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김소영 -배우

by.이화진(한국영화사 연구자) 2012-04-10조회 5,905

<반도의 봄>(1941)의 마지막 시퀀스는 도쿄 영화계를 견문하러 떠나는 한 쌍의 젊은 조선영화인과 그들을 배웅하는 동료들로 채워진 경성역 플랫폼 장면이다. 이제 막 건강을 회복한 남자는 일본의 선진적인 영화 시스템을 견학하러 떠나고, 영화 <춘향전>의 성공으로 조선영화계의 신성(新星)이 된 여자 ‘정희’(김소영 분) 역시 견문을 넓히기 위해 동행한다. 사실상 당시 영화기업화론의 산물이라고 할 만한 <반도의 봄>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어온 ‘영일’(김일해 분)이나 ‘훈’(서월영 분)과 같은 식민지 남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배우 ‘정희’가 새로운 영화 시스템과 함께 스타로 부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제국의 수도 도쿄로 향하는 정희를 ‘경숙’(복혜숙 분)이 배웅하는 플랫폼 장면은 각자의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한 장소에 위치시킴으로써 토키 이후 조선영화의 세대교체뿐 아니라 제국으로 향하는 조선영화의 ‘신체제’를 은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의 봄>의 ‘정희’, 김소영(金素英, 1914~ ? )은 식민지 말기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다. 1931년 우연한 계기에 <방아타령> 제작진의 눈에 띠어 영화계에 데뷔했던 무렵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이규환 감독의 <무지개>(1936)로 스크린에 복귀하고 그 이듬해 <심청>(1937)의 타이틀 롤을 맡으며 이제 막 토키 시대로 진입한 조선영화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심청>에서 “가히 다른 여배우로서는 따를 수 없는 신기한 연기”(박기채, 「조선 남녀배우 인물평」, 󰡔삼천리󰡕, 1941. 6.)를 보여주었던 김소영은 이어서 출연한 최인규 감독의 <국경>(1939)에서 원숙한 매력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스타로 부상했다. 1930년대 후반 ‘조선 붐’과 맞물려 <국경>이 일본에서 상영되었을 때에는 일본의 유력한 평론가들로부터 ‘조선에서 가장 유망한 배우’(「朝鮮映画の現状を語る-座談会報告」, 󰡔日本映畵󰡕, 1939年 8月号)라고 인정받기도 했다. 

문예봉, 김신재와 함께 발성영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김소영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연기가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는 평가를 곧잘 받았다. 그 이유가 중외극장, 극단 신건설(新建設), 태양극장, 동양극장 청춘좌, 중앙무대, 극단 고협 등 여러 극단을 거치며 병행해온 무대 경험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연극을 통해 다져온 발성과 화술은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지목되었던 듯하다. 한편, 김소영은 청초하면서도 요염하고, ‘모던’하면서도 ‘고전미’가 있는 이율배반적인 매력으로 이미지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배우로서 풍부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배역이 주로 미혼여성으로 국한되어 연기의 폭이 넓지 못했다. ‘젊은 어머니’ 같은 역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피력하기도 했지만(김소영, 「今年 나의 生活풀랜」, 󰡔삼천리󰡕 1941. 6.), 세상 사람들은 남편 추적양이 신건설 사건으로 수감된 후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시집에 두고 나왔으며, 첫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인규, 조택원과 추문에 휩싸인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떠들기 좋아했다. 때마침 ‘영화 신체제’를 맞이한 영화계는 ‘인격수양’을 강조하며 스타급 여배우들을 ‘현모양처’로 표상되는 ‘총후’의 여성으로 배치했는데, 김소영에게 구축된 공적 퍼스낼리티는 그러한 표상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김소영의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영화 <반도의 봄>에서 그녀는 명민한 배우지망생 ‘정희’에서 조선여인의 표상 ‘춘향’으로 또 조선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예 ‘정희’로, 말하자면 조선적인 미(美)와 동시대적 감수성, 그리고 근대적인 가치들의 교차점 위에 지정되었지만, 그녀의 ‘춘향’이 영화 속 영화의 단편에 그칠 수밖에 없듯이 (또 그것이 ‘안나’라는 여성과 공유하는 것이었듯이) 김소영은 ‘현모양처’의 표상을 점유하지 못했다. 조선군보도부가 조선과 일본에서 대대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제작한 <그대와 나>(1941)를 비롯해 여러 편의 선전영화에 출연했지만, 김소영의 역할은 ‘병사의 가족’ 안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법인 조영(朝映)의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조선해협>(1943)에서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 ‘간호부’ 역으로 잠깐 등장한다. 부상당한 병사(남승민 분)와 함께 해변을 걷고 있던 그녀는 병사의 아내(문예봉 분)와 누이(김신재 분)가 있는 조선해협 너머를 바라보며, “압도적이네요.”라고 말하는데, 그 ‘압도적인 바다’란 그들 간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김소영의 마지막 출연작은 안종화가 연출한 <수우(愁雨)>(1948)다.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 어떤 배우들은 인생을 걸고 북한을 택하고, 어떤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남한을 떠났으며, 어떤 배우들은 영화를 포기했다. 김소영은 재혼한 남편 조택원과 도미(渡美)해 무용단원으로 미주 공연에 동행했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국이나 출판사에서 일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뉴욕에서 미용실을 개업했다는 소식은 국내에 전해졌지만, 스크린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지 못하고 불혹(不惑)에 가까워진 여배우의 또 다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 글: 이화진(한국영화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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