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어느 쌀쌀한 보름밤에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
[연출 의도]
반가운 첫만남.
[Program Note]
어쩌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걷게 된다. 익숙한 불안감이 튀어나올 법한 상황이다. 이내 쫓고 쫓기거나 위태로운 비명이 들릴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어느 쌀쌀한 보름밤>은 장르를 무장해제한 자리에 고독한 작가만 남는 게 아님을 증명하는 영화다. 길과 사람으로부터 이야기가 나온다는 믿음에서 출발해 우연한 동행자에게 벌어지는 기분 좋은 로맨스에 도달한다. 두 인물의 주머니는 가볍고, 날씨는 뺨이 발갛게 얼 정도로 쌀쌀하다. 자칫 야박한 인간의 얼굴이 삐져 나올 경우 영화는 옹색한 행색을 띌 형국이다. <어느 쌀쌀한 보름밤>은 빤한 설정을 살짝 비틀어본다. 길을 가다 접하는 갖가지 소재들이 어색한 순간을 벗어나게 해줄 핑계를 제공하고, 그때마다 남자와 여자는 예기치 않은 대사를 내뱉는다. 다행히 영화는 별나라로 떠날 정도로 무모하지 않으며, 큰 욕심에 이야기를 이리저리 확장하지도 않는다. 과일가게에서 빈 박스를 훔쳐 들고 도주하다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 보듯, 길 위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주워 담을 뿐이다. 일상의 선을 넘지 않는 전개는 주변의 것들을 재발견하는 기쁨마저 제공한다. 차가운 겨울빛 아래 도시라고 하면 곧장 떠오르는 것들에서 멀리 떨어져, 우리가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사는 도시에는 아직 정겹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고 말한다. 이명세의 영화 이후 참 오랜만에 만나는 골목길 연애담이다. 어느 보름밤, 남자는 야수의 꿈을 꾸는 대신 짧은 연인이 되었다.
이용철 (서울독립영화제2011 예심위원)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