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리메이크해보고 싶은 <살인마>

by.정재은(영화감독) 2008-07-04조회 4,031

작년 충무로 영화제에서 보게 된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1965, 이용민)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영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 당대의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영화를 축약하자면 이렇다. 시집온 지 한참 되었는데도 애를 못 낳는 며느리 애자(도금봉)는 가정부로 와있는 육촌자매 혜숙과 바람난 시어머니에 의해 치밀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 살인은 보통 우발적이기 쉬운 한국영화의 살인 장면들과 달리 다층적이고 계획적이다. 시어머니와 혜숙 외에 시어머니의 내연남이며 아들의 친구인 박의사와, 혜숙의 내연남인 화가가 그녀들의 계획에 합세한다.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개입을 통해 자행되는 애자의 죽음은 타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애자가 은장도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 죽는다는 점에서 자살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다. 그녀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

여러 사람이 개입된 억울한 죽음은 곧 다가올 떼죽음의 장면들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적 장치이다. 곧 피의 향연이 다가온다. 이제 그녀의 죽음에 개입된 위의 네 사람과 혜숙이 낳은 아이들 셋까지 도합 일곱 명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대량 복수극이 펼쳐진다.  죄인을 벌하는 방식의 선택에 있어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고양이의 등장이 그렇다. 내게는 사랑스럽기만 한 고양이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억울하게 죽어가던 애자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바로 새끼고양이다. 애자는 고양이에게 원한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부탁하며 죽어간다. 그리고 그녀의 시체는 살아있는 고양이와 함께 유기된다. 고양이는 애자의 피를 먹고 살점을 뜯어먹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아주 한참 후에 애자는 귀신이 되어 고양이와 함께 복수를 감행한다.

귀신이 된 애자의 스타일은 남다르다. 저고리 벗어던지고 자신을 겁탈하려던 남자를 유혹해 자신의 복수극에 가담시키기, 흡혈한 피를 입으로 뱉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주문하기, 남편은 절대로 해치지는 않고 진실에 눈뜨게 하기 등이 그 예다. 그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시어머니를 죽이는 스타일이다. 애자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자기로 덮어 물에 빠뜨리고 고양이의 혼령을 빙의시킨다. 시어머니를 그냥 죽이는 정도로는 분이 덜 풀린 모양이다. 고양이의 인격과 육체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어머니는 자는 손녀의 얼굴을 핥고 흡혈귀처럼 피도 빨아먹는다. 시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 정애란의 고양이 연기는 정말 소름이 쫙쫙 돋는다. 내가 그런 연기를 부탁하면 배우가 해주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오묘하다. 죽어갈 때는 인간의 탈을 벗고 고양이로 돌아가는데 고양이 사이즈에 맞춤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죽어간다. 그 의상을 선택한 게 의상담당이었는지 감독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완벽성은 진짜 인정해 줄만하다.

이 영화에서 시어머니는 두 번 죽어 마땅한 캐릭터다. 정부를 집으로 불러들여 온갖 재미를 다 보던 시어머니는 귀신이 된 며느리에게 한 번 죽고 아들에게는 또 한 번의 죽임을 당한다. 어머니가 절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코드라고 하겠다.

복수의 터널을 지나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남편에게 알리면서 원한의 복수극은 끝을 맺는다. 참 이상하게도 애자는 직접 남편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 화가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기록하게 만든다. 화가는 애자의 사연을 대필하고 잘못을 뉘우치지만 결국 귀신 애자에게 죽는다. 애자에게 예술가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은 원한의 피를 담은 초상화로 영원히 살려는 의지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애자는 글을 쓸 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이 처절한 며느리의 복수극은 위에 언급된 스토리보다 더 많은 갈등과 설정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이중적이다. 윤리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말종들이다. 그네들은 귀신에게 준엄한 재판을 받는다. 죄 없는 아이들과 사태파악 못하고 휩쓸려 다닌 남편만이 살아남는다. 애자는 완전한 범죄는 없고 착한 사람의 진실이 승리한다는 교훈을 남기며 연꽃이 되어 극락세계로 사라진다.

호러 장면의 아이디어나 기술적 완성도도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호러퀸’급 외모를 가진 도금봉여사와 ‘구미호’급 눈빛 소유자인 정애란 여사의 장렬한 초현실적 연기가 압권이다.

언젠가 리메이크 해보고 싶다. 인물들이 좀 덜 노골적이고 덜 유치해만 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천정에 거꾸로 매달렸던 시어머니가 방바닥에 떨어져 고양이로 변신하는 장면의 완성도만 높아진다면 리메이크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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