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지하 어시장 낮인데도 동굴같이 어두컴컴한 시장엔 촉수낮은 알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무 도마위에서 손질되고 있는 생선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한 중년여자. 비늘을 긁어내고 지느러미를 잘라내는 민첩한 사내의 손동작. 갈라진 나무 틈새로 생선의 핏물이 금새 스며든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긁어내는데 부스러기 하나가 그녀가 입고있는 흰색 상의에 튄다. 금새 붉게 번지는 핏물. 시장바닥은 생선궤짝에서 흘러내린 진물들로 질퍽하게 젖어있고. 죽은 생선들은 불빛을 받아 번들거린다. 슬리퍼를 신은 ㅇ여사의 흰 양말엔 순식간에 시커먼 진물이 번져든다. … 더운 한여름. 오후 한낮의 주택가 골목길. 걸음을 재촉하는 그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엔 오후 한낮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힘겹게 골목길을 걸어 올라 가던 여자는 잠시 몽중한에 빠지지만 덕분에 수박을 잃는다. … 오래된 어느 한옥내부. 지친 몸으로 시장에서 돌아온 그녀.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시커멓게 진물이 말라붙은 양말을 벗어던지는데 고약스럽고 심통맞은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따라붙는다. 음식준비를 서두르는 그녀. 부엌에서 여러 가지 야채를 분주하게 다듬을때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어머니의 간섭. 늦은 저녁. 부엌찜통에선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고, 마당 평상에 앉아 마늘을 까다가 깜빡 잠든 그녀. 풍경 소리와 함께 스르륵 열리는 방문. 졸고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아버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 밤 12시 삐걱이는 마루 위에 모여 앉은 가족들. 열심히 제사를 지내는 풍경이 이어진다. 제사상 위에는 그녀가 힘들게 준비한 음식들이 격식있게 놓여있고, 그 너머엔 꼬장꼬장한 외모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영정사진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문턱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는 그녀. 피곤에 지친 그녀의 손엔 쟁반하나가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