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FA 추리반장] 어디에도 기록된 적 없는 영화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 추적기

by.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2024-09-20조회 1,042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에 있는 무궁무진한 자료 중에는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비장한’’가치를 품은 원석들이 있습니다.
그런 원석을 골라내고 잘 다듬기 위해! 아키비스트들은 오늘도 여러 단서를 모아 추적에 나섭니다.
하찮아 보이는 자료가
역사적 의의를 지닌 원석으로 발굴되기까지,
자료의 맥락을 추적하는
KOFA 추리반장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2023년 12월, 한국영상자료원은 3년여에 걸쳐 정리한 대규모 컬렉션을 공개했다. 영화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와 <오발탄>(유현목, 1961)의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이 그것. 정리부터 공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데에는 규모가 워낙 방대한 탓도 있었지만, 컬렉션 자체가 거대한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자료들로 채워진 까닭도 있었다. 故 김학성 촬영감독(1913~1982)이 생전에 꼼꼼히 모아둔 자료들로 구성된 이 컬렉션은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기, 한국전쟁기 그리고 전후 시기에 그가 경험하고 마주한 한국영화계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었다. 와중에 끝끝내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자료 역시 존재해, 정리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이 지난 2008년부터 그의 아들 김충남 씨의 이름으로 기증된 자료들이다 보니, 자료의 원 주인을 직접 만나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자료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단서가 될 만한 어떤 것이든 찾아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료 중에는 이 일련의 사진들이 있었다.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

사진 속 인물들의 의상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모두 같은 날에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마다 카메라가 세워져 있는 걸 보면 영화 촬영 현장인 듯한데, 대체 무슨 영화였을까? 간혹 기증된 사진 중에는 기증자가 사진 뒷면에 관련 정보를 적어두는 경우가 있지만, 아쉽게도 이 사진들에는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쯤에서 해야 할 일은 사진 속 인물들의 필모그래피에서 교집합을 찾는 일이다.
 

위의 사진에서 우선적으로 식별 가능한 인물들은 하이라이트 쳐진 인물들, 즉 컬렉션의 주인공인 김학성과 배우 서월영, 최은희, 주증녀, 감독이자 편집 기사로도 활동했던 양주남 그리고 많은 영화에서 김학성과 함께 작업한 조명감독 고해진 정도였다(사진 오른쪽 하단 김학성 기준 반시계 방향 순). 그렇다면 이것으로 사진과 관련된 영화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이 정도 단서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김학성, 서월영, 최은희, 주증녀, 양주남, 고해진의 교집합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잠정적인 결론 하나. ① 이 영화는 촬영은 되었으나 공개되지 못했거나 어쩌면 완성조차 되지 못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사진이 촬영된 시점을 추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배우 최은희가 스크린에 데뷔한 것이 1947년 신경균 감독이 연출한 <새로운 맹서>(김학성 촬영)이니, 이 사진은 적어도 1947년 이후에 찍혔을 것이다. <새로운 맹서> 이후 부부의 연을 맺은 김학성과 최은희가 함께 있는 현장인 점에서, 이 사진은 그들이 공식적으로 헤어진 1953년 이전에 촬영되었을 것이다. 즉 ② 이 영화는 1947~1953년 사이에 촬영된 작품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이 이상으로 추적할 만한 단서는 찾아지지 않았다. ‘1947~1953년 사이에 촬영되었으나 미완성된 혹은 미공개된 작품,’ ‘최은희·서월영·주증녀 출연, 김학성 촬영, 고해진 조명, 양주남 참여(역할 미상)’라는 것 말고는 영화의 구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만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했다. 결국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을 공개한 2023년 12월, 이 사진들은 ‘작품 미상 촬영 현장’으로 분류돼 공개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 후, 이 사진의 정체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2025년 공개를 목표로 정리 중인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가제, 영화사 연구자 배수경 조사 및 연구)”에서였다. 이 역시 방대한 규모의 컬렉션이 될 예정으로, 각종 문헌과 사진, 박물 자료를 합쳐 3천여 점의 자료가 모여 있다. 그중 사진 자료만도 1,800여 점에 달한다(이는 복본을 포함한 수량으로, 컬렉션 공개 시 조정될 수 있다). 참여 연구자의 조사·연구가 끝난 결과물을 검토하던 중에 익숙한 사진 한 장이 갑자기 눈에 걸렸다.
 
   
정일성 촬영감독이 기증한 사진의 앞면(좌)과 뒷면(우)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에서 ‘미상 작품 촬영 현장’으로 분류했던 사진의 하나와 꼭 같은 것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이 사진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적혀 있었다.
 
聖血(성혈)은 永遠(영원)히 빛나리
撮影(촬영) 스탚과
口防部(국방부의 오기로 보임) 映畫課(영화과) *
*은 식별 불가 / 괄호 안의 내용은 인용자 주

정일성은 <가거라 슬픔이여>(조긍하, 1957)를 통해 정식 촬영기사로 이름을 올리기 전에 김학성 문하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았으니, 그가 이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그러할 만하다. 그가 영화계에 입문한 때가 <출격명령>(홍성기, 1954)을 촬영할 때였으니, 아마도 이 사진은 스승인 김학성을 통해 받은 것이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본다. 여하튼 정일성 촬영감독이 기증한 사진에서 두 개의 주요한 사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영화의 정체가 ③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라는 영화일 수 있다는 것과 ④ 국방부 영화과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영화일 수 있다는 것.

이제 남은 일은 위의 ③과 ④의 가설을 입증하는 일이다. 영화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는 한국영화를 집대성한 편람이나 총서, 신문·잡지 등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에 소장된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일명 붉은 태풍)> 촬영 콘티」를 통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일명 붉은 태풍)> 촬영 콘티_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
*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표지는 김학성 촬영감독이 개인적으로 꾸민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는 한국전쟁 발발 하루 전인 1950년 6월 24일,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주인공 서준이 가족들과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다 이튿날 새벽, 전쟁 발발 소식에 군대에 복귀하고 악전고투 끝에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콘티 앞부분에서는 스태프 명단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김홍이 연출하고 김학성이 촬영을, 고해진이 조명을 담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밖에 녹음, 미술, 음악, 편집, 배역 등이 비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 콘티는 제작진이 모두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본된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위의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영화를 연출한 김홍 감독의 얼굴이 새삼 확인된다. 단체 사진에서 소매 배색 점퍼를 입고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김학성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김홍 감독이다. 한편 온라인 고서점에서 개인적으로 입수한 동일본의 촬영 콘티 표지에는 “崔銀姬 瑛. 役(최은희 영. 역-인용자 주)”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 배우 최은희가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주1 이로써 위의 일련의 사진들이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라는 ③의 가설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 김학성 콘티(좌,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와 최은희 콘티(우, 개인 소장)

영화의 정체를 파악했으니, 이제 제작 정보를 좀 더 추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일성 촬영감독이 기증한 사진 뒷면에 적힌 정보를 신뢰할 경우, 이 영화는 국방부 영화과와 관련된 작품일 것이다. “신뢰할 경우”라 말한 이유는 사진 뒷면의 메모가 사후에 적힌 것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회고’와 같아서 완벽하게 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단 이 정보를 신뢰하기로 하고 좀 더 추적에 나서보자. 이것이 군 영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일 먼저 국군홍보관리소가 1992년에 발간한 『군영화 40년사』(“연감총서 컬렉션” 참조)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은 1950년 국방부 촬영대 발족부터 1992년 현재까지 군의 영화 제작 역사를 정리한 책으로, 군 영화 제작에 참여한 여러 영화인의 회고록과 군 영화 목록, 촬영 현장 사진 등이 수록돼 있다. 그런데 책을 훑어보던 중, 위의 사진들과 유사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군영화 40년사』 화보 면

화보 면 아랫단 오른쪽 사진에서 최은희(2열 우2)와 양주남(2열 우1)의 의상이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의 사진들과 동일한 것이 확인된다. 책에는 이 사진에 대해 “‘聖血(성혈)’ 로케 현장의 촬영대원들과 최은희 씨”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를 줄여 <성혈>로 일컬은 것이지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영화 40년사』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은 이뿐이었다. 연도별 군 제작 목록에서도 더 이상 영화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가 국방부 영화과와 관련이 있다는 추정은 든든한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이 같은 추정은 위의 ②번 가설, 영화 제작연도(1947~1953년 사이)를 보다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국방부 영화과의 정식 명칭은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로, 휴전협정 체결 후 서울 환도와 함께 1953년 8월, 정부 기구 및 국방부가 개편되면서 기존의 ‘군사영화촬영소’에서 변경된 명칭이다.*주2 영화의 서사가 한국전쟁 발발부터 9.28 서울 수복까지의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전개된다는 점, 그리고 1953년 8월에 명칭을 변경한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가 제작에 관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⑤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는 추정컨대 1953년에 촬영된 작품일 것이다.

공적 기록이 부재하는 영화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 추적기는 여기서 ‘일단락’을 맺는다. 일단락이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에 대해 추적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가 이 영화에 관계한 정도는 여전히 밝혀야 할 숙제이며, 촬영 콘티의 스태프 명단에 적혀 있는 “각본 협영문예부”에 대해서도 좀 더 파고들 여지가 있어 보인다. 참고 자료와 시간적 제약, 한국영화사 연구에 대한 개인의 미진함을 탓하며, 남겨진 과제들을 후속 연구를 통해 보강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본다. 


* 미완성/미공개 영화 <성혈은 영원히 빛나리(일명 붉은 태풍)>(김홍, 1953년 촬영 추정)에 대한 정보를 아는 분은 언제든 제보 바랍니다.


***
주1. 
이 촬영 콘티는 배우 최은희가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판본의 「CAST」 면에는 주인공 서준의 여동생 서영 역에 색연필로 밑줄이 그어 있다. 서영은 최은희가 맡은 배역으로 추정된다. 한편 촬영 콘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배역 중 최은희, 주증녀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 캐릭터는 서영과 유경옥으로, 주증녀는 서준의 약혼녀인 유경옥 역을 연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우 서월영이 맡은 캐릭터와 양주남이 담당한 역할은 촬영 콘티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주2. 
국군홍보관리소, 『군영화 40년사』, 1992, 10쪽; 12쪽; 15쪽. 1950년 8월 대구에서 발족한 ‘정훈국 촬영대’는 1952년 1월, ‘군사영화촬영소’로 승격 발족했다. 이는 1953년 8월에 이르러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국방부 정훈국 군영화촬영소(1955년) → 국방부 국군영화제작소(1963년) → 국군홍보관리소로 잠정 통합(1979년) → 국군홍보관리소 정식 창설(1981년) → 국방홍보원(2000년)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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