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영화음악감독 인터뷰3: 심현정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4-05-12조회 18,075
영화음악감독 인터뷰3: 심현정

10년 전인 2003년, 한국영화는 절정이었다. <지구를 지켜라!>로 시작해 <살인의 추억>과 <장화, 홍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황산벌> <원더풀 데이즈> <바람난 가족>과 <싱글즈> <실미도>가 함께 개봉됐던 해. 양적인 팽창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공까지 이뤄낸 황금기였다. 그리고 그 정점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올드보이>가 있었다. 복수에 관한 지독하고 놀라운 영화. 연출과 연기, 각본, 촬영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 매력을 선사했던 건 다채로우면서 세련된 음악의 힘도 한몫했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3명의 작곡가에게 스코어를 부탁했고, 그중 가장 많은 곡을 매만진 심현정은 이제 막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두 편의 상업영화에 참여한 신예 음악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씬에 쓰여 처연한 인상을 남긴 대수 테마 ‘The Old Boy’와 유난히도 가슴 시린 슬픔과 아름다움을 선사한 미도 테마 ‘The Last Waltz’ 등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보이며 세상에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다음 해 <누구나 비밀은 있다>로 영화음악가로 홀로선 그녀는 지난 10년간 영화와 TV를 부지런히 오가며 ‘유일한’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표적인 여성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특유의 섬세한 서정과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보는 이로 하여금 손쉽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심현정의 영화음악은 영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포용력이 만나며 극대화된 결과다. 전국에 원빈 열풍을 불러일으킨 <아저씨>를 비롯해, 동화풍의 복고적 판타지 <늑대소년>뿐만 아니라 ‘눈물’ 시리즈로 명명된 일련의 MBC 고품격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 <남극의 눈물> 등을 통해 흥행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거머쥐는 기염도 토했다. 할리우드에서조차 드문 여성 작곡가라는 한계와 벽을 딛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고히 구현하고 있는 그녀에게 대한민국에서 여성 영화음악가로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문득 직접 듣고 싶었다.

피끓는청춘

감독님 작품 중 가장 최근 개봉한 <피 끓는 청춘>은 코미디입니다. 그답게 음악이 굉장히 짧고 기능적으로 사용됐는데요, 그러면서도 <그해 여름>이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처럼 서정적이고 복고적인 색채의 따뜻한 사운드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연우 감독님이 요구한 콘셉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연우 감독님은 영화에서 음악이 주로 선곡 위주로 가길 바랐고, 작곡되는 음악으로는 피아노나 기타 솔로 정도의 깔끔한 사운드를 원하셨어요. 특히 작곡되어서 기능하는 음악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효과적이고 깔끔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신경 썼어요. 기타나 아코디언 등의 향수를 자극하는 악기를 사용해 복고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들도록 작업했죠.

스코어에서 특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80년대라는 시대 배경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시대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만드는데 주력했어요. 영화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단편적으로 사용되어 다른 역할을 하는데요. 추억의 아코디언, 일진의 일렉 기타, 라틴풍의 기타, 미니멀한 피아노 등 다양한 음악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시대와 배경을 뛰어넘고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음악이 필요했는데요. 특히 어린 시절의 애틋한 기억과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중요했어요. 이는 영화 후반에 피아노와 기타 등의 악기로 변주되기도 하는데 짧지만 임팩트 있는 멜로디를 만들려고 노력했죠.

본격적인 (청춘) 코미디 장르는 거의 처음이셨는데, 어떤 지점이 어려우셨는지요?
역시 코미디는 제게 여전히 어려운 장르더라고요. (웃음) 코미디를 즐겨보기도 하고, 보는 건 재밌고 즐거운데 이를 음악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제겐 아킬레스건과 같아요. 앞으로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웃음)

이연우 감독의 전작인 <거북이 달린다>도 그렇지만 충청도라는 지역적 특색에서 오는 사투리와 독특한 코미디의 리듬이 있었는데요, 그런 점들이 음악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건 없었나요?
감독님의 전작을 매우 재미있게 봤어요. 충청도라는 영화의 배경이 풋풋한 농촌이어서 구수한 시골스러움도 중요했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현시대의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대적인 느낌이 들도록 음악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음악으로 충청도 사투리의 느낌을 구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 같아요. (웃음)

<그해 여름>처럼 <피 끓는 청춘>도 삽입곡이 많이 쓰였습니다. 김창완의 ‘개구쟁이’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녀’, 팝송으로는 엔딩에 흐르는 스타쉽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와 롤러장에서 나온 놀란스의 ‘I’m in the Mood for Dancing’, 소풍 갔을 때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나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 조이의 ‘Touch By Touch’ 등... 선곡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건가요?
이연우 감독님은 학창시절 대중음악을 좋아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을 직접 선곡하셨는데요. 그러다 보니 고액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풍성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했었죠. 선곡 음악은 주로 감독님께서 선정하셨고, 2곡 가량은 저희 음악 팀과 함께 리서치를 통해 선곡했어요. 작업하다 보니 80년대 음악에 또 심취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영화의 주제곡 ‘피 끓는 청춘’은 듀스의 이현도 씨 작업물인데요, <늑대소년>처럼 박보영 씨가 직접 주제가를 불렀고요. 주제가를 따로 의뢰하게 된 건지, 아님 <아저씨> 엔딩 곡처럼 아예 별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건지 궁금합니다.
‘피 끓는 청춘’ 곡은 이연우 감독님과 친분 있는 이현도 씨가 영화를 위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에요. 저와는 별도로 진행된 작업이었죠. 원래 같은 곡을 럼블피쉬가 불러서 영화 중 가능한 부분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딱히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엔딩 크레딧에만 박보영 씨 보컬 버전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노래가 매우 깔끔하고 서정적이어서 마지막을 잘 장식해준 거 같아요.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쭤볼게요. 애초에 관심이 있으셨던가요?
제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취미로 치고 있긴 했지만, 중학교 때 다니던 성당이 재건축을 하면서 오르간이 기증될 때였어요.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당시 흔하지 않다 보니까 미사 때 연주해줄 반주자가 필요했고, 성당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몇몇 지망생을 데리고 오르간 교육을 시킨 거죠. 그때 오르간을 연주하며 음악이 너무 좋아져서 전공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교의 오르간 학과는 모두 피아노로 시험을 쳤고, 피아노로 전공을 준비하던 사람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져 낙담하고 있을 때, 우연히 작곡과에 대한 권유를 받게 됐어요. 그때는 작곡과를 나와서 뭘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여성 작곡가’를 본 적이 없었는데, 레슨을 받고 공부를 하다 보니 매우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작곡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4년의 학부를 마치고 졸업 연주를 하게 됐는데, 친구와 가족들을 잔뜩 초대해서 그동안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안 좋은 거예요. 당시 조성이 아닌 무조의 현대음악을 작곡했는데 주로 공포 영화에 많이 들어가는 불협화음 류의 음악을 연주했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지금도 생소할 수 있는 거죠. 전 나름대로 고민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다들 편하게 와 닿지 않는 거예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좀 더 사람들이 좋아하고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겠다 하고 마음을 먹게 됐죠. 학사를 마치고 뉴욕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마침 뉴욕대학교에 영화과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음악 수업이 있더라고요. 수업을 듣고 과제를 발표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영상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뉴욕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2000년에 한국에 들어오니까 영화산업이 막 붐을 타기 시작했고, 전문 인력도 필요했던 때였어요. 특히 영화음악 분야에 인력이 필요했고 때마침 알맞은 공부를 하고 와서 그런지 빨리 입봉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H와 밀애

한국영화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 H >하고 <밀애>였어요. 스텝으로 참여하셨는데 쟁쟁하고 유명한 조성우와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조성우 음악감독님을 처음 소개 받았는데요.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이명세 감독님께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개봉하고 뉴욕에 오셨어요. 그때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의가 있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영화를 찍으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 유학생들과 어학 공부도 하시던 중에 저와도 알게 된 거죠. 친구 분이 안무가이셨고 일인 무용 공연을 하시는데 감독님이 직접 연출을 담당하셨죠. 공연 시 음악이 필요했고 유학생 소개로 저에게 음악을 의뢰하시어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당시 이명세 감독님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비롯해서 조성우 음악감독님과 작업을 많이 하셨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명세 감독님이 조성우 음악감독님께 장문의 편지 즉 추천서를 써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성우 음악감독님 스튜디오에 가게 됐는데, 처음에는 그곳에 김준석, 박기헌, 최용락 음악감독과 같은 쟁쟁한 스텝들이 몇 년 동안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고, 저는 일종의 낙하산으로 들어가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조성우 음악감독님이 당시 영상원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학생들과 단편영화를 작업하는 기회를 주셔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조성우 음악감독님의 스튜디오 M&F에서 < H >를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음악 강의를 했었는데 동료 시나리오 작가 강사분이 조영욱 음악감독을 소개해 주셔서 <밀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죠. <밀애> 에서 작곡은 한 곡했고 주로 클래식 음악의 편곡 또는 녹음진행을 담당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는 작품 <올드보이>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그러고 보니 < H >에서도 오르간곡이 있어요.
맞아요. 그 영화에 조승우 씨가 연기한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있었고 종교적이거나 숭고한 느낌이 필요한 거 같더라고요. 급하게 조성우 음악감독이 작업하신 테마곡을 오르간 곡으로 편곡을 해서 영화에 사용했답니다.

올드보이

그다음이 가장 유명한 <올드보이>네요.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거예요?
얼떨결에 하게 됐죠. (웃음) 상업 영화음악으로는 <밀애>와 < H >에서 몇 곡밖에 작곡하지 않았는데, 조영욱 음악감독님께서 <올드보이> 시나리오를 주셨고 거의 메인 작곡가로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솔직히 작품 의뢰를 받고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굉장히 긴장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작품이 주는 영감이 컸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여지까지 공부한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잠도 4시간만 자면서 신나게 작업했나 봐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열심히 작업한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웃음)

최승현 음악감독이 4곡정도 작업하시고, 이지수 음악감독이 5곡정도 참여했는데, 어떤 식으로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 건가요?
최승현 감독은 당시 <빙우>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고, 이지수 감독은 <실미도>를 작업하고 있었어요. 지수 씨는 재학생이었고 우진의 테마를 가지고 와서 영화에 여기저기 배치하되 조금씩 변형시켜서 입히게 되었어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작업을 병행하느라고 바빴지만 조금씩 서로 도와가며 <올드보이> 작업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제가 메인으로 작곡 작업을 하다 보니까, 막판에는 시간이 몰려서 친구에게 도움까지 요청해가면서 밤을 꼴딱 세며 악보 작업을 했던 기억도 있네요.

올드보이 장도리씬
장도리 씬

‘대수의 테마’는 장도리 씬에서 흘러요. 원래는 굉장히 많은 컷으로 이루어진 장면인데 롱테이크로 한 번에 찍으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합에 맞춘 음악이 아니라 느슨하게 진행되는데 처연한 장도리 신의 액션과 트럼펫이 잘 어울렸던 거 같은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그 시퀀스가 <올드보이> 영상물 중 가장 처음 받은 장면 중 하나에요. 그 시퀀스를 보면서 음악적 중심을 잡아나가기 시작하고 테마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죠. 장도리 액션씬을 보고 개인적으로 좀 어설프다 (웃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의 임팩트가 잘 안 느껴지고 주먹을 헛치는 대도 넘어지고 굉장히 길고 지루하게 싸움을 하는 듯이 느껴졌어요. 자기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끝도 없는 지리멸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게 처연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다는데서 공감대가 형성된 거 같아요. 그래서 트럼펫을 선율로 하는 음악이 나왔고, 당시 제가 좋아했던 뮤지션인 린킨 파크와 필립 글래스의 느낌이 많이 묻어 나오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이지수 음악감독의 ‘우진의 테마’와 심 감독님의 ‘미도의 테마’가 모두 왈츠에요. 서로 다른 두 곡이 모두 왈츠인데 애초에 그렇게 의도하신 건가요?
왈츠라는 설정은 조영욱 감독님의 의도였고 초반부터 제시한 지수 씨의 음악 ‘우진의 테마’가 왈츠였기에 저도 쓰게 됐던 거죠. 작곡 후 박찬욱 감독님이 ‘미도의 테마’를 들으시고 영화의 개미 시퀀스와 엔딩에 넣으시게 된 거랍니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색채감이 뚜렷한 영화인 거 같아요. 박찬욱 감독이나 조영욱 음악감독이 제시한 콘셉트는 어떤 게 있었나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이 당시 보기용 샘플 음악 몇 곡을 제시했는데, 저는 대체로 템프(temporary) 트랙 즉 참고용 음악들은 음악적 색깔 정도만 참고하고 제 임의대로 작업한답니다. 주로 영상에 맞춰서 제가 받은 영감으로 작업하는 편이죠. 그래서 음악을 제가 하고 싶은 데로 미니멀리즘으로 작곡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굉장히 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수용하실 수 있었던 분이 박찬욱 감독님이셨던 거죠. 그런 음악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영화에 잘 수용되지 않는 편인데 음악에 굉장히 조예가 깊으신 박찬욱 감독님은 잘 받아주시고 격려해 주셨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작곡과 출신이 아니신데, 보통 영화음악가 하면 작곡 전공을 떠올리잖아요? Composer와 Supervisor의 차이점인건지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뮤직 슈퍼바이저이신 거죠. 작곡은 안 하시지만 영화와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작곡자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해서 영화음악을 만드세요. 그리고 그 전에는 <접속>과 같은 많은 영화에서는 최고의 선곡을 하셨죠. 예전에는 음악감독님들이 LP판을 잔뜩 가지고 와서 선곡하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이를 뮤직 슈퍼바이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포져는 영상에 맞추어 음악을 작곡하는 일을 하죠. 요즘은 점점 할리우드식으로 변해 영상편집을 한 후에 음악을 작곡해서 입히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작업하신 최승현 음악감독과 이지수 음악감독도 영화음악가로 독립하시고, 심 감독님도 독립을 하셨는데, <올드보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거 같아요.
<올드보이>는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그 작품 바로 다음 해에 입봉을 할 수 있었죠. (웃음) 30대 초반 너무 어릴 때에 홈런을 쳐서 그때는 나이 먹어 보이려고 나름 노력했던 거 같아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로 입봉을 하셨어요. 선 굵은 남성 멜로를 찍으시던 장현수 감독님이 연출 하셨는데, 특이하게 로맨틱 코미디로 하셨어요.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당시 <이공 프로젝트>라고 영화 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모여서 20분짜리 단편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어요. 그 때 김의석 감독님의 단편을 작업하면서 장현수 감독님을 소개받고 알게 되었죠.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할리우드의 <어바웃 아담>이라는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였어요. 감독님께서 영화의 음악을 할 수 있겠냐고, 자신 있냐고 질문하셨고 저는 자신은 없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대답했는데 입봉을 하게 된 거죠. 지금까지 가장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든 OST 중 하나로 기억되네요. 처음 입봉작이다 보니까 욕심을 가지고 음악 장르를 다 다르게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과 작업하고, 처음이라 좌충우돌 힘들기도 했지만 매우 야심차고 뜻 깊은 작업이었답니다.

욕심이 묻어나는 이유가, 세 자매에게 각각 다른 장르를 주셨어요. 첫째가 탱고 살사와 같은 라틴, 둘째에게 클래시컬한 음악, 셋째가 재즈 가수였잖아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은데 어떤 식으로 선곡하시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입봉작이라 경험이 부족해 뮤직 슈퍼바이저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어요. 광고 음악계의 선배로 평소 알고 있던 분이었는데, 선곡과 녹음 또는 편곡자 섭외와 같은 도움을 요청했죠. 영화중에서 세 자매 중 유부녀인 첫째 추상미 씨에게는 살사나 탱고의 라틴 스타일, 공부벌레 둘째 최지우 씨에게는 클래식 음악, 재즈가수였던 셋째 김효진 씨에겐 재즈음악으로 음악 컨셉을 잡았어요. 당시 재즈가수로 분했던 김효진 씨는 이미 임희정 재즈 가수에게서 서너 곡을 사사 받고 연습하고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OST라고 할 수 있지요.

사과

다음 작업하신 게 실질적으로는 <사과>였어요. 촬영이 2005년에 됐는데 3년이 미뤄졌어요. 힘드신 점은 없었나요?
이야기 자체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조금 더 심각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에서 음악이 약간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두드러지는 게 있어요. 소소한 일상의 관찰을 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밋밋하게 느껴질까 봐 음악으로 색을 강렬하게 팍팍 입혀준 거죠. 그때도 욕심을 내서 음악 공연장을 통째로 대관해서 현악기만 15명 이상 연주했고 제대로 멋진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영화가 핸드헬드로 찍은 화면이라서 음악하고 붙여 놓으면 잘 어우러지는 거 같더라고요.
촬영을 손수범 감독이라고 뉴욕대학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는데 지금은 <페티쉬>로 감독 데뷔를 하셨죠.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촬영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한국에 와서 우연히 함께 작업하게 된 거에요. 영화전체를 다 핸드헬드로 작업해서 몸이 피로해 고생하셨다고 들었어요.

<사과>에서 끝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쓰셨어요.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클래식 곡이기도 한데 이 곡을 선곡하신 이유가?
그 곡은 제가 선곡한 건 아니고요. 감독님이 선곡하셨어요.

음악감독님으로서 감독님이 미리 곡을 선곡한 경우 어떠신지?
영화와 잘 맞으면 좋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영화랑 잘 안 맞으면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알려드리고 서로 최대한 의견 수렴이 잘 되도록 노력하죠.

그 영화(<사과>)에서는 직접 출연도 하셨어요.
오르간 반주자로 잠깐 출연했었죠. 정동교회에서 촬영하는데 바로 전날 촬영 일정이 결정된 거예요. 아침 일찍 촬영장에 갔는데 연주자 섭외며, 비용이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냥 제가 직접 성가 복을 입고 반주하게 된 거죠. 지금도 교회에서 반주를 하니까 실은 오르간 반주가 제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또 현장에서는 음악감독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즐거웠답니다. (웃음)

현장에도 자주 가세요?
자주는 못 가는데 적어도 한 번은 가려고 해요. 가서 영화 분위기도 파악하고 감독님과 스텝들과 얘기도 하며 서로 친해지게 된답니다. 물론 후반 작업 때 감독님을 자주 보지만 음악 작업에 집중하다보니까 워낙에 예민하고 긴장해 있을 때라 촬영할 때 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없죠.

강이관 감독님하고는 <시선 너머>에서 <이빨 두 개>도 작업하셨어요. 호흡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감독님도 음악을 일반적이지 않게 가고 싶어 하는 감독 중 한분이세요. <이빨 두 개>도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 있는데 음악으로 색깔을 강하게 집어넣었던 거 같아요. 제가 당시 <늑대소년>을 하는 바람에 <범죄소년>을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둘 다 제목이 ‘소년’이네요. (웃음)

그럼 먼저 의뢰도 왔던 건가요?
강이관 감독은 가깝게 지내는 영화인 지인중 하나예요. <사과>가 몇 년 동안 하도 개봉을 못 하는 바람에 스텝들이 친해지게 됐죠. 당시 만나서 술 마시며 서로를 위로하며 가까워진 거 같아요. (웃음)

그해여름

다음이 조근식 감독의 <그해 여름>이에요. 보면 ‘해변으로 가요’ ‘흔들리지 않게’ ‘ 고개’ ‘Yesterday When I was Young’ 등의 곡들이 쓰였는데, 사운드트랙에는 실려 있지 않아요. 저작권 때문이었나요?
그렇죠. 거기서 가장 중요한 노래가 엔딩에 흘렀던 ‘Yesterday When I was Young’ 저작권 때문에 앨범에 실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매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죠. 선곡 시 수십 곡을 가지고 열댓 명이 모여서 오랜 시간 회의를 하면서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결정된 곡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강력히 지지하던 곡이었고 영화의 엔딩곡이 된 거죠.

보면 작품들이 모두 과거와 연관된 작품들을 많이 하셨어요. <올드보이>도 그렇고 <더 파이브>도 그러고 <아저씨>와 <늑대소년>도 보면 과거 장면들이 중요하고요. <조용한 세상>도 과거와 왔다 갔다 하고요.
그러네요? 전 들어오는 영화를 주로 하는 편인데... 어떤 분은 제 음악을 듣고 ‘서사적’이라고 표현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걸 보면 그런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네요.

그래서 감독님들이나 제작자 분들께서...
섭외를 저에게 하시나 봐요. 그러실 수도 있어요.

조용한세상

조의석
감독님의 <조용한 세상>을 다음으로 하셨는데요. 스릴러인데 스릴러 같지 않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처음 좀도둑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코믹하기도 하고요. 어떤 의도로 작업을 하신 건지요?

<조용한 세상> 영화는 음악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릴러인데 감동이 들어간 스릴러라서 차가운 스릴러로만 갈 수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만 갈 수도 없는 영화였죠. 그렇게 감동 코드가 중간 중간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까 차갑고 이성적인 스릴러를 끌고 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올드보이> 영향 때문에 계속 이쪽 장르 제의를 받으시는 거 같아요.
그런 거 같아요.

보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나와요. 선곡은 어떻게 하셨는지?
그것도 감독님이 선곡을 해서 왔어요. 그래서 저작권 문제 해결하고, 편곡해서 합창으로 부르게 했죠.

합창곡도 사운드트랙에는 없더라고요.
그것도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죠.

어머니는울지않는다

다음 작품이 하명중 감독님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예요. 굉장히 의외의 선택이신 거 같아요. 하명중 감독님의 <혼자 도는 바람개비> 이후 17년 만의 작품이었는데요. 나이도 좀 있으시고. 어떻게 작업하게 되셨나요?
제가 유학을 마치고 와서 처음으로 연극 음악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이종사촌 언니인 전혜정 미술감독과 같이 작업했었고 <러브레터>라는 미국 원작의 연극이었죠. 주연배우였던 하상원의 아버지가 하명중 감독님이셨고, 또 M&F의 소개로 저에게 영화음악 의뢰가 들어왔어요. 연극 작업 때는 영화작업 때와는 다르게, 음악 작업만 한 게 아니라 번역도 하고 소품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해야했어요. (웃음)

또 연극 음악을 하고 싶으신 생각도 있으세요?
연극보다는 무용 음악 쪽을 하고 싶어요. 기회는 아직 안 닿았지만 예전부터 무용음악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더라고요.

하명중 감독님과 세대차이가 느껴지신다 거나 그러시진 않았나요?
해외 영화를 보면 거장이라는 호칭을 듣는 50대, 60대 이상의 감독들이 그 나이 대에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있잖아요. 세상을 포용할 수도 있고 보는 시각도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는 거 같아요. 세대 간의 협업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인호 씨의 소설이 원작이에요. 작업하면서 어머니 생각도 많이 하고, 할머니 생각도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리고 어둡고 슬플 수 있는 이야기를 발랄하고 경쾌하게 끌고 가서 음악작업을 하면서도 매우 즐거웠답니다. 특히나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는 작품을 하게 돼서 저는 매우 기뻤고요. 배우와 스텝이었던 두 아들들이 감독님을 잘 도와줘서 작업이 잘 진행되었던 것 같고 지금도 제가 작업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네요.

곡의 분위기가 보면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게 있더라고요. 굉장히 슬픈데 음악은 또 밝고. 경쾌하고요. 어떻게 보면 눈물이 나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밝은 톤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감독님께서도 이야기를 신파로 슬프게 하고 끌고 가고 싶지 않아 하셨고, 극에서 직접 연기를 하셨는데 아주 유머러스하게 푸셨죠.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말이죠. 영화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게 슬프게 보일 수도 있지만 슬픈 거보다는 좀 더 승화시킨 정서라고나 할까요. 저도 감독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본 지인들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부모님 속 썩인 사람들은 영화 보면서 다 울었을 거라고. (웃음)

난장대학살

이때 즈음부터 다큐멘터리 음악을 맡기 시작하셨어요. MBC 다큐 <난징 대학살>부터 시작하셨는데, 어떤 제의로 하게 되셨는지? 보통 TV 쪽에서 제의가 오게 되면 드라마 음악을 하게 되잖아요.
MBC 방송국의 조준묵 피디가 <올드보이>를 보고 음악이 하도 세서 <난징 대학살> 음악을 부탁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난징에서 있었던 일본인의 만행을 고발한 책을 기반으로 만든 다큐인데요. 내용이 강하다 보니 강한 음악을 만들었던 저를 섭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영화 작업이 없었던 터라 감사히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게 되었어요.

다큐 음악이 극영화 음악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 거 같은 데요?
많이 차이가 있어요. 다큐도 다큐 나름인데 제가 작업한 다큐는 주로 이야기의 스케일이 컸어요. 한 인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주로 다루는 영화보다 담고 있는 내용이나 촬영해온 영상의 크기가 달랐죠. 당시 한국영화에서 멋있는 자연의 그림이나 끝없는 설원 등 항공촬영으로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 흔하지 않답니다. 영상음악을 하는 사람은 이런 멋있는 그림에 음악을 넣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웃음) 특히 ‘눈물 시리즈’는 영국의 BBC 다큐 항공촬영 전문팀에게 촬영을 맡겼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화면이 만들어졌던 거죠. 멋진 화면을 보니까 영감도 받고, 또 다루고 있는 내용도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신나게 작업했죠. 그것도 시리즈로 4년이나 연속해서 음악작업을 하게 되서 운이 매우 좋았던 거 같아요.

‘눈물 시리즈’를 보면 해외에서 작업을 하셨어요. 체코 프라하 심포니에타. 해외에서 레코딩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눈물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음악도 스케일이 커야 했어요. <북극의 눈물>의 영상물을 처음 받아 보고는 매우 당혹스러웠어요. 북극에는 소리가 정말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작진은 클래식 악기구성의 음악으로 설원의 넓은 공간을 채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참고로 음악 작업시 TV용 음악은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녹음하지 않고 컴퓨터로 샘플 사운드를 만들어 작업합니다. 오케스트라 녹음을 하려면 파트별로 악보로 만들어서 연주자들에게 연주시키고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거죠. 영화와 비교해 장단점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대신 간섭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간에 맞추어 음악이 잘 나와 주면 다행인거죠. (웃음) 그런데 영화용으로 극장에서 상영될 때는 좀 다른 이야기에요. TV는 스피커가 작아서 실제 연주와 가짜 소리의 차이를 크게 구분하기 힘든데 비해서 극장은 5.1 사운드 시스템의 크고 좋은 스피커로 깜깜한 데서 집중하며 듣다 보니까 인공적인 컴퓨터 소리의 티가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극장용 음악작업으로 제작비를 받아 오케스트라 녹음을 처음 하게 된 거랍니다.

곡이 나오면 바로 쓰는군요.
방송국에선 후반작업 할 시간이 없어서 선곡을 주로 해요. 부족한 시간 때문에 TV에서 음악감독의 역할은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장면에 맞는 음악들을 찾아서 영상에 집어넣는 업무를 담당하죠.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야심차게 기획한 다큐멘터리여서 음악 작곡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덕분에 지금은 음악 빨리 만드는 선수가 되었답니다. (웃음)

북극의 눈물

2탄 <아마존의 눈물>과 3탄 <아프리카의 눈물>은 부족민 말소리도 있고, 환경적인 면에서 작업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마존의 눈물>의 경우는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어요. 주로 원초적으로 생활하는 부족민의 이야기로 실제로 본적도 없는 몸에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는 태초의 인간들을 보는 것 같은 신기한 영상이었죠. 그러다 보니까 문명의 부산물인 클래식 악기보다는 자연에서 날법한 소리들을 사용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밀림이 습한 지대가 되서 그런지 소리가 울려서 새소리, 동물소리 등등이 비교적 시끄럽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은 조용히 깔리되 현장 소리처럼 만들어 태초의 소리 같은 악기를 활용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컴퓨터의 샘플(실제 녹음된 소리)을 뒤져서 부족민들이 사용할 법한 악기들, 동물 울음소리 같은 음색을 찾아서 음악 작업을 했는데 내용과 잘 어울렸던 거 같아요.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작업상의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죠.

그럼 <북극의 눈물>에서 전혀 소리 없는 그림을 음악으로 채웠다면 <아마존의 눈물>은 완전히 반대인 거겠네요?
완전히 반대인 거죠. 아마존은 워낙에 말도 많고 주변 소리도 많으니까 음악을 줄이되, 악기도 그 동네에서 날법한 소리로 자연스럽게 느끼게 작업했어요.

TV에서 PD와 불일치가 날 땐 어떻게 하나요?
부딪힐 시간이 없어서 잘 안 부딪혀요. (웃음) 그게 TV 작업의 좋은 면이에요. 다행히 함께 일한 피디님들이 저를 잘 신뢰해 주셔서 감사했답니다. 예를 들면 <북극의 눈물> 피디는 음악이 들어갈 자리를 잡아주곤 했는데, <아마존의 눈물> 피디는 음악 들어갈 자리를 안 잡아줬어요. 제가 내용을 봐가며 음악 큐를 잡는 거죠. 전문가에게 완전히 맡겨버리는 건데 TV는 시간에 쫓긴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일하기는 조금 더 수월했던 거 같아요.

그쪽의 전통음악이나 그런 게 들어갔나요?
전통음악, 예를 들면 <북극의 눈물>에는 이누이트들이 부르는 ‘쓰롯 싱잉(Throat Singing)’ 이라는 헉헉대며 특이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를 제작진들이 현장에서 녹음해 왔고 이걸 음악적으로 한번 활용하자고 하더라고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개썰매를 타고 신나게 사냥하러 가는 장면에 쓰이게 됐답니다. 초반에는 쓰롯 싱잉의 헉헉헉 소리가 나면서 기존의 악기인 마림바나 실로폰 같은 타악기가 함께 연주되는 음악이 되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트랙으로 이누이트들이 북을 치면서 노래하는 행사가 있는데, 이 곡에 현악기를 함께 연주해서 오로라가 나오는 장면에 집어넣은 게 있답니다. 또 다른 전통음악으로 아마존에서 갖고 온 노래의 경우, 부족민들이 키우는 강아지 소리 등과 같은 주변소음이 많아서 짧게 OST에만 겨우 실을 수 있었고요.

쓰롯 싱잉이 생소한데요.
네 쓰롯 싱잉이라는 창법이 있더라고요. 재미있어서 OST에 수록했는데 이누이트들의 전통음악으로 사냥하러 갈 때의 흥분된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패밀리마트

김건 감독의 <패밀리마트> 작곡가가 아닌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셨는데, 어떤 차이점이 있으신지요?
슈퍼바이징 역할도 매우 중요해요. 작곡가와 감독님과 소통을 잘 해야 하고, 특정 음악장르 작업에 강한 작곡가를 분별해 작곡을 맡겨야 하죠. 음악이 들어갈 자리와 음악의 종류를 잘 파악해서 제시해야하는 건 기본이구요. <패미리마트>는 <아저씨>를 같이 작업하게 된 스텝들이 작곡했고 <페이퍼 로드> 다큐도 같이 작업했답니다.

팀의 개념인 건가요?
그렇죠. 영화는 주로 팀의 개념으로 작업한답니다. TV는 팀으로 일할 시간이 없는데, 영화는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양이죠. 그래서 영화마다 다르긴 하지만 1~3명의 스텝과 팀을 꾸려 같이 작업하는 편이에요.

소상민 감독의 가 <피 끓는 청춘> 전까지는 유일한 코미디 같아요.
그나마 그것도 블랙 코미디에요.

독립영화 음악이었는데, 환경이 충무로와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친구가 아카데미 출신인데,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슈퍼바이징을 담당했죠. 가끔 독립영화음악 작업도 하죠. 좋은 독립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많이 소개되고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저씨

그다음이 이정범 감독님의 <아저씨>입니다. 액션영화였는데 할리우드에서도 여성 음악가가 액션영화 하는 건 거의 없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 <올드보이> 때부터 그랬어요. 장도리 씬 등.. 개인적으로 액션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웃음) 어렸을 적에 무용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액션이 몸의 동작이 표현이 되는 거잖아요. 물론 총 쏴 죽이고 끝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올드보이> 장도리 씬도 그렇고 <아저씨>의 터키탕 씬도 그렇고 3분짜리의 긴 시퀀스인데요. 요즘은 편집으로 다 짜깁기가 되서 그런지 3분을 한 음악으로 미는 영화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죠.

이정범 감독님이 딱히 요구하신 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범 감독님과는 마이클 만 감독을 이야기 하면서 <라스트 모히칸> <히트> <콜래트럴>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특히 <콜레트럴>에서 특정 씬의 음악을 언급했는데, 일렉 기타가 사용됐어요. 또 LA 불빛이 인상 깊은 도시적인 느낌을 영화에서 참고로 하게 됐죠. <아저씨>에서는 기타 사운드로 ‘도시의 외로운 늑대’를 표현해보자는 제안을 하셨어요.

이 정도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전 생각 못 했어요. 정신없이 그것도 촬영이 끝나자마자 개봉까지 시간이 굉장히 짧았어요. 그래도 짧은 시간 내에 작업했던 것치고는 신나게 잘 작업했던 거 같아요.

삽입곡들은 작업을 하신 건가요?
엔딩 곡을 제외하고는 우리 음악 팀에서 작업을 했답니다. 엔딩 곡은 초반부터 작업을 미리 시작하긴 했지만 원하는 가수나 뮤지션 그리고 제작비 등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예고편 음악작업을 했던 팀인 매드 소울 차일드의 ‘Dear’라는 곡이 들어가게 됐죠.

늑대소년

그 뒤로 바로 작업하신 작품이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이에요. 이 작품도 성공을 했습니다. 1960년대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 현실이 아닌 판타지 이야기. 영화가 그런데요, 음악도 그렇게 접근하신 건가요?
그렇죠. 일단 판타지를 베이스로 했죠.

여기서도 체코에서 녹음하신 거 같아요. 극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잘 아시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아직까지는 (웃음) 그것도 운 좋게 동료가 녹음을 하러 가는 김에 함께 좋은 조건으로 녹음할 수가 있었어요. 적어도 한 달 전에 녹음 예약을 해놔야 하거든요.

후반에 작업 시간이 좀 있으셨나 봐요.
작업 시간이 많진 않았어요. 영화음악 작업시간은 늘 많진 않다고 느껴요. 편집을 완료하고 나서부터 음악작업 기한을 길게 주지는 않는 편이죠. 그리고 일정을 예측할 수 없어서 녹음 작업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우연히 김준석 음악감독이 녹음할 날을 예약해 놓고 있었어요. 거기에 추가로 덩달아 녹음하다 보니 가능할 수 있었죠. 덕분에 사운드가 훨씬 풍부해졌어요.

그때 김준석 음악감독은 어떤 작업 때문에 체코에 가신 건가요?
TV 드라마였어요. TV 드라마는 녹음을 미리 해놓을 수 있어 일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초반에 코믹한 느낌이 나요. 멜로디언도 사용되었고. 후반부는 퍼커션을 많이 사용해서 호러적인 느낌이 나고요. 음악의 폭이 큰데 균형 맞추기가 힘드셨을 거 같아요.
그게 힘들었어요. 전반부와 후반부의 영화 톤의 차이가 컸었죠. 작업이 쉽진 않았는데 주인공 두 사람의 러브테마를 초반부터 계속 가지고 가면서 전후반부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게 통일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박보영

박보영이 부른 ‘나의 왕자님’이 메인 테마였잖아요. 조성희 감독님은 어떤 주문을 하셨는지요?
조성희 감독님은 이미 시나리오에 가사를 써주셨어요. 가사가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예전에 만든 음악 중에서 쟁여둔 걸 뒤지다가 지금의 ‘나의 왕자님’이 떠올랐어요. 멜로디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게 아마추어가 만든 음악이라는 설정에 잘 어울리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가사를 붙이고 노래로 만들게 된 거죠. 이 음악은 영화가 들어가기 전에 만들어져서 박보영 씨가 두 달 동안 기타 레슨을 받아가며 연습을 했어요.

배우가 직접 연주한 건가요?
직접 연주한 거예요. 그렇게 많이 연습했는데도 촬영 날 되니까 배우도 떨더라고요. 그래도 여러 번 촬영한 것 중 하나를, 실수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편집해서 넣었답니다. 감독님은 약간의 실수가 나온 게 더 자연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성희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조성희 감독님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요구하시는 게 굉장히 디테일하시더라고요.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 마침 길을 지나던 고양이를 보며 동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제가 작업한 ‘눈물 시리즈’를 좋게 보셨고 그 안에 나오는 동물 이야기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거죠. 영화의 주인공도 어찌 보면 동물과 인간의 중간인 존재였잖아요. 작업하면서 나중에 스토리보드를 영화 러닝 타임과 똑같이 동영상으로 만들고 거기에 감독님이 직접 인물별로 대사도 입히고, 음악도 입혀서 보여주셨어요. (웃음) 참고가 되었지만 한국도 이제 할리우드처럼 작업하게 되나보다 했었죠. 그래도 한국 배경의 한국인들이 연기하는 그림에 맞추어 새로운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아까도 언급되었고, 방금 말씀하신 템프 트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템포러리 트랙(Temporary Track)이란 건데요. 할리우드에서 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참고용 음악’인 거죠. 이 시퀀스엔 이런 음악, 저 시퀀스엔 저런 음악 등 보기가 되는 음악을 찾아와서 미리 붙어보는 거죠. 한국에서도 최근에 이런 방식으로 음악작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편집실에 음악 라이브러리가 구비되어 있어서 기존의 음악을 붙여보며 편집을 하기도 하죠. 편집본을 보고 오리지널하게 영감을 떠올려 작곡하는 게 아니고 비슷한 류의 데이터로 정리되어있는 라이브러리 음악에서 적당한 음악을 골라 편집본에 붙여 보는 거예요.

음악이 들어갈 위치 정하고 그럴 때..
그렇죠, 음악이 들어갈 위치와 종류를 알려주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는 워낙 기성화된 공식이 있고 비슷한 게 많아서 이 작업방식이 통용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점차 작업방식이 바뀌고 있는 거 같긴 해요.

그러니까 감독이 음악을 기존의 음악으로 보기를 주문하는 거겠네요.
맞아요. 음악이란 건 말로 표현하는 게 참 뜬금없잖아요. 예를 들어 특정 시퀀스에 ‘애틋한 음악’을 주문하다고 하면 이를 전달하기 위한 너무나도 다양한 음악적 표현 방식이 있으니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힘든 거죠. 그러니까 보기가 되는 음악을 직접 골라 와서 영상에 넣어보는 거랍니다.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너무 참고하다보면 모방이 되는 경우도 생기니, 나름대로 감독의 의도를 잘 알아듣고 새로운 접근 자세로 음악작업에 임할 필요가 있죠.

남극의눈물

<남극의 눈물> 음악을 들어보면 미니멀한 사운드가 있어요. 필립 글래스처럼. 그렇게 미니멀한 사운드를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미니멀 음악을 좋아해요. 대학교 때는 무조, 즉 조성이라는 중심을 탈피해서 음계를 만드는 음악사의 흐름을 공부했답니다. 낭만파 이후에 조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는 움직임에서 나온 작곡법이었는데요. 그 이후 고전시대의 삼화음으로 다시 돌아가되 옛날 고전음악과는 다르게 변형이 된 형태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현 시대의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기도 했고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던 거죠. 신세계를 경험한 거예요. 새로운 음악작풍이 좋아서 <올드보이>에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박찬욱 감독님도 흔쾌히 좋아하시고, 이는 영화에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이후 다른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조성음악보다 틔는 미니멀 음악을 소화하는 영상이나 영화를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눈물시리즈’ 특히 <북극의 눈물><남극의 눈물> 등에서 보이는 영상들이 떼를 지어 가는 동물이 많았어요. 순록 떼, 펭귄 떼 등 수많은 비슷한 동물들이 무리지어 가는 게 제가보기에는 미니멀한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음악도 미니멀하게 작곡했습니다.

작년 말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곤충 그 위대한 본능>은 ‘지구 시리즈’에서 벗어나서 약간 미시적인 게 필요하셨을 텐데, 어떤 느낌으로 작업하셨어요.
제가 벌레를 징그러워해서 음악이 잘 나올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더니 피디님이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라며 (웃음) 애정을 갖고 작업해달라고 부탁하셨죠. 그런데 막상 촬영본을 보니 아주 재미나더라고요. 곤충들의 먹고 먹히는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마치 전쟁영화처럼 매우 비장하게 그렸죠. 제게 있어서 곤충의 세계는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어요. 그래서 음악도 기존의 악기구성으로 나는 소리가 아닌 색다른 사운드를 시도했답니다. 곤충들의 미세한 날갯짓,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도 엠비언스적이면서도 일렉트로닉하게 작업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에서처럼 새로운 시도를 한 거죠.

기존에 작업하셨던 다큐멘터리 느낌과는 많이 달랐겠어요.
음악적으로 많이 달랐죠. 완전히 일렉트로닉한 음악으로 스코어 전체를 구성한건 첫 시도였어요. 그런데 재미있더라고요. 전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많은 흥미를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는 TV 다큐멘터리가 상업영화보다 더 용이했던 거 같아요. 상업영화에 비해 TV 다큐는 짧은 시간 안에 음악작곡을 완성해 주기만 하면 순조롭게 OK가 났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데로 신나게 작업이 가능했답니다. (웃음)

더파이브

다시 극영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작년 11월에 개봉한 <더 파이브>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요, 원작자이신 정연식 작가님이 직접 연출을 맡으셨는데요. 어떻게 작업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에.. (웃음)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비련의 여자 주인공 설정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음악감독으로 같은 여자인 저를 이미 염두에 두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 음악을 하도 잘 봐주셔서 같이 기쁘게 작업을 하게 되었답니다.

감독님께서 콕 집어서 선택을 하신 건가요?
네. 저 같은 경우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서 여러 편 중에서 하나를 열심히 고를 줄 아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때그때 시간이 맞춰 들어오는 게 인연인가보다, 하고 맡는 경우가 더 많아요. 시간적인 사정 때문에 또는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주로 숙명처럼 받아들인답니다. (웃음)

이 작품이 웹툰인데요. 비주얼이 먼저 존재했잖아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작업하시고, 스토리보드를 작업하시는 과정에서 그게 발전한 것이 웹툰이었다고 하던데요. 작업을 진행하셨을 때 이미지가 미리 나와 있기 때문에 좀 편하셨을 것도 같아요.
그렇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설정상의 캐릭터와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시나리오와 그림으로부터 영화가 시작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사람(연기자)이 영화에서의 특정 캐릭터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탄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시나리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인 거 같아요. 누군가는 시나리오를 보고 테마음악을 작곡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더파이브 웹툰
더 파이브, 웹툰

영상을 먼저 보시고...
영상을 보고 작곡을 시작하게돼요. <아저씨>같은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로 시나리오 상에 설정되어 있었지만 원빈이라는 배우가 그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완전히 다른 아저씨가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음악도 그에 맞추어 분위기가 달라져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영상물을 보고, 배우의 연기 또는 이미지 등을 통해서 음악 작업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어떻게 그림이 찍혔는가에 따라서 음악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작업시간이 많이 빠듯하시겠어요.
항상 빠듯하게 느끼죠. 특히 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편집본 안에 없을 때 음악을 막 끄집어내려고 노력할 때 이래저래 소모가 많아요. 영상 안에 내용과 연기로 충분히 정보가 전달될 때는 영감을 받아서 작업도 빨리 진행되고요.

웹툰에서는 감독님께서 직접 사운드트랙까지 넣으셨어요. 그게 영향을 미치셨는지.
음악적으로 많은 걸 요구하실 거라고 짐작하고 그래서 좀 힘들겠구나. 걱정했었죠. (웃음) 그런데 이전 만화의 세계에서 나아가 영화라는 살아있는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거잖아요. 이야기가 좀 더 입체적인 차원이 되는 과정이니만큼 새롭게 영화적 접근을 하려는 노력을 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전혀 영향을 안 주셨나요?
감독님께서는 참고로 들어보라고 감독님의 자작곡 음악을 들려줬고 스코어 음악은 전적으로 저에게 맡겨주셔서 순조롭게 음악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더 파이브>가 자신을 걸고 복수 하는 내용이었잖아요. 감정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굉장히 세고 불편한 부분들이 있는데, 전작들에 비해서 유독 소름끼치거나 음산한 사운드들이 많이 들리더라고요. 사이코패스 온주완 씨 캐릭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행하셨는지요?
인물이 사이코패스이기도 하고 영상에 이펙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도록 찍으셨어요. 초·중반 까지는 거의 음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서보다는 효과성 음악만 쓰였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중후반부터는 대사보다는 음악이 극을 끌고 나가야 했어요. 이 영화가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가 작업한 전작에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많아요. (웃음) 어둡고 뒤틀려있거나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죠. 그런데 <더 파이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사이코패스 이야기는 의외로 그 인물이 현실적이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덜 괴로운 것도 있었고요. <올드보이>의 경우는 좀 더 현실적인 인물이라 작업하면서 더 괴로웠던 거 같아요. <올드보이>가 정서적으로 인물을 이해하고 따라가서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에 비해, <더 파이브>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간다기보다는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음악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작곡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진짜 필모에 진지하고 어두운 영화들이 많으세요. 코미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 어쩌다보니 주로 피가 나온다거나 19금의 영화들이 많아요. 그래서 어린 우리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답니다. <아저씨>는 케이블TV에서 편집 등이 되어 방영되어서 그나마 저희 꼬마들이 볼 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나마 ‘눈물시리즈‘ 다큐멘터리가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랍니다.

영화를 선택하시는 기준이 원래 그런 쪽을 좋아하신 건 아니죠?
의뢰 들어오는 영화가 주로 어두운 영화들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코미디 영화 보는 걸 굉장히 즐거워한답니다. 그런데 코미디 영화를 작업할 때는 내용이 재미있으니까 웃으면서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은 반면, 음악을 작업할 때 재밌기로는 무언가 얽혀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나가는데 매력을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스릴러 장르를 딱히 선호하는 건 아닌데 초반부터 각인된 영화가 <올드보이> 이다보니까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의뢰받는 거 같아요.

재즈 가수 이소정 씨가 엔딩 주제곡을 불렀어요. 독특하고 몽환적이었는데, 그분을 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감독님께서 초반에 이소정 씨의 앨범 중에서 ‘쇼팽 앤 더 걸(Chopin And The Girl)’이라는 음악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이소정 씨 노래를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우연히도 저와 이소정 씨는 오랜 친구였답니다. 예전에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이소정 씨도 M&F 회사 소속 가수로 앨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알게 돼서 10년 이상 친분이 있던 지인이었죠. 그런데 인연이기도 하고 우연이기도 하게도 <더 파이브>로 드디어 함께 작업 할 수 있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감독님도 매우 좋아하셨고 우리 모두 즐겁고 기쁘게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더 파이브>는 개봉한 지가 꽤 된 다음에 사운드트랙이 출반됐습니다. <피 끓는 청춘>과 다르게 음원뿐만 아니라 CD로도 발매가 되었는데, (거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지 않는 현실에서) 늦게 발매된 상황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 전부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디지털 음원만 발매하고 음반 발매를 하지 않는 추세로 변하고 있어요.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음반 시장을 의식한 거죠. 실은 저도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저의 경우, 물리적으로 소장할 수 있고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장인 정신과 노고를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을 선호해요. 하지만 투자배급사가 영화 OST를 발매하는 환경에서 디지털 음원 시대의 전반적인 추세를 따라가 온라인 발매만 하다 보니, 뮤지션들의 음반을 귀중히 여기고 이를 수집하는 진짜 영화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실제 한 애호가로부터 <더 파이브> 음반 발매 문의를 받고 망설이던 마음을 굳혀 공이 더 들어가는 CD를 발매하게 되었죠. ‘대중’이 아닐지라도 ‘애호가’들이 있는 한 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영화음악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믿게 되었어요.

여성 음악가로서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데 한계나 편견이나 이런 것들과 많이 부딪히셨을 거 같은데요.
주로 남자들이 많다보니 저도 많이 남성화 되었죠. (웃음) 여자는 남자에 비해 비교적 추진력과 네트워킹에 약한 거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술도 열심히 마시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데 실은 여성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갈 지를 고민하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부딪혀보니 한국에는 예술가에 대한 개념이 대충 다른 인종쯤으로 보는 것 같아요. (웃음) 제천 영화제에서 만난 걸 계기로 독일에서 <올드보이> 영화를 상영해준 예술가 부부가 계신데요. 기타 연주자이신 마뉴엘 괴칭 Manuel Goettsching 과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일로나 지옥 Ilona Ziok으로 두 분 다 저보다 10~20살 많으세요. 그분들과 친분을 맺어 독일에도 다녀오고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면서 가까이서 지켜보니 예술가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참고가 되었답니다.

제6기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제천음악영화제에서 음악 아카데미를 맡아서 여러 감독님과 함께 영상음악전문가 과정을 하시는데, 어떤 커리큘럼으로 하시는지요?
지금은 우리나라가 영화와 실용음악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하는 거 같아요. 제가 처음 2000년에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영화교육을 하는 기관이 몇 개 없었어요. 기존의 전통적인 영화학교 즉 동국대, 중앙대, 한양대, 영상원이 새로 생기고 한국영화 아카데미 정도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영화과가 없는 학교가 없을 정도로 대학교마다 영상 및 영화과가 생겼고 더불어 실용음악과도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런 학과 과정과 다르게 제천영화제 아카데미는 일주일 남짓 하는 기간 동안 캠프 형식으로 단편 영화음악을 직접 작업해 보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음악가가 하는 일이 뭔가, 또는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를 공부할 수 있는 거죠. 또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성 영화음악가와 인맥도 형성하고, 동료들도 알게 되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자기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지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지금은 제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만나면 아카데미를 추천해요. 수강생들 대부분이 여자들이 많답니다. 저와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는데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이 지원을 하고요.

그 학생들에게는 감독님이 롤모델이겠네요.
70~80%가 다 여자이니까요. (웃음) 저의 경우 함께 일하는 스텝들을 주로 제천 아카데미에서 뽑았어요. 저한테 가끔 이메일로 영화음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오면 제천 아카데미 참가를 권유하죠. 저뿐만이 아닌 현직 음악감독들도 아카데미에서 만나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지금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도, 동료 음악감독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아카데미 출신이 많이 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제천 아카데미를 통해서 영화음악 인재들을 발굴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한계가 있고 장벽이 있는데요. 음악가랑 기술인 사이에서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거 같습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작업은 자신과 뜻이 맞는 작품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기술이란 건 그 영화에 맞는 옷을 잘 입혀서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서로서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잘 만나는가를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자기와 뜻이 잘 맞는 사람들과 또 자기가 공감하는 이야기의 작업을 하게 되면 가장 신나게 작업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장면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장면

가장 좋아하시는 영화음악가와 작품이 있다면요?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라스트 모히칸> 등등의 사운드트랙을 좋아하죠. 그중 엔니오 모리꼬네의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부분에서 세 명의 총잡이들의 숨 막히는 ‘눈치 보기’ 씬이 있는데요. (웃음) 수업 교재로 보여주면서 저기에 음악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영상을 편집해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싶은 장면이에요. 이 OST에는 당시의 엔니오 모리꼬네의 재기발랄함이 들어있는 거 같아요. 말발굽 소리, 권총 소리, 휘파람소리 등을 활용해서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한 거죠. 문서를 참조해보니 당시에 음악 제작비가 부족했다고 하더라고요. 오케스트라를 쓰고 싶었는데 제작비가 없으니까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런데 오히려 재치 있고 잊히지 않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게 된 거에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또 다른 주옥같은 OST <미션>이 미국의 상업영화음악의 흐름을 좀 탔다면 <석양의 무법자>는 훨씬 작곡가의 개성이 넘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천사와 악마> 개봉당시 조선일보 주선으로 한스 짐머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인터뷰 도중에 엔니오 모리꼬네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스 짐머는 모리꼬네 음악에 바흐가 있다고 언급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종교음악에 심취해 음악을 시작한 저도 모리꼬네의 그런 요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국내 영화음악 분야에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지점이 있다면, 이를테면 한계점이나 시스템의 제약을 고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쉬운 부분이 있지요.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커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각종 분야의 전문인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조감독만 전문으로 하는 전문 조감독이 있는 게 아니라 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조감독이 존재하는 거죠. 예전에 <밀애>영화작업을 할 때 영화 조명 팀이 폴란드 분이 오셨데요. 그중에는 달리 즉 카메라 이동차를 전문으로 돌리는 장년(60대 가량) 분이 오셨는데 기계처럼 정확히 이동차를 옮기신다고 하더라고요. 한 명의 수장이 있고 나머지는 다 조수가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에 특정적으로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더욱 발전하고 뿌리내리려면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알고 이를 전문적으로 인정해줘야 할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음악의 경우, <노팅힐>과 같이 선곡이 많은 영화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하는 영화의 경우에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없을 때가 많죠. 선곡이 아니라 작곡이 주가 되는 영화이니까요. 그런 경우 전문 오케스트레이터 (관현악 편곡자)가 필요해요. 최근 한국영화음악도 할리우드처럼 클래식 악기구성이 많은 추세이지요. 존 윌리엄스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항상 함께 작업하는 전문 오케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답니다. 시간과 비용이 모자란 한국 영화음악 제작 환경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테마음악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 변주되어야 할지 또는 어떠한 음악을 넣을지 참고음악을 넣어보는 역할 등을 하는 전문 음악 편집자(뮤직 에디터)도 필요합니다. 또 음악 녹음 시 연주자 및 유명 뮤지션을 섭외하고 녹음을 진행하는 코디네이터도 필요하고요. 등등 영화음악 제작에는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는데 저를 비롯한 동료들을 보면 주로 음악감독이 이일을 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한국은 할리우드의 영화산업과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도 않고 구지 그들과 똑같이 작업해야 하는 이유는 절대로 없어요. 하지만 영화산업이 뿌리 내리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을 인정하고 양성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영화음악가 하면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같은 사람을 떠올리지, 그런 세세한 분야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오케스트레이터도 생소해 할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레이터는 관현악 편곡을 하는 사람이죠.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면 한스 짐머가 음악을 하는 영화에서 오케스트레이터만 5명에서 7명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어요. 클래식 악기 구성으로 웅장한 영화음악을 만들 때는 클래식 음악을 전문하는 사람이 편곡을 해야 하는 거죠. 악기라는 게 얼마나 공부해야 할 게 많고 소리가 다 다른데요. 작곡하는 사람, 편곡하는 사람,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 등등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영화에 삽입곡으로 기존 곡을 쓸 경우, 담당 음악출판사와 연락을 취하고 승인을 받아내며 음악 저작권만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요. 또 템프 트랙(보기로 선곡된 음악)만 작업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는 특정 장면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보기로 제시하는 거죠. 방송국의 음악감독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영상에 필요한 적당한 음악을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골라 영상에 집어넣는 일을 하죠. 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영화계와 대중음악계와 연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에요. 동료 음악감독들을 보면 대략 친분으로 대중 가수들과 OST 작업을 하곤 하는데 제작비의 제약 때문인지 인식의 문제인지 잘 연계가 되질 않습니다. 기타 등등.. 전반적으로 제가보기에 우리나라 영화제작 파트 중에서 음악분야에 대한 지식(관심 말고)이 가장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음악의 작곡이나 편곡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악보작업을 통해 연주되는지, 악기소리가 다른지, 연주자들의 녹음과 믹싱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등, 음악이 영상에 입혀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완성된 결과물만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무쪼록 앞으로 제작자들의 많은 관심으로 영화음악 분야의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요.
프랑스 여류작가의 원작소설 ‘Woman of Straw’를 영화화한 <은밀한 유혹>이라는 작품을 하고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1964년에 이미 만든 영화의 리메이크 작인데요. 임수정, 유연석, 이경영의 주연으로 호화 유람선에서 벌어지는 돈을 담보로 한 애정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랍니다. 올가을 개봉예정이구요.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끝났어요? 어우. 끝이 나기는 나는구나.

심현정

_ 인터뷰: 문상윤
_ 정리, 사진: 유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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