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의인 왕빙, 2023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23-12-21조회 6,436

왕시린. 한자 이름으로 王西麟(pinyin_Wang Xilin). 1936년 12월 13일에 중국 허난성(河南省) 카이펑(開封)에서 태어났다. 연도를 유심히 읽어 주기 바란다. 아직 국공내전은 끝나지 않았고, 일본 제국주의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군을 이끌고 18개의 산을 넘고 17개의 강을 건너 1만 2,500킬로에 이르는 대정정을 끝낸 이듬해이다. 왕시린은 음악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시골에서 악기를 변변히 가르쳐주는 교사가 없는 데도 스스로 음악책을 읽으면서 12살에는 중국 전통악기인 후친(胡琴). 아코디언, 그리고 몇몇 관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했고,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었다. 1949년, 13살 소년 왕시린은 그게 무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때 왕시린은 간쑤성(甘蕭省) 핑량(平凉) 미션스쿨 졸업반이었다. 인민 해방군의 행진을 보았다. 그러면서 소년들에게 입대를 선전하였다. 가난한 왕시린은 가족 중의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입대하였다. 여기서 왕시린은 1957년까지 근무하였다. 음악과 먼 생활이었지만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때 군부 위원회에서 군악대 지휘자를 양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왕시린은 지원을 했고, 여기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래서 우수 인재로 발탁되어 상하이에 있는 상하이 음악학교(上海音樂學院)로 전출되었다. 왕시린은 여기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이 학교에는 유럽에 음악 유학을 다녀온 선생님들과 연주자들이 있었다. 대기근으로 알려진 대약진의 시대를 왕시린은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안문 안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1965년 11월 10일 베이징 부시장인 우한(吳晗)이 쓴 경극 희곡 <하이루이의 파면(海瑞罢官)>을 야오원위안(姚文元)이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지도자는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1966년 6월 1일 인민일보에 마오쩌둥은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는 논설을 발표하였다. 새로운 강령. 이 문장에 들어있는 단어, 척결(剔抉). 살을 도려내고 뼈를 바르듯이 나쁜 부분들을 깨끗이 없애버려라. 부주석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손에 피를 묻히는 역할을 맡았다. 1966년 8월 18일. 천안문 앞에 100만 명의 학생들이 집합하였다. 그들에게 붉은색의 비단 완장이 배급되었다. 해가 떠오르자 연단에 마오쩌둥이 나타났다. 붉은 완장을 두른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열광하였다. 린뱌오는 “착취계급의 모든 낡은 사고와 낡은 문화, 낡은 전통, 낡은 관습을 타도하라”고 호소하였다. 지도자는 인자한 표정으로 그들의 환호에 응답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홍위병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교사를 공격하였다. 상하이 음악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시린의 선생님들은 자아비판에 불려갔고, 그 과정에서 자살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아니면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다음에는 그들의 동료가 목표가 되었다. 그 중의 한명이 왕시린이었다. 왕시린은 학교를 비판하는 대중연설을 요구받았다. 왕시린은 거절하였다. 청년동맹에서 악질분자로 분류한 다음 10번도 넘은 자아비판을 요구했고, 그런 다음 “인민 속으로 들어가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다시 학습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시린은 시골로 하방(下方)되었다. 그가 보내진 곳에서 왕시린은 주자파로 분류되어 한밤중에도 불려 나가 사람들 앞에 서서, 자아비판을 하고 야유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른바 제트기 자세라고 불리는 사상개조 고문을 받았다. <흑의인>이 시작되자마자 왕시린이 허리를 숙인 다음 두 팔을 길게 뻗고 서 있던 그 자세, 이 자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지금 이 글을 읽는 걸 멈추고 일어서서 해보길 바란다. 중국 전역에서 반혁명분자로 분류된 이들에게 요구된 자세. 그 자세를 추운 겨울날 운동장에서 밤새도록 요구하고,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세워놓고 종일 그렇게 서 있어야 했다. 쓰러지면 무서운 매질이 기다렸고,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계속해야만 했다. 왕시린은 문화혁명 기간 중에 자신의 치아를 잃었고, 청력의 20퍼센트를 상실했다. 왕시린은 음악가이다.
 

왕빙은 왕시린의 음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극영화 <바람과 모래(The Ditch, 夾邊溝)>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복잡한 사정으로 잘 안 되었다. 하지만 계획을 바꾸어서 왕시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왕시린은 2017년 10월 24일 그의 거주지를 베이징에서 독일 라인할트- 팔츠주(州) 마인츠로 이사했다. 왕빙은 왕시린을 찾아가 집에서 인터뷰했고, 또 왕시린이 지휘하는 무대도 찍었다. 하지만 무언가 핵심적인 것이 거기에 빠졌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완성을 미루었다. 방법을 바꾸었다. 왕빙은 왕시린을 단 하룻밤 극장 무대에 세우기로 하였다. 프랑스 파리 10구 샤펠가 37번지에 자리한 극장 떼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Théâtre des Bouffes du Nord)에서 2022년 5월 27일에 촬영하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극장. 왕시린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발가벗고, 몸의 어떤 부위도 가리지 않고 무대 위로 걸어 올라온다, 이때 우리는 그 몸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몸에 새겨진 역사. 달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몸에 피어난 검버섯.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살. 몸은 아직도 문화혁명을 기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대에 서자마자 제트기 자세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처음 인민해방군의 행진을 보던 날부터 시작해서 긴 증언을 시작한다. 아니, 차라리 이건 공연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왕시린은 기억의 무게 앞에서 몸서리치면서 견딜 수 없는 그 시간을 물리치기라도 하듯이 노래 부르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쾅쾅 두들긴다. 그건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다. 노래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건반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그렇다. 이것이 왕시린이 자신을 짓눌렀던 역사와 싸워온 방식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오직 작곡을 하고 또 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렇게 악보에 그걸 기록했습니다. 누군가 그걸 연주할 때 그건 그 시간을 살았던 인간을 다시 불러내고 그 시간의 무게를 듣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에 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黑衣人)’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왕시린은 마지막에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사만으로는 이 내용을 따라올 수가 없다. 이 노래는 왕시린이 작곡한 ‘흑의인지가(黑衣人之歌,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노래)’이다. 이 노래 가사는 소설가 루쉰이 1926년에 쓴 소설 <주검>(鑄劍, 쇠붙이를 녹여 칼을 만들다, 한국에는 <도공의 복수>라고 김시준이 번역했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알지 못하면 이 가사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단조롭게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열여섯 살이 되는 소년 미간척은 어머니에게 칼을 만드는 천하제일의 명인이었던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다. 왕은 어느 날 신비로운 쇳덩어리를 얻게 되고 미간척의 아버지를 찾아와 검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삼 년에 걸려 두 자루의 검을 만든 다음 아내에게 한 자루를 주면서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의심 많은 왕은 틀림없이 세상에 둘도 없는 검을 바치면 자신이 또 다른 검을 만들지 못하게 자신을 참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면 자신의 복수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왕궁에 가서 검을 바치고 참수당한다. 미간척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떠나지만 그만 왕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간척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나타난다. 그리고 두 가지 제안을 한다. “만일 나에게 너의 목과 검을 바치면 네 복수를 해주마” 미간척은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칼로 자신의 목을 자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미간척의 목과 검을 들고 왕에게 세상에 없는 구경거리를 보여주겠다고 아뢴다. 그러면서 큰 솥에 물을 끓여달라고 요구한다. 물을 끓이자 그 속에 미간척의 목을 집어 던진다. 그런 다음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솥 안에서 노래에 맞춰 미간척의 목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르락 내리락 하던 그 목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왕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솥 안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까이 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아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왕이 솥에 가까이 와서 목을 들이밀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왕의 목을 자른다. 솥 안에 굴러떨어진 왕의 목을 미간척의 목이 물어뜯으면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와 눈을 찡긋 맞춘다.
 

왕시린이 부르는 노래는 여기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사내가 부르는 노래를 가져와서 작곡한 곡이다. 루쉰의 소설에 관해서는 많은 해설이 있다. 아마 <흑의인>을 보고 나면 당신의 해설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왕시린은 평생동안 싸웠다. 어디서? 그의 악보 위에서. 혁명 속에서의 혁명. 선율과 피비린내. 리듬과 비명.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난 다음 왕시린은 무대를 떠난다. 왕빙은 텅 빈 극장을 둘러본다. 그런데 저기 누가 앉아있다. 왕시린이 앉아있다. 왕시린은 누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까. 왕빙을? 영화를? 천안문의 지도자를? 아니면 역사를? 아니면 우리를? 아마도, 아마도 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왕시린, 그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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