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
Lee Sang-eon / 李尙彦 / 1937  ~  1993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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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뜨겁고 깊은 겨울 (이상언, 1987)
오싱 (이상언, 1985)
여자정신대 (이상언,정중, 1985)
(이상언, 1984)
화순이 (이상언, 1982)
불타는 동심 (이상언, 1982)
신혼일기 (이상언, 1981)
0번 아가씨 (이상언, 1981)
터질듯한 이 가슴을 (이상언, 1979)
오빠하고 누나하고 (이상언, 1978)

주요경력

1975년 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부위원장
1975년 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상임이사
1980년 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상임이사
1982년 영화인협회 이사장 직무대행

기타정보

저술내역
1981년 「연기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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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이상언 - 바른말 잘하는 이상언 감독 내가 이감독을 처음 만난건 1950년대 명동에서였다. 피차 20대 초반의 나이로 영화계에 청운의 꿈을 안고 뛰어들고 나서였다. 당시 명동 한복판(옛날 명동 공원) 바로 옆에 5층 건물 있었고 3층에 고이병일(李炳逸) 감독님 사무실이 있었다. 다섯평 정도의 조그만 사... by. 조문진(영화감독) 2008-11-1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상언은 조긍하 감독의 문하생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촬영부로 시작하여 퍼스트까지 거친 후 연출부로 전향했다. 1965년 <후회하지 않겠다>(1965)로 감독 데뷔를 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상언 감독은 빨리 촬영하는 것으로 충무로에서 유명했는데, 1971년 <흐느끼는 두 여인>(1971)을 촬영하면서 하룻저녁에 2백 70컷을 촬영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매일경제). <오빠>(1971)에서는 국내 최초로 테크니스코프(필름 한 컷에 두 프레임을 촬영하는 필름 절약 촬영 방식) 촬영을 시도했다. 이후 테크니스코프 촬영은 국내에서 촬영되는 극영화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경향신문a).
1981년 이상언은 희곡작가 하유상, KBS PD 전세권과 함께 탤런트?배우 입문이론서인 『연기수업』을 출간하기도 했다(경향신문b). <화순이>(1982)를 연출한 이후 영화인협회 이사장 직무대행을 하느라 작품 활동이 뜸했던 그는 1984년 <형>으로 복귀했으며(경향신문c), 이 작품은 그의 연출작 가운데 가장 흥행한 작품이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85년작 <오싱>은 아역탤런트 김민희의 열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3년 SKC 영화사의 사장이었던 그는 자사 제작 작품이었던 <남자 위에 여자>(고영남)의 제작현장에 방문했다. 영화의 촬영을 돕기 위해 헬기를 탔다가 헬기가 한강에 추락하는 바람에 1993년 별세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경향신문d).

[3.8매]

* 참고문헌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4878&keyword=이상언)
매일경제 1971년 5월 6일자 7면.
경향신문a 1974년 11월 7일자 8면.
경향신문b 1981년 2월 16일자 12면.
경향신문c 1984년 5월 28일자 12면.
경향신문d 1993년 6월 15일자 1면.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7년 경상북도 대구 출신. 대구대학 졸업.
그는 대구출신 조긍하 감독 사단의 문하생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애당초는 촬영부에서 시작하여 퍼스트까지 진급한바 있다. 촬영공부를 마치고 연출부로 전향한 쉽지 않은 케이스에 속한다.
데뷔작은 <후회하지 않겠다>(1965) 최무룡 김지미 엄앵란 출연. 그녀는 딸 하나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미망인이다. 일찍부터 단짝 동창인 친구의 남편을 연모해왔다. 그 친구는 불임증으로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래서 친구 남편의 유혹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정을 위해 친구의 남편을 단념한다. 오직 딸 하나만을 데리고 혼자 살아갈 것을 기약한다.
<잃어버린 세월>(1965년) <소금장수)(1966년) <동심초>(1967년) <형>(1969년) <잊을 수가 있을까>(1970년) <타인의 집>(1970년) <검은 장갑을 껴라>(1971년) <시집 갈래요)(1974년)<화순이>(1982년) 등 총 30편 연출.
그중에서 <형>(1984년) 은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힛트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신영균 문희 이순재 출연. 형인 신영균이 힘든 운전수 생활을 해가면서 동생 이순재를 끔찍하게 뒷바라지 한다. 그리고 동생은 이른바 출세를 하고 부자 집 규수를 아내로 마지한다. 그러나 동생은 운전수 노릇하는 형의 은혜를 깡그리 져버리고 모르는 채 한다. 그러나 뒤늦게야 잘못을 깨닫고 형의 은혜에 보답한다.
이 작품은 리바이벌까지 하게 된다. 그는 평소 독불장군 타입이었다. 무슨 총회나 집회에 감초처럼 나서서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별난 인물이었다. 절대로 타협을 몰랐다. 그러나 어려운 친구에게는 따듯하게 베풀줄 아는 도량을 갖고 있었다.
한동안 SK 그릅 산하 영화사 사장직을 맡아 뛰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작품에 고영남 감독이 연출하는 모 영화에 헬리콥터를 타고 작업 독려하던 도중, 비행기가 한강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그가 왜 감독도 아니면서 헬리콥터에 탔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애당초 촬영부 출신임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헬리콥터에 탄 기회에 멋진 앵글을 잡는다며 비행기 고도를 낮게 더 낮게 외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부인 김숙자 여사가 미용전문가이다. 남편 이상언을 꿈찍히 뒷바라지 한건 영화계에서 소문난 사실이다. 생전에 딸만 넷 낳았다. 1993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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