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영화음악감독 인터뷰1: 장영규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3-11-04조회 17,961
영화음악감독 인터뷰1: 장영규

90년대 말 다시 찾아온 한국영화의 부흥기는 많은 걸 바꿨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나 제작 시스템적인 환경까지도. 그 중 하나가 바로 사운드트랙이다. <접속> OST의 눈부신 성공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음악 시장에도 상업적인 가치가 있음을 발견한 제작자와 홍보사 그리고 감독들은 저마다 음악에 대해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 기존 작곡가들과는 다른 지향점과 자양분을 갖춘 영화음악가들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동준, 조성우, 조영욱, 한재권, 원일, 이재진 등 젊은 음악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와 새로운 유행과 경향을 창조해냈다. 그 속엔 장영규도 있었다. 각종 무대 음악들과 어어부 프로젝트로 인디 씬에 독특한 충격파를 선사한 그는 아름답고 멋진 선율 뒤에 숨겨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찾아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왔다.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대중들의 입맛에서 벗어나 생소하지만 생생한 파격과 전위적인 혁신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에 매료되었고, 장선우, 박찬욱, 이무영, 김지운 감독 역시 장영규의 날선 색채를 좋아했다. 그는 그렇게 다양한 감독들과 작업을 이어가며 스펙트럼을 넓혔고,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영화음악가로 점점 진화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음반시장은 고사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영화 밖에서 한국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적어졌지만, <타짜>와 <놈놈놈>, 그리고 아직까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도둑들>에 이어 2013년 여름 시즌을 뜨겁게 달군 화제작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감시자들>까지 흥행작들의 음악을 담당하며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지기도 했다. 독립영화에서부터 단편, 상업영화까지 전천후로 활동하는 장영규는 현재 한국영화음악 지형도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 어느새 중견으로 올라선 경력도 그러거니와 꾸준한 작업량과 다양한 장르적 도전 정신, 또 복숭아라는 창작집단 체제를 통해 공동작업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시도들이 무엇보다 그렇다. 그는 한국영화시장의 황금기와 부흥기에 태동한 작가주의형 영화음악가인 동시에 산업과 시스템이라는 도식적인 틀 안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자신의 색깔을 영화에 오롯이 투영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영화음악의 장인이다. 단명하기 쉬운 이 세계에서 그의 지속적인 생산력과 도전적인 예술성에 대해 진지한 고찰과 물음이 필요했다.

최근 <광부화가들>이란 연극의 음악감독을 맡으셨더라고요.
아, 그건 3년 전쯤 했던 작업인데, 다시 한 번 재공연하는 거 같아요.

8월 달엔 전통음악 그룹 ‘비빙’의 공연이 있었고, 전통가곡을 부르는 이기쁨 공연에도 편곡으로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와 연극, 공연과 밴드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시는데, 각 분야별 차이가 있을까요?
저도 차이를 생각해보는데 별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영화나 연극이나 뭐, 작업에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거보다 작업을 어떤 사람하고 하느냐 그런 게 더 큰 차이인 거 같아요. 어떤 연출가와 하느냐, 어떤 영화감독과 하느냐 그런 게 중요하지 장르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작품수가 굉장히 많으세요. 상업영화도 하시고,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다큐도 하시고요. 한해에 적게는 2~3편, 많게는 7편까지도 하시는데, 이런 다작은 앞에서 말씀해주셨던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일까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베이스 연주자로 시작을 했다가, 연주 말고 다른 음악작업으로서 처음은 91년도에 안은미 씨를 알게 되면서 한 무용음악 작업이었어요. 그러면서 여러 장르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초반에 들어오는 일을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죠. 일이 많이 없고 한가할 때는 들어오는 데로 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여러 장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또 사람들이 가지를 치고 나가다 보니까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지경이 됐죠.

감독님도 다양한 분들과 작업을 하셨잖아요. 박찬욱, 이무영, 최동훈, 김지운, 이재용, 민규동, 김기덕, 나홍진 등...
생각보다 또 그렇게 다양하진 않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오래 길게 작업을 하는 거죠.

영화음악을 맡으실 때 선호하는 지점이나 방향성이 있으신가요?
시나리오를 읽거나... 읽어도 사실은 어떻게 만들어질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 (웃음)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작업을 하실 때 감독님과 상의나 토의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꼭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그냥 만들어보고 들려주고. 음악이란 게 말로만 해선 잘 안 되는 부분들도 많아서 빨리빨리 들려주는 걸 좋아하죠.

시나리오를 먼저 받으셨을 때 작업을 시작하시나요?
예전에는 그래 왔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데모를 만들어서, 영화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음악적 콘셉트를 잡아놓고. 그러고 촬영을 시작하면... 감독도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영화 만드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촬영이 시작된 후에 음악감독을 구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미리 해서 어떻게 할 거냐, 그랬는데, 요즘은 심지어 촬영 끝나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편집본 보고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졌죠.

감독님은 예전 방식이 더 좋으신 건가요?
우리나라 영화 후반작업이 굉장히 짧아요. 짧은 시간 안에 부딪힐 문제들을 미리 해결하고 가니까 (예전 방식이) 시간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죠. 촬영이 다 끝나고 편집을 하다가 음악작업을 하다가도 두세 번을 뒤집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어찌됐든 영화적으로 굉장히 마이너스가 되는데, 그걸 찍기 전에 미리 하고 가는 건 나중에 집중할 수 있는 거니까 영화에 큰 도움이 되죠.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어어부밴드’의 연장선상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걸 (사람들이) 원했던 거죠. <반칙왕>같은 경우는 어어부에서의 그런 음악을 쓰고 싶어서 저를 데리고 온 거고요. 그때는 전 영화음악 하는 사람이라기보단 어어부가 더 먼저였으니까. 사람들이 절 찾는 이유는 어어부의 음악 색깔이었던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일이 좀 바뀌신 거 같아요.
저도 바뀌고. 제가 생각하는 것도 바뀌고. 바라보는 것도 바뀌고. 어어부도 활동을 잘 안하고. (웃음)

초반에는 그래서인지 노래나 송트랙이 많았었는데, 연주 음악 비중이 점점 높아졌던 거 같습니다.
영화도 그때랑 지금이랑 한국영화 스타일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음악 쓰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고. 그러면서 저도 바뀐 거 같고. 영화와 함께 바뀐 거죠.

예전 작업하신 영화들이 키치적이고...
영화가 다 그런 영화들이었어요.

<철/파/테>나 <다세포 소녀>, <소년, 천국에 가다>, <미쓰 홍당무>... 어떻게 보면 좀 범상치 않는 영화들인데. 사실 국내에서 이런 작품들의 음악적 대안은 장영규 감독님 말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 스타일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나요?
그때 그 영화들이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했지, 제 음악에 영화를 맞춰나갈 수는 없죠. 초반 몇 작품은 그런 걸 서로 원했던 거 같은데, 그 뒤에는 영화가 그런 영화였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한 거고요. 요즘은.. 그런 영화들이 안 들어오고, 또 잘 안 만들어지고.
 
다세포소녀

<다세포 소녀>는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중간에 ‘무쓸모 교가’를 들어보면 중간 중간에 반야심경이 나왔다 할렐루야가 나왔다 한국적인 음색도 들리고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였는데요.
그런데... 원래 의도에 비하면 영화가 좀 얌전하게 나온 거 같아요.

영화보다 음악이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영화는 정말 얌전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음악도 더 막나가야 하는데 영화가 너무 얌전해서... (웃음) 저도 좀 더 얌전하게 갔어요.

사운드트랙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재용 감독의 다른 영화 <여배우들>도 독특한 시도였던 거 같아요. 다큐와 허구를 섞은. 그래서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사용했는지 궁금합니다. 흡사 이지 리스닝 계열이나 라운지 뮤직을 떠올리게 만드는 듣기 좋은/쉬운 음악들이었는데?
그렇죠. 영화 자체가 벌어지는 공간 자체가 사진 찍는 스튜디오였고, 그런 스튜디오에서 나올법한 음악들, 사진 찍는 사람들이 그런 음악들 많이 틀어놓고 작업하고. 그런 것들을 고려했던 거 같아요. 이야기보다는 그 공간과 배우들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음악들이었죠.

이재용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나요?
이재용 감독과는 워낙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한 90년대 중반? 94년 다큐 <한 도시 이야기> 할 때부터, 그전부터 알던 사이여서 같이 일하면 편해요.

<다세포 소녀> 의뢰 들어올 때 좀 놀라셨겠어요. 만화는 보셨죠?
네, 이걸 가야 하나 고민 좀 했었는데... (웃음)

그러고 보면 최신작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웹툰 원작의 영화에요. 이 작품 음악은 <다세포 소녀>하고는 좀 다른 거 같은데, 좀 더 진지하고 공격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이 영화의 경우, 원래 콘셉트는 앞의 부분이 코미디잖아요. 워낙 코미디이니까 아예 음악을 안 쓰고, 거기는 음악이 필요 없을 거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이 간첩임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정색하고 음악을 쓰고 싶었는데, 웃겨야 한다는, 뒤는 흥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들어와서 음악도 그렇게 진행하게 됐죠. 처음 의도와는 좀 다르게 진행됐어요.
 
감시자들 포스터

그렇다면 최근 작업하신 작업 중에서 감독님의 의도와 가깝게 된 음악은 어떤 걸까요?
영화사가 아직도 살아있는 영화의 작업들. 영화사 집의 <감시자들>, 또 최동훈 감독도 자기 영화사가 있으니까. 그런 영화사와 작업하면 투자사에서 끝까지 한 번도 안 와요. 그 음악이 어떻다 말을 안 해요. 그렇지 않고 감독이 약간 힘이 없거나, 영화사가 있어도 그냥 이름만 있는 영화사라거나, 할 경우에는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라, 죠. <감시자들> 같은 경우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이 영화는 감독들과의 작업이었어요.

그런 작업은 즐거우시겠어요.
그게 원래 작업인거죠. (웃음)

<감시자들>같은 경우는 테크노나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강하고요. 달파란 씨와의 공동 작업이었잖아요. 영향이 좀 있었는지요?
요즘 영화가 스타일이 바뀌는 거 같아요. <감시자들> 같은 경우는 할리우드 스타일로 많이 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음악도 할리우드 스타일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방식의 음악을 하게 됐어요. 선율 같은 건 거의 없고, 음악이 공기처럼 영화 전반에 계속 있으면서 흐름을 만들어주는 역할이었죠.

음악이 정말 많이 쓰였던 거 같아요.
거의 한 시간 반 음악이 나올 거예요.

공동 작업을 하시는 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 궁금합니다. 테마나 선율을 공유하고, 전체적인 톤도 맞추는지. 아니면 각자 다른 큐들을 맡아 진행하는지.
그렇게 큐를 나누기도 하고요. 영화마다 좀 다르긴 해요. <달콤한 인생>이나 <놈놈놈>같은 경우는 전체 음악이 많지만 반복되는 지점도 없고 장면마다 음악이 다 달라서 거의 곡을 같이 만들었고, <감시자들>같은 경우는 어떤 테마가 있어서 그게 10분, 20분을 끌고 가고 해서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는 둘이 같이 이야기하지만, 어떤 부분을 맡으면 각자 작업하게 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럴 경우) 만들어놓고 서로 이야기하고 조율,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거죠.

필모에서 흥행작이 늘어났어요. 흥행이 잘 되는 작품을 고르시는 건가요? 아니면 작품들을 맡았는데 흥행이 잘 된 건가요? (웃음)
아니에요. 정말 제 필모 초반 영화들은 흥행이 하나도 안됐던 영화들이었잖아요. 그랬는데... (잠시 생각) 최동훈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웃음)

작품을 고르실 때, 어떤 관점으로 고르시나요? <은밀하게 위대하게> 같은 경우도 궁금합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같은 경우에는 감독이 정해지기 전에 먼저 제가 정해졌어요. 시작 자체가 배우와 만화 때문에 이루어진 희한한 프로젝트였죠... 일이 많이 들어와서 제가 놓고 고른다고 생각하시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고요. 같이 하는 사람들과 계속 다음 작업을 같이 하거나, 했던 영화사에서 다음 작업을 의뢰받거나, 그런 경우가 많지. 찾아와서 시나리오 주고 같이 하자, 이런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쌓아놓고 고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웃음)

의외의 선택도 있습니다. <나는 공무원이다> 라던가.
그 영화는 감독이 동네 친구예요.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그건... 주인공이 (어어부의) 백현진 씨였고...

조민호 감독님과는 단편부터 작업을 하셨어요.
가까운 데 살고 술 먹다 친구가 된 그런 감독이에요. 나이도 비슷하고.

<박수건달>같은 경우는 전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조진규 감독이 워낙 조폭물을 많이 하셨는데. 장감독님 필모를 보면 조폭코미디가 없었잖아요. 물론 이 영화도 잘 됐고요.
그죠, 제가 (조폭) 코미디는 잘 안하죠. 정말 안 할라고 했는데. 이 작품이 들어오게 돼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조폭 마누라> 조진규 감독이 찍은 영화들이 다 잘 만들었다고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전 이런 건 안할래, 그랬는데, 달파란 씨가 이런 것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권유가 있었어요. 이런 것도 한번 해봐야지. (웃음) 그래서 고민하다 한 번 해보게 됐는데, 확실히 잘 맞진 않는 거 같아요. 원래 영화가 무속이나 유령 같은 부분이 나와서 판타지로 풀면 좀 재밌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콘셉트가 바뀌면서 많이 달라졌죠.

이무영 감독과는 세 작품을 같이 하셨어요. <휴머니스트>, <철/파/태>, <아버지와 마리와 나>. 음악을 잘 아는 감독님이시잖아요. 팝컬럼리스트로도 유명했던 분인데 음악적인 요구 사항이 까다롭진 않은지. 관여를 하신다던가.
이무영 감독님이요? 안 그러세요.

<철/파/태>에서 공효진조은지가 부른 ‘침대의 끝’이란 노래가 좋았습니다. 어어부의 보컬인 백현진 씨의 걸걸한 노래와 달리 이런 팬시한 느낌도 있구나 싶어 놀랐어요.
그와 같은 경우는 제가 어렸을 때 그런 음악들을 듣고 자라기도 했고요. 어어부 말고 다른 쪽에 있는 저의 감성이기도 해요.

그런 감성을 좀 더 보여주세요. 굉장히 좋아하는 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개인적으로는 섭섭하더라고요.
영화가 좀 더 잘 됐으면... 굉장히 대중적인 노래였는데. (웃음)

그렇죠. 목소리도 통통 튀었던 걸로 기억해요. <엔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김씨&알리가 부른 ‘케?파라파이스’라는 빅밴드/재즈 스타일의 뮤지컬 시퀀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민규동 감독님이 요구하신건가요?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뮤지컬 방식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달콤한인생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인 감독을 뽑으라면 김지운 감독과 최동훈 감독입니다. 특히 <달콤한 인생>의 경우는 스페인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최우수음악상 수상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음악은 라틴 사운드였는데.
그래서 걔네들이 동양의 이상한 애들이 우리 전통음악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했구나, 그래서 기특해서 준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음악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달콤한 인생> 사운드트랙이 어찌 보면 최초의 느와르 액션영화음악이었는데. 작업할 때 어땠나요?
그렇긴 한데 액션이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웃음) 그 영화의 경우에는 절반을 영화 찍기 전에 음악을 완성한 상태였거든요. 어떤 식으로 갔으면 좋겠느냐 하면서 작업했던 것들이 50%정도 사용됐죠.

김지운 감독님 같은 경우 작업하실 때, 디렉팅이 많은 편이신지?
김지운 감독님 같은 경우는 음악을 끼고 사는 스타일이라 많은 음악을 들려주죠. 요즘 이런 노래 듣는데, 이런 거 재밌다. 이것저것 들려주는 걸 좋아해요. 거기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도 있죠.

<놈놈놈>에는 <킬빌>에 나왔던 음악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사용됐는데, 혹시 이 음악의 대안으로 작업됐던 음악도 있었나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경우는 감독님이 꽂혔던 음악이고요. 편집할 때부터 그 음악을 깔고 편집하셨던 영화에요. <킬빌>에 나왔던 음악이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었는데, 대안이 딱히 있지도 않았고요. 감독님의 확고한 의지도 있었고.

새로 연주하신 건가요?
네, 새로 연주한 거예요. 그 음악은 저작권만으로도 몇 천 만원이고요. 음악 자체를 모두 사버리면 비용이 두 배 정도 올라가니까, 저작권만 사고 연주를 하는 쪽이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거죠. 이를테면 저작권료만 5천이면 판권까지 모두 사면 비용이 훨씬 올라가는 거고요. 많이 비싸요. 그런 거 보면 나도 전곡을 만들고 그만큼 못 받는데... (웃음)

음악감독님이시니까 음악에 대한 저작권도 다 해결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제가 하진 않죠. 한곡으로도 모자를 걸요.
 
타짜

최동훈 감독과는 <타짜>부터 작업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마림바와 퍼쿠션, 비브라폰과 섹소폰 등의 조합으로 변화를 준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할리우드 겜블 영화에서도 재즈 사운드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정중동의 느낌을 살려 묘하게 동양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처음 시작할 때, 워낙 예전 일본영화들을 좋아해서, 스튜디오가 전성시대이었던 그때 음악들을 좋아해서 그런 스타일의 작업을 언젠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못 만났는데, <타짜>를 보자마자 이런 컨셉트에 대한 제안을 했는데 다행히 최동훈 감독도 동의를 했고, 저도 하면서 굉장히 재미있었던 작업이긴 해요.

사운드트랙을 보면 곡목이 좀 특이해요. (편집자주: <타짜>의 트랙명은 ‘marimba + tom-tom 1’, ‘tom-tom + saxphones 1’ 등과 같이 악기 구성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OST를 만들고 나서 제목을 붙이는 게 정말 고역이거든요. 보통은 제가 붙이곤 해요. 생각나는 데로 붙이곤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의미 없죠. 만들 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걸 만든 후에 붙여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제목 붙이는 걸 좀 싫어해요. (웃음)

영화에 쓰인 한대수 선생의 ‘불나비’도 좋았습니다. 김상국 선생의 ‘불나비 사랑’을 리메이크한 건데, 이를 고른 건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불나비’는 최동훈 감독이 골라온 곡이었어요. 노래방에서 배우가 부르고, 김상국 씨 목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써보고 싶었는데, 한대수 선생님 연락 전에 김상국 씨를 찾아 봤는데. 건강이 안 좋으셨고. 그 때가 한대수 아저씨와 친할 때여서 또 노래의 힘도 있으시니까, 그래서 작업을 하게 됐죠.

영화와도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대수 선생과 백현진 씨의 창법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한대수 아저씨의 곡을 들으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거겠죠.

<철/파/태>에선 두 분의 듀엣곡도 있어요. ‘구멍난 그림자’라고.
그렇죠. 한 사람이 부른 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고. (웃음)

<전우치>의 한국적인 사운드도 인상적이었어요. ‘궁중악사’같은 트랙은 독특하고 인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작업하는 ‘비빙’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비빙은 그것보다는 많이 좀 진지해요. ‘궁중악사’는 좀 코믹한 느낌이었죠. 재미있는 상황이어서요. 궁중에서 (그런)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렇게 만들어 본거고요. 세 단계로 변화시켰던 곡인데, 최동훈 감독도 거기서 완전히 신나는 걸 만들어보고 싶어 해서 약간 유치하지만 작업해 본 거죠. 생각보다 (음원) 다운을 많이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전우치>의 사운드트랙 컨셉에 대해 궁금합니다. 약간 클래식 한 느낌도 나는데요. 한국적이기도 하고 혼합적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영화라 두 가지를 모두 해줘야 했고요. 그 전에는 클래식 악기 사용을 별로 안했는데, 오케스트레이션 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스타일상 해야 할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에서 현악기들이 가지는 힘이 있어요. 완전히 대규모는 아니고,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처음으로 현악기 사운드를 시도해본 거 같아요. 이 영화는 주제선을 딱 하나 가지고 시작했어요. 정확한 테마가 하나 있고,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갔죠.

<전우치>도 어떻게 보면 히어로 영화인데요, 히어로물 음악을 생각하신 건지요.
히어로 음악까지는 안간 거 같아요. 그랬다면 좀 달라졌겠죠? 음악이? 현대와 과거를 왔다갔다 하는 판타지에 중점을 뒀었어요.

<전우치> 사운드트랙은 CD로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음원으로만 나와 있는데요.
음반 시장이 오래 전부터 잠수를 타면서 만들 필요조차 없어지기 시작했죠. 만들었으니까 그냥 내자, 이런 게 되어버리고.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 거죠. 영화음악 작업을 할 때 짧으면 한 달 반 안에 완성을 하고, 길면 서너 달 사이거든요. 그 사이 영화에 쓰일 한 시간 가량의 음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영화에 들어가서 쓰이는 건 상관없지만, 따로 떼어놓고 듣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확실히 있어요. (영화의)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그걸 그냥 (완성)했으니까 낸다는 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때는 몇 곡만 모아서 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또 디지털 음원으로 내던지.

영화음악 CD를 내는 건 누가 내는 건가요?
요새는 아무도 안내죠. 예전에는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돈이 되니까 냈고. 돈이 안되더라도 홍보 수단으로 냈고요. 지금은 그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지금은 작곡가가 진행해서 내기도 하고, 감독이 원하면 감독과 함께 진행해서 내기도 하고요. 지금은 원하는 사람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고. 그런 거죠.
 
미쓰홍당무

그럼 최근 감독님께서 직접 진행해서 내신 경우가 있나요?
일단 <미쓰 홍당무> 같은 경우는 이경미 감독님이 정말 내고 싶다고 해서 저와 같이 돈을 내서 만들었던 경우였어요. 몇 십 만원씩 내서 300~400장 찍었어요. 그래서 자켓 디자인이 조금 허접해요. (웃음. 자켓을 살펴보더니) 아... 그래도 이건 엠넷에서 찍은 거긴 하네요. 최소 수량으로 찍은 거예요. 오히려 예전에 냈던 것들은 영화사에서 마케팅을 하고 홍보수단으로 쓰기 위해서 디자인이나 그런 부분들에 돈을 들였던 건데, 갈수록 안하게 되는 거죠.

<미쓰 홍당무>에 쓰인 멕시코 음악 같은 경우는 저작권료가 얼마나 될까요?
그건 민요에요. 그래서 저작권료는 따로 없죠. 직접 녹음을 했고요. 일부러 그런 걸 찾는 거죠. 완전 저예산 영화니까 음악 제작비도 정말 적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자체가 계속 월드음악을 틀어대고 있으니, 그 선생이... 그렇다고 (월드음악을) 살 수도 없고요. 그래서 미국 쪽 음악대학 연주자들 중 멕시코 출신들을 찾아서, 그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로 마리아치 밴드를 하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섭외했어요. 그래서 너네들이 할 수 있는 포크송 곡목 리스트를 달라. 그런 다음 그 리스트를 받아서 감독과 함께 보고 골라서, 그쪽에서 녹음해서 보내준 거죠. 완전 초저예산으로 녹음한 거죠.

초기에는 호러 영화도 제법 맡으셨어요. 원일과 함께 했던 <>을 비롯해, <알 포인트>나 <4인용 식탁>, <여고괴담 4 목소리>까지. <얼굴 없는 미녀>도 스릴러/호러 느낌도 있고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호러 장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죠. 좋아해요 그런 소리들을. 관심도 있었고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작품을 했었죠. <알 포인트>같은 경우는 직접 맡은 건 아니고... (편집자주: ‘복숭아’로 달파란, 방준석, 이병훈과 함께 참여했다.) <4인용 식탁>이 제가 하고 싶었던 대로 했던 그런 작품이었어요.
 
복수는 나의것

주목받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작품이 있으신가요?
전 <복수는 나의 것> 할 때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그 작품 할 때, 박찬욱 감독님은 영화음악이 하나도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주문을 했었어요. 엔딩곡만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요. 그래서 엔딩곡만 만들어달라고 시작한 영화였죠. 그런데 하다 보니 뭐... 여기저기. 음악이 많이 쓰이진 않았어요. 음악이지만 음향처럼 쓰였어요.

나홍진 감독의 <황해> 작업은 어떠셨나요?
<황해>를 작업했을 때, 나홍진 감독과는 굉장히 편했어요. 아무도 안 나타났거든요. 나홍진 감독도 굉장히 잘 받아들이는 사람인 거 같아요. 똑같은 이야기라도 음악이란 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잖아요. 또 원하는 게 이거라 해도 그쪽으로 가는 길도 정말 무한하고요. 근데 보통 자기가 이해한 게 이런 거고 이건 자기가 여태까지 들었던 것과 달리 익숙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애초의 의도에 대해 똑같은 효과가 있지만요. 익숙하지 않은 걸 못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걸 들어 왔는지에 대해 알고 맞춰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나홍진 감독이 받아들이는 편이었어요. 자신이 원하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저의 설명을 듣고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납득하면 그렇게 가요. 어쩐지 자신이 생각하는 곳 쪽으로 고집할 거 같았는데, 열려있는 분이더라고요. 편집이 개봉판, 감독판, 해외개봉판으로 이루어지면서 음악도 세 버전으로 나왔어요.

김기덕 감독과 딱 한 편 하셨습니다. <해안선>을 하실 땐 어떠셨어요?
후반작업을 할 때 감독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워낙 바쁘셔서. 그래서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찍기 시작할 때 회의를 한 번 하고. 음악을 만들 때 회의를 해야 하는데, 너무 바쁘셔서 만날 수가 없더라고요. 믹싱도 오래 안하시고 딱 하루 하시더라고요. 믹싱할 때 만났어요. 제가 다 들어봤는데, 잘 들었다고... 하나 두 번째 곡까지는 잘 넘어갔는데,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안 맞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김기덕 감독님은 후반작업하실 때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셨는지 어떤 음악은 여주인공이 나오면 계속 한 음악을 갖다놓으시고 그러셨는데, 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하고 부닥치다가 그래봐야 하루밖에 안 되니까 그냥 그러다 끝났어요. 음악 작업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믹싱 하는 날에 반영이 안돼서 아쉬운 면이 있었어요. 워낙 빨리빨리 하셔야 하는 분이셔서, 감독님은 별로 디테일이 중요하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이정도면 됐구 이정도면 됐구... (웃음) 이런 이야기를 예전 인터뷰에서 했었는데 감독님이 그걸 보시고 좀 아쉬워하신 적도 있었어요. “아 그 때 잘 했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보통 감독님께서 음악을 만드시고 믹싱하는 날 만들어진 음악을 끼어 넣는 그런 방식인 건가요?
아뇨, 그런 경우는 거의 없죠. 음악 작업을 하는 중 감독님이 계속 오시죠. 바꿔 붙여보고, 줄여 붙여보고 그런 작업들을 하게 돼요. 최동훈 감독 같은 경우는 <도둑들> 할 때 15일 정도를 저희 집에 와서 하루에 7~10시간씩 음악을 붙여보고 그런 작업을 했었어요.
 

아까 예전에는 공포영화도 해보고 싶었다 하셨는데, 지금은 이런 영화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을까요?
요즘 흥행이 안 되는 영화는 아예 들어가질 않잖아요. 음... 폴 토마슨 앤더슨의 영화 같은 작품이 들어온다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는 (제작이) 들어갈 수도 없을 거 같아서요. 너무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음악들을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이 생기는데 사실 그런 게 재미있지는 않거든요. 그렇지 않은 작업들도 좀 해보고 싶긴 해요.

그럼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쪽에서 그런 감독님의 스타일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단편영화는 또 호흡이 짧아요. 뭔가 큰 걸 끌고나가긴 힘들고, 딱 하나 정도예요. 한 가지 호흡으로 딱 끝나버려요.

독립영화 중의 장편들, 그런 쪽에서 자유롭게 시도해보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감독님께 선뜻 의뢰 드리기가 힘들 수도 있겠네요. (웃음)
어려워하더라고요. (웃음)

처음 어어부 프로젝트의 느낌이 오래가실 것 같은데, 지금은 익숙한 장르적인 음악도 하시고. 약간 타협을 하시는 건가요?
타협인 건 아니죠. 영화가 그런 걸 요구하니까 그런 음악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초반에는 그런 부분들을 고민했었는데 영화음악이란 게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거기 때문에 내 스타일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그 영화에 맞는 음악을 하게 되는 거죠.

영화음악을 작업하면서 한계나 시스템에 부딪히셨던 부분이 있다면요?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제작사와의 관계가 있겠죠. 그리고 작년, 올해 극장의 음악사용료 부분도 환경 요인이죠.

그게 결론이 어떻게 났죠?
결과는... 음악감독들은 거기서 제외가 됐죠. 그 자체가 굉장히 애매하긴 해요. 그 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서 해결되기는 힘든 것 같고. 사실은 그것 때문에 저희가 손해 보는 것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다른 쪽에서는 음악감독들이 떼돈을 벌려고 그런다, 그렇게 보기도 하고요. 그런 일이 생기면서 계약서가 굉장히 안 좋아 졌어요.

현실은 변한 게 없는데요.
변한 건 안 좋아진 계약서인거죠. 지금으로썬 변한 게 없지만 앞으로 분명히 발생될 일이라 생각하고 그걸 음악감독에게 짐을 지우는 계약서가 나오게 된 거죠.

어떤 계약서가 나오게 되었나요?
우선 저작권을 넘기라는 계약서가 처음에 오기 시작했어요. 저작권을 넘길 수는 없다. 넘기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주고 넘기라고 해야 할 텐데, 음악감독에게 주는 비용으로 저작권까지 달라, 하는 건 용납할 수가 없죠. 전 그래도 오래했으니까 그런 계약서를 함부로 못 내밀어요. 그렇지만 새로 시작하는 친구들은 일단 이 시장에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는 게 먼저이기 때문에 그런 걸 다 포기하고라도 그런 (불리한) 계약서를 쓰게 되는 거죠.

그럼 그런 계약서를 쓰고 작업하는 분들도 계시다는 거네요?
있을 거예요. 작년부터 새로운 음악감독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인디 쪽에서 활동하시던 분들도 많이 나오고요. 그런 이유가 불리한 계약서로도 작업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사람들을 찾는 거죠. 그리고 어떤 대기업에서는 자기네들이 음악감독들을 모아 계약해서 스튜디오처럼 작업하겠다, 이런 형태도 생기고 있고요. 저희가 만든 곡 말고 삽입곡들이 있는데 공연권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걸 음악감독이 책임을 진다, 이런 항목도 있고요.

아직 감독님은 그런 계약서를 서명하신 적은 없는 거죠?
하지만 저작권의 어느 부분은 계속 넘겨줘야 하는 거예요.

영화음악 공연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영화는 어쨌든 다 만들어진 다음에는 상품인 거잖아요. 극장에서 트는 거니까, 방송국에서 음악을 틀면 거기서 발생되는 비용을 내고 그런 건데, 즉, 거기서 내냐 안내냐를 결정지으면 되는 건데, 그게 아니라 이걸 누가 내느냐로 거꾸로 오게 된 거예요. 극장과 투자사가 같은 회사니까 극장은 투자사가 내게 하자, 이렇게 되고, 투자사는 제작사로 미루고. 그럼 차라리 안 받는 걸로 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영화음악 감독이 만든 건 안 받고, 삽입곡은 받는다,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이러면 되게 이상한 거잖아요. 제작자 협회나 피디 협회에서는 와서 한국영화 이렇게 힘든데, 왜 받으려고 하느냐, 그런 말도 하고요.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영화 산업 이야기를 하느냐, 극장은 돈 잘 벌고 있는데, 왜 그걸 이쪽으로 넘겨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그렇게 하다 보니 끝이 않나요.

저작권료가 많이 들어오세요?
안 들어와요. 액수로 따지면 OST를 내서 거진 안 팔리지만, 좀 팔린 게 <달콤한 인생>, <도둑들>이에요. 그거 팔릴 때 인세가 들어오는 거 빼고는, 몇 십만 원도 안돼요. 노래방, 음원 다 합쳐서요. 저작권협회 자체가 가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라 방송국과는 1년에 통으로 계약을 한 다음 거기서 사용된 음악을 정산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가요 프로그램만 정산에서 나눠주는 거예요. 방송에서 쇼프로나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곳의 배경음악으로 영화음악이 사용될 때도 있지만, 집계가 안돼요. 그래서 다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 고 문의를 하면 집계를 안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집계를 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한 달을 직접 집계해서 보내 봤어요. 그것도 나중에 알아봤더니 가요의 1/20을 주는 거예요. 집계도 안하고 비율도 1/20이고. 또 말하면 방송국에 큐시트를 내라고 했는데 안주네요, 이런 말을 하고 있고. 그런 저작권협회에서는 영화가 큰 시장이 된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음악가들을 모아서 이야기했는데, 결국은 삽입곡들만 받아주게 된 거죠.

삽입곡에 대한 음악감독님들의 느낌이 다르겠어요. 감독님들은 또 본인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을 사용하고 싶어 하실 거잖아요.
근데 뭐... 영화마다 다른 거 같아요. 그 삽입곡이 그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냐에 따라 정말 필요한 삽입곡이 있는 거 같고, 감독이 그냥 좋아하는 노래, 옛날부터 쓰고 싶었던 노래를 그냥 쓰길 원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건 이제 못쓰게 말리죠. 영화제작비에서 그런 지출을 해야 하느냐, 그런 효과가 있느냐. 그런 걸 따지죠. 하지만 써야할 곡이 있다면 쓰긴 해야죠.

좋아하시는 외국 영화음악가가 있으시다면요?
영화음악 감독 중에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를 좋아해요. <이터널 선샤인>을 작업했던 존 브라이언도 좋아하고. 어렸을 때는 고란 그레고비치도 좋아 했었고요. 60년대 일본영화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어요. 딱 음악가는 모르겠는데 그 당시 스튜디오에 소속된, 스즈키 세이준이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영화의 음악들을 되게 좋아해요. 쓰는 방식도 되게 독특했고, 자극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당시 영화가 그랬던 거 같아요.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은 어떤 게 있나요?
준비하고 있는 건 배두나 주연의 <도희야>라는 작품이 있고요. 아직 가제인데 이도윤 감독의 <좋은 친구들>이라고. 12월 중에 촬영이 들어가는 걸로 알아요. 또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서울시에서 하는 <우리의 영화, 서울>도 준비 중이에요. 예전에 리들리 스콧이 (유튜브에서) 했던 것처럼, 서울을 주제로 일반인들이 찍은 것들을 이용해서 영화로 구성하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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