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배우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긴밀하다. 감독은 배우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그리고, 배우는 그러한 감독의 분신이 되어 감독이 구상한 세계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한다. 그러하기에 감독의 분신을 일컫는 ‘페르소나’라는 언어에는 감독과 배우를 매개하는 독특한 성격이 자리한다. 그런데 여기, 누군가의 페르소나에서 출발해 스스로 감독이 되기를 자처한 이들이 있다.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신상옥 감독의 <코리아>(1954)에 출연한 후 본격적으로 신상옥 감독과 신필름 영화의 전문 배우로 활동하며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당대 최고 스타 최은희는 1965년 <민며느리>를 통해 박남옥, 홍은원 감독을 잇는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데뷔했다.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배우로 <현상붙은 사나이>(김묵, 1961), <다이얼 112를 돌려라>(이만희, 1962),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정창화, 1968) 등에서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마스크와 액션 연기로 독보적인 인상을 남겼던 박노식은 1971년, <인간 사표를 써라>에서 직접 메가폰을 잡으며 감독으로 데뷔하였고, <쟉크를 채워라>(1972),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을 포함해 총 14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954년 <탁류>(이만홍)로 데뷔하여 1960년대 최고의 주가를 달렸던 배우 최무룡 역시 <피어린 구월산>(1965)로 감독 데뷔한 후 <나운규 일생>(1966), <서울은 만원이다>(1967) 등의 작품을 연출했으며, 1964년 아카데미 극장에서 개봉한 <맨발의 청춘>(김기덕)으로 청춘영화의 붐을 일으키며 196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로 군림한 배우 신성일 역시 <연애교실>(1971),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등 총 4편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였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대표했던 배우들-최은희, 박노식, 최무룡, 신성일.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일상이었던 이들이 카메라 뒤에 서서 스스로 창조한 그들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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