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트랜스미디어 <대도시의 사랑법>과 <정년이>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4-12-18조회 191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2024년 하반기 대중 영상문화는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을 원작으로 장편영화가 제작되어 10월 1일 극장개봉 됐으며 10월 21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에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가 독점 공개되었다. 또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2019. 4.~2022. 5. 네이버웹툰 연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정년이>(정지인, 2024)가 tvN에서 12부작으로 제작되어 텔레비전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시 제공되었다. 두 원작의 주인공 고영과 정년이 모두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주요 인물들도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벗어난 퀴어적 존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두 원작은 단순히 선정적 소재로 성적 정체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넘어, 퀴어 인물들의 고유한 관점으로 시대성, 젊은 세대의 성장과 다양한 관계성,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수행성, 하위문화 혹은 특정 공동체의 민족지적 기술 등과 같은 주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둘 모두 베스트셀러로서 그 흥행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원작이 발표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매체와 장르로 파생·변환되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현상, 특히 이미 대중성을 증명한 원작이 다른 매체와 장르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인 동시대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서 보여준 트랜스미디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의 퀴어적 정동을 드러내 줄뿐 아니라 각 매체 혹은 장르(의 제작자)들이 공개되는 플랫폼마다 현재 수용자를 어떻게 특징짓고 가정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매체특정성이 아닌 플랫폼 특정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이 사례들이 보여준다.

우선 각 사례의 트랜스미디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장편영화와 8부작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었다. 둘은 원작은 같지만 각색·연출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도 판이했다. 고래와유기농과 쇼박스가 제작하고 이언희 감독이 기획·연출·각색한 극장용 장편영화는 김나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소설의 4개 에피소드 중 주로 ‘재희’를 가져오고 흥수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가져와 영화화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위치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에서 4개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이자 사연·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고영은 흔들림 없는 유일한 주인공이다. 반면 영화에서 고영은 흥수(노상현)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름을 유지한 재희(김고은)와 주인공 자리를 동등하게 나눠 갖는다. 소설이 다분히 고영의 20대를 함께 하고 목격한 고영‘의’ 친구 재희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는 소설가 흥수가 내레이션을 도맡고 있음에도 재희 ‘그리고’ 흥수의 20대와 그들의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즉 전자가 고영에 동일시된다면, 후자는 재희와 흥수 모두에 동일시된다.
 
   
극중 흥수와 재희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는 흥수의 주관적 시점을 벗어나 재희가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당참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한편, 개성 강한 대학생에서 회사원이 되며 규격화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 쓸쓸함을 묘사하며 그를 보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재희는 이성애 여성 청년으로서 동성애자인 흥수보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취직과 결혼)을 잘 받아들이고 주류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고 벽장 속에 숨는 흥수에게 재희가 던지는 대사 “니가 너인게 어떻게 니 약점이 될 수 있어?”는 각기 다른 낙인과 차별을 겪는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남성의 우정을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 간의 우정을 다루면서 게이 남성을 이성애 여성의 사랑을 상담하는 액세서리 혹은 드라마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코믹 릴리프 같은 클리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이러한 주인공의 위치 변화는 극장의 주요 타겟인 2030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고 확장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2종

창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케팅은 단순 공감을 넘어서 그러한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 붙인다. 홍보용 트레일러와 포스터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있는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고 흥수의 게이 정체성이나 퀴어 등의 단어는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원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영화를 재희와 흥수의 이성애 로맨틱 코미디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트레일러 카피에 “사랑은 노터치 우정은 포에버. 순도 100% 찐사친 리얼 라이프”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가장하기에 이러한 착각은 상당히 고의적이다.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매우 중요한 극장 플랫폼이기에 퀴어 소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성애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까지도 모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군대 내에서 사용했던 성소수자 정책(1994-2011),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와 유사하다. 이 정책은 군대 내 성소수자가 혐오공격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성소수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심기를 달래고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복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되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당 마케팅은 어쩌면 극장용 상업영화의 개방성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퀴어는 극장 안까지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이것은 영화 본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검열 중인 극장 플랫폼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기서 상업영화 극장 플랫폼에 재희의 말을 되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 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좌)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중 / (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티빙의 8부작 드라마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와 달리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고 소설에 담긴 4편(‘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모두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해 동학교 출신인 허진호(<봄날은 간다>), 홍지영(<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손태겸(<아기와 나>), 김세인(<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감독이 각각 2부씩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을 따라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하위문화나 섹스씬도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에이즈 문제도 다룬다. 드라마 시리즈가 온라인 스트리밍 독점으로 공개되어 티빙 구독자만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할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동성애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티빙은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동성애 혐오 세력의 민원성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 시리즈는 그러한 공격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아무래도 홍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에 공개되었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여성들의 경쟁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약 1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웹툰 <정년이>의 중요한 인물이 드라마에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사라진 인물들이 퀴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이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주인공 정년이(김태리)에게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 퀴어한 젠더 수행성의 주제를 날카롭게 전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 고사장, 그리고 주인공 정년이의 1호 팬이며 극작가이자 정년이와 동성애 관계에 있는 캐릭터 부용이가 사라진 것이다. 부용이와의 관계성 일부는 국극단원인 주란(우다비)과 영서(신예은)에게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즉 웹툰에서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되는 과정에서 가장 퀴어한 인물들은 삭제 또는 용해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는 투자자나 회사 관계자들의 압력, 혹은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같은 각각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

위의 사례들에서 퀴어 캐릭터와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가시화되는지에 따라 비교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의 비평적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어는 분명 트랜스미디어 과정에서 광산의 카나리아 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디까지 있는지 실험적으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 어느 장르와 플랫폼이 퀴어를 살려둘지 아니면 삭제할지 혹은 그 고유한 존재들을 축소하거나 용해시키는지. 소설, 웹툰, 극장, 텔레비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홍보물들 사이에서, 퀴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2024) 등 공동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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