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 없이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 중에서 이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나중에 읽기를 권합니다. 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러시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주제넘게 확장 시키고 싶지 않다. 아마 나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여기서는 영화에서 멈출 것이다. 작년에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 편은 우크라이나 감독인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다큐멘터리 <
파괴의 자연사>였고, 다른 한 편은 러시아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
페트로프의 감기>이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파괴의 자연사>를 편집하면서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우크라이나의 상공에서 쏟아붓는 미사일과 도로변을 따라 행진하는 러시아의 탱크들, 참혹하게 무너지는 공공건물들, 길거리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길 없이 울고 있는 아이들, 집 잃은 여자들, 구덩이에 처박힌 시신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면 모스크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빅토르 최와 그 주변의 1980년대 러시아 펑크 락 씬의 연대기를 다룬 <
레토>를 만든 다음 자신이 이끄는 극단 ‘플라테 포르메(Plate-forme)’에서 연극 무대를 올릴 계획으로 알렉세이 사르니코프의 소설 <페트로프, 발톱>을 각색하고 있었다. 반정부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를 러시아 정부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극단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 1만 유로를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횡령했다는 죄로 자택 감금을 구형하였다. 연극은 영화로 바뀌었다. 아쉽지만 나는 원작소설을 읽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페트로프의 감기>는 거의 난장판처럼 진행된다. 나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모스크바에 관한 초현실주의적인 풍속도하고 불렀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이 말에 저항했다. 아니에요, 지금 초현실적인 것은 러시아의 현실이에요. 이 이야기를 따라오지 못하는 건 당신이 러시아 바깥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 원작은 대중소설이에요.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따라오는데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이거든요. 이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이 말을 어디서 멈춰 세워야 할까.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영화의 첫 장면. 페트로프는 한밤중에 만원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그런데 지금 감기에 걸려서 연신 콜록거린다. 주변 승객들은 짜증을 낸다. 얼른 귀가 해야 하는데 왜 이다지도 집에 가는 길은 먼 것일까.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가까스로 서 있는 페트로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자꾸만 일이 생긴다. 누군가 갑자기 버스를 세운다. 그러더니 페트로프에게 내리라고 한다. 길거리에 총을 든 사내들이 서 있다. 다른 차 한 대가 도착한다. 그리고 거기서 부자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벽에 일렬로 세워놓는다. 한 사내가 페트로프에게 소총을 들려주면서 방금 도착한 부자들의 총살형에 가담하기를 요구한다. 페트로프는 내키지 않지만, 얼른 마치고 집에 가고 싶어 한다. 버스 안은 초록색 전등으로 물들어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일상생활이 녹슬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그 안에서 숨을 쉬다가 폐 속으로 옮겨올 것만 같다.
만화가 페트로프. 누군가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군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그런 도식의 위험을 재빨리 빠져나간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해지기 힘든 영화이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레토>가 아니다. 멜랑코리와 낭만적인 서정성 사이에서 유지하던 수심에 가득 찬 우울한 균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처럼 온 사방이 음산하고, 아니 차라리, 모든 등장인물은 귀신처럼 여기저기서 어슬렁거린다. 물론 두 영화 사이에 공통점도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던 방향을 갑자기 선회하면서 머릿속에 가까스로 세워진 구성을 부순 다음 형식을 다시 재분배해나간다. 마치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다. 다시, 다시, 다시, 라고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은 명령. 그렇게 다시 시작할 때마다 조각나버린 이 단편적인 시퀀스들이 서로 어디서 어디로 서로를 이어 붙여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의도적으로 <페트로프의 감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르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러시아가 지금 작동하는 방식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장면보다도 페트로프가 작가를 찾아가서 총으로 쏘아 죽인 다음 집을 불태워버리는 18분이 조금 넘는 단 하나의 쇼트(lon_take)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러 개의 이야기를 겹쳐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지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가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시간이 탈선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지층을 파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줄기들을 따라가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간의 여기저기로 뻗어나간다. 어린 페트로프. 청년 페트로프. 서로 다른 시간의 지층들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연결되어있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 다른 줄기들 사이에서 엉겨 붙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어떤 목적도 갖지 않은 채 그렇게 수렴되지도 않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우리를 도와준다. 나는 영화가 집단적인 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스크바의 인민들이 함께 꾸는 꿈, 그런데 이 꿈은 지금 감기에 걸려 열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두통에 시달리면서 횡설수설하는 것만 같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아들을 껴안고 한밤중에 눈길을 달려갈 때 하늘에서 UFO가 나타나는 순간 누구라도 망연자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이다. 몇 번이고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으로 영화가 되돌아온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새해가 오지 않는 것일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한 번 더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감금된 상태에서 써야만 했어요. 하지만 감금되었다고 해서 생각이 멈추는 건 아닙니다. 내 상상은 몸을 빠져나와서 모스크바 시내를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는 유령 같은 상태였어요. 페트로프는 화가 난 상태이고, 내내 불안에 시달리고, 그리고 겁먹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러면서 <페트로프의 감기>는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서사 사이에 놓인 종종 칸막이처럼 여겨지는 경계를 옮겨가고 넘어간다. 러시아 바깥에 있는 나는 이 영화가 공격 목표로 하는 정치적 대상이나 행정적 절차, 정부 기관의 비유들을 거의 읽어내기 힘들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행간 사이에 주석을 달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쩔쩔맨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겠다. 시종일관 외관들 사이에서 환각을 일으키고 허깨비들처럼 마주한 다음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효과들 속에서 유령의 육체가 망가져 가고 있다. 그렇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무엇인가.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 어떤 공기. 모스크바의 공기. 러시아의 공기. 공기가 오염되었다. 페트로프는 점점 가쁘게 숨을 쉰다. 아니, 가까스로 숨을 쉰다.
결정적인 장면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모스크바 시내를 빙빙 돌아서 마지막에 이르자 페트로프는 관에 누워있다가 일어난다. 이제는 알겠다. 페트로프는 거리에서 죽어서 그렇게 모스크바의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저승에 가지 못했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관에서 일어난 페트로프는 눈길을 걷고, 걷고, 걷고, 걸어서, 개울을 건너, 진흙탕이 되어버린 좁은 길에서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러시안 래퍼 허스키가 음산한 목소리로 ‘복수(Revenge)’를 읊조린다. 아코디언 소리가 삐거덕, 삐거덕하면서 울린다. 페트로프는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다. 어쩌면 모스크바는 새해를 맞이하지 못할지 모른다. 페트로프는 떠났지만, 또 다른 유령이 모스크바를 배회할 것이다. 유령들은 외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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