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스크린]병든 지구에 대하여(2):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2003) 월간스크린⑤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8-11-22조회 10,473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시나리오: 장준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프로덕션 디자인: 장근영 김경희 | 음악: 이동준

CAST
병구: 신하균 | 강 사장: 백윤식 | 순이: 황정민 | 추 형사: 이재용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이라는 소재와 병구와 강 사장의 대립을 통해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폭로합니다. 저녁에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고 말하자, 장준환 감독은 “맞다. 사실 외계인 같은 덴 별 관심도 없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기도 했죠.

추 형사가 벌떼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중심으로, 현장은 정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속보로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우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태프들과는 영화의 디테일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데뷔 감독의 열정과 꼼꼼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죠.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복수는 나의 것>(2001) <서프라이즈>(2002)에 이어 신하균이 선택한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습니다. 병구는 외딴 곳에 홀로 살며 외계인의 존재를 추적하는 캐릭터죠. 내성적이지만 에너지를 내뿜을 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인데요, 신하균은 자신과 병구 사이에 꽤 많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연기의 감정적 밀도가 높아서 한 컷 안에서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보여줘야 하는 게 어려움이라고 하더군요.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이 날 촬영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신하균이 아니라 추 형사 역의 이재용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영화계에 막 얼굴을 알리는 단계였는데요,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에서 유오성의 얼굴에 지긋이 칼을 대던 조폭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후였죠.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장준환 감독

현장에서 장준환 감독은 조용하면서도 섬세히 요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가 병구 역에 신하균을 떠올린 건 시나리오를 마칠 즈음인데요, 어느 잡지에 실린 그의 얼굴과 눈빛을 보고 병구의 광기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네요. 짙은 노란색 머리는, 감독 자신이 직접 염색한 거라고 합니다. 숙소에서 심심해서 그냥 한 번 해봤다는군요.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홍경표 촬영감독

최근엔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으로, 그리고 <곡성>(2016)이나 <설국열차>(2013),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더>(2009)와 이명세 감독의 <M>(2007)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홍경표 촬영감독. 그는 스태프 중 가장 연장자였지만 가장 활기에 차 보였습니다. 홍 감독의 촬영 플랜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카메라워크와 그린 톤이었는데요, 궁극적 목표는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양봉장 위엔 병구의 집이 있습니다. 공포영화에서나 만날 수 법한 을씨년스러운 곳이었죠. 이곳에서의 촬영 공개는 없었지만,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병구는 가내수공업으로 마네킨을 만들며 외계인의 존재를 주시하는 인물인데요, 그런 캐릭터가 공간에도 잘 드러납니다. 하얀 마네킨과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외계인 관련 자료들, 그리고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1991)과 <미저리Misery>(1990)를 참고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을 본 후에 감독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스틸

산은 금방 어두워집니다.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현장. 촬영장에 어둠이 깔리고, 이제는 카메라를 꺼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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