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연출의도. “나는 그곳에서 다시 태어났다”알고 지내던 신부님으로부터 상계동 철거촌의 촬영을 부탁받았다. 재판 자료로 쓰기 위해 가재도구가 파손된 걸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6년 10월. 난 그곳에서 관념적으로만 알았던 '사회구조적 모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현실로 느꼈다. 포크레인을 막으려고 몸을 날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곳의 하루하루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뤄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천막마저 빼앗아가 비닐을 덮고 잘 때도 있었지만, 나는 상계동에서 미처 몰랐던 '세상의 절반'을 깨달았던 것 같다. 이후 공동체가 내부 분열을 겪으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고, 이후 만든 [행당동 사람들]은 이상적 공동체의 한 모습이었다고 생각된다.
상계동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곳이며, 지금 [상계동 올림픽, 그후]를 작업 중이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각 언론들은 역사적인 일인양 떠들어댔고 그 영향으로 국민들도 들떠있었다. 그러나 그 외곽에는 그로 인한 소외된 우리 이웃이 있었다.올림픽에 오는 외국손님들에게 가난한 서울의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도시미학적(?) 관점에서 진행된 달동네 재개발사업. 이 때문에 상계동 주민들을 비롯한 서울 200여곳의 달동네 세입자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몇십년씩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주민들은 최소한의 삶의 공간을 보장하라고 외쳤지만 정부는 철거깡패와 포크레인, 그리고 전투경찰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그들을 구속하고 집을 철거해 버렸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고 했지만, 언론마저 침묵해버렸던 독재의 시대.
카메라는 철거민과 함께 3년을 생활하며 그들의 투쟁, 그들의 아픔과 희망을 기록했다. 때로는 카메라를 직접 철거민의 손에 쥐게 하여 당사자인 자기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독립영화권 작품영역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다큐멘터리로서는 처음으로 야마가타 영화제에 초정될 만큰 외국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