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Lee Yong-min / 李庸民 / 1916  ~  1982
대표분야
감독, 촬영
데뷔작품
제주도 풍토기 1946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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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흑귀 (이용민, 1976)
공포의 이중인간 (이용민, 1974)
한국의 새 후편(새들에게 지혜가 있나) (이용민, 1972)
한국의 새 (이용민, 1972)
사녀의 한 (이용민, 1970)
위험한 남편 (이용민, 1970)
찬란한 유산(청자와백자) (이용민, 1969)
산업시찰 (유현목,라한태,이용민,양종해,강대철, 1969)
악마와 미녀 (이용민, 1969)
성웅 충무공 (이용민, 1968)

기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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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서 영화를 공부하였다. 1946년 제주도의 풍물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주도 풍토기>(1946)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감독 활동 초기에는 <서울의 휴일>(1956)과 <산유화>(1956)와 같이 1950년대의 자유로운 연애 분위기를 담은 통속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이후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포화 속의 십자가>(1956), 오영진 원작을 영화화한 희극 <맹진사댁 경사>(1962) 등 다양한 장르에서 대중적 감각의 영화들을 선보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사이에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장기인 공포영화를 여러 편 연출했다. <악의 꽃>(1961), <지옥문>(1962), <무덤에서 나온 신랑>(1963), <살인마>(1965), <목 없는 미녀>(1966), <악마와 미녀>(1969), <공포의 이중인간>(1974)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포영화들은 한국의 토속적인 소재를 십분 발휘하며 상당한 대중적 호응을 얻었는데(한국영화감독사전), 특히 그 중에서도 <살인마>와 <목 없는 미녀>는 촬영에 능수능란한 이용민 감독이 특수촬영으로 그 공포감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경향신문a, b). 이처럼 촬영에 능했던 이용민은 이를 전문적으로 겸했는데, 권영순의 <정복자>(1963)는 촬영상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카메라워크와 참신하고 현실적인 색채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으며(동아일보) 1963년 청룡영화상 촬영상과 1964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82년 숙환으로 별세했다(경향신문c).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5년 8월 18일자 5면
경향신문b 1966년 6월 09일자 6면
경향신문c 1982년 4월 24일자 2면
동아일보 1964년 3월 24일자 4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6년 11월 2일 서울 출생. 일본대학 예술과 영화부 졸업. 이용민 감독은 촬영 감독 출신의 영화 감독으로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 영화 감독이다. 이 감독의 감독 데뷔작은 <제주도 풍토기(濟州島 風土記)>(1946)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제주도의 풍물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였다. 해방 직후 한국영화계에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들이 종종 있었다. 좌익 선전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한국을 홍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도 많았다. <제주도 풍토기>는 후자의 목적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서, 이용민 감독이 각본, 감독, 기획, 편집을 맡았다.
데뷔작 이후 그는 통속물 <목동과 금시계>(1949), 제주도 제일훈련소의 이모저모를 수록한 다큐멘터리 <백만의 별>(1954), 통속물 <서울의 휴일>(1956)을 연출한 후 전쟁 영화 <포화 속의 십자가>(1956)를 연출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 전쟁을 바라본 이 영화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때문에 고립된 육군 소령을 도와주는 노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피신시켜 준 노파가 결국 중공군과 아군의 전투 때 날아온 파편에 죽는다는 내용이다.
이후 <산유화>(1957), <귀거래>(1960) 같은 통속물을 감독하던 이용민 감독의 존재를 다시 알린 것은 코미디 <맹진사댁 경사>(1962)였다. 오영진 원작의 이 영화는 이병일 감독이 <시집가는 날>(1956)이라는 제목으로 연출한 적이 있는 영화였다. 그것을 이용민 감독은 최은희, 김승호, 김진규, 구봉서, 김희갑, 이빈화, 양석천, 최남현 등 당시 최고의 스타들을 동원해서 리메이크했다. 절름발이에게 딸을 시집 보내지 않으려다가 오히려 낭패를 보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로서, 공포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의 코미디란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이다.
1961년으로 접어들면서 이용민 감독의 관심은 공포 영화로 기울게 된다. 사람의 피를 마시는 악의 꽃을 이용해 한을 푼다는 <악의 꽃>(1961),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종교 영화에 더 가까운 시네마스코프 영화 <지옥문>(1962)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는 한국적 소재로 연출한 공포 영화이다. <무덤에서 나온 신랑>(1963), <살인마>(1965), <목 없는 미녀>(1966), <악마와 미녀>(1969), <사녀의 한>(1970)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제목도 으스스한 <목 없는 미녀>는 일본 패잔병이 숨기고 간 금괴를 찾기 위해 동료들을 죽이는데, 그들 망령 중에 목 없는 미녀가 나타나서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연출을 하면서도 촬영을 했다. <희망의 마을>(최인규, 1948), <자유결혼>(이병일, 1958), <삼일독립운동>(전창근, 1959) 등 다수의 영화를 촬영했으며, <정복자>(권영순, 1963)로 제1회 청룡상 흑백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조총련>(박태원, 1974), <십이대천왕>(이혁수, 1978)에서는 특수촬영을, <지옥은 만원이다>(이강원, 1964)에서는 기획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용민 감독은 다큐멘터리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는 공포 영화였다. 실상 그가 연출한 1960년대의 대부분의 영화도 공포 영화이다. 이용민 감독의 공포 영화는 토속적 소재를 바탕으로 해서 정통적 공포 영화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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