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은 단순히 누군가가 밥벌이를 하는 곳만은 아니다. 어떤 누군가에겐 그 사람의 특정 생애주기를 함께하며 거의 모든 종류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하는 삶의 터전이고, 그렇게 모인 개개인들이 특정 목적하에 일정한 결속의 형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작은 사회이다. 그런 공간이 전염병 시대에 집단 감염을 매개하는 위험도 높은 공간으로 전락할 것이란 사실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사무실’이란 공간은 급격하게 위상 변화를 겪는 중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이들의 커뮤니티 경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측되는 것처럼, 많은 직장인들도 재택근무, 유연근무, 시차제 출퇴근, 단축근무 등의 근무 형태가 정착되면서 커뮤니티 경험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급격한 변화에는 문화 지체 현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사무실이 일하기엔 더 편할 것 같았지만, 출근해서 동료들의 빈자리를 보고 있노라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이따금씩 수신자를 찾지 못해 갈 곳을 잃고 끝내 조용히 사그라지는 전화벨소리, 하루가 멀다 하고 줄기차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코로나 검사 소식 등을 듣고 있다 보면 사무실은 이제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불충분하고 불안정하며 조금은 심심한 공간으로 여겨져버린다. 지금의 사무실은, 혼란을 주는 공간이다.
이번 기획전은 코로나 시대에 급격한 위상 변화를 겪고 있는 ‘사무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에게 사무실은 어떤 공간이었는가를 떠올려보기 위해 사무실과 직장인을 소재로 제작된 한국영화 12편을 끄집어내 보았다. 오늘날 장르화된 ‘오피스물’이라고 단정 짓기엔 애매하지만 등장인물의 삶과, 인물들이 연루되는 주요 사건에 회사 또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서양의 근대 문물이 본격적인 생활양식으로 이식되기 시작했던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제작된 영화들과 1970년 완공된 서울의 대표적인 오피스빌딩인 삼일빌딩을 주요 로케이션으로 삼은 70년대 영화, IMF가 오기 직전 경제적 활황 시기였던 1980년 말부터 1990년대 초중반 사이에 제작된 영화들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유한다.
(시네마테크KOFA 9월 기획전 ‘어느 사무실에서 생긴 일’ 링크: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61)
이중 온라인에서는 <여사장>, <삼등과장>, <월급쟁이>를 비롯한 1961년 전후에 제작된 영화 6편을 선보인다. 올해 한국영상자료원의 기관 키워드이기도 한 ‘1961년’을 전후로 하여, 사무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영화들이 있었는지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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