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비평 <컨버세이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by.강소정(영화평론가) 2024-10-29조회 497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먼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정말 힘들다. 그렇긴 해도 대상이 되는 작품이 있을 땐 어떻게든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 기획의 실체 없는 주제가 주는 자유 속에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게 한국영화 비평의 안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간간이 영화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비평을 쓴 적이 거의 없다. 이 사실에서 오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내게 기회가 닿은 이 글을 일단 시작해보려 한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간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 보기로 했다. 영화의 주변을 알짱거리며 한 것들 중에는 ‘말’을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주로 빛이 사라진 스크린 앞 객석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서 말이다.


1.

영화와 관련해 내가 처음 맡은 일은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상영이 끝난 후 작품을 해설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일이 사라지기 전까지 1년 넘는 시간동안 매 주말 한 극장의 객석을 마주하고 섰다. 그리고 방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의미를 독해해주었다. 실은 큐레이터가 아니라 ‘해설자’나 ‘도슨트’ 정도의 이름이 걸맞은 일이었다. 15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혼자 말한 후에는 객석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해설을 듣기 위에 자리에 남은 적지 않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감독이 감추어놓았을 수수께끼들에 관심이 있었다. 한 번은 작품에 등장한 상징을 알려달라는 한 관객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가 다른 관객으로부터 ‘두부’에서 순수함이라는 상징을 왜 읽지 못하느냐는 꾸지람을 들은 일도 있다. 주인공 의상의 색상에서 어떤 변화의 도식을 찾아내려는 집착의 눈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지만, 아트하우스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들의 성향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핑계로 쉬운 길을 택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약간 덜었고, 이론 용어를 덜 쓰게 되었으며, 때로는 관객의 반응에서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읽는 어떤 습관이 생겼고, 따로 활동을 하지는 않았기에, 비평과는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비평은 단지 감독이 의도한 것을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십개월의 미래>(남궁선, 2020) 관련 전주국제영화제 장기 상영회 중 필자 진행 GV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X)


2. 

내가 가장 최근에 활동한 장소는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다. 나는 영화제 기간에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비평워크숍 ‘활동사진’의 전체 진행을 맡았고(이동윤 평론가가 처음 기획한 것으로, 나는 멘토로 참여해오다가 작년부터 이 일을 했다), 영화제 GV의 모더레이터를 했다. 인천 지역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디아스포라영화제 상영작을 보고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영화, 학교가다!’의 모더레이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 역할은 주로 앞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GV(Guest Visit) 또는 관객과의 대화. 영화 상영 후 게스트(주로 감독)를 초청하여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모더레이터는 감독과 관객 사이의 대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리 작품을 세심하게 보고 정보를 찾아 알고 있어야 했다. 아트하우스 영화 해설과는 다르지만, 나는 GV 진행을 하면서도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때로는 비평적 시각을 지켜내면서 감독으로 하여금 영화의 무의식적인 수행을 발견하게 하는 뛰어난 GV 진행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고 역량이 부족한 내게는 진행의 매끄러움이 우선 과제가 되었고, 순발력을 중요한 능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진행자는 이 열린 대화의 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유연하게 대처해야하기 때문이다. 객석의 질문이 없거나 감독의 대답이 지나치게 짧아 진행자의 말이 많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단편 섹션에서 한 쪽으로만 질문이 몰리거나 순차통역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해서 조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사실 이것들은 사전에 잘 준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관객이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제는 클래식 밈이 된 ‘GV 빌런’의 존재 말이다. GV에 참석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분에 대한 저마다의 피로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진행자의 덕목일까? 나는 빌런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관객으로서 나는, 가끔은 일부 관객들이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얼마 전 참석한 한 영화제 GV에서 나는 영화제에 거의 처음으로 온 듯한 어느 비시네필 관객이 영화를 본 후 한껏 들뜬 자신의 감상을 길게 늘어놓는 동안 관객 여럿이 우르르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장황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관객의 소감과 그에 대한 감독의 대답에는 왠지 모를 감동 같은 것이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영화, 학교가다!’ 프로그램에서는 시네필이 만족할 전문성 있는 질문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초대받은 감독과 진행자인 나는 이곳에서 영화제 GV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시네필 바깥의 시선들을 만난다. 학생들이 영화에 대해 주로 궁금해 하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학생들에게 되돌렸을 때 흥미로운 반응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한 번은 주인공인 남자 고등학생이 숨겨왔던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친구들 앞에서 밝히며 끝나는 한 작품(<동우>(박호범, 2022))을 여러 학교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시선을 갖게 된 두 집단의 의견이 뚜렷이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로 여학생들이 이 영화의 결말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암울한 후일담을 예상한 것이다. 나는 이후에 이 작품을 보게 된 학생들에게 앞서 확인한 이 결과를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가 촉발시킬 수 있는 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3. 

한 명의 강사가 강의를 하고 과제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는 일반적인 비평워크숍들과 달리, ‘활동사진’은 한 명의 멘토와 네 명의 참가자로 구성된 복수의 모둠이 각각 활동하는 워크숍이다. 총 4회 차로 구성된 이 워크숍에서 각각의 모둠은 이틀간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작들을 함께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제를 기준으로 1주 전에 영화 비평 특강이 있고, 1주 후에는 비평문 초고에 대한 멘토의 피드백 시간이 있으며, 활동 종료 후 비평문 최종고를 엮어 비평집을 발간한다. 나름대로 고심한 구성이지만 비평적 글쓰기를 훈련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이 워크숍 활동의 정점은 글쓰기보다는 활기 넘치는 토론시간이라고 느껴진다. 여러 참가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그간 영화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친구가 주위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비슷한 관심으로 만난 일면부지의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본 후 즉각적인 감상을 나누고 각자의 비평적 주제를 찾아가는 일은 분명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노출된 정보와 평가가 거의 없는 영화제 작품들을 선입감 없이 보고 판단한다는 상황이 흥분과 긴장을 더하는 것 같다.
 
워크숍 '활동사진' 활동 장면 (사진: 필자 제공)

영화를 본 직후에 이루어지는 토론은 말끔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본 것을 글로 바꾸고 고치면서 생각을 정련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말하는 것이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멘토가 주제를 제시하며 방향을 잡지만, 간혹 대화는 참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엉뚱한 길목을 기웃거린다. 한 모둠이 토론하는 모습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본 적이 있다.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 한 참가자가 다소 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이었다. 그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한 사람의 몸짓과 그의 말이 언제 끝날 지를 살피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의 복잡한 얼굴이 함께 보였다. 여느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입되었다. 나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보고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따라 그 영화가 전혀 다른 말을 걸어올 수 있다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4. 

역동적이고 미묘한 대화의 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극히 단순하게도 김덕중의 <컨버세이션>(2021)을 떠올린다. 유운성 평론가는 “한국독립영화 속, 대화의 언어”라는 글에서 한국독립영화에서 대화 장면의 빈약한 연출을 지적한 바 있다. <컨버세이션>은 한국(독립)영화에서 긴장감을 만들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쳤던 ‘죽은’ 대화 장면을 섬세한 연출로 살려냈다. 이 생생한 장면들에서 우리는 대화를 구성하는 것이 말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다.
 

세 친구가 집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대에 파리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한 적 있는 은영(조은지), 다혜(송은지), 명숙(김소이)이 은영의 집에서 오랜만에 모인 것이다. 코너형 소파에 나누어 앉은 이들의 모습은 풀숏의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함께 보인다. 카메라를 마주한 명숙이 먼저 파리 시절에 새겨진 자신의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새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혜가 입을 뗀다. 그런데 한 박자 늦은 은영이 다혜보다 큰 자신의 목소리를 밀고나간다. 카메라 가까이에 앉은 은영이 몸을 기울일 때마다 화면에서 얼굴이 가려져버리던 다혜가 결국 은영에게 발화권도 빼앗긴 것이다. 이제 카메라는 은영과 다혜를 마주보는 자리로 옮겨간다. 다혜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은영은 삶에 대한 느낌과 남편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화면 오른쪽에 있게 된 명숙이 끼어들어 말하기를 시도하지만 은영의 말이 멈추질 않는다. 실패한 명숙은 이후 소파에 몸을 기대어 슬며시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

동시에 나온 목소리들이 서로 부딪치고 어떤 말들은 묻혀버리는 상황. <컨버세이션>은 발화 경쟁이 있는 익숙한 대화 상황에서 활동하는 힘들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또렷하게 가시화한다. 얼굴을 마주한 대화의 장을 구성하는 것은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이라는 시각적인 요소들이기도 하다. 그뿐일까. 이 장면에는 초대받지 않은 바깥의 존재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끓고 있는 커피포트는 은영을 프레임 안팎으로 들락거리게 해 분위기를 산만하게 하고, 근처에 잠들어 있는 아기의 존재는 음량을 조절하게 만든다. 창으로 들어온 오후의 강한 태양마저 은영의 얼굴 위에서 빛과 그림자의 그림을 부단하게 그린다.

이 바깥의 존재는 이어진 씬에서 대화의 다른 차원을 지시하기도 한다. 다혜와 명숙이 아파트 복도 끝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다혜가 명숙에게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면 ‘빡이 친다’고 말하며 앞선 발화 경쟁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그런데 이처럼 강한 토로 후에 이어진 다혜의 말은 하필 도로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묻혀 때때로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건물 고층에 서있는 두 사람과 건너편 같은 높이의 어느 장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 사이에 마치 심연과 같은 무한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앞선 장면에서 인물들의 대화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것들이 시선과 몸짓을 통해 드러났다면, 이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세계와 관객이 자리한 현실 사이에 놓인 모종의 간격이 시청각적인 거리감으로서 드러난다. 말하자면, 어떤 외부가 항상 대화에 끼어들고 있다. (영화와 현실의)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객 사이의 대화에서도.
 


5. 

대화의 장에서 발신자의 말은 수신자에게 진실을 온전하게 전하지 못한다. 홍상수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는 이 불완전한 ‘말’을 대하는 한 인물의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동일한 두 인물이 우연히 만나 같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이틀간의 여정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수원에서 열리는 GV 행사에 하루 일찍 도착한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는 화성행궁을 서성이다 윤희정(김민희)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윤희정의 화실에도 간다. 만남이 술자리까지 이어지자 함춘수는 부지런히 구애를 하고, 윤희정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지인들과 합석하게 된다. 영화의 1부(‘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2부(‘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이 기본적인 상황 위에서 그려진다. 이때, 1부와 2부의 두 세계 사이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상황을 대하는 인물의 말, 그리고 그에 따른 표정과 몸짓, 감정 등의 변화다.

1부에서 함춘수와 윤희정이 나누는 대화들은 우스꽝스럽다. 두 사람은 ‘알 것 같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서로 반복한다. 함춘수는 윤희정의 그림을 보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정말로 좋아요. 뭘 한 건지 알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자기 영화를 표현하는 데 쓰던 말로 그녀의 그림을 상찬한다. 하지만 그날 밤, 술자리 동석자들에 의해 그가 빈말을 했다는 사실이 까발려지고, 함춘수는 자신에 대한 말(사실과 소문)들에 둘러싸여 난처해진다. 결국 수치심을 느낀 윤희정이 자리를 벗어나자 둘의 관계는 맥없이 끝나버린다. 이튿날, GV에서 모더레이터는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이냐’는 ‘빌런’같은 질문을 던진다. 굳은 얼굴로 입을 연 함춘수는 기어이 격분하며 이렇게 소리치고는 극장을 나간다. “우리의 삶은 그런 말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말의 힘? 저는요, 그런 중요한 말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대사는 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차피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말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냉소적인 태도 말이다. 그렇기에 함춘수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면서, 텅 빈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공감’이라는 착각, 그것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려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1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함춘수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그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그가 독백의 공간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만을 남긴다.
 

2부의 함춘수는 ‘말’에 대해서는 1부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는 말을 ‘함부로’ ‘많이’ 하면서 어떻게든 진실을 전하려고 분투한다. 윤희정은 처음엔 함춘수의 말에 상처받지만 곧 그를 믿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새벽이 오자 두 사람은 그들의 짧은 만남을 정리하며 부드러운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함춘수는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했다’며 사과의 말을 건네고, 윤희정은 함춘수의 실수를 덮으며 자신이 ‘말을 잘 할 테니 걱정 말라’고 다독인다. 또 다시 이튿날, 다행히 이번 GV는 무사히 끝난 것 같다. 함께 담배를 피우던 모더레이터가 함춘수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태프에게 좀 전에 만난 GV 빌런 이야기를 꺼낸다. “근데 아까 안경 낀 걔는 너무 깼어.” “너무 말을 많이 하죠?”

함춘수는 여기서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온 윤희정과 재회한다. 이 대화 장면은 영화의 예고편으로 쓰였다. 그런데 예고편은 영상을 거꾸로 재생한다. 이 역재생된 화면 위로 ‘지금’, ‘그때’, ‘맞다’, ‘틀리다’라는 단어들로 조합된 말들이 자막으로 나온다. 말의 언어적 의미가 소거된 이 영상에는 서로에게 집중하는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 더욱 잘 보인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그 비언어적인 소리와 시각적 표현들을 통해, 혹은 우리가 배우지 못한 미지의 언어를 가지고서 정말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이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비언어적 의미들이 함께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영화는 대화들로 구성된다. 영화 속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뿐 아니라, 인물과 세계 사이, 세계와 세계 사이의 대화가 있다. 영화비평은 그런 영화와의 대화다. 우리는 영화의 대화를 추적함으로써 그것이 의도로 귀결되지 않게 하는 외부의 활동을 발견한다. 아니, 거꾸로 이 잉여적인 것이야말로 비평이라는 대화의 장을 연다. 비평은 다른 비평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한다. 극장의 평론가 대담이나, 온라인 팟캐스트 같은 것들이 있다. 내가 이따금 참여하는 ‘비평의 편지’는 영화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 세 통의 편지를 독자에게 발송하는데, 잠재적인 다수의 수신자를 가정하고 쓰인 사적 대화라는 점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를 닮았다. 영화의 대화, 영화와의 대화, 그리고 비평의 대화는 이렇게 서로 연결된다. 우리는 독백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외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지금’에 충실한 말을 찾아 계속해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강소정(영화평론가) l 가끔 영화에 대해 말하거나 쓴다.
제2회 독립영화비평상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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