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타마라’라는 할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감독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향수, 감독이 아프던 날 밤 옆방에서 들려오던 할머니 친구들의 모임에서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 장 속에 숨겨두었던 설익은 바나나. 어린 시절 막연히 따듯하게 남아있던 감독의 기억은 할머니와 1년에 한번씩 모임을 갖던 친구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재구성된다. <기억의 잔상>은 할머니를 더 잘 알고 싶었던 손녀의 단순한 기록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현재의 젊은 세대와 너무나도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가진 이전 세대의 기록으로 확장되어 간다. 소비에트 연방으로 편입되고,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희망에 찬 청년기를 보냈던 할머니 세대에게 아르메니아에게 주어진 독립국가로서의 자주성과 자본주의의 자유로움은 그저 강요된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할머니를 안다는 것은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의해 강요된 편견을 넘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기회로 자리잡는다. 고풍스러운 색감으로 촬영된 인터뷰들이 마치 오래 된 초상화를 보는 듯 아련한 인상을 남긴다. (조영정)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