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스크린]병든 지구에 대하여(1):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2003) 월간스크린④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8-11-20조회 6,734
지구를지켜라 스틸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시나리오: 장준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프로덕션 디자인: 장근영 김경희 | 음악: 이동준

CAST
병구: 신하균 | 강 사장: 백윤식 | 순이: 황정민 | 추 형사: 이재용

한국영화는 21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장르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은 그 극단일 겁니다. SF에서 시작해 코미디와 스릴러와 로맨스까지, 이 영화는 수많은 장르의 하이브리드이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뒤틀고 여기에 패러디와 날 선 풍자를 더합니다. 그리고 관객을 공격합니다. 당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얼마나 병들었느냐고.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 상업영화가 감히 침범하지 못했던 영역을 순식간에 돌파해버린, 당대의 컬트이자 이젠 레전드인 작품입니다.

소문만 무성한 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지구를 지켜라!>의 현장이 공개된 건 2002넌 9월이었습니다. 강원도 태백의 어느 폐광촌. S자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고, 승합차 정도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지난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죠. 양봉장에서 병구와 추 형사가 맞닥트리는 장면이었는데요, 추 형사는 결국 벌떼 공격에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지구를 지켜라 현장

어느 정도 산 속인지 가늠하시겠는지요. 멀리서 잡은 로케이션 풍경인데요, 노란색 점처럼 보이는게 양봉통입니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그 앞에서 추 형사와 병구의 긴장감 넘치는 만남과 대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지구를 지켜라 현장

웃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엔 긴장감이 흐릅니다. 추 형사는 병구가 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총구 앞에서 병구는 더듬거립니다. “왜 그러세요? 저… 전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 그냥 벌들이 배고플까봐….”

지구를 지켜라 현장
지구를 지켜라 현장

그러다가 갑자기 병구는 추 형사의 얼굴 쪽으로 꿀을 뿌리고, 이후 벌떼 공격을 받은 추 형사는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습니다. 이 날 현장 공개가 조금 이례적이었던 건, 신하균의 얼굴이 내내 양봉망으로 가려 있었다는 겁니다. 이 시기 현장 공개는 일반적으로 영화를 언론과 대중 앞에 노출하는 첫 단계였거든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주인공의 얼굴이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신을 골랐을까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연출부 중 한 명은 추 형사의 허리에 묶은 줄을 꽉 잡고 있고, 그 뒤엔 두툼한 매트가 깔려 있습니다. 벌떼의 공격에 몸을 뒤틀던 배우는 매트 위로 풀썩 쓰러집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미뤄졌던 촬영을 빠르게 진행하느라, 이 날 거의 40컷을 촬영했는데요, 그 중 가장 중요한 컷은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지구를 지켜라 현장
지구를 지켜라 현장

추 형사 역의 이재용은 나중에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할 벌떼들의 습격을 예상한 연기를 위해 하루 종일 몸서리쳐야 했는데요, 결국 매트 위에 쓰러졌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현장
지구를 지켜라 현장

클로즈업 장면을 위해 얼굴에 벌을 붙이고 있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활동력을 줄이고 침을 뽑아 공격력을 제거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방 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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