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극영화 중학생이상 미국,영국 160분 1962-11-03 (개봉)
제작사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Horizon Pictures
감독
데이빗 린
출연
알렉 기네스 , 윌리암 홀덴 , 잭 호킨스 , 하야카와 세슈 , 제임스 도날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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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43년, 태국의 정글 속에 자리잡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 송치되어 온 영국 육군 공병대의 니콜슨 대령(알렉 기네스)은 수용소장인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셋슈)의 비인간적인 처사와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며 장교들까지 강제 노역을 시키려는 명령에 당당한 태도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다. 독방에 감금되면서까지 자기 휘하 공병대 장병들에 대한 처우 개선의 유리한 조건을 획득한 후, 니콜슨은 영국인이 일본인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계속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콰이강의 급류 위의 철도 교량 건설을 아예 자신이 작정하고 완성시키기로 한다.
한편, 수용소를 탈출하여 영국군에게 구출된 미국 해군인 시어즈(윌리엄 홀든)는 일개 사병에 불과한데도 소령 계급으로 위장한 것이 발각 당하면서, 영국군에게 의가사제대를 약속 받는 대신 특수부대를 안내하여 콰이강의 다리를 파괴하고자 포로수용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교량을 폭파하려던 이들의 계획은 물이 빠진 교량 아래에 드러난 도화선을 본 니콜슨에 의해 발각되면서 영국군 특수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난전(亂戰)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다리를 완성시켰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힌 니콜슨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결국 니콜슨이 보는 앞에서 시어즈는 일본군에게 사살되고, 특수부대원 조이스(제프리 혼)가 칼로 사이토를 죽이지만, 당황한 니콜슨이 조이스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일본군의 총을 맞고 조이스가 죽으면서 폭파 계획은 완전히 난장판이 된다. 일본의 군용열차가 교량을 향해서 달려오는 와중에 황망한 상태에 빠진 니콜슨 대령은 영국군 특수부대의 대장인 워든 중령(잭 호킨스)이 쏜 박격포 파편에 맞고 비틀거리다 폭파장치에 쓰러져 죽고, 교량 아래에 묻은 폭탄은 마침내 폭파된다. 일본군의 군용 열차는 강바닥으로 추락하고 콰이강의 급류는 열차를 삼켜버린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영국군 의무장교 클립튼(제임스 도널드)는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 하며 뇌까린다.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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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 :
    데이빗 린 (​데이비드 린, David Lean)
  • 출연 :
    알렉 기네스 윌리암 홀덴 잭 호킨스 하야카와 세슈 제임스 도날드
스태프
  • 각본
    : 칼 포먼 마이클 윌슨
  • 촬영
    : 잭 힐드야드
  • 편집
    : 피터 테일러 조지 히블리
  • 음악
    : 말콤 아놀드
  • 미술
    : 도날드 M. 어쉬톤
  • 사운드(음향)
    : 말콤 아놀드
참여사
  • 제작사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Horizon Pictures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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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등급정보
(1) 심의일자 1981-04-02  관람등급 연소자관람가  상영시간 160분  개봉일자 1981-04-10
(2) 심의일자 1962-10-30  심의번호 제5332호  관람등급 중학생이상  상영시간 160분  개봉일자 1962-11-03 (피카디리극장)
다른제목
콰이강의 다리(극장 개봉)
콰이江의 다리(다른 제목)
개봉극장
國際劇場
노트
프랑스 소설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생포되어 2년 간의 포로생활을 했던 피에르 불(Pierre Boulle)의 소설 <콰이강의 다리 Le Pont de la Rivière Kwaï(1952)>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과 영국의 프로덕션 팀이 스리랑카와 버마 등지의 현지 로케이션을 거쳐 2년 반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1957년 10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 개봉하여 양국에서 그 해 최대의 수익을 기록하며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본래 이 영화는 195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총 7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으나, 당시 각본상을 수상한 피에르 불이 실제로 각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실제 각본가가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으로 이른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칼 포어먼 (Carl Foreman)과 마이클 윌슨(Michael Wilson)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69년에 수상이 취소되었다. 한편 무성영화 시대인 1910년대부터 이국적인 유혹자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며 할리우드의 스타로 군림했으나 발성영화의 도래 이후 영어 억양 문제로 한동안 활동하지 못하던 일본인 배우 하야카와 셋슈(雪洲早川)의 컴백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서울 피카디리극장과 대구 아카데미극장, 부산 현대극장에서 1962년 11월 3일에 동시 개봉하였는데, 피카디리극장의 경우 11월 3일부터 12월 24일까지 장기상영되어 그 해의 화제작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듬해인 1963년 1월 명동극장을 시작으로 2월 아데네극장, 3월 동대문극장, 4월 우미관, 5월 봉래극장, 6월 중부극장에서 거의 매일 연속으로 상영되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 석지훈(영화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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