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은 2월 1일부터 14일까지 상영 프로그램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7년 한국영화’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평론가, 기자 등 영화계 전문가의 의견 및 관객 설문조사 결과를 취합해 지난 한 해 동안 극장가를 빛낸 한국영화 10편을 선정하고 이를 상영하는 자리다. 올해에는 <
옥자>(
봉준호, 2017),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변성현, 2017), <
꿈의 제인>(
조현훈, 2016),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정윤석, 2017) 등의 작품과 함께, 관객 설문조사 1위를 차지한 <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2017)가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
김세연_ 지난해 9월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온 옥분(
나문희)이 구청 직원 민재(
이제훈)의 도움을 얻어 그녀가 몸소 겪은 위안부 문제를 용기 내어 알리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가 위안부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희극을 경유해 비극에 접근하는 화법’이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연출적으로 희비극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에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을 듯하다.
김현석_ 영화의 분위기가 불필요하게 진지해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이 소재를 진중한 분위기의 직설 화법으로만 다루고 있었다면 연출 제의를 고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코미디의 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달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바로 그 지점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하게 되었다. 고민이 필요했던 지점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코미디 톤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시나리오상에 구현된 코미디 방식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로 일부 수정했고, 더불어 후반부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전반부의 개그 코드를 톤 다운하기도 했다.
김세연_ <아이 캔 스피크> 및 감독님의 전작들을 떠올려보았을 때 일련의 성장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이 미처 알지 못한, 혹은 잊고 있던 자신의 다른 모습을 찾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현석_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는 어떻게든 변화해야 할 텐데, 그것에 강박관념을 가지는 순간 역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 자체를 의도하는 것보다 ‘변했으면 좋겠다’는 방향성만 가지고 간다. 주인공의 욕구나 그가 처한 환경 등을 영화 초중반에 세심하게 가공해놓으면,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좋은 배우를 만나면 의식적으로 변화를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술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연출관이 있다. 이를 위해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요소들을 세심하게 다듬으려 한다.
<아이 캔 스피크>의 경우도 동일하다.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에 과도한 격차가 생기는 것을 염려했듯이, 캐릭터 또한 어떤 상황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배우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갑자기 캐릭터의 설정을 바꿔 연기하는 건 어쩐지 쑥스러운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워낙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적잖이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