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PICK(계속)

2020-03-13 ~ 계속
봉준호 감독의 PICK(계속)

시네마테크KOFA x KMDb VOD

"이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봉준호 감독이 좋아하는 한국영화 8편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은 클로드 샤브롤, 알프레드 히치콕과 함께 <하녀>를 만든 한국의 거장 김기영의 영향이 컸다”라고 밝힌 봉준호 감독의 김기영 감독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후에도 계속 되었다. 김기영 감독과 <하녀>를 “1960년대 거장이다. 이 영화를 강하게 추천한다”라고 언급하였는데, <하녀>외에도 봉준호 감독이 좋아하는 한국영화들은 어떤 작품들일까? 
이 궁금증은 2019년 프랑스 리옹에서 개최된 ‘뤼미에르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 특별전'이 열리면서 봉준호 감독이 프랑스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한국영화 10편의 리스트로 어느 정도 풀렸는데, 이 영화들 중 7편과 <하녀>를 온라인으로 감상해보면 어떨까한다.   


상영작품
  • 01. 하녀 김기영, 1960
    “하녀는 범죄 멜로드라마고 여성들의 섹슈얼한 욕망을 다루지만 동시에 아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그 당시 한국사회와 계급이 변해가는 상황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영화라고 생각이 들어요.”(봉준호, 더 크라이테리언 채널 2013년 인터뷰에서)
    금천에서 있었던 실화를 토대로 중산층 가정에 하녀가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들을 다룬 이 영화는 “중기 김기영 영화의 대표작”으로 이후 <화녀>(1972), <화녀 82>(1982)로 이어진다. 계단이 있는 이층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주인집 남자를 소유하고 싶은 하녀의 욕망이 그로테스크하게 연출된 한국고전영화 걸작 중 걸작이다. 
    +장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두 자녀가 실놀이를 하는 배경으로 ‘김기영 오리지날씨나리오 下女 김기영푸로덕슌 제작’타이틀 자막이 흐르는데, 타이틀‘下女’에서 피가 흐르는 기분 (안성기 선생의 부친 안화영 선생이 제작담당을 했고, 이 오프닝 자막은 봉준호 감독의 부친 봉상균 선생이 디자인했다고), 아버지가 만든 라이스 카레(노란 밥)를 엄마에게 갖다 주는 장면, 손가락으로 카레 맛을 보고 흐뭇해하면서 입술을 혀로 핥는 소년 안성기 배우, 너무 귀엽습니다!
  • 02. 충녀 김기영, 1972
    “‘계단’하면 한국영화사의 마스터인 김기영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다. <하녀>와 <충녀>를 보면서 김기영 감독의 계단의 기운을 받으려 했다”(봉준호)
    명보극장 사장 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영화는 역시 여성의 강렬한 욕망과 가부장적 가정의 위선을 폭로하는 문제작으로, 윤여정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와 ‘계단’, ‘쥐’등 김기영 특유의 스타일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이다. 
    +장면:(윤여정의 안마 신에 대해)“온갖 괴이한 디테일이 난무하지만 이거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압권입니다. 윤여정 선생님이 정말 하라니까 했지만 자기도 하면서 너무 이상했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직접 김기영 감독님이 시범을 보이셨다고, 저거를.” (봉준호, <충녀> DVD 음성해설에서)
  • 03. 파계 김기영, 1974
    고은 원작의 동명 중편소설을 ‘김기영 스타일’로 소화한 불교영화이다. 현실 정치와 종교적 질문을 접목시킨 이 영화는 외설과 종교 모독 등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나 문공부 우수영화로 선정되어 여러 해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하였다. 김기영의 페르소나 이화시의 데뷔작이다. 
    +장면: 절에는 불경 소리가 아니라 죽비 소리만 있다거나, 모든 중은 반말을 써야한다고 하면서 서로 “..은 ..다”로 말하고, ‘배고픈 거 보다 더 치사한 것은 없다’라며 음식을 훔쳐 먹는 동자승, “어디서 왔지?”하는 물음에 “워...워...”하면서 개짓는 소리를 하는 승, “하늘의 별은 몇 개냐?”라는 노승의 질문에 “먼저 수학공식으로 사용하면 지구의 질량이 나온다. 5.97 곱하기 10의 24승, 여기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로 방정식을 만들면....”라고 머리 굴리고 있는 승 등 영화 전편이 기가 찰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까까머리의 이화시와 임예진 배우의 하얀 얼굴!     
  • 04. 짝코 임권택, 1980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개인사에 얽힌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영화로 빨치산 잔류공비 짝코와 그를 평생 뒤쫓는 송기열의 쫓고 쫓기는 두 인물을 다루고 있다. 좌우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희생된 평범한 두 인간의 비극적인 인간사가 정교하게 구축된 플래시백으로 연출되어 있다. 
    +장면: 빨치산 시절 짝코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방희와 탈주하는 장면, 김영동의 음악이 흐르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방희를 안은 짝코가 수풀을 헤치고 뛰고 있다. 왜 이리 서글퍼질까? 마지막 장면, 역시나 김영동의 음악이 흐르면서 늙은 몸의 송기열은 한참 잘 나갔을 때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의 어깨에 기대어 죽어가는 짝코,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고 싶었는데…….”기차는 계속 달리고 우리는 분단의 비극이 아직도 지속되는 것을 애타한다.  
  • 05. 꼬방동네 사람들 배창호, 1982
    배창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데뷔작으로 80년대 초반 도시로 올라와 빈민촌에서 모여 살던 가난한 이들의 서글픈 삶을 따뜻하게 그린 영화이다. 당시 사전 시나리오 심의와 완성된 필름 검열이라는 이중 검열제도로 인해 수차례의 수정을 거친 이 영화는 소외된 도시 빈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장면: 영화 초반부 꼬방동네 사람들이 화장실 줄을 서는데, 당시 용어로 흰 반팔‘런닝구’를 입고 담배를 물고 신문지를 쥐고 서있는 배창호 감독님, 그리고 마지막 장면, 김영동의 음악이 흐르면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검은 장갑 명숙, 그녀를 녹색 택시를 타고 뒤따르는 주석, 결국 택시에서 나와 명숙의 장갑을 벗기자 한 짝의 장갑이 땅에 떨어지고 김보연이 부르는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아!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주르륵……. 
     
  • 06. 바보선언 이장호, 1983
    이장호 감독 본인이 연기한 한 영화감독이 옥상에서 투신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 단 한편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있었으면 그 영광을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에로 돌려야 할 것” (정성일 평론가)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과감한 영화이다. 가짜 여대생 혜영과 바보 동칠, 자동차 정비공 육덕의 삼인이 벌이는 희괴한 해프닝은 검열의 압박으로 인해 시나리오, 콘티도 없이 즉흥적으로 촬영이 되어야 했던 당시의 영화제작현장을 반영하고 있다. “바보가 되지 않으면 즐거울 수 없던 시대에 오히려 빛나는 유희정신” (김봉석 평론가)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장면: 오프닝 장면- 줄줄이 지어진 기와집 골목으로 절름거리며 걸어 나오는 바보 동칠이 (이런 기와집 골목은 이제 없을 거다! 그리고 파마머리의 너무나 젊은 김명곤 배우), 사각 팬츠에 구멍 난 흰색 ‘런닝구’, 장발에 흰 양말을 신고 바들바들 떨면서 옥상에 서있는 이장호 감독이 갑작스럽게 국민체조를 하시더니 뛰어 내리신다. '나, 오시마 나기사 영화를 보고 있니?'  
  • 07. 개그맨 이명세, 1988
    스스로 천재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삼류 카바레의 개그맨 이종세(안성기)와 변두리 이발소 주인 문도석(배창호), 건달을 피해 극장으로 피신하여 이종세를 만나게 된 오선영(황신혜)의 탈주극으로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이자 배창호 감독의 배우 데뷔작이다.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들에게 외면당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주목 받는 이 영화는 사회적 의식이 뚜렷한 리얼리즘 영화가 대세였던 80년대 후반 한없는 상상력과 본인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감독 데뷔작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사에 기록될만한 영화이다.    
    +장면: 만화방에서 소재 찾으러 온 이종세에게 문도석이 당시 용어로‘하드’를 빨면서 <유리의 성>, <가고파> 등 만화평을 하는 장면, 하와이 티셔츠에 하얀 테 선글라스를 쓰고 은행에 가서 “비상벨이 울리면 경찰이 몇 분 만에 오죠? 지금 현찰이 얼마나 있죠” 묻는 문도석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뜨악한 표정의 은행원(현 태흥영화사 방충식 사장님), ‘수지큐’에 맞춰 세 명이 춤추는 장면, 너무나 명장면이 많은 영화이다. 그러나 배창호 감독님의 연기가 가장 놀랍다!
  • 08.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 1990
    1988년 <성공시대>로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장선우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리얼리즘의 미학으로부터 새로운 영화형식과 내용을 추구해 보고자했던”(장선우) 영화이다.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출몰하고, 분노와 좌절이 해학과 능청이 뒤엉키고, 가난하지만, 화려하고,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깊은 헐벗음이 써늘하게 느껴지는 그런 모습으로 이 작품을 그리려한다”라는 장선우 감독의 연출 의도처럼 영화는 경기도의 외곽에 있는 한적한 우묵배미의 치마 공장에 취직한 미싱공 일도(박중훈)와 옆자리에 앉은 민공례(최명길)의 격정적인 사랑 외에도 치마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인들, 일도의 아내와 이웃들 등 주변부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 장면: 민공례가 일도와 처음으로 여관에 간 날 민공례가 양말을 빨아 널어놓는 장면과 마지막에 둘이 재회하여 일도가 자신의 민공례에 대한‘천년만년 사랑’을 읊으며 비닐하우스 밖으로 뛰어 도망가는 그녀를 향해 간절하게“다시 연락해! 꼭!” 외치는 ‘복잡한 거 모르는’ 단순한 일도의 뒷모습. 아! 이 여자와 이 남자, 어떻게 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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