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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윤
Lee Hae-yoon / 李海潤 / 1925 ~ 2020
대표분야
의상/분장
데뷔작품
단종애사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영상자료
(1)
VOD(1)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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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36)
문헌자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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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윤
이해윤 은막의 스타,그 날개를 달다
이해윤 은막의 스타,그 날개를 달다
이해윤 은막의 스타,그 날개를 달다
필모그래피 (
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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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스크린의 풍운아, 영화배우 김일해
(변석,김현우, 2002)
인터뷰
아름다운 생존 -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
(임순례, 2001)
본인 역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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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1991)
:
의상상(
사의 찬미
)
제 29회 대종상 영화제(1991)
:
특별부문상(의상)(
은마는 오지 않는다
)
제 34회 대종상 영화제(1996)
:
의상상(
금홍아 금홍아
)
주요경력
1943~45년 일본군 사령부 병참대대 근무
1950년 결혼
1953~55년 편물점 운영
1955년 <자유전선>과 <춘향전>에 단역 배우로 출연
1956년 <단종애사>로 영화 의상 담당 시작
1961년 신필름 입사, 퇴사
1980년 편집기사 이경자와 함께 여성 스탭들의 재교육과 친목을 위한 여성영화인모임, ‘영희회(映姬會)’를 조직
2014년 현재, (주)해인엔터테인먼트 이사로 재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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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기타이름
이해운, 李惠潤
영화계 입문배경
이규환 감독 "춘향전"에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그때, 조감독으로 계신 유현목씨와 친해져 "자유전선"에 배역을 또다시 맡게 되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나서 배우보단 의상쪽에 관심을 두었다.(어머님도 손재주가 좋으셨다.) 결국, "자유전선"부터 의상을 담당 하였다.
애착작품 및 사유
"난중일기"등 스케일이 굉장히 큰 작품들일수록 궁에서 입는 옷들이 다양하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생을 많이 하고 공을 들여서 애착이 간다.(더욱이 나는 옷을 직접 제작해서...)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여러종류의 영화에 의상을 담당하지 않고, 주로 사극(시대물)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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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김영희(1924~) 김영희는 한국영화 최초의 여성 편집기사다. 1943년, 형부인 촬영기사 양세웅의 소개로 사단법인 조선영화사 현상실에 취직, 곧 편집기사 양주남의 조수로 일했다. <조선해협>(박기채, 1943)으로 네거티브 필름 편집을 시작했다. 광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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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경(영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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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가짜 인생이지요. 스크린 의상은 모조품이니까요. 진짜 옛날 장군복을 배우가 입으면 무거워서 움직이지도 못해요.(의상 이해윤)1) ‘진짜’가 아닌 ‘가짜’를 관객이 진짜‘처럼느끼게 하는 매체인 영 ...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에서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같은 해 김홍 감독의 <자유전선>에서도 연기했으나, 본인의 연기가 성에 차지 않아 그만두고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매일경제). 1956년 <단종애사>에서부터 수염과 가발을 떠주면서 의상부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당시의 사극 붐에 맞추어 한복 제작 쪽으로 관심을 옮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증을 위해 운형궁의 상궁들로부터 도복, 관복, 당의 등을 구하고, 규장각의 장서들을 연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거쳐 사극 의상에 있어서 그 누구에도 비할 수 없는 대가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씨네21a). 1960년대 전쟁 영화 붐이 일던 시절에는 인민군, 국군, 일본군, 중국군, 러시아군 등 다양한 국적의 군복 제작을 맡기도 했으나, 그러한 과중한 일거리 탓으로 1968년 뇌출혈로 쓰러져, 40여 일간 입원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 의상일로 복귀한다. 사극 뿐만 아니라, 현대극에서의 의상 역시 모두 직접 제작하는 것을 고집하고, 의상의 태를 살리기 위해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모두 풀을 먹이는 완벽주의로 유명하다(씨네21b). 1950년대 의상부라는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던 시절부터 의상 일을 시작하여 홀로 한국 영화의 거의 모든 중요한 작품들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경력은 1990년대 <장군의 아들>(1990), <사의 찬미>(1991), <서편제>(1993)를 거쳐 1996년의 <애니깽>을 마지막으로 은퇴에 이른다. 그러한 50여년의 경력은 양수리 종합 촬영소와 자신의 거처에 무려 2만여 벌의 의상으로 간직되어 있으며(매일경제), 그러한 유산은 아들에게 전해져 그의 아들 권유진 역시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참고문헌
매일경제 1993년 11월 14일 16면
‘돈 너무 많이 줘서 신필림 나왔어’, 『씨네21』a, 342호(2002년 2월 20일)
‘옷의 태 살리려고 팬티까지 풀 먹였어’, 『씨네21』b, 346호(2002년 4월 3일)
[작성: 황미요조]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이해윤 李海潤
-의상. 1925년 5월 28일 서울 출생. 상업전수학교 졸업.
“짱구 어머니” 또한 “의상 할머니”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수십년 동안 한국영화 의상의 독보적 존재였던 이해윤이 의상일을 시작한 것은 56년 <단종애사>(전창근)에서부터였다. 하지만 학교 선생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보다 앞선 55년, <자유전선>(김홍)이라는 영화의 연기자로서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의상감당이 아니라 배우로서, 주증녀의 시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영화와의 긴 인연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바느질 솜씨가 좋았고 본인 스스르도 운현궁 나인에게서 궁궐 의상을 배울 만큼 열의가 있었던터라 의상 일을 시작한 후 <마의태자>(56, 전창근) <왕자호동>(62, 한형모) 신상옥의 <성춘향>(61)과 홍성기의 <춘향전>(61) 등 60년대 초반의 여러 사극을 거치면서 의상 담당으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한동안은 신필름 전속으로 있으면서 <연산군>(61) <폭군연산>(62) 등의 의상을 만들기도 했지만 “월급을 받아보니 내가 남들 3~4명의 돈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해서 그만두었다”.
<심청전>(56, 이규환) <내시>(68, 신상옥) <배뱅이굿>(57, 양주남) <세종대왕>(78, 최인현) <연산일기>(87, 임권택) <어우동>(85, 이장호) 등 사극 400여 편 그리고 <오발탄>(59, 유현목) <인생차압>(59, 유현목) 등 한국영화사의 주요작품들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오발탄>과 <인생차압>에서는 전시(戰侍)의상을 만들었고 <왕자호동>과 <칠공주>(62, 정창화)에서는 디자이너 노라노와 공동으로 의상을 담당하였다. 주연, 조연은 물론 사극에서 대규모로 동원되는 엑스트라들까지도 그가 직접 만든 의상을 입었다. 300벌이 넘는 그의 의상들은 여러 영화사에서 늘 빌려 썼고 그래서 그는 밤에 촬영장에서 의상을 받아다가 다음 촬영장에 넘기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영화가 무엇인지 알게 된 80년대쯤” 에 이해윤은 현장의 원로 여성영화인으로서 영희회 창립을 주도했다. “스크립터를 많이 하던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감독공부를 시켜 남자에게 뒤지지 않도록 하려고 이경자씨에게 모아보라고해서 한일맨션 방을 얻어주고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을 만든 것이다. 그가 주도한 영희회는 영화계에서 여성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단체였고 그 영희회의 일원이었던 이미례는 황혜미 이래 10년 넘게 명맥이 끊긴 한국 여성감독의 계보를 이었다. 화려한 영화계에서 스포트라이트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수십년 간 영화현장을 지켜왔고 후배 여성영화인들의 미래를 생각했던 ‘의상 할머니’는 그 누구 보다도 먼저 기억되어야 할 여성영화인이다.(이순진)
의상
-56 단종애사, 마의태자, 심청전,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57 배뱅이굿. -58 인생차압. -61 성춘향, 연산군, 오발탄, 춘향전. -62 왕자호동, 인목대비, 칠공주, 폭군연산. -63 단종애서, 사명당. -64 세종대왕. -66 망향, 죽은 자와 산 자. -67 두견새 우는 사연, 문정왕후, 상감마마 미워요, 일지매 삼검객. -68 내시, 방울대감, 출세가도, 풍운. -69 상해임시정부와 김구 선생, 장마루촌의 이발사, 팔도 사나이, 필살의 검, 황진이의 첫사랑. -70 의리 사나이 돌쇠. -74 들국화는 피었는데, 토지. -76 성춘향전, 원산공작. -77 난중일기. -78 세종대왕. -80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짝코. -81 종군수첩, 피막, 하늘나라 엄마별이. -82 아벤고 공수수단, 하늘가는 밝은 길. -83 불새의 늪, 불의 딸,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84 각설이 품바타령,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뜸부기 새벽에 날다, 산딸기 2, 소명, 자녀목. -85 미녀 공동묘지, 어우동, 오싱, 태, 화녀총, 화랭이. -86 내시, 변강쇠, 씨받이, 어울렁 더울렁, 여곡성, 황진이. -87 달래나 보슬이, 마님, 변강쇠 2, 산딸기 3, 성춘향, 연산군, 연산일기, 요화 어을우동, 호걸춘풍. -88 고금소총, 뽕 2, 삼박골 보리밭, 업, 칠삭둥이 설중매, 합궁, 호호전. -89 구천동 화방, 백치원앙, 산불, 시비시비, 애란, 오색 의전방, 우담바라, 육담구담, 장미 속의 살모사, 창부일색, 춘화춘풍, 회춘녀. -90 고금소총 2, 꿈, 동춘별곡, 땡삐, 심형래의 쫄병군단, 어느 모델의 사랑, 이조 여인 숙명사 청상계, 짬뽕 홍길동, 청송으로 가는 길, 홍두깨. -91 개벽, 사의 찬미, 산딸기 4, 산딸기 5, 은마는 오지 않는다, 피와 불, 후리꾼. -92 백백교, 비황, 시라소니,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장군의 아들 3, 하얀전쟁. -93 대명,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살어리랏다, 서편제. -94 산딸기 6, 휘모리. -95 금홍아 금홍아, 빛은 내 가슴에. -96 애니깽, 카루나.
출연
-55 자유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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