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 강제규 필름
감독:
정초신 | 시나리오:
박채운 | 제작:
최진화 | 촬영:
서정민 | 프로덕션 디자인:
서명혜 | 음악:
이영호 이소윤
CAST
병철:
이범수 | 유리:
김선아 | 동현:
노형욱 | 석구:
전재형 | 상민:
정재훈 | 영재:
안재홍
아마 이 영화가 전국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한참 성적 호기심에 불타는 남자 중학생들과 여자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였던 <
몽정기>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즉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입니다. <몽정기>의 촬영이 있던 2002년 8월 부산의 한 여중 교실은 영화 현장이라기보다는 생기 넘치는 교실 같았습니다. 창 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교생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 장면. 도시락 세대의 추억이기도 하죠.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애는 어떻게 생겨요?” 녀석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묻지만 꿈 많은 소녀 표정의 선생님은 풋고추를 좋아한다느니 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을 가볍게 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조금 궁상맞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선생님 역은 이범수. 교생이자 과거 제자였던 김선아는 그를 사랑하는데요, 이범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 라인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총각 병철을 짝사랑하는 유리. 그녀에게 그는 ‘영원한 테리우스’지만, 병철은 그녀에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교생도 선생이야”라며 엄하게 충고합니다.
유리의 친구이자 동료 교생인 소정 역을 맡은 배우는
김기연. <
노랑머리>(김유민, 1999)의 상희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소정은 유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테리우스가 어딨니?”
짬을 내 네 명의 ‘중딩’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조숙한 아이 상민(정대훈), 그나마 똑똑한 영재(안재홍), 어리숙한 석구(전재형) 그리고 교생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동현(노형욱)입니다. 영화에선 중학교 2학년 설정이지만, 영재 역의 안재홍(14살)을 제외하곤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정대훈과 노형욱은 18살, 전재형은 성인인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모두 30대가 되었네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석구 역의 전재형은 이 영화의 ‘신 스틸러’였죠. 첫 영화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
몽정기 2>(정초신, 2005)에도 출연합니다. 노형욱은 <몽정기> 개봉 즈음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죠. <몽정기> 전엔 <
깊은 슬픔>(
곽지균, 1997)에서
김승우의 아역이었고요. 이후 <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2004)에선
송강호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상민 역의 정대훈은 ‘여관집 아들 상민’ 역을 맡았습니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천혜의 환경인 셈인데요, 그래서 <몽정기>의 인상적인 여관 에피소드가 가능했죠. 안재홍은 <
악어>(
김기덕, 1996)의 ‘앵벌이 꼬마’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죠.
묘한 표정의 김선아. 이때만 해도 그녀는 영화계에선 신인급이었죠. <
예스터데이>(
정윤수, 2002)의 여전사 메이가 첫 영화였는데요, ‘포텐’이 터진 건 <몽정기>였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범수. 이 시기 그는 <
일단 뛰어>(
조의석, 2002) <
정글 쥬스>(
조민호, 2002) 등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흥행작 <몽정기>를 통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습니다.
메이크업 중인 이범수와 김선아의 모습입니다. 이범수는 촌스럽게, 김선아는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는 것이 컨셉트였습니다.
1988년이 배경인 만큼, 교실 뒤편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들은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소품들이었죠. 그 옆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즐겼던 종이 축구 게임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으로 첫 연출작 <
자카르타>(2000)에서 흥행을 맛 본 정초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몽정기>를 선택했고, 흥행세를 이어갑니다. <몽정기>에 대해 “오프라인 세대의 청소년기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어 무비’라는 거죠.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1934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68세의 노익장이셨죠. <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
마의 계단>(1964) <
만추>(1966) 등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스타일리시한 촬영을 보여주었던 그는 대규모 스펙터클부터 섬세한 감성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80년대엔
이장호 감독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엔 <
개 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같은 코미디부터 <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신승수, 1992) 같은 로맨스, 그리고 <
손톱>(
김성홍, 1994) 같은 스릴러와 <
여고괴담>(
박기형, 1998) 같은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고요. 놀라운 건 <몽정기> 이후 칠순의 연세에 <
어린 신부>(
김호준, 2004) 같은 ‘뽀사시’한 영상을 만드셨다는 점인데요, 서정민 촬영감독에게 불가능한 장르와 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5년, 위대한 카메라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001년 <
친구> 이후 한국의 영화 현장에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겨 급속하게 보급됩니다. <몽정기> 현장에선 그 장비가 매우 간소해졌더군요.
<몽정기>의 콘티 북입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콘티 북이, 어떨 땐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정교했는데요, <몽정기>의 콘티 북은 거의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몽정기>는 제작 초기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갑자기 투입된 정초신 감독은 시간이 없어 꼼꼼하게 콘티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충 그린 콘티 북이 탄생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는 ‘대박’을 기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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