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내가
김기영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그해 겨울 동네 극장에서였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보러 간 게 아니라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보러 갔다. 친구 말에 의하면 “엄청나게 야하다”는 것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친구 말이 맞았다. 그런데 그게 ‘너무 엄청나서’ 둘 다 쇼크 상태에 빠져서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스산하고 어두운 저녁 길을 몽유병자처럼 허우적거리면서 돌아왔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설명할 말을 알지 못했다. 그 영화가 (포스터에 쓰인 대로 옮기자면) <
蟲女>(1972)였다. 그런 다음 무턱대고 김기영의 새 영화를 매번 보러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좋은’ 김기영의 시간이 끝나고 ‘나쁜’ 김기영 이 시작되었을 때 그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 지구상에 비디오는 도착하지 않았고,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는 한국영화를 방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나는 ‘이전’ 의 김기영을 볼 방법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내가 김기영의 영화를 계속 보러 간 것은 거기서 무슨 매혹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다. 보면 볼수록 점입가경이었다. 내가 김기영의 영화를 끈질기게 보러 간 것은 나를 방어하기 위해 서였다. 무슨 말인가요? 나는 이 사람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나의 일부가 부서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냥 내버려두면 나의 두뇌 속의 극장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할 것만 같은 ‘기분 나쁜’ 기분에 (이 이중적인 말 그대로!) 빠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기분이 내 영화관에 머물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새 영화로 그걸 바꿔놓을 긴급한 필요를 느꼈다. 좀 더 간단히 말하겠다. 한번 등록된 김기영의 영화를 계속 지워내야만 했다. 김기영은 10대를 통과하던 나에게 일종의 대결과 같은 과정이 되었다. 비로소 이 대결의 기분으로부터 (완전히, 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빠져나와 질문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텅 빈 국도극장에서 <
반금련>(1981)을 보고 나온 다음이었다. 그때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을지로 거리를 걸어갔다. 나는 이 영화가 김기영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게 질문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쾌하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을 나는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에 감탄하고 있는가? 좀 더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계속해서 보았다. 그때 김기영의 영화를 보는 것은 몹시 피곤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상적으로 개봉하지 못한 채) 서울 시내 구석에서 숨어 있는 재개봉관 영화관을 찾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
파계>(1974), <
육체의 약속>(1975), <
이어도>(1977), <
흙>(1978),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
수녀>(1979), <
느미>(1979), 심지어 <
바보사냥>(1984), 그리고 <
육식동물>(1984). 그런 다음에야 가까스로 나는 거의 맨 앞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침내 <
하녀>(1960)를 보았다. 그날 문득 나는 어떤 대답을 얻었다. 김기영 영화의 핵심은 웃긴다, 는 것이다. 그걸 사람들은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이때 김기영이 웃는 것은 육체 안에 감춰놓은 정신적 기형에 대해서, 영혼의 불구성에 대해서, 그걸 구경하는 데서 오는 발작이다. 조심스럽게 구별해야 한다. 한국영화는 줄기차게 병든 인간들을 찍어왔다. 그런 다음 치료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감상적인 치료 과정에 매달린다. 한국영화 안에서 누구도 비애의 정서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만희도,
임권택도 결국에는 비애의 정서에 머물렀다. 심지어
장선우도(<
경마장 가는 길>(1991)의 마지막 장면을 보라), 그리고
홍상수도 여기서 달아나지 못했다(<
그 후>(2017)에서 눈 내리는 밤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라). 그런 맥락에서 김기영은 거의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쥐약을 먹고 참변을 당해 죽어갈 때 안 간힘을 쓰는 모습을 찍으면서 김기영은 어떤 비애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그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모습은 마비가 오면서 일어나는 신체 동작의 경련이다. 하녀는 척추가 무너진 것처럼 뒤집어져 계단에 자빠진 채 눕고 남편은 난쟁이가 된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아내 앞까지 걸어가 그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죽는다. 어떻게 이 자세 앞에서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장면 앞에서 몸서리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불구성. 이 기형성. (나는 몇 번이고 이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할 생각이다.) 참극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광경 앞에서 몸서리 치면서 가장 큰 소리로 웃는 것은 김기영 자신이다. 그래서 <하녀>는 남편의 웃음소리로 끝난다. 공포는 웃음과 함께 거주하고 불길한 기운은 비애의 정감을 뒤덮는다. 여기에는 어떤 병자도 없다. 육체적인 요소들의 압도적인 스펙터클. 김기영은 여기서 불구가 된 인간들만이 자신의 영화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단 한 치의 센티멘털리즘도 없는 세계. 그 저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여러 종류의 불구들의 자세. 혹은 기형들의 형상. <
렌의 애가>(1969)에서 화가는 (신체의 여러 기관 중에서 다름 아닌 붓을 쥐어야 하는) 자기의 손이 제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것에 몇 번이고 자살을 결심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6·25전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화가 에게 전쟁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이데올로기 따위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경련을 일으키는 그 손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그 과장된 제스처. 그때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은 6·25전쟁이다. 자신의 몸. 영혼이 거주하는 집. 그 집이 불구가 되고 기형이 된다. <
고려장>에서 어머니를 산에 버리러 갈 때 자식이 업고 가는 그 모습에서 업힌 어머니는 자식에게 달라붙은 혹처럼 보인다. 힘겹게 산을 기어올라가는 꼽추. 자식과 하나가 된 어머니. 그때 유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당신은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나요? 우리는 인간의 불구 앞에서, 그 기형적인 왜곡 앞에서 측은한 마음을 갖고 가련하게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김기영은 마치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그 가련한 불구성을, 그 애처로운 기형들을 즐겁게 구경한다. <렌의 애가>에서 화가가 사랑하는 여인 렌 앞에서 경직된 손을 붙잡고 오열할 때 난데없이 아이들이 구경하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숏. 그때 짓궂게도 카메라는 아이들 쪽을 향해 불현듯 팬(Pan)을 한다. 그 알 수 없는 구경하는 즐거움. 그런데 김기영의 영화 목록에서 즐겁지 않은 영화가 있던가. 거기서 벌어지는 이상할 정도로 연극적인 영화. 이때 본질은 이 무대가 일종의 ‘프릭스 쇼(Freaks Show)’라는 것이다. 쇼를 보고 웃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기형들, 불구들, 돌연변이들을 보고 웃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이때 그걸 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건 이들이 인형처럼 보이는 아이들 뿐이다. 이때 김기영이 아이들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신 자신의 등장인물을 아이들처럼 만드는 것은 이 비관적인 세계를 낙천적으로 만드는 황당무계한 에너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
십대의 반항>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이 김기영을 논할 때 결정적인 약점이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김기영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이상하게 대사를 읽는 것은 연극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아이들처럼 보이게 만드는 전술이다. 아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처럼 보이는 인물들. 그들은 이제 막 말을 배운 것처럼 또박또박 말을 한다. 김기영은 후시녹음으로 영화를 작업하면서도 그렇게 요구했다. 그때 김기영이 때려 부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말할 필요도 없이 감정들이다. 김기영은 영화에서 감정을 뜯어내려고 애를 쓴 사람 이다. 이제야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인가. 인간이란 얼마나 동물에 가까운가. 그 때 김기영은 인간을 발가벗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행위를 불구로 만들고 기형으로 뒤틀어버려 동물로 되돌려 보내고 싶어한다. 동물이 된 인간이란 얼마 나 우스운 몰골인가. 나는 그걸 <충녀> ‘이전’의 ‘좋은 시절’의 김기영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날의 배움을 좀 더 말하고 싶다. <육식동물> ‘이후’에 비로소 보게 된 <하녀>는 분명히 희극이었다. 그런 다음 김기영은 이 불구에 대해서, 혹은 기형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는 대신 점점 더 그걸 직접 말하고 싶어 했다. 리비도가 노골적으로 자기 몸을 드러내고 불구가 될 때 김기영은 그걸 점점 더 발기가 되지 않는 남근으로 집중시켰다. 서지 않는 남자의 성기. 그걸 세우기 위해서 애를 쓸 때 웃기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김기영은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불구성을, 기형의 신체를 점점 더 남성의 성기로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김기영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계속)
(편집자 주) 글쓴이의 의도로 문단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또 ‘그러므로(…계속)’라는 수사를 통해 새로 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