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 두기봉, 2016

by.허문영(영화평론가) 2017-01-24조회 9,829
삼인행 스틸 이미지

두기봉은 종종 폐소공포증자를 가장한 폐소광(閉所狂)처럼 보인다. <익사일>의 폐건물과 객잔, <대사건>의 낡은 아파트, 심지어 뮤지컬인 <화려상반족-오피스>의 거대한 초현실주의적 사무실에서도 인물들은 탈출을 위한 필사의 곡예를 벌인다. 닫힌 공간을 벗어나기 위한 몸짓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감각을 사로잡는 건 밖으로의 탈출이라는 목적이 아니라 안에서의 곡예라는 운동이다. 탈출은 실패할 것이다. 인물들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죽음에 이를 때까지 닫힌 공간을 윤무한다. 그들은 지금 마지막 춤을 추고 있다. 

<삼인행>의 공간은 병원이다. 사족처럼 보이는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카메라는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 거대 스튜디오와도 같은 이 공간의 구조는 <화려상반족-오피스>의 사무실이 그러하듯 현실의 병원과 완전히 다르다. 수술실을 제외하곤 응급실, 진료실, 입원실, 접수처가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더구나 이곳은 메스의 1mm 오차에 생사가 갈리는 신경외과 병원이다. 수술 실패로 전신이 마비돼 죽기를 바라는 청년, 수술은 성공했지만 폭식증에 걸린 정신이상자 노인, 완치의 희망이 사라져 죽음만을 기다리는 혼수상태의 젊은 가장, 뇌수술을 앞둔 권위적인 중년 사내 등이 개폐를 반복하는 커튼을 사이에 두고 모여 있다. 환자의 생명에 대한 염려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염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야심가 의사 통(조미)이 그들을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누군가가 응급차에 실려 온다. 경찰의 총알이 뇌 속에 박혔으나 1mm의 오차로 몸도 정신도 멀쩡한, 그러나 곧 수술하지 않으면 총알의 독성이 뇌를 잠식해 죽음에 이를 살인자 청년이다. 멋진 외모와 천재적 두뇌와 악마적 미소를 함께 지닌 이 청년과 함께 총기 남용에 책임이 있는 굳은 표정의 형사(고천락)와 그 일행이 병원에 도착한다. 두 인물군의 도착이 이 차가운 신경증의 공간에 아수라와 같은 혼돈의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청년이 빨리 죽어야 경찰이 살 것이다. 수술을 거부하며 경찰들의 조바심을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비웃는 이 사악하고 비상한 청년은 또 다른 살육의 축제를 음모한다. 이제 그들의 동료 범죄자들이 방문해 이곳을 죽음의 공간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첫 10분 동안 이 모든 인물을 토해내는 걸 보고 나면, 서사의 기술로 이 난마의 인물들을 정돈한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두기봉은 갖가지 삶의 단면들을 관찰하기 위해 이 공간에 여러 인물들을 소집한 게 아니다. 캐릭터 묘사 같은 건 여기에 없다. 이곳은 대의도 정념도 없는 오직 충동의 교전장이다. 먹으려는 자, 죽으려는 자, 살리려는 자, 살려는 자, 죽이려는 자들의 충동이 이곳을 수습 불가능한 혼돈으로 몰고 간다. 이 교전의 한 가운데, 미치광이 살인자를 죽여 후환을 없애려는 형사와 자신을 쏜 형사를 죽이려는 악마적 범죄자와의 시각적 교전이 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여기서 끝없이 자리를 바꾼다. 형사가 범죄자가 보고 있다고 믿어졌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시각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끝없는 쟁투를 위해 이 기괴한 폐쇄공간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두기봉의 공간이다. 한 공간에 기둥들과 커튼들을 사이에 두고 네 사내가 대치했던 <익사일>의 폐건물 장면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한 몸을 겨우 숨길 수 있는 기둥, 공기의 흐름에 일렁이며 드러냄과 감춤을 무심히 반복하는 커튼이 생사를 가르는 신경증적 공간. 먼저 보는 자가 살 것이며, 먼저 보이는 자가 죽을 것이다. <화려상반족-오피스>의 공간에선 기둥은 가느다란 철심으로 교체되고 커튼은 사라졌다. 모두가 모두에게 보이는 이 공간에선 모두가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경쾌한 뮤지컬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 죽음의 기운이 떠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두기봉의 영화는 본다는 것의 가학성, 혹은 시선이라는 것의 살의(殺意)에 관한 영화다. 

질식할듯한 긴 침묵의 시각적 교전 뒤에 마침내 죽음의 윤무가 펼쳐진다. 말 그대로 집단 무용과도 같은 10분간의 유혈 총격전. 시각적 교전의 최종승리자는 누구인가. 잘 숨어 먼저 본 자가 아니라, 모든 시선에 자신을 노출한 자이다. 객잔의 중앙 홀에 뛰어든 <익사일>의 네 사내, 그리고 원형의 거대 병실의 한가운데 진입한 <삼인행>의 미친 범죄자들이 그들이다. 시각적 교전을 멈추고 모든 시선이라는 집중포화에 자신의 몸을 맡긴 자들이야말로 이 마지막 춤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이 세계에서 시선의 살의, 시선의 감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최종적 선택은 살의의 시선이 둘러싼 무대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두기봉은 영웅을 의로운 사내에서 악마적 범죄자로 바꿔놓고도 여전히 이 죽음의 선택을 찬미하고 있다. <삼인행>은 사악하고도 아름다운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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