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등급정보
(1)
심의일자 1990-08-17
심의번호 90-257
관람등급 연소자불가
상영시간 100분
개봉일자 1990-11-10
다른제목
새떼(시나리오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시나리오명)
개봉극장
서울(서울)
노트
■“운동권 지식인의 고뇌가 수묵화 같은 담백한 회화적 구도 속에 그려진 박광수 감독의 대표작”
지식인 중심의 관념적 운동이 실패하고 극심한 탄압이 시작되자 지식인 운동가들이 새떼처럼 흩어져버리는 상황을 그린 최인석의 소설 『새떼』(1988)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박광수의 두 번째 작품 <그들도 우리처럼>은 민중과 지식인의 관계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박광수의 고민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 캐릭터인 지식인 남성 주체는 기영을 통해 드러난다. 기영은 팜플렛을 통해 “결국 패배한 것은 민중이 아니라 지식인일”것이라며 자신을 찾아온 후배에게 탄광촌으로 찾아든 이유를 ‘잘못된 관념’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민중과 괴리된 운동이 아니라 민중(‘그들’)과 지식인(‘우리’)이 하나가 된 운동, 민중을 중심으로 한 운동을 기영은 고민한다. 이런 주제의식과 지식인 남성 주체의 시점-<베를린 리포트>에서의 성민(안성기),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의 안성기-은 이후 박광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기영의 고민과 좌절은 TV의 시위장면에서 기영 자신이 등장하며 플래시백이 구성되는 장면에서 독특하게 드러난다. 기영의 플래시백 장면은 TV 화면처럼 표현되면서 그의 역사는 공적인 역사와 맞물리며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닌 사회적이고 일반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당시 리뷰는 뛰어난 주제의식을 리얼리즘으로 풀어낸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여전히 민중과의 고리가 허약하며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못 벗어난다는 평가가 공존했다. 그러나 모두들 이 영화가 황폐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쓰러져가는 광산촌을 수묵화에 가까울 만큼 담백하게 그려내며 미학적으로 성공을 이뤄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잡혀가는 영숙의 시선으로 탄광촌 사람들의 얼굴을 트랙킹으로 훑는 장면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민중, 기층 여성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마지막에 가서야 지식인 기영의 시선을 벗어나 영숙과 탄광촌 사람들만이 남는다. 영숙과 탄광촌 사람들의 얼굴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는 실재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는 곧 희망을 이야기하며 떠나는 지식인 기영의 내레이션으로 봉합된다.
기영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어떻게 해서든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그리고 관념적인 지식인상을 버리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대사. "오늘을 무어라 부르든 간에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사라질 것은 오늘의 어둠에 절망하지만 찬란한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은 오늘의 어둠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들’과 ‘우리’는 진정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떠나는 기영과 잡혀가는 영숙, 남아있는 탄광촌 사람들 사이에서 그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제작후일담
- 박광수 감독은 당시 <영화예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출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탄광촌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사회의 어려운 경제문제, 소비풍토, 사회지식인들의 운동, 악덕기업자들의 횡포 등
, 사실적인 면에 신경을 써서, 탄광촌 사람들의 사랑과 절망 그리고 희망을 담고자 합니다.”
- 박광수는 실제 인물과 자기 자신을 뒤섞어 그의 대표적 인물인 지식인 남성주체에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에서의 지식인 기영은 문학평론가 김사인을 모델로 놓고 여러 가지 성격을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 박광수 감독은 당시 14번의 시나리오 탈고와 4번의 현장미팅을 통해 탄광촌에 사는 광부, 진폐증 간호사, 광업사 사장 등 현장 민중들의 삶과 경험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했다고 한다.
- 당시 해발700m가 넘는 고한탄전지대에서 5톤가량의 석탄가루가 날려 분장을 할 필요가 없이 자연스럽게 탄광촌 분장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 비디오테이프 카피 “이 시대, 우리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
■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지금처럼 뚜렷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유행하고 신인류가 출현했다는 호들갑스러운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민주주의를 외치며 시대에 저항했던 ‘운동권들’은 갑자기 목표를 상실한 채 허둥댔다. <그들도 우리처럼>은 그 시대를 돌아보는 정직한 기록이자 절망 혹은 혼돈에 빠진 그들에게 보내는 가슴 벅찬 위로의 영화였다. 영화가 시대의 거울이라면 그 전면에 이 영화를 세워둘 수밖에 없다.(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천국』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