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무더운 여름날. 시각 장애인 해담은 고장난 선풍기를 고치기 위해 수리기사를 부른다. 수리기사가 선풍기를 고치고 떠나자, 만취한 윗집 여자가 갑자기 들이닥친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는 해담은 겁에 질린다. 당연한 일이다. 양말을 벗어 던지고 잠이 든 여자는 해담이 깨우자 이내 집을 잘못 찾아온 걸 깨닫고 황급히 떠난다. 그러나 해담의 선풍기 수난사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해담 역시 익숙한 방식대로 삶을 꾸려 간다. 늘 놓던 자리에 가방을 놓고 익숙한 가구 배치를 고수하는 건 해담이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게 만들어 놓은 생활 방식일 뿐이다. 그것을 안쓰러워하면서 부탁하지도 않은 도움을 자청하는 것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의 어떤 무신경함을 보여줄 뿐이다. 2019년 베스트셀러였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명백하게 존재하는 차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신체적 조건을 장애로 구성해내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은 장애에 대한 전형적인 재현을 피하면서 비장애인 중심 세계의 편협함에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손희정]
(출처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