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OST]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야마가 히로유키, 1987)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坂本 龍一

by.문상윤(영화음악 수집가) 2014-04-16조회 9,351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1984년 대학생이던 야마가 히로유키는 자신이 떠올린 이야기 하나를 오카다 토시오에게 들려준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행성 속 ‘오네아미스’라는 왕국에서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을 위해 주위 시선과 전쟁이란 악재 속에서 각고의 노력을 펼치는 왕립우주군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SF 용품 전문샵을 운영하며 아마추어 오프닝 애니메이션 대회의 실행위원을 맡고 있던 오카다 토시오는 이 구상에 대해 묘한 매력을 느꼈는데, 전문 애니메이터가 아닌 마니아들이 주축이 된 제작 시스템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단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거대 완구회사인 반다이와 접촉해 상당한 투자를 이끌어내고, 안노 히데아키나 사다모토 요시유키 등 (지금은 대가로 성장한) 여러 아마추어 멤버들을 규합해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를 제작하기 위한 프로젝트 회사 가이낙스를 설립한다. 그러나 언어에서부터 복식, 문화, 군대와 로켓 발사과정의 디테일을 위해 자위대 체험과 NASA의 협조까지 이끌어낸 의욕 과다와 완벽주의로 인해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애초 반다이가 제시한 3억 엔의 제작비를 훌쩍 넘겨 총 8억 엔이란 거액이 소요되고 말았다.

왕립우주군
<왕립우주군>

그러나 전쟁과 문명, 인류와 종교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유, 그리고 한 청년의 성장담을 한데 묶어낸 이 열정적이고도 야심 찬 작품은 당시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단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임시로 세워진 회사였던 가이낙스는 빚더미에 올라 끝내 해산하지 못했고, 그 적자를 청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차기작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굴레에 빠져들었다. 가이낙스를 파산으로 이끌었지만 결국은 희대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탈바꿈시킨 창립작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존재는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저주받은 걸작이면서도 결국 그 저주로 인해 많은 애니 팬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작품들이 줄줄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자못 운명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재패니메이션의 중추라 불리는 스태프들이 거쳐 갔다는 점도, 온갖 패러디와 유희, 상업적인 접근법과 달리 진지하고 정공법적인 작품으로 출발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엄청난 대작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가 YMO(Yellow Magic Orchestra)로 일본뿐만 아니라 영미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일본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 작품을 제외하고 그 어떤 애니메이션 음악도 담당한 바 없다. 당시 가이낙스의 수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의 일설에 따르면 “사카모토 류이치는 ‘리이쿠니의 테마’ 이외에 다른 곡은 작곡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를 본인의 작곡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메인 테마’는 사카모토의 작곡이 아니다”라고 최근 트위터상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사실 그의 다른 영화음악들과 달리 <왕립우주군>의 곡들은 레퍼토리로 연주되거나 다른 버전으로 편곡된 적이 거의 없는 편이다. 사카모토가 표기된 것과 달리 얼마나 참여했는지, 오카다의 증언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립우주군>은 뚜렷하게 사카모토 류이치만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음악에 참여한 다른 3명의 뮤지션들(노미 유우지, 쿠보타 하루오, 우에노 코지)이 모두 그 당시 사카모토의 개인 앨범이나 YMO와 깊은 관련 및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분히 사카모토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 딱히 구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작업은 사카모토가 4종류의 기본적인 테마(프로토 타입)을 제시, 그것을 바탕으로 사카모토를 포함한 각 작곡가들이 자유로운 편곡과 변주를 시도하고, 또 작곡가들 자신만의 오리지널 곡도 포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런 음악이 제작비 상승에 일조(!)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전체를 총괄한 사카모토와 다른 작곡가들 간의 느슨하면서도 통일감 있는 협업은 꽤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왕립우주군>과 가장 유사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필립 카우프만의 <필사의 도전>에선 그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록키’로 정의되는 빌 콘티의 영웅적이면서도 희생적인 찬가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와 대척점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우주개발에 대한 도전과 의의를 담고 있는 이 작품에선 서사적이고 큰 스케일의 음악보단 반음계주의에 미니멀한 사운드를 선택했다. 이는 영화상에서 말하고자 한 ‘이제 우주도 인간에 의해 쓸모없는 곳으로 바뀌게 될지 모른다’는 인류 문명의 정복욕에 대한 반성과 참회에 대한 사카모토의 답이 아닌가로 여겨진다. 이전의 그가 처음 영화음악을 맡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처럼 스코어는 전적으로 영상에 완벽히 녹아들지 않지만, 그러한 거리 두기가 가져오는 이질적이고 괴리된 효과는 음악적 유희를 자아내고 비판적인 성찰을 이끌어낸다. 단순히 스케일과 서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드라마와 주제의식을 그의 미니멀하면서도 차가운 마력의 신디 사운드를 통해 독특한 질감과 깊이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종속되지 않고, 뒤로 숨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내는 사카모토의 스코어는 그래서 더욱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YMO 스타일과 초기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관이 짙게 배어있지만, 월드뮤직과 현대음악, 팝적인 감수성까지 잡다하게 교배된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려하고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충분히) 미래지향적이다.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지형도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프로그레시브하면서도 동양적인 여백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사운드의 기백이 영상이 지닌 무게감과 피로함을 가볍게 날려버리고 있다. 도발적이고 전위적인 소리들은 물론, 다양한 이펙트와 수준 높은 믹싱, 그리고 고유의 전통악기들을 사용해 민속적이면서 동양적인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데, 이는 <왕립우주군>이 가진 가치와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히 부각해준다. 4개의 기본적인 주제부 중에 가장 많이 쓰이고 귀에 익숙하게 들리는 건 ‘메인 테마’로 이국적인 퍼커션에 반음계 모티브를 가진 미니멀한 사운드는 컨셉 아트 그림이 깔리는 오프닝 크레딧과 맞물려 눈과 귀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역시 기본 주제부 중 하나인 ‘리이쿠니의 테마’는 피아노와 플루트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왈츠풍의 곡으로 긍정적인 기운과 맹목적인 믿음의 경계 어딘가를 서정적이지만 서늘하게 담아낸다. 작품의 후반, 발사에 성공해 우주 밖으로 나가며 인류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기원을 담은 몽타주에 흐르는 ‘Out to Space’는 신디 음색만이 가진 고색창연한 전희와 감동을 선사하고, 그 뒤를 이어 나오는 ‘Fade’는 메인 테마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역동적인 팝비트로 변주한 곡으로 영화의 여운을 더욱 길게 남긴다. 제작된 지 어언 30년이 가까워져 오는 올해,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속편이 준비 중이다. 원작에서 50년이 지닌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푸른 우르>라는 작품인데, 사실 1992년 안노 히데아키 감독, 야마가 히로유키 각본으로 준비되었다가 엎어진 바 있는 오래된 기획이다. 98년과 2001년 각각 제작이 재기되었으나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안노 히데아키가 지쳐 자리를 뜬 상황에서 2013년 3월 가이낙스는 다시 제작 소식을 페이스북에 알리며 2014년 개봉을 예고한 상태다. 물론 음악에 다시 사카모토 류이치와 노미 유우지, 쿠보타 하루오와 우에노 코지가 복귀할지 미지수지만, 30년 전과는 전혀 다른 가이낙스의 위상이라면 조금은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リイクニのテーマ (Riquinni''s Theme)
 
Track List
1. メイン・テーマ
2. リイクニのテーマ
3. 国防総省
4. 喧騒
5. 無駄
6. 歌曲「アニャモ」
7. グノォム博士の葬式
8. 聖なるリイクニ
9. 遠雷
10. シロッグの決意
11. 最終段階
12. 戦争
13. 離床
14. アウト・トゥ・スペース
5. フェイ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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