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아나는 18세기 북 오스트리아의 스티리아 지방의 산골 마을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신혼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매일의 고된 노동과 시어머니의 자잘한 간섭 그리고 신혼 첫날밤부터 시작된 남편의 무관심이 이어지면서, 아나의 일상은 점점 불행의 나락으로 침잠해 간다. <굿나잇 마미>(2014)의 베로니카 프란츠, 세버린 피알라 듀오의 신작 <데블스 배스>는 17, 18세기 독일어권 지역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대리 자살에 대한 역사 연구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근대의 여명이 아직 그 빛을 밝히지 않은 산간 마을, 아나의 정신적 삶이 종교적 신념과 집단 사회의 관습, 출산과 가사의 압박, 가족의 몰이해 앞에 천천히 그러나 완전하게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극사실주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구현되는 세밀한 이미지들로 담아낸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하기도 한 아냐 플라슈크의 얼굴은 마음의 심연 밑바닥으로부터 끌어 올라온 아그네스의 불안과 공포를 경이롭게 보여준다. (박진형)
(출처 :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