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2007년 6월30일,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계산원과 판매원들이 월드컵 홈에버 매장을 점거했다.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했던 여성들이 주도한 유통업 최초의 매장점거 농성이었다. 예정된 이박이일의 점거농성은 21일간 이어진다. 이들은 이 매장점거농성에서 일터와 가사일로부터 벗어난 일시적인 자유와 즐거움을 경험한다. 이들의 투쟁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이라는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510일간 진행된다.
연출의도. 일하는 여성에게 노동자라는 이름이 아직도 어색할 정도로 여성에게는 어머니나 주부라는 말이 더 친근하다. 집 밖에서는 아줌마로 불리는 여성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가 여전히 가족 안에만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은 일과 가족을 양립해야한다. 게다가 일터에서는 불안정한 고용과 차별에 직면했고,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권을 위해서 투쟁을 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지 않는 여성들의 일과 가족의 문제.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여성노동자들의 파업과정을 기록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영화제 소개글. 직장과 집을 오가며 직장 노동과 가사 노동을 하던 그녀들은 왜 생애 처음으로 외박을 하게 되었을까? 그 예사롭지 않은 외박이 그녀들에게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외박>은 2007년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홈에버 노조 파업 투쟁의 기록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시행을 하루 앞둔 2007년 6월 30일. 이 법안을 회피하기 위한 사측의 집단 계약 해지에 저항하여 5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홈에버 상암 월드컵점 매장을 점거한다. 다큐멘터리는 정확히 그날 밤 매장 계산대 사이사이 그리고 그 뒤로 누워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길게, 천천히 포착하며 시작한다. <외박>은 무려 510일이나 지속된 지난했던 투쟁의 과정을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본인 스스로에 의해서나, 가사를 돕기 위해 일을 하는 ‘아줌마’로 정체화 되던 그녀들은 그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을 노동자로 주체화하고 현장에서 뜨거운 동지애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또한 그 투쟁의 표면 아래에서, 투쟁 사이사이에서 벌어지는 것들, 그러니까 TV 뉴스가 보여주지 않는 순간순간을 주의 깊게 포착한다. 그녀들은 생애 처음으로 외박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유행가를 개사하고 동작을 익히고 흐드러진 춤도 춘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감독은 그녀들이 투쟁의 공간을 자신들의 틀에 박힌 삶과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주의 공간으로 전화시켰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처음 점거농성을 시작할 때 노동자들이 순수하게 예측한 바와는 달리, 장기 외박으로 이어진 외롭고 고통스런 투쟁의 여정을 통해서 <외박>은 진보진영과 노동운동계 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남근중심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영화의 중간, 일하는 내내 서서 웃음으로 ‘고객’을 맞이하던 매장에 엉덩이와 등을 붙인 채, 강제해산을 위해 투입된 경찰들에게 온 힘을 다해 저항하다 끝내는 끌려 나가는 여성노동자들의 생생한 표정과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을 전해온다. (권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