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베이비시터 맥지, 2017

by.김봉석(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2017-12-07조회 21,110
사탄의 베이비시터 스틸이미지, 의자에 묶여 앉아있는 남자 아이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학교에서도 늘 왕따를 당하는 12살의 콜. 겁이 많고 용기는 부족한 콜을 위해 부모는 지금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콜이 짝사랑하는 예쁘고, 멋지고, 화끈한 비. 부모가 외출한 사이 콜과 놀아주고, 콜이 잠든 후 부모가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베이비시터다. 그런데 콜은 궁금하다. 내가 잠들고 난 후 비는 무엇을 할까. 동급생이자 이웃집에 사는 친구 멜러니는 어른들이 하는 짓을 할 것이라고 놀린다. 정말, 정말일까?

<사탄의 베이비시터>의 원제는 ‘The Babysitter’다. 이 제목이라면, 그리고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면 10대 소년이 짝사랑하는 베이비시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는 성장영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섹스 코미디나 불륜물. 그러나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10대 소년과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코믹 호러 성장물로 연성한다. 잠이 든 척했던 콜이 거실을 훔쳐보니 비의 친구들이 몰려와 있다.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키스를 한다. 이제 어른들의 사정이 시작되는구나 싶더니만 반전이 시작된다.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비가 키스를 시작하는데, 웬걸 비의 두 손에 들린 칼이 남자의 머리에 꽂힌다. 피가 줄줄 흐른다.

잠든 척하다가 들킨 콜은 추궁을 받는다. 뭘 봤지? 어디까지 봤지? 그리고 비와 친구들이 악마의 책을 이용하여 의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악마 의식에 빠지는 것은 빈번한 일이고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그 시절이야말로 바라는 것이 더욱 많을 때니까.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볼 때니까.

<사탄의 베이비시터>의 장르를 따진다면 호러 코미디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다. 12살의 콜은 스스로 새가슴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며 운전석에 앉혀도, 늘 다음 주를 기약하며 결국은 내려 버린다. 그런 콜이 비를 짝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가 끝나면, 콜은 운전도 하고, 그를 짝사랑했던 멜러니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과 영화만 보며 몽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반드시 비를 극복해야만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기존의 청춘물, 공포물, 성장물의 특정한 요소들을 제대로 배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톰 크루즈를 처음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걸작 <위험한 청춘 Risky Business>(1983)이 겹친다. 모범생이 부모의 휴가를 틈타 파티를 열었다가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막대한 돈이 구하기 위해 그가 세운 타개책은 포주가 되는 것이다. 파티에 온 콜걸에게 연락을 하며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게 된다. 청춘물의 아이들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된다. <위험한 청춘> 초반, 혼자 남은 톰 크루즈가 거실을 누비며 에어 기타를 치는 장면이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에서 콜과 비가 함께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며 톰 크루즈의 에어 기타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콜을 쫓는 비는 <13일의 금요일>의 효과음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던 콜이 용기를 내서 하나씩 비의 친구들을 물리치면 <나 홀로 집에>가 된다. 혼자 집에 남은 소년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영화.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오가잡탕인데 꽤나 맛있다.

한때 <미녀 삼총사> 1, 2편을 만들며 각광받다가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2009) <디스 민즈 워>(2012) <쓰리데이즈 투 킬>(2014) 등 실패작을 연속하며 움츠러든 맥지이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성공작인 <미녀 삼총사>와 <사탄의 베이비시터>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과 19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했던 80년대 장르 영화 트렌드를 뭉뚱그린 소년소녀 모험백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구니스> <그렘린> <빽 투 더 퓨처> 등의 영화로 대표되는. 

토비 후퍼를 초빙하여 만들었던 <폴터가이스트>(1982)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 시절에 이미 청춘 호러가 득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는 청춘보다 호러에 방점을 둔 슬래셔 영화가 절정이었고, 이후 케빈 윌리암슨이 그 시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스크림>(199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청춘 호러는 개화했다. 청춘 호러를 너무 어둡게 가기보다는 케빈 윌리엄슨처럼 적절히 유머를 섞어가며 다루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와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시리즈가 보여준 스플래터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80년대 감각의 청춘 호러 코미디를 매끈하게 엮어낸 영화라 할 수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리하게 향수를 끌어낸다. 마당에서 프로젝터로 보는 영화는 1971년 작인 <빌리 잭>이다. 기존의 영웅들로 은하계 드림팀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데, 비가 선택한 드림팀은 <스타 트렉>의 커크와 피카드, <에일리언>의 리플리, <인디펜던스 데이>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이다. 콜은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아다마 제독, <스타 트렉>의 데이터, 프레데터 그리고 콜과 비였다(1978년 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있다). 이렇듯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화 내내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또한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캐릭터다. 콜은 비를 짝사랑한다. 멜러니는 콜을 짝사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라면 비가 악녀로 밝혀지고, 비를 물리치는 모험을 한 후 멜러니와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싫어할 수가 없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콜을 괴롭히는 소년에게 비가 귓속말을 한다. 지독한 말에 놀란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친다. 비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인 비치(bitch), 빅센(vixen), 팜므파탈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맞는데, 그것 말고는 미워할 지점이 없다. 동정인 남자의 피가 필요해서 콜이 필요했을 뿐, 나름 성심껏 대해준다. 최선을 다해서 콜의 부족한 단점을 메워주고 용기를 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콜의 질문에 비는 답한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에 떨곤 했지. 지금은 강하지. 두려움도 없어.” 라고. 비도 콜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약하고 초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는 선택했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콜이 비에게, “누나는 <매드맨>의 주인공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지고 잘 생겼지만 바람이나 피우는 놈.’ 하지만 그만의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는 놈이 아닌 X인 비.

콜은 비를 사랑했고,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정체를 드러내고, 콜의 친구를 죽일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콜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비로소 콜은 어른이 된 것이다. 비를 통해서, 비와 맞서고 극복한 후에 콜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위험한 청춘>에서 톰 크루즈가 콜걸인 레베카 드 모네이와 섹스를 하고 포주가 되는 경험을 한 후 어른이 된 것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듯이.

2014년, 아직 제작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인 ‘블랙리스트’, 2015년(에도) 아직 제작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호러 시나리오인 ‘블러드 리스트’에 꼽혔던 브라이언 더필드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발적이고 역전된 캐릭터와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한 기분이다.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2015년 완성되었지만 201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족.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과 <1922>,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버려진 자들의 땅 The Bad Batch>, 제러미 러시의 <겟어웨이 드라이버 Wheelman>, 닉 다미치의 <부시윅>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장르 영화들은 오래 전 할리우드 동시상영시대에 만들던 B-Movie 같다. 스타가 나오는 대작을 메인으로 상영하면서 열혈 팬이 있는 액션, 호러, SF 등을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B급 영화. 넷플릭스는 기존 채널에서 모두 거절당한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를 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SF <익스팬스>와 호러 <헴록 그로브> 등 장르물에서 더욱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블레임> <아인> <사이보그 009>를 자체 제작하고 기존 작품 판권도 대거 사들이는 중이다. 소수 취향이지만 전 세계로 동시에 내보내면 시청자는 아주 많아지니까. 앞으로 넷플릭스는 <사탄의 베이비시터> <제럴드의 게임> 등 재기 있고 발랄한 영화들의 수원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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