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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원
Hong Eun-won / 洪恩遠 / 1922 ~ 1999
대표분야
감독, 편집, 시나리오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201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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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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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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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오해가 남긴 것
(홍은원, 1965)
홀어머니
(홍은원, 1964)
여판사
(홍은원, 1962)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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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여성영화인축제)(2003)
:
공로상(
)
주요경력
1939~40년 (주)마루제 서적부
1940~45년 만주신경음악단 성악부
1945~46년 서울중앙방송국 합창단원
1946년 고려영화사 입사, <죄 없는 죄인>의 스크립터로 영화계 데뷔
기타정보
기타이름
홍설아, 홍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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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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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격월간 영화 1986년 7월호
발행일
1986-07-01
[영화잡지] 격월간 영화 1984년 1,2월호
발행일
1984-02-10
[영화잡지] 월간영화 1984년 5월호
발행일
1984-04-29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에 태어나, 경기고등여학교 재학 시절 영화관에서 많은 영화들을 보며 자라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 1940년 신경 음악단의 방송합창단원이 되고, 당시 신경 음악단이 만주영화주식회사인 자매회사였던 이유로 자주 만주영화주식회사를 드나들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여성영화인사전).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와 중앙방송국(현 KBS) 라디오의 코러스단과 성우를 거쳐, 해방 직후, 최인규 감독의 <죄없는 죄인>(1948)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한다(동아일보). 이후 11년간 스크립터를 하고, <조춘>(1959), <사랑의 십자가>(1959), <아아 백범 김구 선생>(1960), <여인천하>(1962) 등의 영화를 거치며 3년 동안 조감독을 한 뒤인 1962년, 무려 14년을 기다린 뒤 40세의 나이로 <여판사>(1962)의 연출을 하며 감독 데뷔하여, 박남옥 감독에 이어 한국영화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이 된다. 데뷔작 <여판사>는 당시 실제 사건이었던 여판사 자살 사건을 극화한 것으로 '하이클라스 홈 드라마'(경향신문)라는 평가를 받는 등 연출력과 소재를 극화시키는 능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홀어머니>(1964), <오해가 남긴 것>(1966) 등 두 편을 더 연출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 1962년 11월 9일 8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사전』, 도서출판 소도, 2001
[작성: 황미요조]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홍은원 洪恩遠
-감독, 각본, 편집, 작사. 1922년 9월 24일 전남 순천 출생. 예명 홍진아(洪眞娥), 홍설아(洪雪娥). 경성 공립 경기고등여학교 졸업. 1999년 1월 5일 사망.
홍은원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경기여고 시절부터였다. 당시 학생관람 금지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문예물, 멜로드라마, 서부극, 일본 무술영화 등을 섭렵하며 홍은원은 ‘영화는 배우가 아닌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을 터득했고 자신만의 영화관을 세워나갔다. 특히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가 영화예술에 대한 동경을 싹트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만주에 건너가 마루젱 서점에서 일하던 홍은원은 40년 초여름 만주의 신경에서 방송합창단원이 되었고 영화에 미쳤던 문학소녀에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는 카나리아로 변신한다. 신경음악단이 만주영화주식회사의 자매회사였던 관계로 영화사에 출입이 거듭되면서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다시 불타올랐고 마침내 여름 휴가로 서울에 왔을 때 당시 <태양의 아이들>(44, 최인규)을 준비하던 최인규 감독을 만났다. 이때 배우가 되라는 최인규 감독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그는 미래를 기약하였다.
해방 후 돌아온 서울에서 그는 중앙방송국의 합창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때 최인규 감독과 다시 만나 47년 <죄없는 죄인>(48, 최인규)의 스크립터로서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결혼으로 잠시 영화계를 떠났었지만 조정호 감독의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여군>으 조감독 겸 스크립터로 다시 합류하였고 이후 <유정무정>(59, 신셩균) <젊은 설계도>(60, 유두연) <황혼>(60, 박영환) <바위고개>(60, 조정호) 등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강천, 전창근, 유두연, 윤봉춘 등의 조감독을 거치면서 영화제작 과정과 당시 한국영화계 사정을 많이 배웠고 영화일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당시는 감독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는 <여판사>(62)로 감독이 되기까지 장장 15년을 기다려야 했다.
감독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영화감독으로서의 홍은원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그것은 영화 <여판사>를 홍보하는 데는 분명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여판사의 죽음을 소재로 한 <여판사>가 제작되는 데는 홍일점 여판사에 홍일점 여감독이라는 점을 이용해 화제를 일으켜 보자는 제작자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기사로 보아 여성은 때로는 그 희소성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홍은원은 대본을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는 조건을 걸고 연출을 수락했다고 한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이 영화는 “직업여성 부부의 이상심리!”라는 광고문안을 내세웠고 당시 신문에서는 ‘내용은 여감독이 다룰 만한 소재로 여성의 직장과 가정의 양립문제로 결국 홈드라마지만 하나의 사회문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이 여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사는 ”여성감독다운 섬세한 플롯의 전개에다 명확한 커팅은 조감독이었던 그가 오히려 몇 사람의 중견감독을 오히려 길러냈을 만큼 숨은 실력자임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모델을 두고 그린 이야기 같지만 보고 있노라면 선입관과 달리 반전되는 이야기에 호감이 간다”는 당시의 평가처럼,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헛된 욕심이나 질투에 사로잡히고 자격지심에 실수를 하며 남이 잘 되는 꼴에 배 아파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가슴 아파 하기도 하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딸이자 애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인 ‘여판사’가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과 사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섬세하고도 민감한 여성의 감각으로 당당히 맞서나가는 품”, “남편보다 우월의식을 가진 직장여성을 그려보겠다고 한다. 여성만이 알고 있는 여성의 심리와 남성의 관찰을 영상화하겠다는 의욕”(「62년의 제1선 여감독 홍은원」, 동아일보 62.7.1)이라는 기사로 보아 이 영화는 더 이상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게 된 여성의 다양한 위치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는 듯하다.
<여판사>의 주인공인 진숙이 결국은 판사직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변호사가 되는 것처럼 홍은원 역시 <홀어머니>(64)와 <오해가 남긴 것>(65) 이후에는 시나리오 쓰는 것으로 자족해야 했다. “모정의 바다 사랑의 풍설을 끊임없는 감동을 부르는 홍루의 명편”이라는 문구로 홍보된 <홀어머니>는 아세아극장에서 개봉되었는데 제작비와 연기자의 스케줄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조미령, 신성일, 최지희, 김승호가 등장했던 이 영화는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김지미 주연의 <오해가 남긴 것>과 함께 그의 영화작업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이었으며 여성감독으로서의 그의 자의식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준다.
“홍은원은 환갑이 지나서도 다람쥐처럼 영화판을 누비고 다닐 것”이라는 유두연 감독의 예견에 대해 그가 “환갑은커녕 50도 못되어 영화계라는 태양을 맴도는 위성의 존재로 떨어졌다”고 자조섞인 목소리로 답했다고 하는데 이는 감독으로서 일가를 이루고자 했던 그에게 시나리오 쓰는 데 머무른다는 것이 결코 충분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보여준다.(변재란)
감독
-62 여판사. -64 홀어머니. -65 오해가 남긴 것.
조감독
-48 죄없는 죄인. -54 불사조의 언덕, 여군. -56 단종애사, 백치 아다다. -57 사랑. -58 수정탑. -59 사랑의 십자가, 조춘. -62 여인천하. -63 애정 삼백년.
각본,각색
-59 유정무정. -60 바위고개, 젊은 설계도, 황혼. -64 연애할 시간 없다, 홀어머니. -65 댁의 부인은 어떻습니까, 소문난 여자, 오해가 남긴 것, 하와이연정. -68 이별의 모정, 흐느끼는 백조. -70 동경의 밤하늘.
편집
-62 여판사.
작사
-56 백치 아다다. -68 사랑.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예명 홍진아(洪眞娥), 홍설아(洪雪娥). 1922년 9월 24일(양) 전라남도 순천 출생. 본적은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 50번지, 경기여고 재학 시절부터 음악과 문학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녀는 1946년 고려영화사에 입사하여 여배우를 권하는 최인규 감독의 권유를 뿌리치고 스탭의 길로 들어섰다. <죄 없는 죄인>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1954년 <여군>(조정호, 1954) 조감독 후 , <불사조의 언덕>(전창근, 1955) 등 약 10여 편의 작품에 스크립터 겸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1959년에서 1962년까지는 <조춘>(유두연, 1959), <여인천하>(윤봉춘, 1962)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역임한 후 1962년 감독 데뷔했다.
감독 데뷔작 <여판사>(1962)는 통속물이었다. 여판사 자살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여성이라는 위치에 대한 고민이 섬세하게 녹아있는데, 여성의 사회적 고민과 가족 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열등감을 가진 남편, 며느리를 오해하고 괴롭히는 시어머니, 시누이의 등살을 여성의 관점에서 충실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여성의 삶과 인생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는 홍은원 감독의 일관된 주제였다. 차기작 <홀어머니>(1964)는 자식들을 위해 모진 고생과 인내를 감당했던 어머니상을 그렸고, <오해가 남긴 것>(1966) 유교적 분위기 때문에 희생양이 되는 여성의 처지를 다루었다.
그녀가 연출한 작품은 많지 않지만, 영화에 관한 재능은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 음악 작사가로도 활동했다. <유정무정>(신경균, 1959), <황혼>(박영환, 1960) 등의 시나리오를 썼고, 이강천 감독의 <백치 아다다>(1956), <사랑>(1957)의 주제가를 작사했다. 그녀는 영화사에서 몇 안 되는 여성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녀의 시나리오나 영화에 대한 당시의 평은 여성적인 섬세하고 깔끔한 작품들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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