출소한 금자(이영애)에게 전도사(김병옥)는 두부를 건넨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금자 씨는 자신을 맞아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자 씨는 “너나 잘 하세요”라는 도발적 언술로 교감적 소통의 암묵적 규칙을 위반한다. 두부가 떨어지자마자 이어지는 심벌즈 소리와 전도사의 리액션 숏, 그리고 금자의 대사 직전에 트래킹되어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는 “너나 잘 하세요”의 위반적 함의를 충격적인 반응으로 담아내었다. 금자의 언술 앞에서 전도사는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른다. 비틀어진 언어가 인물 간의 관계에 얼마나 깊은 자장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친절한 금자씨> 중

2003년 개봉작인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에 나타난 언어에 대한 사유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자. 일단 두 작품 모두 ‘소문’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언어가 사회적 산물이듯, 소문은 제한된 정보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구획 짓는다. <올드보이>에서의 소문은 수아(윤진서)의 상상 임신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우진(유지태)은 언어를 사용한 ‘최면’을 택한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소문은 수사 진행의 직접적인 단서로 작용하며, 의문이 들더라도 믿지 않을 수 없는 모종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두 편 모두에서 ‘매체’를 경유한 언술이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는 오랜 기간 투옥되었다보니 신조어를 잘 모른다며 텔레비전은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오대수에 대한 최면술이 끝날 때는 오디오 매체가 작동하는데, 이는 최면술사 형자(이승신)의 태도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형자는 우진과 오대수의 감금을 모의한 자임에도 그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솔직히 내가 선생을 도울 이유는 없죠”라며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한 독립적 주체임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대수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그녀의 최면술이 그런 인간적인 배려 이면의 ‘기계적’인 과정이라는 감독의 인식이, 음성 기록 매체가 작동하는 모습과 연결되어 제시되고 있다. 오디오 기록 매체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중요한 소재이다. 범행 목격 사실을 진술하는 백광호(박노식)의 녹음된 육성은 그대로이지만, 추후에 이를 다시금 들어본 형사들의 해석은 변화했다. 이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목격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백을 강요했지만, 결국 다시 ‘듣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그 언술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타자의 언술을 듣는 행위가 지닌 두터운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살인의 추억> 중 오디오로 녹음되는 백광호의 음성, 이를 다시 듣는 박두만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술 장면을 보여드리며 발표를 마치고 싶다. <우리들>(윤가은, 2016)에서 친구와 다투다가 상처를 입은 동생 윤(강민준)에게 누나 선(최수인)은 맞은 만큼 다시 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하지만 윤은 “또 때렸어야지”라고 나무라는 누이 선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언제 놀아?” 그에게는 보복보다 ‘놀기’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간명한 언술은 그 화자가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에서 놀이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별다른 해석이 요구되지 않는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즉 그의 삶의 형태가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청자인 선의 당황스런 그러나 진지한 반응을 통해, 영화는 노는 것이 실존적인 행위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 언술이 지닌 위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우리들> 중

영자원의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의 2023년 12호의 주제는 ‘대사’였다. 현재(2024년 7월 당시) 한국영화박물관의 기획 전시 역시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과도 맞닿는, 한국영화를 수식하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강연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살인의 추억> 속 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를, 개인적으로는 “그런 짓을 하고도 감히 밥이 넘어가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해석을 듣고 나니 교감적 소통의 일부로서 인물의 특성과 한국사회의 관습성을 암시하는 매개체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아가씨>(박찬욱, 2016)나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과 같은 최신 한국영화의 대사에 외국어가 사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 중 한 장면을 예로 들자면, 송서래(탕웨이)의 중국어 대사가 통역기에 의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로 변모한다. 그가 사용한 중국어 단어는 ‘마음’을 의미하는데도 통역기에 의해 ‘심장’으로 오역되었는데,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이러한 언어의 미끄러짐을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한국영화이므로,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한국영화들 속 외국어 대사의 함의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워싱턴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김응산)
 
   
<살인의 추억> 중 / <헤어질 결심> 중

(답변)

10여 년 전부터, 관객들은 한국영화의 ‘명대사’를 열렬히 기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뒤따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밥은 먹고 다니냐?”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인데, 나는 그러한 노력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흥미로운 해석을 덧붙여 주셔서 감사드린다.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언어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 작업을 진행하시는 분들의 각별한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 강연의 내용과 연관 지어서는 섣불리 답을 드리기 어려울 듯하며, 관련 주제로 지속적으로 고민해보야아 할 것 같다.

(질문2)
언어가 내러티브 진행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대사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게 되면 특정 대사가 한국사회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납작한 논의가 발생할 우려도 있어 보인다.

(답변)
<부당거래> 속 대사는 한 가지 공통의 삶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기보다, 관객 각자가 개별적으로 현실을 경험하며 느낀 무언가를 포착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경제와 같은 거시적인 틀로 논의될 수 있는 한국사회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관객 각자의 경험적인 요소들이 위 대사를 통해 건드려진 것 아닐까 싶다. 아마 인류학 연구가 이러한 요소를 조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코멘트1)
선생님께서 분석해주신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속 대사는, 매체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며 대사가 영화에서 분리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변화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 지어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대사가 영화 바깥에서 활발히 유통되는 양상에서 어떠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이렇게 재생산되는 언술들은 ‘영화’의 대사라고만 인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코멘트2)
2000년대 초반, 장르적 특색을 띤 채 대중성을 얻은 한국영화에서 언어적 사실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려주셨다. 이때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언어적 표현 중 하나가 ‘욕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욕설은 말씀해주신 것처럼 경험적 현실을 포착하는 대사로 기능하다가도, 어떤 장르(조폭 코미디 등)에서는 단순히 장르적 클리셰의 일환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욕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언어적 표현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특정한 언술이 장르적 관습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현상도 눈여겨 볼만 하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좋은 지적 감사드린다. 조폭 영화에서는 특히 언어적 코미디가 부각되는 것 같다. 또한 앞서 보여드린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언술들 역시 ‘대중성’ 확보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질문3)
2000년대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성으로서 언어와 신체의 표현성을 강조해주셨고, 저 역시 말씀해주신 관점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이 본격화된 시점이 언제인지, 어떠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를 실감하셨는지를 여쭈어보고 싶다. 더불어, 한국영화가 그렇게 ‘말문이 트이게 된’ 원인으로 파악하신 바가 있으신지 역시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조준형)

(질문4)
앞의 질문과 겹치는 내용이 있어 함께 문의드리고 싶다. 말씀해주신 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한국영화가,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서부터 창작자들이 여러 방면으로 공을 들여 ‘말문이 트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다만 이 변화에 기여한 요소로 사회문화적 영향, 영화를 제작하는 기술적 조건의 변화 등도 고려하실 예정이실지를 여쭈어보고자 한다. 당시 한국영화계에서는 동시녹음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감독들이 대사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창작에 관한 아이디어 역시 다방면으로 발생했는데, 듣기로는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가 봉준호  감독이 설계한 대사들 사이의 빈 공간을 송강호 배우가 애드리브로 채운 결과라고 한다. 이렇게 배우를 포함한 여러 창작자의 공동의 노력이 가능해진 환경으로의 변화가 한국영화의 말문이 트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실 계획이 있으실지가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답변)
아직 구체적으로 고려하지는 못했지만, 논의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말씀해주신 대로 이 시기에는 동시녹음과 더불어 <타이타닉>(제임스 카메론, 1997)의 국내 개봉과 함께 돌비 시스템이 갖춰지는 등 소리의 청량함을 더하는 기술적 변화가 나타났다. 그보다 이전에 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보고 싶다. 언어적 실험으로 한국영화의 표현력을 확장하는 최근의 감독들,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기생충>에서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북한 아나운서의 흉내를 내는 언술), 나홍진 감독(<곡성>에서 ‘대화’가 지닌 중요성) 등의 작품으로, 영화가 지닌 가치를 ‘한국어 매체’의 측면에서 더욱 드높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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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테리 이글턴, 『유물론』, 전대호 역, 갈마바람, 2018, pp.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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