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주
Yoon Il-ju / 尹一周 / 1929  ~ 
본명
윤근모 (Yoon Geun-mo)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무영탑 1957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649)

더보기
배우 :
싸울아비 (문종금, 2001)
턴잇업 (강용규, 2001) 교장선생
춘향뎐 (임권택, 2000) 곡성군수
우먼파트너 놀자 (김정용, 2000) 장물애비
축제 (임권택, 1996)
충무로 돈키호테 (최용호,김정용, 1996) 김사장
알바트로스 (이혁수, 1996) 박노인
미지왕 (김용태, 1996)
금홍아 금홍아 (김유진, 1995) 이상 부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구임서, 1995)

수상정보

더보기

주요경력

1945년 경성 상공중학교(구제) 졸업
극단 황금좌 입단. 극단 청춘극장, 극단 고려, 극단 아랑, 극단 청춘좌 등 경유)
1957년 영화계 전향
1998년 대한민국 시사평화대상
2001년 배우협회 사무국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8.15 광복후 일제시대 당시 민족의 정서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세계 각국에서 귀국한 연극인들이 각종 극단단체를 설립하고 활발한 공연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연극 열기속에서 학창시절때부터 연극에 관심이 많던 나는 1945년 10월 극단 황금좌에 입단, 연극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각종 극단을 돌며 활발한 연기활동을 하던 중 1957년 나의 연기를 눈여겨 본 신상옥 감독의 제의로 "무영탑"을 찍은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영화작품
무영탑(1957,신상옥감독)
세종대왕(1964,안현철감독)
필살의 검(1969,김시현감독)
물도리동(1979,이두용감독)
최후의 증인(1980,이두용감독)
미워도 다시 한번'80(1981,변장호감독)
여자 대장쟁이(1982,남기남감독)
내가 마지막 본 흥남(1983,고영남감독)
수렁에서 건진 내 딸(1984,)
어우동(1985,)
안개기둥(1986,)
두 여자의 집(1997,곽지균감독)
연산일기(1987,이미례감독)
서울무지개(1989,김호선감독)
젊은 날의 초상(1990,곽지균감독)
개벽(1991,임권택감독)
첫사랑(1993,이명세감독)
불의 태양(1994,강문수감독)
태백산맥(1994,임권택감독)
미지왕(1996,김용태감독)
춘향뎐(2000,임권택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대지여 말해다오"는 정창화 감독의 작품으로 김석훈씨, 신영균씨, 그리고 내가 각각 한국, 중국, 일본사람으로 분하여, 열연하였던 작품으로 당시 나는 중국사람역을 맡아 자기나라를 찾기위해 일제에 항거하는 사람역을 훌륭하게 해 냈다는 호평을 들었다.
하고싶은 말
배우답다라는 것에 대해-배우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으로 분하여 마치 자기 인생인양 연기하는 것이다.따라서 연기를 할때에는 자기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역할에 충실해야한다.그래야만 보는 관객들도 배우를 통해 인생을 이해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배우답다라는것은 연기중일 때는 실제 자기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버릴수 있을때 들을수 있는 소리가 아닌가싶다.혹시 본받고 싶었던 배우가 있었다면-황철이라는 선배가 있었는데 어찌나 연기를 잘했던지 한작품에서 1인8역을 했는데도 관객들은 전혀 몰랐다.그선배의 연기가 신출귀몰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라도 완벽하게 모방하고 거기에 자기의 연기세계를 접목시켜 새로운 연기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나도 그선배의 연기자세를 본받고자 한평생 노력해왔다.요즈음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깜짝스타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연기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것이아니다.진정한 연기를 하기위해서 자기자신을 꾸준히 절차탁마하는 자세를 배우들은 지녀야 하며,사회 시스템 또한 이를 지원할수 있어야 한다.이를위해 배우협회에서는 체계적인 배우 양성 시스템을 구상중에있다
영화속 명소
신영균씨가 주연을 "연산군"을 찍었던 비원이 생각난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비원은 말을 탈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산군의 폭정에 항거하여 거사를 일으키는 장면을 찍을 때는 정말 대단했다. 이밖에 창동에 있었던 고풍스런 고가나 사극의 주무대가 되었던 경복궁도 추천할 만한 명소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사극을 많이 한 나이지만 현대극이건 사극이건 모든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낼 자신이 있다. 물론 "사극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극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 동안은 배역 욕심없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는 데 중안점을 두고 연기하였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의 애환을 담담히 토로하는 자상한 아버지역할을 해 보고 싶다.
자기소개 및 취미
1945년 10월 연극계에 진출한 이 후로 연기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연극, 사극, 현대극, 40여작품, 영화 1,000여편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살아왔습니다. 항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노래 부르기가 취미로 운동을 비롯한 모든 활동에 자신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선,후배들의 배려로 배우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우리나라 배우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윤일주는 학창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연극인들이 귀국하여 각종 극단을 설립하고 활발하게 공연을 했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1945년 10월 극단 황금좌에 입단해 연극배우를 시작했다. 이후 청춘극장, 고려, 아랑, 청춘좌 등의 극단을 거치던 중, 1957년 신상옥 감독이 <무영탑>(1957)에 출연해 줄 것을 제의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한국영상자료원).
그는 1997년까지 1,0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당시 최다 출연 조연배우로 선정되기도 했다(동아일보). 2001년에는 배우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체계적인 배우 양성 시스템을 구상하였고 더불어 배우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도 노력했다(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97년 8월 18일자 26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성희]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