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무거운 철제 셔터를 삐걱거리며 힘겹게 들어올리듯이, 늘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길병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원하는 것을 구해줄 수 있다는. 하지만 통화는 중간에 갑작기 끊어져 버리고, 짐을 나르던 길병은 길거리에 서 있는 미친 여인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동네 불량스러운 아이들에게 쫓겨 집으로 도망 온 길병에게 미친 어머니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모성으로부터 거부당한 아이는 결국 보호받기를 포기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길병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고통스런 어린시절의 기억들. 어둡고 축축한 낯선 공간, 그곳에서 길병의 일탈을 도와 줄 은밀한 거래가 시작되지만 결국 절망하고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죽음으로 치닫는다.
연출의도. 여기에 나오는 이미지는 주인공의 현실과 가상세계의 양쪽에 존재하는 것이다. 갇혀 있지만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우려감 때문에 도피를 꿈꾸지만, 그런 그에게는 꿈마저도 더 이상 근사한 것이 아닌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지배받는 초라한 것일 뿐이다. 찌든 삶의 냄새가 여전히 배어 있는 그곳은, 넘쳐나고 있는 싸구려 이미지들이 꿈을 잠식해버린 전염된 공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는 세상. 황폐한 도시의 정서에 전염되어 가는 사람의 모습을 길병이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