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경험하라. 그저 걸어가라. 생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끝’은 없으니.”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추운 겨울, 독일 베를린의 한 광장. 파스텔빛 집들이 하얀 입김을 포근하게 둘러싼다. 어린 소년은 여느 날처럼 넉넉지 않게 먹을거리를 사오다가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나비를 본다. 그 날갯짓이 유난히 예쁘게 마음에 들어온 탓에, 소년은 미소를 짓고 쪼그려 앉아 나비를 바라본다. 저 멀리 날갯짓이 사라지고 나서야 일어선 소년의 옆, 낯익은 구두가 허공에 떠있다. 그렇게 소년은 광장 한가운데서 엄마의 죽음을 마주한다. 반나치 활동으로 교수형을 당한 엄마의 죽음을.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차디찬 엄마의 발을 부둥켜안고 우는 일밖에 없다. 한없이 따뜻해 보였던 집들은 서늘한 눈이 되어 소년을 응시한다. 광장엔 매일같이 사람들이 매달리고, 아이들이 장난감 대신 총을 드는 비정한 거리. 제2차 세계대전 시대였다.
<조조 래빗>은 신발 끈을 혼자 고쳐매지 못했던 소년이 신발 끈을 매어주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영화다.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사는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열살 아이가 겪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겪는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조조는 어린 마음에 소속감이 갖고 싶어 나치 소년단인 유겐트에 입단하지만 작은 토끼조차 쉽게 죽이지 못해 겁쟁이 토끼라 놀림당한다.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 외에는 줄곧 혼자였던 조조에게 몰래 숨어 있던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가 우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를 만나며 조금씩 변해간다. 엄마 손에 이끌려, 엄마가 매준 신발로 문밖을 나섰던 조조는 엘사의 신발 끈을 고쳐매 주고, 직접 문을 열어 세상을 마주한다.
안아주고 싶은 각색, 연출, 음악
<조커>, <아이리시맨>처럼 어마어마한 ‘어른들’을 제치고 <조조 래빗>은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다. 72회 미국 작가 조합상, 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어 각색상 부문에서만 세 번째 수상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부터 <피아니스트>까지 전쟁의 비극을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끔찍한 제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새롭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조조 래빗>을 선보였다. 원작인 크리스틴 루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Caging Skies)’이 제국주의와 마초적 본성, 소유의 집착을 들이댄다면, 영화는 어린 소년의 얼굴에 난 상처로 전쟁의 비극을 그린다. 부디 마음만큼은 덧나지 않길 바라며 연고를 발라 주고 싶게끔.
동화적인 상상력과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연출도 원작의 어두움을 걷어낸다. 조조가 엄마와 함께 자전거로 꽃밭을 달리는 장면,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뱃속에 나비가 가득한’ 모습으로 비유한 장면, 그리고 쓰이지 않은 편지를 진심으로 읽는 장면에서 특히나. 이렇게 어린 조조의 순수함은 마이클 지아치노 음악감독의 넘버로 울려 퍼진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인크레더블>, <코코>, <인사이드 아웃>으로 전 세계 어린이, 어른이 마음을 빼앗았던 지아치노 음악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20명 규모의 작은 오케스트라와 협업했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을수록 감정선을 잘 살려주는 사운드가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영화 속 넘버는 정서적인 울림을 더한다.
혐오를 물리치는 풍자
<조조 래빗> 음반 커버에 ‘혐오를 물리치는 풍자(An Anti-hate Satire)’가 적힌 건 우연이 아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블랙 코미디’가 관통하기 때문. “‘하일 히틀러’는 생각 없이 뱉어야 제맛”이라는 꾸지람(?)에서 시작된 풍자는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가 ‘하일 히틀러’를 티키타카 주고받는 영화 후반부에서 극대화된다. 이렇듯 <조조 래빗>은 80년 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진 비극을 재치있게 담아낸다. 전쟁과 폭력, 차별과 혐오, 가짜뉴스와 프로파간다는 우리 가까이 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직도 진행형이다.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는 여성과 성소수자의 역할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사랑의 힘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말을 행동으로 증명한 엄마 ‘로지’, 조조의 세뇌된 공포를 거둬준 ‘엘사’의 존재감은 극단으로 치우친 전쟁 상황에서 여성의 용기와 강인함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은 바로 ‘클렌첸도르프’(샘 록웰)다.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훈련 교관 ‘클렌첸도르프’는 미친 세상에 술이 유일한 답인 양 매일 취해있다. 후배 병사인 ‘핀켈’(알피 알렌)과 있을 때면 왠지 모르게 묘한 기류가 감도는 그는 위급한 순간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조조를 보호해준다. 요란한 총성이 광장까지 울려 퍼질 때, 클렌첸도르프는 화려하게 커스텀된 전투복을 입고 등장한다. 어깨에는 빨간 망토를, 허리춤에는 커다란 스피커를, 가슴팍에는 분홍색 역삼각형 뱃지를 달고. 동성애자 홀로코스트가 만연했던 역사를 되돌아보면 클렌첸도르프의 장식은 ‘그냥’ 장식이 아니다. 캐릭터의 성격을 녹여내는 듯 유난히 돋보인다. 코드 연출이나 역할론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애초에 싸우려고 입을 전투복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입을 ‘상복’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군복’부터 벗어던질 수 있길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보이듯, 신발 끈을 고쳐맬 수 있다고 모두 바람직한 어른이진 않다. 또 다른 교관인 ‘람’(레벨 윌슨)은 죽은 독일 병사의 군복을 벗겨 조조에게 입히고는 총을 들고 싸우게 한다.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옷 중에서도 ‘군복’은 계급을 드러내고 이념을 드러낸다. 군복에 담긴 정체성을 생각하면 ‘꼬마 병정’처럼 무서운 단어도 없다. 이때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조조는 군복을 입고, 마지막 장면에서 군복을 벗는다. “나치가 아닌 나치의 상징에 열광하는, 웃기게 생긴 제복을 입고 무리에 어울리고 싶어하는 꼬마애”라며 팩트 폭격을 날린 엘사의 대사는 조조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춤이 전쟁을 비롯한 모든 비극으로부터의 탈출이라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몸에 걸치고 있는 군복은 무엇일지.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 신발 끈을 고쳐매고 춤출 준비를 해보자. ‘군복’부터 벗고.