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스크린]너의 목소리가 들려: <후아유>(최호, 2002) 월간스크린 ⑲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9-02-07조회 9,422
후아유

2002년 | 디엔딩닷컴

감독: 최호 | 원안: 강수현 | 각본: 김은정 오현리 최호 | 제작: 심보경 조동원 | 촬영: 박현철 | 미술: 이경진 오상만 | 음악: 방준석 서준호

CAST
지형태: 조승우 | 서인주: 이나영 | 김남훈: 이장원 | 최보영: 조은지 

1997년 <접속>(장윤현)은 ‘PC 통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뭇 다른 로맨스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익명의 남녀가 가상의 공간에서 채팅을 통해 소통하는 관계는, 캐릭터의 내면을 반영한 OST와 함께 어우러지며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샀죠. 5년 후에 나온 <후아유>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입니다. <접속>의 제작사인 명필름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죠. 여기서 <후아유>는 <접속>에서 연령대를 낮추고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채팅 게임 사이트 ‘후아유’. 상대방에게 누구냐고 묻는 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후아유
 
2001년 12월 추운 밤, <후아유>의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한강 둔치. 더욱 추운 곳이었죠. 주요 인물 네 명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었죠. 친구 사이인 형태(조승우)와 남훈(이장원), 인주(이나영)와 보영(조은지)은 우연히 노래방에서 만납니다. 형태는 인주와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네 사람은 함께 어울리다가 한강 둔치까지 오게 된 거죠. 

후아유 

술에 취한 인주는 나무를 올려다 보며 소리 칩니다. “야! 나무, 너…” 이나영 특유의 어떤 엉뚱한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장면입니다.

후아유 

한쪽에선 형태와 남훈과 보영이 있습니다. 연애사 때문에 힘든 보영은 울고 있고 남훈은 다독이고 있는 상황, 형태는 소리 칩니다. “인생 끝났냐? 뭐야 질질 짜고! 우는 여자 진짜 재수 없어!” 이 소리를 듣고 다가온 인주는 다소 격앙된 톤으로 형태에게 따지듯 말합니다. “넌 안 울어? 기분 더러울 때 안 울어?” 그리고 형태를 밀어버리죠.

후아유 

갑작스러운 인주의 일격에 쓰러진 형태입니다. 

후아유 

<후아유>는 단지 인주와 형태의 로맨스가 아닌, 당시 청춘들의 삶에 대한 일면이 담긴 드라마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남훈과 보영이라는 캐릭터 덕이었죠. 남훈 역의 이장원은 지금은 성우로 유명하지만, 연기의 시작은 영화였고 <세친구>(임순례, 1996)의 삼겹으로 데뷔했습니다. <후아유>에선 형태의 동료로,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에 갈등합니다. 인주의 친구인 보영은 여행사 가이드입니다. 조은지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눈물>(임상수, 2000)로 데뷔한 그녀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후아유 

난방기구 앞에 네 배우가 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배우들은 카메라 앞을 벗어나면 곧장 두꺼운 점퍼를 입고 몸을 녹여야 했습니다.
 
후아유 

영화 속 장면이 아닙니다. 중간 야식 시간에 스낵카 안의 이나영과 조승우인데요, 마치 자연스러운 연인 연기를 하는 것처럼 잘 어울립니다. 

후아유
최호
 
모니터링 중인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최호 감독입니다. <바이준>(1998)로 데뷔한 최호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후아유>에서도 청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요, “사랑을 게임처럼 즐기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2000년대 젊은이들의 이중적인 사랑관과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이후 최호 감독은 <고고70>(2008)에서 조승우와 재회하기도 합니다.

이나영
이나영
 
CF 모델로 시작해 연기로 영역을 넓힌 이나영에게 <후아유>는 세 번째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 <에이지>(구로츠치 미츠오, 1999)와 판타지 액션 <천사몽>(박희준, 2000)이 있었죠. 하지만 이나영은 <후아유>가 첫 영화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는 느낌이 드는 영화이기 때문. 한편 인주는 ‘이나영 캐릭터’의 시작으로, 이후 그녀는 내면의 아픔을 누르며 살아가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인주랑 비슷하느냐는 질문 많이 들었어요.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그냥 ‘닮았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인주를 닮은 것이 아니라, 인주가 저를 닮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주라는 인물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20대 여자라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지닌 인물인 거죠.”

조승우 

조승우에게도 <후아유>는 세 번째 영화였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으로 데뷔한 후 <와니와 준하>(김용균, 2001)를 거쳐 <후아유>의 형태 역을 맡게 된 거죠. 그는 게임 개발자이며 ‘멜로’라는 아이디로 인주의 아바타인 ‘별이’를 만나게 됩니다. “형태는 일에 찌들어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죠. 그는 일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냉소적이며 꾀죄죄한 사람이에요. 형태와 제가 닮은 점이 있다면, 저도 일 외의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에요. 내 일이 아니다 싶은 것에는 관심이 가질 않아요. 그렇지만 형태처럼 차가운 성격은 아니에요.”

후아유 

한강 둔치 촬영에 이어 형태와 인주가 도심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의 엔딩 부분에 해당하는 장면 촬영도 있었습니다. 촬영 사이에 두 배우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후아유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건너는, <후아유>의 마지막 장면 촬영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에선 사이버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후아유 

<후아유> 제작발표회의 이나영과 조승우입니다. 이나영은 인주라는 캐릭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연기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멜로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살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힘들었죠. 그렇지만 저에게 오기가 있거든요. 나중에는 제가 우겨서 다시 찍기도 했어요.” 조승우는 이나영과의 호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우리 둘 다 조금은 폐쇄적인 성격이고 말도 느려요. 촬영 현장에서 우린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렸어요. 애늙은이처럼 군다고 스태프들이 붙여준 별명이었죠. 그런 비슷한 구석 때문인지 호흡이 잘 맞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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