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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Kim So-young / 金素英 / 1913 ~
본명
김혜득 (Kim Hyeo-deuk)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방아타령 1931
활동년대
19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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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수우
(안종화, 1948)
감격의 일기
(신경균, 1945)
거경전
(방한준, 1944)
正明의 처
조선해협
(박기채,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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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봄
(이병일, 1941)
김정희/춘향
그대와 나(君と僕)
(허영, 1941)
이백희
국경
(최인규, 1939)
심청
(안석영, 1937)
심청
무지개
(이규환, 1936)
홍길동전
(김소봉,이명우, 1935)
주요경력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 집행위원
1947년 한국방송 라디오극회 소속
기타정보
기타이름
金惠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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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 발성영화 스타,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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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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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46-01-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김소영은 김한에 의해 배우로 발탁되어 1931년 <방아타령>의 여주인공으로 영화에 첫 출연하였다고 한다. 김소영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소영의 데뷔작과 관려해서는 일치하지 않는 기록이 존재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1928년 개봉한 <약혼>에 김소영이 출연했다고 나오지만, 본인이 여러 지면에서 자신의 첫 작품을 <방아타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인의 진술이라는 점에서 일단 <방아타령>을 데뷔작으로 봐야 할 것이다(조선일보; <<삼천리>>a; <<삼천리>>b; 친일인명사전). 하지만, <약혼>에 출연했다는 김소영이 동명이인인지, 아니면 김소영이 주연 데뷔작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
첫 영화 촬영 이후, 잠시 낙향하였다가 1934년 <홍길동전>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6년 영화 <무지개>에 출연하고 나서, 극단 청춘좌에 가입했다가 중앙무대로 옮겼다. 비슷한 시기에 김소영은 본인에게 최초의 토키 영화인 <심청>(1937)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써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김소영은 “다른 여배우로서는 따를 수 없는 신기한 연기”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천일영화사에서 제작한 <국경>(1939)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를 마친 후 일본 동경에서 1년 여 동안 공부를 하며 머물렀다. 일본에서 돌아 온 후, 첫 작품이 명보영화사가 제작하고 이병일이 감독한 <반도의 봄>(1941)이었다. 이후, <지원병>, <너와 나>, <흙에 산다> 등 군국주의 관련 영화들에 출연하였다.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여겨졌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동아일보c; <<삼천리>>b; <<삼천리>>c).
해방 이후에 김소영은 조선영화동맹 서울시 집행위원을 역임하고 1948년 개봉한 <수우>에도 출연하였지만, 그 뒤로 영화계 활동을 접었다. 김소영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대중예술인 사전; 동아일보d).
* 참고문헌
조선일보 1928년 3월 23일 석간 3면.
동아일보a 1936년 4월 21일
동아일보b 1937년 8월 11일 7면.
동아일보c 1937년 11월 10일 5면.
동아일보d 1981년 5월 30일 7면.
<淸秋隨筆>, <<삼천리>>a 제10권 제11호, 1938년 11월호.
<俳優生活十年記>, <<삼천리>>b 제13권 제1호, 1941년 1월호.
朴基采, <朝鮮 男女映畵俳優 人物評>, <<삼천리>>c 제13권 제6호, 1941년 6월호.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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