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호
Byun Jang-ho / 卞張鎬 / 1939  ~  2022
대표분야
감독
데뷔작품
태양은 내것이다. 1967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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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자랑스런 서울 (변장호, )
노인과 연인 (변장호, 2011)
밀월 (변장호, 1989)
감자 (변장호, 1987)
이브의 건넌방 (변장호, 1987)
푸른 하늘 은하수 (변장호, 1984)
사랑 그리고 이별 (변장호, 1983)
무녀의 밤 (변장호, 1982)
최인호의 야색 (변장호, 1982)
미워도 다시한번 '80 제2부 (변장호, 1981)

주요경력

1972~73년 10월 한국 영화 감독협회 부회장
1974~79년 11대, 12대, 13대 한국 영화 감독협회 위원장
1977년 대종출판사 설립
1981~82년 영화 진흥공사 비상임이사
1981~84년 12대, 13대 한국영화인 협회 이사장
1978~82년 청소년 영화제 심사위원(영화진흥공사 주최)
1986~99년 대종필름 대표이사
1990~93년 아세아 태평양 영화제 연맹이사
1995, 1998년 제6회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
1999년 한국감독협회 고문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경기도 이천에서 자라나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하게 된다. 공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3학년 때 연극영화과로 전과한다. 1960년 군제대 후 대학 4년째 우연히 신필름(신상옥감독)에서 실시했던 조감독 공채 모집에 응모하게 되었고 여기서 6개월간 조감독 수련기간을 거쳐 감독자격을 얻게 되엇다. 그러나 이즈음 신필름은 부도가 나서 충무로로 나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1965년에 완성한 첫작품, '태양은 내것이다'는 제작자를 잘못만나 오랜기간 제작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두번째 작품 "정과 애"는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신필름이 재건되자 신필름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주요 영화작품
태양은 내것이다(1967,변장호)
안개속에 가버린 사람(1969,변장호)
정과 애(1969,변장호)
비내리는 명동거리(1970,변장호)
여자가 화장을 지울 때(1970,변장호)
상해의 불나비(1971,변장호)
이별의 길(1972,변장호)
홍살문(1972,변장호)
눈물의 웨딩드레스(1973,변장호)
비련의 벙어리 삼용(1973,변장호)
망나니(1974,변장호)
청춘극장(1975,변장호)
보통여자(1976,변장호)
영아의 고백(1978,변장호)
을화(1979,변장호)
미워도 다시한번 `80(1980,변장호)
아빠안녕 `81(1981,변장호)
무녀의 밤(1982,변장호)
사랑 그리고 이별(1983,변장호)
푸른 하늘 은하수(1984,변장호)
이브의 건넌방(1987,변장호)
감자(1987,변장호)
밀월(1989,변장호)
애착작품 및 사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72년도에 제작한 "눈물의 웨딩드레스"이다. 내용은 실화로서 공대생과 창녀이야기다. 감독으로서 직접 신문기사 내용을 다시 시나리오로 구성하였다. 이영화에서 줄이 길게 서있는 관객들, 폭넓은 관객층에서 감독의 의도대로 감동을 받아 눈물을 보이는 모습등에서 감독으로서 희열을 느꼈다. 사회고발과 희망을 준 영화로 평가한다. '67년도 "창"은 당시로서는 대담한 기획이었다. 주제는 유부녀의 이유없는 반항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넉넉지 못한 생활배경에서 부유하지만 외로운 유부녀의 남편이 소홀한 상황에서 젊은 남자와의 외도를 정당화시켰다. '82년도의 "무녀의 밤"은 현대와 발달한 산업사회 속에서 산업과 운명과 여자에 촛점을 맞추었다. 김동리작 "을화"와 연계되는 작품으로 주인공은 무녀의 딸로 대학의 무용과 학생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무녀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삶의 질곡에서 결국 무녀의 딸은 무녀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회색도시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컬한 운명적인 여인의 이야기, '89년 "밀월"은 마지막 작품으로 감독으로서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다.
영화속 명소
영화 : 푸른하늘 은하수(1984년), 장소 : 보길도 (전라남도 진도에서 2시간) 보길도는 섬전체가 검은 자갈로 둘러쌓여있고 소나무가 많고 파도가 아름답다. , 장면 : 심장병자식을 둔 어머니가 바닷가 근처 나무에서 지성을 드리는 장면, 영화찍을 당시는 태풍이 아주 심할 때여서 이 장면을 찍기위해 배우와 모든 스텝들을 나무에 묶어 놓았다. 정작 장면을 찍을 때는 더욱 태풍이 심해서 검은 자갈을 머금은 큰 파도가 세트를 뒤덮어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주로 문예물과 멜로물을 겸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다. 추구하는 작품스타일은 '우리나라 여성상'이다. 작품배경이 과거든지 현재든 막론하고 모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사회에 있어서 여성상의 변천을 이야기하였고 일반여성들의 모습을 추구하였다. 주인공의 신분이 열녀(홍살문)이든 창녀(O양의 아파트, 눈물의 웨딩드레스)든 작품 성격이 멜로물이든 문예물이든 구분짓지않고 여성의 모습을 통해 사회고발을 하고자하였다. 문예물은 주로 단편소설을 작품화한 "감자", "밀월", "무녀의 밤" 등이 있고 멜로물로는 "홍살문", "망나니", "보통여자"등이 대표적인데 모두 영화제에 출품할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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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4학년을 다니던 1960년 신필름에서 실시한 조감독 공채 모집에 응모하여 합격한다. 여기서 6개월간 조감독 수련기관을 거치고 감독자격을 얻게 되지만, 이 무렵 신필름의 상황이 악화되어 충무로로 나와서 1965년 <태양은 내 것이다>를 연출하지만, 1967년에야 개봉하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정과 애>(1969)부터 흥행에 성공하여, 이후 문예물, 멜로드라마,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다. 액션 장르들은 <명도의 왕과 박>(1970), <현상 붙은 4인의 악녀>(1971), <상해의 불나비>(1971) 등 1970년대 초반의 경력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명동잔혹사>(1972)와 같은 경우는 나한봉, 유열, 신봉승 등 시나리오 작가가 공동집필하고, 변장호, 최인현, 임권택 등 세 감독이 세 부분으로 나눠 찍은 옴니버스 영화이다(동아일보).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문예 영화와 멜로드라마 사이를 오가는데, 그 경향의 작품들이 <홍살문>(1972), <비련의 벙어리 삼용>(1973) 등의 문예 영화와 <눈물의 웨딩드레스>(1973), (1978) 등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들이다. 이 시기 호스티스 멜로드라마 연출작들이 모두 흥행적 성공을 거두고, 문예영화 역시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게 되며 <비련의 벙어리 삼용>같은 경우는 <피리부는 삼용>, <천하무적 삼용> 등으로 연작으로 제작 계획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흥행과 예술적 성과 모두를 낼 수 있는 감독으로서 그 차기작의 캐스팅을 둘러싸고 배우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경향신문a). 1980년대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1980)의 리메이크로 또다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문예영화인 <감자>(1987)을 제작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인협회에서 감독분과위원회 위원장과 협회장을 맡아 영화법 개정을 통합 자유제작제와 외국영화자본유입 등을 주장하며 한국제작자협회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경향신문b).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제작사 대종필름을 설립하고, <눈짓에서 몸짓까지>(1986), <감자>(1987), <만무방>(1994) 등을 제작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74년 12월 11일
경향신문b 1982년 3월 19일 12면
동아일보 1972년 6월 6일 8면
매일경제 1974년 7월 15일 8면

[작성: 전민성]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5년 경기도 이천군 출생.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방송영상학과 수료. 원래는 공과 대학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연극영화학과로 전과했다. 대학 4학년 무렵 ‘신필름’에서 모집한 조감독 공채시험에 응모, 합격한 뒤 감독수업을 받으며 감독의 꿈을 키워나간다.
1965년 태현실과 이대엽이 주연을 맡은 코믹한 멜로드라마 <태양은 내 것이다>로 데뷔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이듬해 두 번째 작품 <정과 애>, <창>등이 흥행에 성공한 후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비 내리는 명동거리>(1970), <명동의 왕과 박>, <명동삼국지> 등 일련의 명동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를 잇달아 내놓으며 흥행가도를 달리는 한편 70년대 호스티스 직업여성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다룬 멜로영화에도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했다. <눈물의 웨딩드레스>(1972)는 서울 개봉관 22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으며 변장호는 흥행감각이 뛰어난 감독으로 인정받는다. 대학생 남자와 호스티스의 사랑을 다룬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관객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 감독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간다는 이 영화는 당시 계급적 갈등을 비판하는 메시지 속에서도 사랑의 희망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한국 영화사 가운데 암울한 시기로 꼽는 7,80년대 흥행영화를 주도한 변장호의 주요 작품목록은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 <창>, <수감>(1969), <비 내리는 거리> <명동의 왕과 박> <여자가 화장을 지울 때> <남 대 여>(1970), <현상 붙은 7인의 악녀> <72K 다이아를 찾아라> <사나이 가슴에 비가 내린다> <명동사나이 따로 있더냐> <상해의 불나비>, <빗속에 떠날 사랑>(1971), <인생은 나그네 길> <이별의 길> <별난 장군> <홍살문>(1972), <눈물의 웨딩드레스> <벙어리 삼룡이>(1973), <속 눈물의 웨딩드레스> <흑나비> <망나니>(1974), <학녀> <청춘극장>(1975), <보통여자>(1976), <비련의 홍살문> <영아의 고백>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1978), <을화> <속 O양의 아파트> <불행한 여자의 행복>(1979), <미워도 다시 한 번>(1980), <아빠 안녕> <제2부 미워도 다시 한 번>(1981), <최인호의 야색> <무녀의 밤>(1982), <사랑 그리고 이별>(19830, <푸른 하늘 은하수>(1984), <이브의 건너 방> <감자>(1987), <밀월>(1989) 등 70여 편에 달한다.
그의 영화세계는 상업적인 성공이 두드러지는 통속 액션물과 멜로물, 그리고 1972년 <홍살문>으로부터 시작된 완성도 있는 원작을 영화화한 일련의 문예영화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그에게 흥행감독으로 인기와 부를 안겨줬다면 후자의 작품들은 예술가로서 감독의 의미를 부여했다. <홍살문>, <망나니>, <감자>, <벙어리 삼룡이> 등에서 보여준 한국적인 소재와 그것을 풀어내는 토속적 스타일은 작가적 역량과 영화를 표현의 수단으로 삼은 그의 예술적 의지가 발현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으며 그중에서 <홍살문>은 과부들의 억압된 삶과 성에 관한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면서도 빼어난 한국적 아름다운 풍경을 화면에 담아내 제 9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영화제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영화연출뿐만 아니라 영화계 안팎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감독협회를 비롯해 각종 영화인 단체 회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영화인의 입지를 넓히는데 공헌했다. 1990년대 들어 작품 연출보다는 극장경영과 외화수입에 주력했으며 모교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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