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등급정보
(1)
심의일자 1985-07-31
심의번호 85-20
관람등급 중학생가
상영시간 105분
개봉일자 1986-04-05
개봉극장
대한(서울)
수출현황
서독(86), 미국(87)
노트
■ “당시 이산가족 찾기의 감정적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냉정한 현실인식과 사실적인 눈으로 그린 이산과 분단이라는 뜨거운 소재를 다룬 임권택의 숨은 걸작”
<길소뜸>은 개봉당시 호평을 받고 관객동원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으며, 베를린 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되지만 이후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도 많은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임권택 감독의 숨은 걸작으로 꼽고 있을 만큼 주제의 소화나 형식면에서 뛰어난 관점과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임권택 감독은 스스로 70년대부터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주제를 살리기 위해 군더더기를 제거하려 노력했다고 자평하며, 80년대 들어 감정의 절제미와 현실의 인식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로 <길소뜸>을 평가하고 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당시 민족주의와 모성담론이 팽배하던 시기에 철저히 여성의 관점을 유지하며 냉정히 현실을 인식하려 노력한 점 때문이다. 고정쇼트와 롱테이크, 양쪽 모두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플레시백의 정교한 교직, 실제 이산가족찾기 영상물의 적절한 사용 등으로 형식 또한 절제미를 잘 소화하고 있다.
특히 화영(김지미)이 석철(한지일)이 아들임을 부정하고 돌아서 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도로 위로 차가 달리는 중 유전자 검사를 했던 의사(최불암)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과학적 권위를 가진 의사는 ‘이산가족을 찾은 사람들이 이후 이질감 때문에 만남을 후회하는 경우가 있지만 결국 한 핏줄임을 느낀다’는 민족주의적인 논평을 한다. 이에 동조를 할 듯 화영은 잠시 차를 세운다. 그러나 결국 화영은 의학담론(유전자 친자확인)과 모성담론(석철의 몸에 난 흉터) 모두를 거부하며 현실에서의 자신을 위해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이런 결말은 이 영화에 대해 건조하고 차갑다는 평가를 내리게 했지만, 동시에 가부장적 민족주의로 통합되지 않는 여성의 관점과 현실에서 본 급진적인 결말로도 읽힐 수 있는 장면이다. 또한 화영과 동진(신성일)이 만나 서로의 시점으로 회상하는 장면과 현재 주인공의 보이스오버로 담담하게 내레이션이 깔리며 각자의 시점에서 플래시백이 교차하는 장면 역시 놀랄 정도로 정교한 연출이 돋보인다. 어느 한쪽의 플래시백으로 처리하지 않으면서, 이 둘이 어떻게 엇갈리고 어떻게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과거는 아름답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둘은 이미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임권택 감독은 그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길소뜸에서의 둘의 좋았던 시절을 아름답게 그리려 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 제작후일담
- 자기 목소리 녹음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신성일과 김지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하며 완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 김지미는 오랜 은퇴기간 후에 이 작품으로 복귀했고, 호평을 받으며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임권택 감독은 머리삭발 장면을 직접 찍는 열정을 보여주었던 김지미를 주연으로 <비구니> 제작에 착수했다 불교계의 반발로 작품을 포기한 적이 있다. 이후 김지미의 열정에 감동받은 임권택 감독
은 보은의 심정으로 처음부터 김지미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길소뜸>을 만들었다고 한다.
-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보면서 임권택 감독은 언젠가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여의도에 가서 실제 만남의 장면을 촬영해두었다. 이후 새로 촬영한 부분과 함께 실제 촬영분을 섞어서 편집했다고 한다.
- 영화를 시작하기 전 실제 많은 취재를 했고, 이 취재에 근거해 시나리오를 써나갔다고 한다. 이 취재에서 방송을 통해 가족을 만난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이미 서로 너무 달라진 환경과 조건 때문에 오히려 만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임권택 감독은 무조건적인 이산가족의 만남이나 통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 북한의 공개적인 수입요청에 따라 <아제아제 바라아제>(임권택, 1989)와 함께 홍콩을 통해 이례적으로 수출가능성이 타진되었었다.
- 포스터 카피: “핏줄!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끈인가? 만남은 차라리 비극인가...? 아니면 진정한 해후인가?”
- 어린 이상아의 모습도 볼거리
■ <길소뜸>은 6・25전쟁이라는 근대사의 비극이 당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어떤 아픔을 남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부부와 그들의 자식은 전쟁통에 모두 흩어져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 동안 각자가 걸어간 길은 너무나 다르고, 그렇기에 어려움 끝에 성사된 재회도 그들을 가족이라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릴 수 없다. 역사적 아픔이 그것을 견뎌내는 개인에게 어떤 고뇌를 안겨주는지, 전쟁이라는 잔혹 행위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이 <길소뜸>이다.(김지미 영화배우, 『영화천국』 61호)
■ 영화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할, 피할 수 없는 바로 그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한창일 때 만들어진 <길소뜸>은 임권택 감독이 바로 그 ‘때’에 맞춰, 방송국과 서울을 세트 삼아 완성해낸 ‘운명’과도 같은 영화다. 잃어버린 아들을 드디어 찾았지만 선뜻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근현대사의 비극, 임권택 감독의 가장 냉담한 고백의 영화.(주성철 「씨네21」 편집장, 『영화천국』 61호)
■ <길소뜸>은 6・25전쟁으로 인한 이산과 재회를 다룬 영화다. 1983년의 ‘이산가족 찾기’라는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감독 나름의 시각으로 이산의 서사를 구성했다. 전쟁이 남긴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접근 방식은 냉정하다. 감정 과잉이나 집단 이념의 덫에 빠지지 않고 불행한 현실의 면면을 날카롭게 묘파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단영화의 맨 앞자리에 놓인다.(오영숙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영화천국』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