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스크린]결혼의 목적: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 2002) 월간스크린⑳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9-02-13조회 7,262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2년 | 싸이더스

감독: 유하 | 원작: 이만교 | 각본: 유하 | 제작: 차승재 | 촬영: 김영호 | 미술: 박일현 | 음악: 김준석

CAST
준영: 감우성 | 연희: 엄정화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2000년 이후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결혼’에 대해 던진 질문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결혼에 대한 여성의 판타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연희(엄정화)는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남자와의 관계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안 들킬 자신”이 있다는 그녀의 행동은 ‘일부일처제’라는 굳건한 제도를 가볍게 넘어서는 대담한 선택이기도 하고요.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두 번에 걸쳐 현장을 공개했습니다. 2002년 1월이었는데요, 촬영 막바지였죠. 첫 공개는 준영(감우성)의 옥탑방이었습니다. 그곳은 연희의 도움을 받아, 준영이 집에서 독립한 거처죠.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마치 신혼 부부처럼 알콩달콩 깨를 볶는데요, 공개된 장면은 함께 빨래를 하는 신이었습니다. 함께 발로 밟으며 빨래를 하는 두 사람에게 그 일은 노동보다는 유희였죠.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한 달에 열 번 선을 보고 조건 좋은 남자 만나면 그냥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여자. 결혼과 별개로 진정으로 마음을 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애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자. 엄정화가 설명하는 ‘연희’라는 캐릭터입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잘 해봐야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정도의 칭찬 정도 들을, 티 안 나는 캐릭터.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노총각 대학 강사. 첫 영화를 찍는 감우성이 이야기하는 ‘준영’이라는 캐릭터입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배경으로 한강이 보이는 이곳은 금호동의 어느 옥탑방입니다. 준영의 집이자 연희에겐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고요. 현장 공개 날은 꽤 쌀쌀한 1월 날씨였는데요, 두 사람은 카메라 밖에서도 마치 연인처럼 다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1993년 유하 감독의 첫 영화인 <바람 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한 엄정화는 다음 해 <마누라 죽이기>(강우석, 1994)에 출연한 후, 주로 가수와 TV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떠나 있었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8년 만의 컴백 작품인 셈인데요, 이 영화로 다시 충무로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었죠.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1월에 공개된 또 하나의 현장은 연희와 준영의 신혼 여행 신이었습니다. 연희는 결혼을 앞두고, 연인인 준영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이별 여행? ‘가짜 신혼여행’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낭만적인 여정이었죠. 그리고 그들은 해안의 폐선 위에서 함께 앉아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저녁 노을이 지겠죠.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유하 감독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시집을 영화화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로 데뷔했지만 한 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유 감독을 9년 만에 소환했는데요, 엄정화와 재회한 작품이기도 하죠.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유하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여자들이 결혼에 대해 느끼는 판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연희는 조건에 맞는 남자와 결혼하는데, 진짜 좋아하는 남자 역시 안 버리죠. 현실에선 그런 사람을 결혼 때문에 지우기 마련인데, 그 삶을 ‘부록’으로 사는 거예요. 여자에게도 연희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판타지가 있을 것 같아요.”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변산 반도의 전경입니다. 영화 속 계절 설정은 가을이지만, 촬영을 공개했던 날엔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현장에서 감우성은 ‘누나’인 엄정화가 추울까 싶어 많은 배려를 했습니다. 감우성은 준영이라는 인물이 “여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설정했다고 합니다. “준영은 연희가 미래에 좀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의 남자와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죠. 여자랑 섹스만 하려는 남자로 준영을 해석했다면 관객들도 느꼈을 거에요.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무작정 나쁜 놈으로만 보지 않은 것 같고요.”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잔뜩 흐린 날씨지만, 오히려 그런 느낌이 이날 촬영의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톤을 만들어냈습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원작인 이만교의 소설은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데요, 이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유하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친분이 있던 싸이더스의 차승대 대표에게 소설을 소개해주었는데요, 판권 구입에 도움을 주었고 각색 작업까지 하게 되었으며 결국엔 메가폰을 잡게 되었습니다. 원작에서 유하 감독이 관심을 가졌던 건 끌었던 ‘두 집 살림’을 하는 연희의 ‘불온함’이었다고 하네요.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이날 가짜 신혼 여행의 컨셉트는 ‘돈 없는 대학원생 부부’였는데요, 그러기에 호텔이 아닌 민박집에서 첫날 밤을 보내기로 하죠.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민박집 주인 아줌마와 두 배우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이날 현장엔 외국인 스태프가 한 명 있었습니다. 촬영부인 도노번 셀. 미국에서 온 그는 소주와 야채 호빵으로 향수를 달랬다고 하네요.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엄정화와 감우성은 이 영화에서 처음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신인 연기자 시절, TV 단막극인 <베스트극장>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죠. 엄정화는 “오랜만에 함께 출연하니까 서먹하고 그런 게 있었나 봐요.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베드신도 있고 그러니까요. 그래서 그런 장면 전엔 괜히 우성 씨 손도 잡고 있고 그랬어요.” 한편 유하 감독에 의하면, 베드 신 연출에 있어선 감독 자신보다는 감우성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배우들 사이의 친밀함이 이 영화의 힘든 장면들을 무난하게 이끌었던 셈이죠.

결혼은 미친짓이다 스틸 

이날은 이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었습니다. 모든 스태프들이 모여 해지는 변산반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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