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진
Cha Tae-jin / 車泰辰 / 1924  ~  2003
대표분야
제작/기획
데뷔작품
1960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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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강산에 꽃이 피네 (강조원, 1968)
제작자 :
댁의 아빠도 이렇읍니까 (이두용, 1971)
케이라스의 황금 (강조원,P.G. 카라멜로, 1971)
어느 여도박사 (김인수, 1971)
금문의 결투 (이대련, 1971)
미워도 정때문에 (최인현, 1971)
동과 서 (김기덕, 1971)
명동에 흐르는 세월 (김효천, 1971)
장군의 딸들 (고영남, 1971)
못잊을 당신 (양영길, 1971)

주요경력

1945년 3월 평양신학교 졸업
1946년 3월 서울신문학원 수료
1949년 2월 한성일보사 기자
1953년 5월 연합신문사 문화부장
1955년 3월 피망사 편집국장
1959년 7월 극동흥업 창립 대표
1964년 3월 반도여행사 대표, 극동TV푸로덕숀 대표
1967년 2월~1972년 1월 극동필름 대표
1973년 5월 사단법인 영화배급협회 상임감사
1974년 9월 영화진흥공사 진흥담당 이사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에 태어나 목사의 아들로 평양 신학교를 나왔다(경향신문). 1949년 한성일보 기자, 1953년 연합신문사 문화부장, 1955년 희망사 편집국장 등 언론계에 있다가(한국영상자료원a), 1950년대 후반 한국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제작본부장으로 일한다. 4.19 이후 임화수와 함께 한국연예주식회사가 몰락하자, 한국연예주식회사에서 편집기사로 일하던 김기덕 감독과 함께 극동흥업을 창립한다(한국영상자료원b). 최초로 제작한 작품은 김화랑 감독의 <바보 칠성이>(1961)였으며, 이어 김기덕 감독의 <5인의 해병>(1961), <대괴수 용가리>(1967), 엄심호 감독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1962), 유현목 감독의 <김양국의 딸들>(1963) 등을 제작한다. 1964년 대히트를 기록한 <맨발의 청춘>(1964) 이후 청춘 영화 전문극장인 아카데미 극장과 함께 파트너쉽을 이루며 <흑발의 청춘>(1966), <초우>(1966), <내 주먹을 사라>(1966), <청춘고백>(1968) 등 청춘영화를 제작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는 당시 유행 장르였던 다수의 액션영화들을 제작한다. 1970년대로 접어들 무렵, 사세가 커지면서 성우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극동 방송 아카데미를 열고, 반도 여행사를 설립하는 한편, 대만에서 서커스를 들여 흥행업에도 뛰어드는 등 사업다각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국일보에서 들여온 독일 서커스와의 경쟁에 뒤져 커다란 재정적 손실을 입고, 1972년 문공부로부터 영화제작사 등록 취소 통보를 받는다. 극동흥업을 접은 후, 영화진흥공사의 진흥담당 이사로 역임하며, 대작 영화들의 생산을 이끌고, 독립기념관 내의 180 영사관인 서클비전의 기획을 맡는다(오재미동).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3년 3월 8일 3면
충무로 미디어센터 오재미동, 『충무로 프로젝트』, 미디어버스, 2007, 11~18쪽
한국영상자료원a,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한국영상자료원b,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도서출판 이채, 2005년, 22~25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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