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스크린]사랑 사랑 내 사랑: <춘향뎐>(임권택, 2000) 월간스크린 ㉘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9-04-19조회 7,864
춘향뎐 스틸

2000년 | 태흥영화사

감독: 임권택 | 각본: 김명곤 강혜연 | 제작: 이태원 | 촬영: 정일성 | 미술: 민언옥 | 음악: 김정길 | 판소리: 조상현

CAST 이효정: 성춘향 | 이몽룡: 조승우 | 변학도: 이정헌 | 월매: 김성녀 | 방자: 김학용 | 향단: 이혜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던 <춘향뎐>(2000)은 임권택 감독의 97번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판소리와 영화를 일치시키는, 매우 실험적인 영화였죠. 고전을 새로운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 <춘향뎐>. 그렇다면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감정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춘향뎐>은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지요. 젊은 두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깊이 함몰되는 과정과, 춘향이의 절절한 마음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또 한 가지는 당시 민중들의 정서예요. 임진왜란 이후 신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어요. 기생의 딸로서 양반가의 자식과 사랑을 이루려는 춘향의 의지를 통해 당시 민중의 신분 상승 욕구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1993) 때의 경험을 살려 판소리를 영화에 입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니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소리와 영화를 번갈아 반복한다는 것이 사실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죠.” 그래서일까요? 임권택 감독은 그때까지 만든 97편의 영화들 중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9년 5~6월에 찍은 필름을 모두 폐기해야 했는데요, 영상과 판소리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7월이 되어서야 겨우 윤곽을 잡을 수 있었고, 7개월의 현장을 거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1999년 9월 민속촌 촬영 현장이 공개되었는데요,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효정)은 급창들에 의해 댓돌 아래로 끌어내려집니다. 후다닥 들이닥쳐 춘향을 끌어내리는 장면이기에 치맛자락이 찢어지기도 했는데요, 좀 더 빨리 끌어내리기를 바라는 임권택 감독의 요구에 테이크가 반복되었습니다.
 
 

드디어 춘향이 형틀에 앉았습니다. 이후 장면은 현장에 국창 조상현의 ‘춘향가’ 중 ‘십장가’ 대목을 틀어놓고 촬영이 이뤄졌습니다. 십장은 형틀에 묶여 집장사령에 의해 10대의 매를 맞는 것이지요.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죄인데요, 이때 판소리가 흐릅니다. “집장사령 거동을 보아라. 별형장 한아름 덤쑥 안아다가 동틀 밑에다가 좌르르르르르. 형장을 고르는구나. 이 놈도 잡고 느끈능청, 저 놈도 잡고 느끈능청, 그 중 손잡이 좋은 놈 골라잡고, 꼼짝 마라, 뼈 부서질라, 매우 쳐라!” 대사 구절에 정확히 액션이 일치해야 했는데, 특히 “좌르르르르르” 부분에서 형장이 쏟아져야 했고 여러 번의 리허설 끝에 촬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대사와 판소리가 충돌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 선명하게 표현됐다”며 만족감을 표현했습니다.
 
 

집장사령이 춘향에게 뒷속말 하는 장면을 임권택 감독이 직접 시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촬영분은 없지만 현장을 방문한 조승우가 형틀에 묶인 이효정에게 간식을 먹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로 데뷔 하는 조승우는 <춘향뎐> 현장이 “처음에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서 답답”했지만, “차츰 연극과 다른 감정을 찾아냈고 나름의 매력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 한편 16세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으며 역시 첫 영화를 찍은 이효정은 ““춘향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저 정숙하고 얌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촬영에 들어가선 훨씬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네요. 한편 임권택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애를 먹었어요. 저도 흔들렸지요. 연기뿐만 아니라 판소리 리듬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꾸중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소질도 있고 갈수록 자신들의 역할에 적응했어요.”
 
월매 역은 베테랑 배우이자 소리꾼인 김성녀가 맡았습니다. 마당극 <변사또뎐>에서 남장을 하고 몽룡 역을 맡았죠.
 
 

방자(김학용)와 춘향과 향단(이혜은)입니다. 김학용은 국립 창극단에서 방자 역을 단골로 연기한 배우입니다. 이혜은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파 배우죠.

 

처음 변학도 역에 캐스팅 되었던 배우는 중견배우 유인촌이었지만 촬영이 늦어지면서 스케줄 조절이 어려워졌죠. 그래서 캐스팅 된 배우는 당시 서른 살이었던 이정헌이었습니다. <기막힌 사내들>(장진, 1998)로 데뷔한 서울예전 연극과 출신 배우인데요, 우리에겐 <실미도>(강우석, 2003)의 박 중사로 익숙한 배우죠.
 


이날 가장 힘든 신은 곤장 맞은 춘향을 방자가 업고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뒤를 월매와 향단이 울며 뒤따르는데요, 화면의 심도가 깊어 동헌 초입부터 끝까지 한 눈에 보이는 터라 쉽사리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방자 역의 김학용 배우가 많이 고생했죠.
 
 
나들이 하기 좋은 가을 날, 민속촌은 관광객과 소풍을 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사인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죠.
 
 

임권택 감독은 현장에서 특유의 느린 목소리로 “레디, 고!”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판소리와 액션을 일치시키기 위해 작은 부분도 꼼꼼히 챙겼습니다. “영화의 큰 틀은 조상현의 ‘춘향전’ 창본입니다. 대략 4시간 35분 길이인데 이 가운데 영화에서 다룬 부분은 22퍼센트 정도예요. 영화에서 판소리가 차지하는 부분은 40퍼센트 정도고요. 현장 콘티를 짜는 작업은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판소리를 초 단위로 세분화했고 이에 따라 영상의 길이도 정확하게 계산했어요. 이렇게 해도 나중에 편집할때 보면 길이와 리듬이 맞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더구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춘향뎐>은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이 14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였습니다. 1979년 <신궁>에서 시작해서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6) <아다다>(1987)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등, 수많은 걸작에서 그는 임권택 감독의 카메라가 되어 주었죠.
 
 

<이재수의 난>(1999) 촬영을 마치고 여유가 생긴 박광수 감독이 현장을 찾았습니다. 대선배의 현장에서, 마치 연출부의 일원들처럼 주변의 관광객 통제를 직접 맡기도 했죠.
 
 

1980년대부터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과 역시 오랜 파트너인 정일성 촬영감독의 모습입니다.
 
 

쉬는 시간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는 이효정 배우의 모습입니다. 중학교 시절 CF 모델로 카메라와 인연을 맺었고 오디션을 통해 <춘향뎐>의 주인공이 되었죠.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연극영화과를 꿈꾸었는데요, 이후 법학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춘향뎐>은 이효정의 유일한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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