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영화음악감독 인터뷰5: 김준성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4-09-18조회 18,016
영화음악감독 인터뷰5: 김준성

정윤철 감독의 데뷔작 <말아톤>은 소통에 대한 영화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자폐아 ‘초원’이의 마라톤 도전기를 전국 500만이 넘는 폭발적인 관객동원으로 이끈 건 그들의 닫힌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 작은 노력 덕분이었다. 자폐증은 소아 1,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이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9년에 이르러서야 공식 장애항목으로 등록되었을 정도인데, 초원이 눈에 비친 대한민국이란 현실이 세렝게티와도 같은 생경한 환경으로 비쳐졌는지 모른다. 영화는 그런 냉엄하고 비정한 세상에 대해, 그리고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음악의 힘이 컸다. 연극음악감독, 피아니스트, 게임회사 직원 등 긴 무명 세월을 견디며 대중과의 소통을 꿈꿔왔던 김준성의 음악은 여기서 날개를 달았다. 갇힌 마음속에서 넓은 꿈을 꾸는 5살 지능의 20살 청년의 모습부터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경과 차가운 현실의 벽까지 두루 아우르며 피아노와 기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풀어낸 그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화 속 주인공, 캐릭터, 관객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보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백만 불짜리 끝내주는 음악을 만든 그는 이 데뷔작으로 그 해 청룡영화상, 대종상 음악상을 모두 석권하며 영화음악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걸었다. 데뷔 전부터 단편에서 이미 호흡을 맞춰온 원신연 감독의 음악적 페르소나가 되어 다양한 실험성과 세련된 스타일을 과시하는 한편,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오케스트레이터로서도 탁월한 솜씨를 뽐냈다. <전설의 고향> <고사> <핸드폰> <더 게임> <차우> <심야의 FM> <베스트셀러> <공모자들> 등 호러와 스릴러 장르에서 특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특별시 사람들>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끝과 시작> <집으로 가는 길> 그리고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같은 감성적인 드라마에서도 빼어난 선율과 풍부한 심상을 잊지 않았다. 이제 대중들에게 그의 음악은 익숙해졌지만, 아직 이름은 친숙해지지 못한 ‘영화음악가 김준성’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영화음악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접근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들.

더 테너

먼저 최근에 음악을 담당하신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가 제17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되었는데요, 국내에선 언제 개봉인가요?
국내에서는 아마 11월경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일본과 개봉을 같이 하려고요. 일본은 워낙 만들어진 다음에 개봉이 늦어서 그 일정을 맞추려는 거 같아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 영화이고, 실화를 각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갑상선 암으로 목소리를 잃었지만 재기에 성공한 성악가 배재철 씨의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김상만 감독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감독님과는 <심야의 FM>에서 처음 만났는데 호흡이 좋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도 그 영화음악을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님이 음악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궁금하죠. 음악 영화를 한다면 분명 오페라 영화일 텐데. 그래서 기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시나리오를 받아서 봤어요. 이 영화는 음악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걸 이야기해주러 갔죠.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을 해드렸어요. (그랬더니) 한 달 후에 같이 하자고 연락하시더라고요. (웃음)

음악이 이렇게 메인으로 나오는 영화는 필모그래피 중 처음입니다. 클래식을 전공한 작곡가로서 음악이 주가 되는 영화는 어떤 느낌인가요?
음악 영화는 힘들다... 죠. (웃음) 일이 3배는 더 많아요. 음악감독이 기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첫째는 믹싱도 알아야 하고요. 클래식 영화니까 클래식 전반에 대한 음악적인 지식, 능력도 있어야 하고요. 싱크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우리는 배우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성악가가 하기 때문에 입을 맞추는 문제가, 편집적인 센스가 있어야 맞출 수가 있어요. 거기다 영화음악을 또 만들어야 하잖아요? 일이 좀 많아요. (웃음)

공개된 티저를 보면 오페라 장면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어떤 곡들이 사용되었나요?
일단 ‘네순 도르마’가 쓰였고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가 쓰였어요.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저작권료를 낼 일이 없었죠. 녹음을 다 새로 했거든요. 세르비아로 가서 (녹음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이 많은 영화음악 전문 단체가 있어요. 그분들이 도와주셨어요. 한국에서 지휘를 제가 할 수는 없으니까 대전시향의 전임지휘자, 류명우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지휘를 해줬어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시작은 단편 영화와 연극, 무용 음악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대략 30여 편의 연극을 하셨다고 했는데(크루서블, 날 보러 와요, 오월의 신부 등), 애초부터 극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서울대 작곡가를 졸업하고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극음악을 한 것은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연극 음악을 했었죠. 극단 연우무대와 작업을 10년 정도 했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사실 혼자 현대음악을 쓰는 것도 좋았고, 여전히 제 꿈은 현대음악을 계속 하는 거였는데, 97년도에 유학을 다녀온 이후 IMF가 왔어요. 다시 유학을 떠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요. 그때부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500명의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보다 앞으로는 500만이 행복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영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들이 시작됐죠.

연극 <날 보러 와요>는 초연 음악이었나요?
네, 초연부터 했었죠.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고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 당시는 영화를 하고 싶었던 때이기 때문에 제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제가 했으면 그만큼은 못했어요. (웃음) <살인의 추억> 음악은 정말 잘 만든 음악이에요.

일본인 작곡가 타로 이와시로가 했었죠. 굳이 왜 일본인 작곡가를 썼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그 당시 붐이 있지 않았어요? 일본 작곡가를 한국 영화에서 많이 썼어요. 김성수 감독의 <무사>도 그랬고요. 어떤 붐의 마지막 단계였던 거 같아요. 2005년? 2006년도까지. 히사이시 조의 <웰컴 투 동막골>을 마지막으로… 그 후에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지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연극과 무용과 영화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요?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데요, 영화가 조금 더 음악적인 판타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은 제약이 좀 많이 있거든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고요.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미술과 공간과 시간과 정서 등등 느끼는 것들이 종합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할 것이 더 많고 성취감도 더 많은 거 같아요.

김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도 작업을 하셨습니다. 어떤 작업이었나요?
음악 감독의 역할이었죠. 영화를 처음 접하는 거였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굉장히 많았어요. 감독님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요. 그 영화에 가장 필요로 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음악 감독이라기보다는 작곡가의 개념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아마도 그 영화를 하고 난 다음에 잘 못했던 거 같아…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소망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생각해요.


 
2004년에는 뉴에이지 느낌의 솔로 앨범 ‘어느 아침’도 발표하셨어요. 김광민이나 이루마 같은 피아노 솔로 앨범이었는데. 피아니스트로서의 욕심도 있지 않으셨나요?
이루마 씨가 (앨범 내기) 6개월 전에 (제가) 발표했거든요. 제가 발표를 했을 때 대중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음악도 안 들어주고. 콘서트를 잡아주는 데가 없으니까 제가 자발적으로 돈 들여서 열 번 정도 해봤거든요. 무명의 삶이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그때 경제적으로도 아주 어려워졌고. 지금 할 때가 아닌가 보다 해서 접었죠.

아직도 욕심은 있으신 거고요?
네. 5년 뒤에 시작하려고요. 5년 뒤면 50이거든요. 그때는 관객들이 제 얼굴 보고, 제 몸매 보고 (웃음) 선택하지 않고 음악 자체의 진실성을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고. 제가 영화를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연주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할 수 있으려면 테크닉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칠 수 있어 보다는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 한 5년 뒤면 준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관객과 직접 만나려고요..

말아톤

장편 영화음악으로 데뷔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2005년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으로 데뷔했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요?
저에게 천운이었죠. 제가 그 당시에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게임 회사에서 뽑았던 직원이 정윤철 감독의 교회 후배인 거예요. 자기네 교회에 감독 형이 계신 데 영화를 들어간다고 하더라. <말아톤>이라는 영화인데 아직 음악 감독을 못 구했다고 하더라. 이거 잘 됐다. 한번 되든 안 되든 데모를 한번 내보자. (가지고 있던) 데모 음악들 중 비슷한 음악들을 골라서 보냈어요. 그러고 나니까 이 친구가 다음에 <말아톤> 시나리오를 들고 오더라고요. “이걸 읽고 써주세요”, 하는 거죠. 그중 춘천 마라톤 장면을 읽고 써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봤어요. 감동이었죠. 시나리오를 읽고 감동을 느낀 게 아직도 있어요. 그래서 영화의 분석에 들어갔죠. 결론은,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되게 탄탄한 영화다. 그 때문에 (음악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구조적으로. 두 번째는 초원이가 자폐인데, 의외로 엄마가 더 자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초원은 더 자유로운 사람일 수 있다. 역발상을 한 거죠. 그래서 ‘달려라 초원’이라는 곡을 써서 보냈는데, 그 곡은 일반적인 4/4 곡이 아니에요. 이런 (약간 엇박자의) 리듬을 가지고 있거든요. 일반인들은 그렇게 뛰지 않겠지만 초원이라면 그렇게 뛸 것 같더라고요. 그런 리듬과 초원이의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각과 현악기와 피아노를 묶어서 만들었죠. 그랬더니 연락이 왔어요. 계약하자고. 그래서 계약하게 됐어요. (웃음) 첫 영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기에 여기 와가지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네”, 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영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원이가 연습하던 운동장을 7일 동안 찍었거든요. 아침부터 촬영이 끝나는 밤늦게까지 지켜봤어요. 지켜보니까 너무 심심해요. (웃음) 너무 괴로운 거예요. 오선지를 가지고 갔거든요. 틈틈이 작곡했어요. 결국 그때 작곡한 곡들이 대부분 다 들어갔죠. 초원이, 조승우 씨 얼굴을 보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곡을 한 거죠. 53회 촬영 회차 중에서 20회 넘게 촬영장을 나갔어요.

게임회사에서는 음악을 담당하셨던 거죠?
네네...

정윤철 감독도 신인이었고, 감독님도 입봉작이었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별로 없었어요.

아, 작업은 수월하게 하신 편이네요.
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혹시 이것이 어떤가요, 하면서 감독님에게 그때그때 드렸죠. 촬영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요.

약간의 프리 작업처럼 진행된 건가요?
그럼요. 촬영 기간 내내 작업했어요. 음악을 듣고 굉장히 많은 곳에 붙여보시더라고요. 이거 좋다 좋다 나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말아톤> 음악은 전체적으로 ‘자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무거움 등을 갖고 있고요, ‘장애’에 희생되는 가족들의 이면도 다루고 있고. 솔로 악기들이 그런 디테일들, 고독, 외로움을 표현해주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품은 밝은 분위기로 치환되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게 메인으로 쓰인 피아노인데요. 사용한 이유가 있었나요?
감독님이 요구하셨어요. 피아노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가자. 지금까지 봤을 때 그게 가장 좋을 거 같다. 저도 동감을 했고요. 전반적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지만 다른 악기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저에겐 어떤 미션이잖아요.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피아노가 주는 차가운 따뜻함이 있고, 황량함, 비어있는 거 같은 것. 굉장히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악기예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작곡 되어지는 여러 가지 기법 상 메이저와 마이너의 성격을 뭉뚱그려서 표현한 게 많거든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기쁘면서도 차분하고, 차가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것을 보이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죠.

달리는 장면의 곡들이 아름답습니다. ‘한강 마라톤’, ‘뛰는 가슴’, ‘달려라 초원’ 같은 큐들. 또 이것이 변주 확장된 ‘바람을 가르는 손’ 등. 영화 <말아톤>에서 가장 인상적인 테마이기도 한데, 멜로디라인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영감이 확 떠오르셨나요?
굉장히 많은 변형들이 있잖아요? 전체적으로 영화에 음악은 음정 관계에서 출발했어요. 완전 5도. 첫 오프닝부터, 완전 5도, ‘도’와 ‘솔’ 이런 개념이 많이 쓰이거든요. 두 번째 테마 ‘하늘이 걸린 풍선’ 같은 경우도 ’미라미레도시도레솔‘과 같은 완전 5도 음정이 많이 쓰여요. ‘달려라 초원’은 뒤집어서 ‘도솔미레 솔파미’… ‘도’와 ‘솔’, 완전 4도 뒤집으면 완전 5도, ‘솔’과 ‘레’. 이런 음정에서 출발했어요. 음악에 있어 분석의 씨앗은 완벽하게 찾아진 거거든요. 다행히도 초반에 테마 두 개가 다 나왔어요. ‘달려라 초원’과 ‘하늘에 걸린 풍선’, 정서적인 테마와 달리는 것에 대한 테마가 다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변주는 제가 자신이 있었죠. 뭘 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삼천포 전략이라고... (웃음) 처음 시작하는 부분만 원래 테마와 비슷하게 가요. 한 마디를 넘기면 안 돼요. 그다음에는 마음대로 가는 거예요. 정서를 유지하면서 음악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죠.

처음에 ‘달려라 초원’ 음악을 주셨을 때 그 음악이 그대로 사용된 건가요?
네, 똑같이 사용됐어요.

그럼 두 번째 테마인 ‘하늘에 걸린 풍선’은 언제 작곡을 하게 되신 건가요?
계약하고요. (웃음) 계약하면 행복하잖아요.

말아톤

마지막 춘천 마라톤 시퀀스는 전적으로 조승우라는 배우와 음악의 힘으로 달려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음악과 배우만 나오는 상황인데, 음악들은 시퀀스 하나에서 굉장히 여러 곡으로 쓰이거든요. 거기서 잡으신 주안점은 무엇이었나요?
일단은 초원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대한 문제였어요. ‘달려라 초원’은 경쾌하지만 해맑음이 없어요. 해맑은 느낌, 행복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다른 곡들이 준비되어 있었잖아요. ‘뛰는 가슴’이라든지 하는 곡이요. 전체적으로 형식적인 것들을 나눈 거죠. 쓰러지기 전까지, 거기서 주저앉은 다음까지. 그다음에 다시 일어나는 장면, 그다음 골인 지점으로 향하는, 그렇게 크게 세 덩어리가 있는데 다른 곡들을 각각 배치한 거죠. 조승우의 감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는 다른 조로 되어 있던 곡들을 같은 조로 편곡해서 연결하는 작업을 했어요. 맨 마지막에는 금관도 나오게끔 배치를 했고요. 한 곡으로 유지했으면... 아마 그 장면이 굉장히 길었을 거예요.

네. 20분 정도 진행되는 장면이죠.
네. 여러 가지 이미지를 들려줘야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느끼게 되니까 시간이 훅 지나갈 수 있죠.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제 음악상을 받으셨어요.
대종상도 받았어요. (웃음)

기분이 어떠셨나요? 첫 영화로 받으신 건데요.
큰일 났다 싶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내가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겠구나. 망가질 수 있겠구나. 청룡상 시상식 때 “초심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큰 영광을 얻었는데. 공공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약속이잖아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 이후에 처절한 투쟁이 시작됐죠. (웃음)

가발

그다음으로 작업한 <가발>은 원신연 감독과의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이자 첫 번째 장편영화였습니다. 원신연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요?
고통스러웠죠. 부산 촬영 때 한 달 반 정도를 같이 가 있었어요. 전 영화를 거의 처음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당시라 할지라도. 경험도 없는 데다 장르도 바뀌었고요. 곡은 쓸 줄 아는데, 이게 영화에 딱 맞는 음악인지는 확신이 없었어요. 감독에게 들려주면 감독은 계속 노노노! 그랬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저를 음악 감독에서 자르진 않더라고요. 끝까지 기다려줬어요. 2월 말에 시작해서 5월 중순까지 두 달 반 정도를 어떠한 테마도 못 잡았어요. 곡은 쓰지만 정신이 없었죠. 5월 중순이 돼서 곡을 하나 썼어요. 저도 확신이 섰어요. 감독님에게 들려주니, 감독님이 “준성아 그 음악 듣고 울었어. 너무 좋아.”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테마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거잖아요. 그다음에는 거기에 대한 변주가 빅뱅처럼 빵! 터져버린 거죠. 굉장히 많은 변주들이 이뤄졌어요.

테마가 하나 잡히면 그다음부턴 수월하게 가시는 것 같아요.
네 (웃음) 전 그래요.

첫 번째 호러영화였는데, 호러적인 느낌보다는 슬프고 애잔한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근데 그게 고전적인 우리네 한의 정서라기 보단 증오와 질투, 이런 개인적인 감성들에 가깝고, 굉장히 아름다워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의 피노 도나지오나 엔니오 모리꼬네 선율처럼도 느껴졌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호러영화인데 왜 이렇게 아름답게 갔을까?
자매간의 정이 더 중요한 주제였어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절제 하고, 큰 덩어리의 정서가 흘러갔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백퍼센트 믿은 제가 실수한 거예요. 공포 영화의 미덕은 무서움이거든요. 아름다움은 그다음의 부가적인 거예요. 그런데 아름다움이 우선이 되고 무서움이 거의 없으니까. 제가 만약 지금 <가발>을 한다면 아름다운 음악의 절반을 잘라버릴 거고요, 무서운 사운드적인 음악을 반 이상을 도배를 할 거예요. 그럼 관객들도 무한히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선율)에서가 아니라 극히 일부를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서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 흔해져 버려서. (웃음) 그래서 음악 때문에 실패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후회를 많이 했죠.


그 당시 만들어진 호러 영화들이나 스릴러들이 유독 클래식컬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치 유행처럼. 이병우의 <장화, 홍련>이나 <분홍신>, 심현정 이지수 최승현의 <올드보이>, <혈의 누> 등 이런 영향이 있었나요?
아뇨, 전혀 없었어요. 원래 저의 색깔이에요.

‘가족을 위한 왈츠’ 라는 왈츠가 주된 테마로 등장합니다.
왈츠는 목적이 있었어요. 다들 왈츠를 쓰더라고요. <올드보이> <장화, 홍련> 저 이후의 어떤 사람도 왈츠. 그래서 왈츠의 끝장을 나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라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어봤죠. (웃음)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 Dies Irae(진노의 날)과 동명의 성가곡은 성당에서 흘러나오는데, 영화의 엔딩과 비춰봤을 때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영화의 반전과 관계있는 내용입니다!)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르는데, 여성과 남성 사이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소년소녀합창단은 영화사에서 촬영을 위해 준비한 합창단이었어요. 촬영을 위해 섭외했는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돈도 아낄 겸 녹음을 하자! 악보를 미리 보냈어요. 녹음실이 아니고 촬영장에서 녹음한 거예요. 붐 마이크를 스테레오로 잡아서요. 그런데 솔로가 좀 약했어요. 솔로의 밸런스가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이 음악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보강 했어요. 임지성, 홍주영, 박희준 세 명 불러서 더빙을 해서 보강을 한 거죠. 소년을 쓴 의도는 따로 없었어요. 영화사에서 해준 거니까. 주어진 환경에 충실히 했던 거죠.

그 뒤 작업한 게 <3인 3색 러브스토리 - 사랑즐감>이라는 옴니버스 작품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개봉되었고, KT 의뢰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 등 특이한 영화였는데요. 그중 정윤철 감독의 <폭풍의 언덕> 음악을 담당했는데, 어떤 작품이었나요?
급하게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작업 된 음악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그래서 저에게 SOS를 친 거죠. 끝내야 할 날짜가 다음 주인데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갔어요. 가서 영화를 보니까 판타지가 있는 소소한 멜로의 느낌이 있더라고요. 코믹도 있고. 그래서 해보겠다고 하고 작업을 시작했죠.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하다 보면 음악이 주는 뉘앙스가 있어요. 화면을 보면서 연주를 해봤더니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테마를 하나 만들고, 그 다음 날 테마를 통해 변주를 시작했죠. 결혼식장의 음악은 결혼식의 느낌을 코믹하고 유희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아코디언을 썼어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게 된 거죠. 딱 일주일이 걸렸어요.

감독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그 당시 감독님은 만족하신 거 같은데요. 이상하게 그다음부터 저를 안 부르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다음에 감독님 두 작품을 더 하셨잖아요. 저를 안 불렀어요.

각각 주제곡이 있었는데(에픽하이, 이소은, 성시경), 이는 별도로 진행되었던 건가요?
네, 그건 저와 별도로 진행된 거예요.

단편 작업은 장편과의 차이가 있나요?
네, 차이가 있어요. 일단 예산의 차이가 크게 나고요. 짧은 기간에서 핵심적인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이 좀 다른 거 같아요. 줄줄이 줄줄이 할 이야기 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줄여서 정제되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죠. 그래도 좀 긴 단편이 있어요. 그런 단편의 경우는 감독님들도 원하시고 해서 상업적인 영화음악처럼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대체로 단편은 오랫동안 생각하며 만들 수가 없죠.


원신연 감독과의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는 <구타유발자들>이었습니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지역색이 담긴 블랙코미디이자 부조리극이었는데요, 어떤 콘셉트를 잡으셨는지요.
이것도 고통스럽게 작업했죠.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공부가 시작했어요. <가발> 때 ‘음악’은 성공했다 하더라도 영화(음악)적으로는 실패한 거였으니까요. 영화랑 딱 맞는 음악이 아니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때부터) 각각의 영화를 하면서 영화를 통해 남들이 안 하는 짓을 꾸준히 해보자고 했고, 그 첫 번째가 <구타유발자>였어요. 그러나 원래 콘셉트 잡는 것이 힘든 음악 감독이기 때문에 두 달을 또 고통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었죠. 감독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했던 거 같아요. “우리 영화의 제목이 뭐냐. ‘구타유발자들’ 아니냐. 앞에 두 글자 따서 구ㅌ, 굿 그걸 타악기로 만들어 봐.” 그렇게 던진 거죠. 전 덥석 물었죠. 한국 전통적인 굿의 양식과 분위기, 그리고 한국 타악기를 통해서, 팀파니와 같은 서양의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쓰는 거 말고 다른 타악을 합쳐서 굉장히 묘한 걸 만들 수 있겠구나, 손뼉을 탁 쳤죠. 먼저 해야 할 것은 타악기를 녹음할 것인가, 미디로 연주할 것인가를 결정했어야 했어요. 꽹과리를 녹음한다고 했을 때, 연주자는 백 퍼센트 내가 요구하는 악센트를 연주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시끄러울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북과 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구는 대체 가능할 거 같았지만 꽹과리는 정말 한국적인 악기거든요. 꽹과리를 가지고 녹음을 하자. 그래서 꽹과리를 가지고 분리된 소리를 녹음을 각각 했어요. 딱, 따악. 소리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이런 것들을 다 녹음 한 거죠. 컴퓨터에 샘플러에 넣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는 거죠. <구타유발자> 하면 오지에서 외로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공포감이 있잖아요. 그것을 표현해주는 악기가 뭘까. 예전에 와인 잔에 물을 찍어서 돌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죠. 그릇 가게 가서 서로 다른 음역대의 소리가 나는 유리잔을 다 샀어요. 그걸 녹음실에 가져가서 하나씩 녹음했죠.

그릇가게에서 다 해보신 거예요? (웃음)
네, 그렇죠. (웃음) 그 그릇들로 음계를 만들어서 영화에 쓴 거죠. 테스트를 해봤을 때 반응이 무지 좋았어요. 감독님도 좋아했었고 영화사도 좋아했어요. 아 됐구나. 그다음은 풀린 거잖아요. 마음대로 했죠. 그렇게 음악을 가지고 노는 것들이 많아요.

감독님은 처음 콘셉트를 잡으시면 그다음은 재미있게 작업하시는 거 같아요.
네, 맞아요.

삽입곡으론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서 ‘나무숲 속의 새들’과 비제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김진표의 ‘350초 미친년 추격전’이 오프닝과 엔딩에 쓰였습니다. 선곡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선곡은 감독님의 아이디어에요. 오페라는 제가 곱하기 5배수를 (후보작으로) 드렸고, 결정은 감독님이 한 거죠.

그러고 나서 2006년도에 게임 음악을 하셨는데요, 원래 계셨던 게임 회사의 일을 하신 건 아니시죠?
네, 다른 게임회사 음악을 했어요. 제가 예전에 몸담았던 게임회사에서는 딱 한 곡을 썼어요.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0개월 정도만 있었지만. 영화를 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이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화만 하기에는 한가할 때가 있거든요. 틈틈이 작업 했죠.

지금도 서비스가 되는 게임이에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아 그래요? 아까도 메일이 왔어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로그인 음악 악보 좀 달라고. (웃음)

영화음악가들의 게임 음악 진출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도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나 브라이언 타일러,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등이 <메탈 기어 솔리드>나 <어쎄신 크리드>, <라스트 오브 어스> 등을 맡는 것처럼.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화면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 차이예요.

아, 굉장한 차이인데요?
네, 곡을 많이 쓸 수도 있죠. 완전히 음악적인 구성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좀 편해요.

다시 게임이나 혹은 애니메이션과 TV 쪽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지요?
관심은 여전히 많아요. 우선순위를 보자면 영화음악이 최우선적인 것 같고요. 그다음의 음악들은 만드는 것에 대한 보람을 찾아야 하는 거 같아요. 그것이 돈이건 명예건 음악적인 가치건. 그런 것들이 충족되면 하는데 지속적으로 하려면 뭐든지 음악적인 가치가 보장되어야지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인 거죠.


그리고 박철웅 감독의 <특별시 사람들> 음악을 맡으셨어요. 영화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 어떤 작품이었죠?
네, 개봉 못 했어요. 타워 팰리스 맞은편에 있는 가장 못사는 동네 (이야기)예요. 거기서 철거를 해야 하는, 그래서 이주를 해야 하는 가족이 해체되고 재결합하게 되는 드라마죠. 4남매 중에서, 남자가 3명이 있는데 일남이 이남이 삼남이예요. 삼남이가 음악을 해요. 노래를 잘하는 아이거든요. 이 아이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말아톤>과 같은 영화사였어요. 대표님이 추천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감독님, 왜 감독님께서 이 음악을 하셔야 하는 건가요?” 그때 제가 대답하길, 삼남과 제가 똑같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여기까지 왔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음악을 통해서였으니까. 그런 한 가족의 소망을 제가 음악으로서 지켜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꼭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개봉을 못 했어요.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제가 만든 음악 중에서 최고로 잘 만든 음악이었거든요. 음악은 제 블로그에 올려놨으니 들어보실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음악감독들이 다 개봉하지 못한 작품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이렇게 대중과 만나지 못하는 작품을 볼 때면 기분이 어떤가요.
슬프죠. 먹먹해져요. 만들어 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를 못하는 거잖아요. 그 먹먹함이 저뿐 아니라 감독님, 참여한 스태프들 모든 사람이 느끼는 거죠. 슬퍼요. 그나마 저는 자유롭죠. 음악이라도 한풀이 삼아 들려줄 순 있잖아요.


그 다음 작업하신 게, 사극 호러인 <전설의 고향>의 음악이었습니다. 김지환 감독은 호러 마니아로 알려졌는데, 음악적으로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어요. 한국적인 것을 배제하자고 하시는 분도 계시잖아요? 사극이란 걸 해서, 국악의 원류를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어떻게 해할 것인가. 그 당시 사극 음악에 대한 고민이 최근의 <광해>까지 이어지지 않나 싶어요. 만드는 방법이라든지 기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쌍둥이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극 중 소연과 효진이 연상케 합니다. <가발>처럼 자매 이야기이고, 또 역시 반전 아닌 반전을 갖고 있죠. 하지만 <가발>보다 호러적인 사운드에 주안점을 뒀어요.
전반적으로 두 가지 콘셉트를 잡았어요. 정서적인 것과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는 작곡을 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야지만 작곡이 되더라고요. 사운드를 수백 가지를 만들었어요. 각각의 사운드를 만들어서 모자이크 붙이듯이 배치를 한 거죠. 음악적 구성을 하며 배치를 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스타일을 바꿨어요. 무서운 이야기는 해체와 재결합이에요. 그리고 정서적인 음악은 영화에 충실하려고 했고, 기법은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가되 국악적인 것은 가지고 가지 말자. 그쪽으로 접근을 했고요.

이희승 아우라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공동으로 작업하셨어요. 어떤 식의 공동 작업이었나요?
싸움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이희승 대표가 아니라 다른 작곡가가 있었거든요. 한동안은 그래서 공동 작업은 안 하게 됐어요.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물론 많은 장점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메꿔주니까. 음악 감독이 둘이 있으면 음악적 능력이 두 배로 뛰거든요. 혼자 작업했을 때부터 음악이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지거든요. 그래서 힘들긴 했지만 그걸 알고부터는 공동 작업을 많이 시도하게 되었죠.

이후 <세븐 데이즈>부터 ‘씨네노트’라는 팀을 꾸리게 된 건가요?
네, 회사를 만들었죠.

호러적인 스코어와 음향과의 차이가 있을까요?
호러적인 스코어는 음악적 구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호러적인 사운드는 음악적 구성을 제외하고 효과만 노리기 때문에... 제가 봤을 때는, 사운드는 영화 믹싱할 때 하잖아요. 이걸 음악가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요. 큼지막한 소리들은 제가 만들기도 해요.

<가발>에선 머리를 긁다가 알약이 툭툭 떨어지는 장면이나 <전설의 고향>에선 유명한 깨 씬이 있습니다. 기괴한 비주얼들이 있는데, 작업하면서 힘들진 않은지.
전 웃으면서 해요. 전 (무서운 걸) 즐겨요. 만들 때는 다 포인트를 알잖아요. 포인트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면 전 흐뭇해져요. 가학적인 사람이죠.

호러영화에 최적화되셨네요.
요즘 다시 하고 싶어요.

작업하지 않는 호러영화들도 잘 보시는 거예요?
그건 안 봐요. 약해요. 서양의 무서운 것들을 몇몇 골라서 보긴 해요. <쏘우> 시리즈, <호스텔>도 좋아하고...


원신연 감독과 세 번째 장편 <세븐 데이즈>를 맡으셨습니다. 원래 연출은 각본을 맡은 윤재구 감독이었다가 교체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음악 제의는 그 이후에 받게 된 건지.
네 원신연 감독이 저에게 해주신 거죠. 역시 <세븐 데이즈>도 그 전의 모든 영화음악과 다르잖아요. 역시 또 고통 속에 시작했죠. 핵심은 빠른 비트를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레퍼런스는 ‘본’ 시리즈였고요. 정서적인 것은 <플라이트 93>이었고요. <플라이트 93>은 봤지만 ‘본’ 시리즈는 한참 있다 봤어요. 음악만 듣고 분석을 해봤는데, 미니멀 음악이거든요. 기법을 보면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거죠. 증폭시키면서요. 미니멀에 대한 감은 제가 있었어요. 공부한 것도 있고, 그 효과를 느끼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요. 그러나 이것이 다른 작곡가의 미니멀과 김준성의 미니멀은 달라야 하거든요. 그 점 때문에 그 차이를 찾아야 하는데,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포기했어요. 쉽게 가자, 고 생각해서 몇 가지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죠. 일단 리듬부터. 딴딴딴… 332 박자의 변형을 통해 저음에서 보여주니까 그 자체가 어떤 역동감이 생기죠. 두 번째, 나머지 파트의 현악기들도 그렇게 연주하니까 묘하게 긴장감이 생겨요. 음은 하나밖에 없어요. 딴딴딴 딴딴딴.. 구조적으로, 강약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들을 달리게 하는 거죠. 불안하게 만들고. 화음은 두 개밖에 없어요. 1도와 6도의 마이너 형태를 썼죠. 화음이 없으니까 관객들은 너무 명확하게 이 음악을 파악하게 돼요. 그래서 이것을 변주하는 느낌을 통해서 관객들이 음악이나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끔 했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만의 독특한 음악이 나왔던 거 같아요. 포기하니까 나와요. 많은 사람들이 <세븐 데이즈> 음악을 인정해주고 좋아하더라고요. 감사하죠.

컷들이 빠르고, 핸드헬드와 주밍에, 대사와 효과도 많아서 음악이 손해보는 부분도 없지 않은 거 같아요. 씬 전반에 걸쳐 음악이 길게 배치되기도 하는데(‘세븐 데이즈’ 같은 트랙은 10분이 넘어간다), 이런 미키마우징을 구성할 땐 어떤 느낌이었나요?
일단은 배우의 행동, 움직임을 봐요. 저게 구조적인 움직임일까, 습관일까 연기일까. 구조적인 움직임은 제가 다 체크를 하죠. <세븐 데이즈> 같은 경우는 맨 마지막에 김윤진 씨가 묶여있는 장면이잖아요. 그리고 정동환 씨가 서류를 불에 던지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다음 일어서 나가고 뒤돌아보고 하는 장면도 이어지고요. 그런 구성을 다 짜서 중요한 포인트를 타악기로 가죠. 그런데 타악기가 정박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이 점이 <세븐 데이즈> 음악의 큰 매력인데 전체 음악을 정박으로 가지 않게 썼어요. 전 간헐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박자라는 거죠. 이것들을 행동할 때 중요한 포인트에 다 넣었어요. 큰 덩어리의 형식은 음악의 형식이 바뀌는 것으로 처리하고. 전체적으로 쌓아나가는 구성으로 해서 긴장도가 누적돼서 폭발하도록 했어요. 십 분짜리 음악은 그다음에도 음악을 만드는 데 어떤 기준이 됐어요.
김미숙 씨가 잡혀갈 때, 엔딩 몽타주에서 자닌토의 ‘Blu YonS Tae’가 선곡되었어요.
제가 2004년에 ‘어느 아침’을 재발매한 적이 있어요. (자닌토가) 거기 음반사 대표님이세요. 거기에 사장님의 음반을 넣고 싶다고 부탁을 했더니 추천을 해주셨어요. 처음 듣고 뿅 갔어요.

약간 명상음악 같았습니다.
네. 발음을 스스로 만든 거예요. 음악성도 굉장히 깊었고요. 그중 2곡을 선곡한 거죠. 미발표 곡이었는데, 개봉한 이후에 (그분) 개인 앨범에 수록되었어요.


윤인호 감독의 <더 게임>은 니이타 타츠오의 <체인지>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캐릭터도, 설정도, 세트도 과장된 느낌이 있는데,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는지요?
음악은 촬영과 편집이 다 끝나고 왔어요. 음악 감독님이 교체된 거죠. 전에 하신 분은 모르겠는데. 한 달 안에 끝내야 했어요.

<세븐 데이즈>를 하는 도중이 아니었나요?
<세븐 데이즈> 끝난 다음에, 시사회 후에 찾아오셨어요. 한 달 만에 해야 한다. 해 달라. 실제로는 50일 정도 걸렸어요. <세븐 데이즈>와 같은 영화사예요. 그래서 하기로 했죠. 저는 판타지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사는 “그러면 관객이 안 드니까. 판타지 영화는 한국에서 성공한 적이 드무니까 액션으로 해 달라. <세븐 데이즈>처럼 해 달라.” 그래서 두 가지 버전을 만들었어요. 두 번째 버전이 미니멀한 스타일로 액션감이 있고 긴장감이 있으니까 그 점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사에서 사실은 포기한 작품 중의 하나였어요. 그나마 음악이 바뀌면 좋지 않았을까, 했던 건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이 들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웃음)

불길한 느낌의 오보에, 혼과 스트링, 그리고 묵직한 피아노가 어우러지며 장중한 묘미가 들었습니다. 악마적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합니다. 특히나 ‘체인지’라는 큐가 <죽어야 사는 여자> 테마 같았어요.
이 영화는 액션적인 테마는 그리 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누군가가 몸을 바꾸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집에 가고, 영향을 받고 다시 가족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로 생각했어요. 액션은 필요한 부분에서 쓸 수 있지만 중요한 테마는 아닌 거죠. 음악 선택의 기준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 주변의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체인지’는 제가 아니고 서재영(씨네노트의 직원)이라는 제 친구가 만든 곡이에요.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을 계속 줘요. 어떤 사람은 코믹으로 보는 사람, 무서운 이야기로, 액션으로 보거나 그로테스크한 걸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걸 고르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처음부터 배치를 하는 거죠. 중요한 장면들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또 다른 구조로 만들어내고 이러면 음악이 통일성과 다양성이 생기죠. 제가 공동 작업을 할 경우 저 자신에 대해 엄격해지는 거 같아요. 안 맞으면 제가 제 곡은 안 써요.

강회장의 전부인 이혜영과 희도의 삼촌 손현주 씨가 제거되며 희도의 여자 친구가 어렴풋이 사건을 알아차렸을 때 흐르는 ‘더 게임’이란 곡은 7분에 걸친 긴 음악입니다. 시퀀스 자체를 음악으로 묶는 건 할리우드에서 주로 쓰는 경향인데 어떤 부분을 의도했는지요.
역시 이것도 미니멀이잖아요. 아무리 길어도 변주에 따라서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거거든요. 작곡 테크닉이 제일 중요해요. 큰 형식을 잡아놓고 나머지는 조금씩 변하면서 변주를 주는 방식이거든요. 길어도 저는 (그런) 작곡이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씨네노트에서 디지털 앨범으로 최초로 발매된 사운드트랙입니다. 왜 CD 발매를 안 했는지? 디지털 음원 시장의 가능성을 본 건지?
M&F가 어려워졌어요. 음반을 내주는 회사가 없어진 거죠. <세븐 데이즈>의 음반은 제가 만들었거든요. 안 팔려요. 그래서 디지털이라도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자료의 공유 차원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 뒤로도 한동안 디지털 출시가 이어져요.

그다음이 세 번째 호러 영화로 창 감독의 <고사: 피의 중간고사> 음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사실 말이 호러지 스릴러에 가까운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맞아요. 가리자. 관객의 눈을 가리자. 관객이 느끼는 것을 유도하자, 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음악이 빠르고 박진감이 넘치는 것을 썼는데요. 너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16mm 영화예요. 화질이 안 좋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했을 때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따라가도록 해야겠다 했어요. 지루하지 않게. 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나...

발각되기 쉬운?
발각되기 쉽죠.

영화가 굉장히 짧아요.
한 방에 훅 보고 나오도록 해야겠다. 시작부터 해서 어쩔 수 없이 공포적인 사운드를 하지만 중반부터는 달리게 했죠.

호러 스코어에선 역시나 합창(코러스)의 위용이 제맛인데요. ‘피의 중간고사’란 큐에서 바로크적인 분위기와 함께 이런 스타일을 잘 들려줍니다. 가사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하네요.
라틴어예요. ‘레퀴엠’이라든지 하는 곡에 많이 나오는 가사죠. 합창단이 부른 건 아니고요. 컴퓨터에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게끔 해서 프로그래밍해서 만들었어요.

속편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의 음악은 맡지 않으셨어요. 아쉽진 않으셨는지.
네, 영화사가 바뀌니까. 정윤철 감독님도 다른 분들과 하는데... (일동 웃음)


2008년도였는데요. 원신연 감독님이 <태권 브이> 실사판을 준비하셨습니다. 4년 정도 준비하다 중단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원 감독님의 음악적인 파트너로서 사전 작업 된 게 있었나요?
원 감독님이 얼마나 냉혹하시냐면 그간 세 작품을 쭉 해온 저를 절대로 내정을 하지 않으세요. 똑같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의 데모를 받아보고, 제일 좋은 걸 선택하겠다 하셨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음악 감독님들이 데모를 냈던 걸로 알고 있고, 결국 제가 선택됐어요. 근데 영화는 못 들어갔죠.

사전에 준비는 안 하셨죠?
데모를 냈어요. 총 4개를 냈었죠. 그중에서 제 데모가 가장 <태권 브이>와 근접 하다고 하더라고요.

<태권 브이>는 故 최창권 씨의 음악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두 개는 그 음악을 기본으로, 나머지 두 개는 새로운 곡으로 만들었죠.

그 유명한 주제가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셨던 건가요?
그 주제곡이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단점은 현대 영화와 안 맞는다는 거예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고요. 장점은 예전의 향수를 공유할 수 있다, 라는 것이죠. 그걸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가장 힘들었고, 결국 원래 원곡의 이미지를 해체하지 않으면 못쓰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어요. 빰빠라빰… 하는 <태권 브이>가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전주 부분은 가지고 올 수 있죠. 하지만 본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사용하기가 힘들죠. 그런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앞의 금관 테마만 가져와서 중요하게 작업을 했었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요. (일동 웃음)

원신연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건가요?
아주 오래전 2000년도에 <적>이라는 천만 원 들여 만든 작품이 있어요. 그때 음악 감독을 구하는 과정이었고, 저는 연우무대에서 연극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김석주 씨라고 연우에 계시던 분이 <적>에 투자하신 거예요. 그분의 소개로 만나게 됐죠. 그 영화를 같이 한 건 아니고요. 개런티 협상에서 실패해서 못했고. 그때 제가 음악 한 번 들어보라고 준 게 있거든요. 필요할 때마다 그걸 단편 작업하시면서 야금야금 그 곡들을 쓰시고 통보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다 <자장가>라는 작품을 할 때 저에게 오셨어요. 쓸 만한 곡이 없었거든요. 저에게 특유의 노래가 있었는데요. 그걸 편집해서 보내준 적이 있었죠. <빵과 우유>는 음악이 없으니까 제가 필요가 없었고요.

키친

다음 작품이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작품이 홍지영 감독의 첫 영화 <키친>입니다.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키친>은 2007년경부터 진행하던 영화였어요. 2년을 기다렸는데... 처음에는 예산규모가 좀 있었어요. 싸이더스에서 시작했었는데 수필름으로 넘어가면서 예산이 대폭 줄어져 버린 거예요. 예산만 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같이 진행한 기간이 억울한 거예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리가 더 중요한 것이라며(웃음), 제가 더 지출해가며 연주 예산을 잡았죠. 홍지영 감독의 콘셉트는 ‘빛’이에요. 미술로 따지면 인상주의라 할 수 있죠. 빛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죠. 전체적으로 꿰뚫는 것은 인상주의적인 것을 많이 차용해서 쓰려고 했어요.

음악에서 인상주의적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일단 화성적인 진행 방식이 달라요. 음을 쓰는 방식이 전통적인 작곡 기법보다는 좀 더 음… 두루뭉술한 느낌이 좀 더 있죠. 그러면서도 음악적 구성은 다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빛이 다 살아나는 작품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음악까지 인상주의적으로 가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진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게 준비된 음악 중 한 곡을 빼고는 다 버리기도 했어요.

그 한 곡이 무엇인가요?
‘낯선 정사’ 라는 곡입니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동거에 대한 이야기였죠. 쉽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닐 수도 있는데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지도 있고. 그런 민감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음악은 영화처럼 편안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고서 요구되는 음악들을 다 만들었어요. 회사(씨네노트)에서 작곡가들이 즉흥적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했어요. 전 녹음도 하고 연주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을 영상에 붙여봤어요.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죠. 거기서 선택하는 과정이었는데요. 4명의 작곡가가 참여를 했는데, 전체적인 색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어요. 원래는 피아노로 만들어진 곡이고, 4명이 다 다르니까. 색채를 입히고 영화적으로 자르고 편집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제가 했죠. 4명의 작곡가가 했지만 한 사람이 한 것처럼요.

엔딩 곡으로는 마이큐의 ‘일 년 후’는 어떻게 선곡하게 되었나요. 영화에선 요조가 부른 버전이 엔딩에 흐르는데, 사운드트랙에선 신민아가 부른 버전이 실렸어요.
판권에 대한 문제 때문에 그래요. 영화에서는 허락을 받았지만 OST에서는 허락을 못 받아서 새로 녹음한 거죠. 주지훈 씨가 불어로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와 신민아 씨가 부른 이 곡 때문에 사운드트랙이 판매가 많이 됐어요. 특히 일본에서 원정을 와서 사가는 경우도 있어서 5,000장을 찍었는데 그게 모두 나갔거든요. 일본 현지에서도 많이 팔렸고요. 배우가 인기 있으니까 잘 팔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김준성

사실 데뷔작이 <말아톤>이어서 이런 감동물이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룰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필모를 채우고 있는 건 장르영화가 많습니다. 스릴러나 액션, 호러 같은 장르물.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이나 이정호 감독의 <베스트셀러>, 김홍선 감독의 <공모자들>까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취향인 건지?
제가 가장 못 하는 거였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구타유발자>는 남들과 다른 발상으로 시작한 특이한 음악, 블랙 코미디에 대한 도전이었고요. <세븐 데이즈>는 빠른 액션 , 할리우드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 거기서는 음악에 대한 확장이 이루어진 거죠. 기존은 오케스트라를 음악이라고 했다면 이제는 소리 날 수 있는 모든 소재들이 음악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거였고. <더 게임>은 너무나 빨리 만들어서 생각할 틈이 없었고요. 공포영화를 액션영화처럼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실험을 <고사>에서 했었고요, <핸드폰>에서는 싱크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싱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완벽하게 배웠죠. 그게 잘 적용된 게 <차우>였어요. <차우>는 배우 움직임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그게 절묘했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이후부터 음악이 더 잘 안 들리게 된 거 같아요. 꺼내서 보면 좋은데 영화와 보면 영화 속에 묻혀버리는, 그렇게 된 게 <차우>부터였고요, 그다음에 <베스트셀러>같은 경우는 왜 사운드를 녹음실에서만 하지? 내가 해봐야지. 음악적인 사운드를 실험했죠. 그다음 <심야의 FM>같은 경우는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음악적으로 가지고 오면서 영화의 극한을 보여주는 쪽으로 생각했었죠.

영화마다 목적과 콘셉트가 다 다르네요.
네, <심야의 FM>까지 하고 나니까 이제 공부 다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하셨던 이야기 중에서 <핸드폰>이 싱크에 대해 큰 의미를 두셨다고 했는데, 영화의 어떤 면 때문이었는지요?
감독님께서 예전과는 다르게 촬영 내내 음악을 들려주면 너무나도 유쾌하게 웃다가 가셨어요. 그런데 편집을 끝내고 나서 저를 때려잡는데 그 개념이 싱크였어요. 음악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싱크가 안 맞는다. 저는 큼지막하게 봤다면 감독님은 디테일하게 봤던 거죠. 그 정보를 조금이라도 빨리 주셨으면 다 했을 텐데. 저를 가장 때려잡으셨죠.(웃음) 그다음부터 싱크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됐어요.

이중에서 <베스트셀러>만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되었고, <핸드폰>과 <공모자들>은 음원으로도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은 제가 정리를 못 했어요. 끝나고 난 다음에 OST 정리할 여유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제 사이트에 모두 공개해놨어요. <공모자들>은 그때 음저협과 영화사와의 마찰이 있을 때였어요. 그때 딱 걸린 거죠.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내면 저작권 청구를 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눈물을 머금고 못 내게 됐어요. 그게 편법으로 풀리게 된 게 <광해>때 부터였어요. <광해>는 어떻게 하게 됐냐면 누가 음저협에서 전화가 온다면, 누구 곡입니까, 하고 물어보게 만들자. (공동 작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안 만들었습니다. 모그가 했습니다. 모그 감독은 김준성 감독님이 했습니다. 하면서 서로 떠넘기기를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웃음)

디지털 음원은 CD와 달라서 공개 시 제약이 없는 거죠? 작곡자가 작업을 하고 공개를 하겠다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도 영화사와 계약은 따로 해야 해요.

<공모자들>은 인물(조윤희나 최다니엘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할 땐 스트링이 부각되고, 임창정, 조달환, 오달수 등의 캐릭터에선 일렉 기타가 두드러집니다. 악기의 선택이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하는지요.
장르 성격에 따라서 만약에 영화를 클래식으로만 하게 되었을 때, 물론 개별적인 주제들이 있어서 분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관객들에게는 한 가지로 들리거든요. (서로 다른 악기군을 활용해 배치하는 것이) 장르가 다양한 두 개의 복합장르라 한다면 융합되고 흩어지고 따로 나오기도 하고 하면서 다양한 심상을 보여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배치를 했어요.

차우

신정원 감독의 <차우>는 미국 로케이션까지 감행한 대작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자주 보이는 크리쳐 액션물을 떠올렸는데, 실상 영화를 보면 조금 당황스러운 유머가 촘촘히 배치된 스릴러에 가까웠어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런 독특한 영화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지?
이것도 제가 막판에 들어간 영화예요. 제가 막판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영화가 잘 되더라고요. (웃음) <더 게임>도 막판에 한 달 남겨놓고 들어갔잖아요? <고사>도 원래 제가 하던 음악이 아니었어요. 우리 회사의 다른 작곡가가 하던 거였는데, 몸이 아파서 제가 대신하게 됐죠. 그 영화도 잘 됐잖아요. <차우>도 그랬고 <연애의 온도>도 그랬어요. 이 영화는 음악 감독이 선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까지 다 끝났죠. 그래서 그것도 한 달 반 두 달 만에 끝냈어요. <차우>는 시나리오를 못 봤어요. 편집본을 본 게 처음이었죠.

애초에 이런 영화인지는 알고 계셨던 거네요?
처음에는 제목만 알던 영화였죠. 그런데 처음 편집본을 보고나니 과장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음악으로 접근하면 실패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콘셉트는 과장이다. 멧돼지가 귀엽게 나오는데, 이 멧돼지가 무섭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과장을 해야 한다. 언밸런스함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쓰는 거죠. 음악에도 깨알 같은 유머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 거대함에도.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차우> 음악을 듣다 보니 음악은 의외로(영화의 코믹한 느낌과 달리) 진중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멧돼지 습격’, ‘돼지 사냥꾼’, ‘마을 회관’, ‘차우의 추적’, ‘멧돼지 잡기’ 등 큐들은 박진감 넘치고 할리우드 스코어 같은데요, 그런데 마을의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던져주는 ‘삼매리 사람들’, ‘이장님 말씀’ 같은 곡과 대비돼 효과가 크게 느껴졌어요.
일단 두 가지 콘셉트였어요. 블랙 코미디와 덩치. 블랙 코미디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음악이 안 나와요. 뒤통수를 쳐야 하는 음악이어야 했던 거예요. 덩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야지만 나오죠. 그래서 정확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줘야 하고요. 나머지는 편법으로 변칙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이것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밸런스를 맞추게 되면 의도가 뭉개질 거 같아요. 그래서 그 둘을 개별적으로 놓자, 라고 생각했죠. 덩치를 만드는 음악에는 제가 주력이 되어 있고요, 블랙 코미디 적인 음악은 다른 사람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씨네노트의) 서재형 작곡가가 작업했어요.

엔딩 크레딧을 보면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처럼 배우들이 나와 포즈를 잡아요. 그때 흐르는 테마도 인상적입니다. 8~90년대 팀 버튼 영화에 나올 법한 사운드더라고요.
네 맞아요. (관객들이) 영화 보고서 무섭게 봤던 기억보다는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영화의 색을 봤을 때 블랙 코미디의 음악이 뒷부분에 들어가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계속 달리거든요. 덩치로 밀어붙이는데. 약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끝을 맺고 싶었죠. 그래서 서재형 작곡가에게 부탁했어요. 전 그런 걸 잘 못해요. (웃음) 전 무겁고, 진중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그런 것들을 주로 하죠.

그러고 보니 감독님 필모에 코미디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 <동갑내기 과외하기 2>를 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짤렸어요. (웃음) 음악이 너무 슬프대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봤더니 역시 슬프더라고요. 짤릴만 하구나…

그다음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은 <오감도>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작품입니다. 장편으로 늘려서 2013년에 다시 한 번 개봉했는데, 국내에서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죠.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요? 단편과 장편 편집 때 다시 후반이 이뤄진 건가요?
아니요. 민규동 감독이 7회차에 촬영을 다 해서 만든 작품이 장편이고, 그걸 줄인 게 단편이었죠. 전 두 개를 다 준비했어요. 처음에 작업한 건 단편. 단편을 토대로 해서 장편까지 다 갔죠.

2009년에 그 작업이 다 이루어진 거네요. 작업이 다 끝나고 개봉만 2010년으로 미뤄진 거군요.
네 맞습니다.

음악이 마치 에로틱 스릴러 스코어 같아요. <오감도> 자체가 에로스 프로젝트이긴 했는데, 제리 골드스미스의 <원초적 본능>이나 알란 실베스트리의 <가면의 정사>가 떠오릅니다. 특이했던 거 같아요. 신디 사운드에, 스트링의 활용이 그러한 스타일이었는데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셨는지요.
판타지죠.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에로보다 판타지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판타지를 낼 수 있는 악기군이 따로 있어요. 첼레스타, 비브라폰, 비슷하지만 판타지에서 조금 멀어지는 피아노, 판타지에서 가장 멀어지는 스트링까지. 그다음 신디사이저 소리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건 판타지를 유지하려 함이었어요. 그다음 화음이 거의 안 바뀌죠. 화음이란 게 바뀌게 되면 음악으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판타지에서는 화음을 안 바꾸는 게 좋아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멜로디를 만들고 편곡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엔딩에 흐르는 곡은 휘루 1집에 실린 ‘Dark Sun’을 개사한 ‘네가 오면’이란 곡입니다. 감독님께서 직접?
민규동 감독님께서 개사하신 거예요.

그 곡 선택을...
제가 드렸던 곡 중에서 선택하신 거죠. 굉장히 쿨하신 분인 줄 알았어요.(웃음) 선택도 잘해주시고 OK도 잘 내주세요. 그게 깨진 게 <내 아내의 모든 것>이었죠. 엄청나게 섬세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됐어요.

심야의FM

그다음이, 앞서 소개한 <더 테너>의 김상만감독과 처음 작업한 영화가 <심야의 FM>이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한 감독님인데, <공동경비구역 JSA>과 <해피엔드> 미술감독,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에선 직접 미술/음악감독을 했고, 전 ‘허벅지 밴드’ 멤버이자 현재 ‘슈퍼스트링’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기도 하죠. 이렇게 음악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라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더 편해요. 디렉션이 굉장히 명확하세요. 그런 장점이 있어요. 대체로 저를 선택한 기준은 기존의 전 작품들을 보고 음악의 성향을 보고 이미 선택한 거였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안 되는 거고요. 결국 연출의 의도와 음악의 의도가 일치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하면서 <심야의 FM>은 몸은 힘들고 정신도 힘들었지만 작업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트러블은 거의 없었어요. 대화가 정말 잘 통했어요.

라디오 영화음악이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라디오 영화음악을 실제로 많이 들었었는지?
안 들었죠. (웃음)

그 때문에 수록곡이 굉장히 많아요. <카사블랑카>의 ‘As time goes by’, <피아니스트>에서 삽입된 슈베르트의 곡 ‘Schubert Trio en Mi bemol majeur opus 100 D.929/Andante Con Moto’, <볼륨을 높여라>에서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 <택시 드라이버>에서 버나드 허만의 ‘Betsy in a White Dress’, <스팅>에서 나온 Scott Joplin의 ‘The Entertainer’ 등의 영화음악은 물론, 포미닛의 ‘I My Me Mine’까지.
저작권을 살 수 없으니까, 음원은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어선 지 <스팅> 주제음악도 음원을 새로 녹음을 했고요, 슈베르트의 곡도 새로 연주해서 녹음했죠. 노래 곡만 원곡을 사오는 거고 노래가 없는 연주곡은 똑같이 다시 만들어요.

감독님이 다 선곡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전 그런 권한이 없죠. 시나리오 때부터…

시나리오에는 더 많은 곡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와 상의하면서 많이 뺐죠. 이 곡들이 다 필요한가. 어차피 노래를 사기로 결정하면 촬영 전에 예산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 문의를 해보게 되죠. 그런데 이 곡 이 곡은 빼도 되겠다 싶다고 하면 감독님도 고민하시다가 예산 측면뿐 아니라, 길이나 극의 구성적인 면에 고려해서 빼게 된 곡들이 있어요. 두세 곡 정도가 날아 갔죠.

연주만 새로 하는 경우도 저작권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저작권료를 내지만 음원에 대한 사용권을 안 내도 되죠. (결국) 반값이 되는 거죠. 슈베르트 곡은 저작권료가 없는데 음원을 쓰게 되면 음원료가 나가는 거잖아요? 그것도 아까워서 연주를 하면 내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슈베르트 나올 때 나오는 음악이 슈베르트 음악과 한 세트에요. 그걸 다 계산 하고 만든 거거든요.


‘As time goes by’ 가 흐를 때 스코어의 배치도 그랬던 거 같아요. 음향처럼 확 나왔다가… 미리 감안해두고 배치를 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슈베르트 음악이랑 ‘As time goes by’와 조정이 똑같아요. 성격은 좀 다르죠. 얘가 올라가기도 할 때 자빠트리고, 내려갈 때 음악이 확 올라가고, 그런 음악적인 재미가 있어요.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만들면서... 내가 액션적인 스릴러를 이제는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냥 음악이 아니라 음악적인 계산과 배치가 이뤄져야 하는 거죠.
네 그렇죠.
뚜렷한 메인테마를 잡기보단 긴장과 효과에 주력하셨던 것 같습니다. 스트링 위에 일렉트로닉한 소리들(음향/효과)이 가득한데. 감독님의 주문은 어떤 것이었나요.
네. 사운드적인 것이 테마였어요. 감독님의 주문은... 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냥 해달라고 하신 거 같아요. (자신도) 음악감독이었기 때문에 주문을 해도 잘 안 먹힌다는 걸 아시겠죠? 그냥 선택하시겠다고 한 주의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콘셉트를 제시한 거죠. 일렉트로닉이 전작에 거의 없었거든요. 감독님은 (그거에) 만족해하셨는데, 제작사의 다른 분들은 불안해했죠. 뭐냐면, 첫 템프 트랙을 제가 만든 걸 붙이거든요. 기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사운드 음악성 다 최고잖아요? 이걸로 템프 트랙에 붙이지 않아요. 전 거칠고 사운드는 개판이지만 제가 현재 작업 중인 것으로 붙여요. “음악적 구성을 이런 식으로 할 겁니다.” 그렇게 해오면 김상만 감독님은 음악도 해보셨기 때문에 이 음악들이 어떻게 바뀔 질 알잖아요? 그런데 다른 대표님들은 그걸 모르죠. 그분들을 만난 자리가 있었는데, 개봉 시기가 첫 미팅 후 한 달 10일 뒤였어요. 제가 그랬죠. “개봉을 최소한 두 달 후로 미뤄 달라. 이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지금 붙여놓은 음악으로 판단하지 말라. 다음 왔을 때 서너 곡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순서대로 작곡하기 때문에, 이것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좋을 거 같다. 기다려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먹었더니 안 자르더라고요. 그다음에 왔을 때 4곡을 들려드렸어요. 그랬더니 안 자르더라고요. 원 없이 작업을 했죠.

엔딩 곡으로 쓰인 ‘Idols of the radio’은 김 감독님이 직접 ‘슈퍼스프링(혹은 김상만 감독)’에게 의뢰한 곡이라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직접 하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영화 전반적인 사운드 느낌과 많이 달라요. (웃음)

엔딩곡은 자신의 밴드의 음악이 올라오길 원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작업을 하면 사람마다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잖아요. 감독님께는 그게 그 순간이었다고 봐요. 전 기꺼이 응원했죠.

민규동 감독과 두 번째로 작업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노희경의 동명의 드라마가 원작이었습니다. 원작을 보았는지요?
안 봤어요. 원작을 보면 원작의 느낌을 제가 받을까 봐, 봤다고 얘기하지만 절대 안 보는 편이죠.

정통적인 신파 멜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아니 반대로 어떤 지점을 피하려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울리지 말자예요. 울리면 큰일 난다. 음악은 최대한 담담하게 표현하자. 슬플 때 음악은 모두 장조예요. 상황에 대한 음악은 단조고. 이것은 신파나 슬픈 영화를 할 때 제 기본적인 콘셉트이기도 해요. 그 때문에 영화가 갖는 성격은 고급스럽게 변해요. 그 자체가 감동으로 느끼게 되죠.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감동 받아서 울게끔 만드는 게 목표잖아요. 그래서 그 기억을 계속 가져갈 수 있도록 되는 거죠.

사운드트랙은 디지털 음원 발매 외에 초회 한정 DVD 번들로 포함된 채로 발매되었습니다. (뒤에 나온 <내 아내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공개 형태가 따로 CD로 발매되는 것보다 장점이 있는지.
영화사에서는 OST 발매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죠.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죄다 연주곡이니까요. 그래서 안 만드는 거죠. 디지털로만 되는 건데, 나중에 DVD가 나오게 되면 패키지를 통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잖아요. 슬픈 일인데. 그렇게 해서 들어간 거죠.

내아내의 모든것

그다음에, 민규동 감독과의 세 번째 작품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거의 필모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그 작품의 목적도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관객이 원하는 곡들을 주체적으로 적용하자라는 거였어요. 이선균 씨의 음악보다는 류승룡 씨에 대한 음악을 정교하게 많이 하자, 선균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영화를 살리려면 류승룡 씨가 스타가 돼야 한다. 그래서 굉장히 과감한 라틴음악들을 배치해 버리는 거죠. 진짜 카사노바처럼 보이도록요. 첫 등장부터가 이상하지 않아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사운드가 가득해요. 스패니쉬의 플라멩코나 맘보, 샹송에 재즈, 팝까지.
그게 월드 음악이잖아요. 영화에 대한 저의 콘셉트에요. 처음에 박준호 PD님이 감독님과 오셨어요. 이야기를 하다가 월드뮤직으로 가자, 그랬어요. 감독님도 좋은 거 같다, 하셨고. 그래서 그걸 차근차근 준비를 한 거죠. 너무나 많은 곡이 필요했었고요. 두 번째 목표는 2년 반, 3년 반을 같이 고생한, 데뷔는 두 작품으로 했지만 이름은 유명해지지 않았던 이진희 음악감독에 대한 배려예요. 이 친구가 이 영화를 하면 주목을 받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분명히 이야기를 했어요. “이걸 하면 넌 독립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이걸 최초의 작품이 되게끔 열심히 해봐라. 나는 곡을 안 쓸 거야. 네가 다 써라.” 그렇게 했어요.

이진희 음악감독이 거의 천재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친구는 정말 천재예요. 기존의 음악감독들이 정말 많잖아요. 제가 알고 있는 음악감독들을 다 뛰어넘는 천재예요.

내아내의모든것

놀이동산에 쓰인 샹송 ‘Je I’aime plus que tou’와 집에서 추던 춤곡이자 엔딩에 흐르는 맘보 ‘Embrasse-moi’ 모두 기존에 있는 곡이 아니라 이진희 감독의 창작이었더라고요.
돈이 없기 때문에 (웃음) 만들어야 해요. 배치는 제가 다 했지만, 임수정의 성격을 다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영화 초반 임수정이 나오는 장면에서 기타음악이 나와요. 그런데 음악을 빼버리니까 임수정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근데 음악을 붙여놓으니까 임수정의 성격으로서 배치가 되어버린 거죠. 관객들이 이해할만하게 된 거죠. 히스테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으로 보게 되는 거죠. 그게 음악의 역할이었죠. 그때 알았어요. 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얘는 성격이 이러니까 이렇게 보세요, 이렇게 제시를 해야 하는 거구나. 류승룡 씨 나올 때는 무조건 대놓고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영화가 더 재밌어졌어요. 제가 스스로 싱크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깨알같이 한 게 있는데요, 어떤 장면에서 음악이 딱 일부러 끝나게 만든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웃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음악적인 포인트로도 웃음을 전달할 수 있어요.

비비드(박성희, 정아영, 신아름)라는 그룹이 웬만한 곡들을 많이 불렀어요.
영화사와, 음반사와의 상업적인 선택이었죠.

‘장성기의 세레나데’도 인상적인데요, 독자적인 스코어처럼 활용되다 동시에 장성기가 부르는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 반주가 되며 섬세하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하지만 음악 사용 방법은 제가 선택하죠. <키친>에서도 주지훈 씨가 노래할 때 나오는 음악이 서로 다른 음악이거든요. 이를 절묘하게 묶는 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그런 장면이 나와요. 심수봉의 노래였죠. 다른 건데 같게 만드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를 보면서, 배우의 노래를 들으면서 즐기지만 깊은 정서를 또 가지고 가니까 레이어가 하나 더 쌓이는 거죠. 그래야지만 장성기의 허세가 드러나는 것도, 장성기의 진실이 증폭되는 것도 가능한 거죠.

광해

다음에 <광해>를 하셨습니다. 모그 음악감독이 먼저 작업하던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저번 모그 인터뷰에서 듣기는 했지만)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모그 감독이 저를 속였어요. (일동 웃음) 저의 전작들을 다 들어보고, 김준성 음악감독에게 맡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할리우드(라스트 스탠드)로 가야 한다. 예산까지 다 넘겨주고 갈 테니까 해 달라. 그래서 이게 왠 떡이냐, 저 사극을 좋아하거든요. 기분 좋게 하려고 했는데. 영화사가 저를 잘 몰라요. 사실 지금도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한 개수에 비해서 제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평가하는 게 있거든요. 저 자신이 저평가 된 음악감독인 거죠.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걸로 평생을 먹고 산 사람인데.(웃음) 영 미덥지 않았나 봐요, 회사는. 그래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그 음악감독이 잡더라고요. 제가 다른 외압을 다 막아줄 테니 감독님이 음악을 해주세요. 그래서 하게 됐죠. 조건을 걸었어요. 전체적으로 음악은 다 할 테니 모그 감독은 이 순간부터 빠져라. 더 쓰지 말아라. 였어요. 그래도 곡을 써서 보내요. ‘사월의 테마’ 같은 곡이요.(웃음)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제가 곡을 만드는 것과 모그 음악 감독이 만든 것을 일관성 있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많은 분들이 오프닝 음악을 좋아하는데, 오프닝 음악은 영화와 별개의 음악이거든요. 테마가 아니에요. 넣고 싶진 않았는데, 워낙 추창민 감독님이 오랫동안 들어왔던 음악이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편곡에만 2주가 걸렸어요. 그만큼 어려웠던 곡이에요. 그다음부터 쭉쭉 진행시켰죠. 앞의 코미디 부분은 몇 개 빼고는 음악이 다 되어있었고, 편곡을 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 넣는 작업을 했어요, 뒷부분은 아예 없었고요. 거기는 제가 다 만들었죠.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키친> 이후 오랜만에 사운드트랙이 CD로 발매되었습니다.
원래 그것도 영화사에서는 못 내주겠다고 했던 거예요. 내달라, 좀 강력하게 제가 말했죠. 음저협과 협상도 되지 않았냐. 그래서 내게 됐죠.

앨범이 좀 팔리지 않았나요? 순식간에 절판됐더라고요.
거기까진 제가 잘 모르겠어요. <공모자>부터 제가 음악 믹싱을 시작했어요. 보니까 믹싱기사 뒤에서 제가 계속 떠들고 있어요. 그럼 믹싱기사는 제 말을 이해하고 제가 하란 대로 똑같이 하거든요. 그럴 바에야 내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태성 음악감독을 만났는데 직접 하세요 그렇게 말을 했고요. 제가 직접 하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거예요. <광해>도 그렇게 했고요. 사운드 좋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연애의온도

다음 작품이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였습니다. 씨네노트의 팀 작곡가들의 다양한 참여한, 어떻게 보면 슈퍼바이저의 개념으로 작업을 하신 거 같은데요. 어떻게 조율하고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감독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해 봤죠. 음악감독이 왜 필요하지? 작곡가가 필요한 거 아닌가? 좀 다른 거 같아요. 모그 감독에게 할리우드 시스템을 좀 들어봤거든요. 거기에는 템프 트랙을 붙이는 에디터가 있고 영화사의 입김이 강한 사람, 영화사를 이해하는 사람이죠, 작곡가가 있고 예술가잖아요, 오케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더라고요. 영화를 구현하는 사람이잖아요. 이 세 사람의 개런티가 똑같대요. 놀랐죠. 음악감독이 다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어떨까. 뮤직 에디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영욱 음악 감독이잖아요. 오케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사람 별로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제 장점이 뭔지 봤을 때, 전 에디팅을 잘 하는 거 같아요. 남의 음악이 아니고 제 음악으로 템프 트랙을 까는 일이요. 그건 표절에 절대 걸릴 수가 없어요. 제가 편곡을 할 때도 음악 자체의 완성도만 힘쓰면 되지 뭐랑 비슷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뮤직 에디팅은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음악감독이잖아요. 작곡가들은 전반기에 일을 다 해놨기 때문에 후반에는 다 놀아요. 오케스트레이션은 제가 계속 해왔고. 여러 분야의 편곡도 가능하니까요. 다양한 심상을 보여주는 쪽으로 접근을 하는 거죠. 일단은 <연애의 온도>도 편집본을 받은 거잖아요. 작전을 세웠어요. 큰일 났다, 시간이 짧으니까.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에 좀 특이하게 가자. 아코디언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재즈나 월드뮤직을 똑같이 가져가보자. 이렇게 제가 변했어요. 매번 실험을 하던 사람이 이젠 실험을 안 해요. 안전빵. (웃음). 나머지 깊은 정서에 대한 부분은 국적 상관없이 영화에 맞는 걸로 가자. 클래식 적인 음악이라기보다는 팝적이고 기타도 많이 쓰는 대중적인 성격으로 접근했죠. 그게 대중적인 성공과 결부될 수 있을 거 같았고요. 그렇게 준비했고, 우리 작곡가들에게 작업시켜서 완성했어요. 롯데에서도 만족했어요. 롯데에서 하는 다음 로맨틱코미디 작품을 그때 열심히 했던 정교임 음악감독이 데뷔하게 됐어요.

씨네노트에서 작업하다가 독립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이진희 음악감독처럼 잘 된 경우고 있고요. 그전에는 잘되기까지 지원을 해줬는데 이젠 기준을 낮춰서 데뷔하게 될 경우 필요하면 나가는 걸로도. 꼭 데뷔해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씨네노트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첫째는 월급제거든요.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정성을 주기 위해 월급제로 운영해왔는데, 영화 자체가 평균적이지가 않잖아요. 일이 있다가도 없기도 하고. 힘들 땐 또 힘든 거죠. 사업으로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작년에 정교임 음악감독이 <캐치 미>로 데뷔하고, 나윤식 음악감독이 <살인자>로 데뷔하고, 지금은 데뷔 안 한 한 사람 남게 됐죠.

집으로가는길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된 실화를 다룬 작품인데요,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접근했나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같은 콘셉트였어요. 슬픈 것에 슬픈 음악을 하지 말자. 그래서 슬픈 장면에서는 장조, 사건에서는 단조가 긴박하게 나오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콘셉트는 전체 음악에서 뭔가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자. 걷는 것은 딴딴딴딴 같은 음을 계속 반복해 주는 게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소망을 걷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거죠. 정제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배우의 생각과 손짓과 모습들이 관객들에게 잘 보이게 하는 거죠. 음악으로 하여금 가리고 메꾸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 하니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받쳐주게. 그리고 이중적인 의미가 다 있어요. 이쪽으로 보면 슬프고, 이쪽으로 보면 아름답고, 그처럼 배우의 다양한 면을 보게 되고 관객들은 연기나 연출에 있어서도 슬픔이 아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했던 거죠. 그 의도가 성공했던 거 같아서 만족해요.

오랜만에 피아노가 메인으로 나서는데, 어떻게 보면 데뷔작이었던 <말아톤>을 연상케 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네. 제 친구인 피아니스트 천현정이 연주했죠. 대학교 때 제가 작곡한 곡을 연주해줬던 동기 세 명웰옳퓸틈絿뵈??됐는데요, 그 중 한 명인 김계화가 <말아톤>을 연주했고요, 현정이가 이번 <집으로 가는 길>을 연주한 거고요, 또 한 사람은 아직 대기 중이에요. (웃음)

각각 프랑스에서 절망하고 고수는 한국에서 절망감을 느끼잖아요. 피아노가 주는 감정이 절망에서 오는 차가운 느낌과 희망적인 부분까지 이중적인 느낌을 잘 포착했뇩염?같습니다. 직접 스트링과 혼 등 오케스트레이션을 다 하시는 데 이런 부분들이 힘들지는 않은지.
그건 제 사명이죠.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하는. 늘 힘들죠. 잠을 잘 못 자요. 영화 막판이 되르오訪怠챨@?하루 16시간씩 되거든요. 진짜 몰입해서 해요. 계속 부담감도 있고요. <용의자>의 밀밭 나오는 마지막 장면 있잖아요. 거기 피아노 음악이 끝까지 해결이 안 됐어요. 얼마나 고민이 많겠어요. 잠을 자다 깼어요. 당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앞에 앉아서 녹음을 했죠. 됐다!! 했죠. 잠자면서 악상이 떠올라요. <전설의 고향> 메인 테마도 그랬어요.

용의자

원신연 감독과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최신작인 <용의자>를 하셨습니다. ‘본 시리즈’와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음악을 떠올리는 관객들도 많았어요. 존 파웰이나 한스 짐머의 이런 오스티나토가 현재 할리우드 스코어의 유행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이 직접 레퍼런스를 제공했다고 들었어요.
네. 개봉하기 2년 전에 오셔서 “나 이거 하고 싶어”, 딱 던져놓고 가셨어요. 이걸 들었을 때, 딱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는 음악인 거거든요. 그리고 정서적인 음악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하고 싶지 않으신 거 같았어요. 화음도 원치 않은 것 같았고요. 계속 그 상태로 2년 동안 고민한 거죠. 아무리 해도 할리우드 영향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걸 표현해낼 수가 없어요. 더 효과가 좋은 것을 찾아내지 못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미니멀 음악에서 파생된 형태인데, 70년대 말에 필립 글라스가 미니멀에서 출발했고, 90년대에 전자음악으로 갔다가 2000년도에 존 파웰이 ‘본’ 시리즈에서 시작했고, 그걸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던 한스 짐머가 해낸 게 <다크 나이트>였고요. 이것이 퍼지고 퍼져서 지금이 된 거 같아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운드적인 접근이에요.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면서 벗어날 순 있지만, 리듬을 구성하는 방법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게 한계죠. 어떻게 해야 하느냐, 했을 때, 가장 기본적으로 뚝딱뚝딱 선율을 그냥 만드는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가지 음색적인 소리를 조합을 해서 깎아내면서 <용의자> 자체의 색을 만들었는데, 그 자체도 (스타일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반성만 해서 될 수는 없거든요. 숙제죠. 단기간 내에는 되기 힘들 거 같아요.

감독들이 이런 레퍼런스가(혹은 템프 트랙들이) 때론 작곡가의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부분을 제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다행히도 저에게 템프 트랙을 주는 경우는 제가 보내주는 음악뿐이거든요. 그게 이제 전통이 됐나 봐요. 모두 제가 보낸 음악으로 붙여 왔어요. 최근 <연애의 온도>도 물론 제가 붙이는 것과 너무 다르지만, 제가 보내드린 것만 가지고 붙여 오셨더라고요. 그게 좋으신 가봐요 이젠. 처음에 제가 설명을 했어요. 남의 음악을 붙여오면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더 힘들다. 그래서 제 음악을 붙여주고, 만약 없으면 그런 식(다음 사람의 음악을 붙이는 것)으로 해달라고 하죠.

<용의자> 때 원신연 감독님이 주신 레퍼런스가 뭐였나요?
죄다 ‘본’ 시리즈, 그리고 <다크 나이트>였죠.

원신연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떠세요?
이젠 4번째 작품을 해서인지 <용의자>가 그 전작 3개의 작품들에 비해서는 고통이 덜했어요. 그러나 23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작업했거든요. 고통의 총량이 이만큼이라면 그게 길게 나눠서 온 게 아닐까. (웃음) 이젠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됐다고 할까?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다른 걸 추구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아마도 감독님이 처음 작업 시작하고 지금까지 남은 사람이 저밖에 없을 거예요. 이 전통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게으르면 안 돼요. 절대로.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영감을 얻으시나요?
계산을 하죠. 이 영화는 이렇게 돼야겠다. 그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오게 하죠. 얘는 이렇게 얘는 이렇게. 그래야지 각 영화마다 다를 것 같거든요. 예쁜 음악을 쓰자, 이건 콘셉트가 아니잖아요.

국내 영화음악에서 고쳐보고 싶다거나 도전해보고 싶은 지점이 혹시 있으신가요?
(도전하고 싶은 지점은) 제일 잘 하는 사람,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은 이제 버렸어요.

버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게 힘들고 불행해지잖아요. 이제는 보람 있고 행복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예산에 따라서 내가 움직여야지 하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1000만 원짜리 영화든 100억짜리 영화든 전부 최선을 다해 만들거든요. 한 씬 한 컷도 모두 베스트만 고르거든요. 그런 정신과 그런 작업에 대한 접근방법이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 살날들을 봤을 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잖아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고 전작을 보고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연락을 해오는 것일 텐데, 직접적으로 참여를 못 한다 하더라도 조언이라도 하자, 도와보자 이런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한스 짐머를 좋아해요. 예전에는 굉장히 싫어했는데요... (웃음) 한스 짐머는 영화계에 있어서 혁명가예요. 시스템을 만들었고, 시스템을 통해 많은 제자를 배출했죠. 영화음악의 판을 완전히 갈아엎었죠. 한스 짐머를 의식하지 않고, 싫어하더라도 그 사람처럼 음악을 만들어야 해요. 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시스템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한국 영화음악도 계속 전진하며 나가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이해하게 되고 좋아하게 됐어요.

딱 좋아하시는 영화음악 있으세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게 된 것이 <쉰들러 리스트>였어요.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주는 것이… 울고 싶은 사람에게 너 울어봐, 라고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정말 울고 싶은 사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음악이었어요. 저도 그런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 거죠.

감독님에게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도망가고 싶은데, 하루만 도망가도 아쉬운? 그런 것 같아요.

5년 후에는 도망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못 갈 거 같아요. (웃음) 하나 끝나면 또 하나 해야 되고. 또 끝나면 또 하고.

지금 씨네노트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직원은 한 명이 있고요. 예전에는 5명까지 있었다가 독립한 사람도 있고, 그냥 집에 간 사람도 있죠. 요즘은 학생들이 좀 있어요. 학교 학생, 아니면 제가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학생들인데요 일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그 자체의 경험이 중요해요. 그 시스템을 올해 시작했어요.

나의사랑나의신부

마지막으로 다음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리메이크를 했어요. 임찬상 감독의 작품이고 신민아, 조정석 씨가 나오는 작품이죠. 조정석은 귀엽고 신민아는 너무 사랑스러운. 이걸 음악으로도 그대로 표현했죠.

이명세 감독의 원작 영화 음악도 인상적이지 않았나요?
그 음악도 일부 나와요. 이명세 감독의 원작 음악도 편곡해서 사용했어요.

여기까지입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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