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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대엽
Lee Dae-yub / 李大燁 / 1935 ~ 2015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나 혼자만이 1958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1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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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여행 긴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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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형 시라소니형
(김효천, 1981)
황룡
땅울림
(설태호, 1980)
특별출연
을화
(변장호, 1979)
설박수
수병과 제독
(설태호, 1978)
동석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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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청룡영화상(1963)
:
특별상(집단연기상)(
돌아오지 않는 해병
)
제 2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1987)
:
영화부문 특별상(
)
주요경력
마산 회현초등학교 교사
제 11,12,13대 국회의원(3선)
국회의원연맹(APPU) 한국대표
국회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위원
제13대 국회 교통,체신위원장(4년)
경남대학교 총동문회장
세계 민간항공협회 명예 총장
한나라당 중앙당 국책자문위원
중국 발해대학 객원교수
1981~1990년 11, 12, 13대 국회의원
2002년 6월~2010년 6월 경기도 성남시 시장
펼쳐보기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대학 졸업 후 마산 회원 초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던 중 당시 마산에 촬영왔던 한형모 감독이 촬영을 제의하여 서울로 상경, 영화를 찍게 되었다. 당시에는 방언(사투리)을 쓰는 배우들은 없었는데, 내가 <나 혼자만이>라는 작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써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영화에서 사투리로 연기한 최초의 배우가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주요 영화작품
나 혼자만이(1958,한형모감독)
산넘어 바다건너(1958,홍성기감독)
철조망(1960,조긍하감독)
경상도 사나이(1960,민경식감독)
새댁(1962,이봉래감독)
또순이(1963,박상호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이만희감독)
로맨스 가족(1963,최영철감독)
빨간 마후라(1964,신상옥감독)
아스팔트(1964,김기영감독)태양은 내 것이다(1967,변장호감독)
이조잔영(1967,신상옥감독)
일지매 삼검객(1967,장일호감독)
까치소리(1967,김수용감독)
대검객(1968,강봉구감독)
잘못 보셨다구(1969,이봉래감독)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1976,최훈감독)
수병과 제독(1978,설태호감독)
먼 여행 긴 터널(1986,이형표감독) 外 다수
애착작품 및 사유
<나 혼자만이>- 나의 첫 데뷔작으로 당시 격렬했던 이성일氏와의 격투씬이 생각나다.
<山넘어 바다건너>- 유명한 홍성기 감독으로부터 직접 출연교섭을 받아 열연했던 작품으로 상대역인 노경희氏가 큰 덩치로 세게 나를 때렸던 기억이 새롭다.
<철조망>-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출연료를 받아 화제를 일으킴.
하고싶은 말
58년 데뷔 당시 당수 3단
제작 인력이 달려 본인이 직접 특수 촬영에 응하기도.
현재 이슈화되고 있는 스크린 쿼터제는 현행대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직 프랑스처럼 전속제도와 영화산업의 자본 축적이 완벽하게 되어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스크린 쿼터제의 축소는 한국 영화의 조기 고사(枯死)와 우리나라 문화 전반에 악영향을 낄 칠 염려가 있으므로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하겠다.
영화속 명소
<귀신잡는 해병>- 백령도(통금시간 5시의 옹진군 백령도의 전경)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연기자란 형식적으로 나타내려는 외면의 연기보다는 내면에서 은근히 묻어나는 연기가 바탕이 될 때 비로서 참 연기자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마고지> 나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에서 실전(實戰)과 같은 연기를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연기를 한 것이나, 지난 40여 년 동안 어려운 촬영 여건 속에서도 나를 비롯한 내 동료들이 땀흘려 연기한 이유도 진정으로 살아있는 인간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 준 명배우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을 제외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연기한 나이지만 아직까지 나를 명배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항상 노력해 나갈 뿐, 판단은 나중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내릴 것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알카포네 같은 보스 역할이나 인자한 아버지 역할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뵈고 싶다.
자기소개 및 취미
여러분의 곁에서 연기한지도 어언 40여 년이 지나가는군요. 저의 연기를 보면서 함께 울고 웃어주셨던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배우 이대엽으로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한국 영화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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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61-02-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5년에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해인대학교(현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마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당시 마산에 촬영차 내려왔던 한형모 감독의 눈에 띠어 연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데뷔한 영화가 한형모 감독의 세미 뮤지컬 <나 혼자만이>인데, 이 영화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농구 선수를 연기한다. 한국 영화에서 사투리 쓰는 연기자는 당시까지 매우 드물었던 것으로 이후 형성되는 배우 이미지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나 혼자만이>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로 <생명>, <산너머 바다건너>, <사랑하는 까닭에> 등의 작품에 연속으로 캐스팅되어 "침착한 액션"을 보여준다고 평가받으며, 1958년 '영화계의 샛별'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동아일보). 이후 <사랑이 가기 전에>(1959), <사랑의 역사>(1960), <죄없는 청춘>(1960) 등과 같은 멜로드라마와 <젊은 표정>(1960), <특등신부와 삼등신랑>(1962) 등과 같은 청춘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하지만, 액션 영화 배우로서 대표적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1963) 등 전쟁 액션 영화에 출연하면서 부터이다. 1960년대 초중반 이처럼 멜로드라마와 액션 영화, 이 두 장르를 오가며 "剛直(강직)하고 구수한 慶尙道(경상도)사나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경향신문). 이후 이만희 감독의 <검은 머리>(1964), <추격자>(1964), <7인의 여포로>(1965) 등의 영화에 출연하고, 1970년대에 <명동졸업생>(1971), <명동에 흐르는 세월>(1971), <암살지령>(1974), <잔류첩자>(1975) 등 다수의 액션영화에 출연한다. 1980년대부터는 정계로 진출하여, 11대, 12대,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성남시장직을 수행하기도 한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8년 12월 24일 4면
경향신문 1964년 5월 12일 5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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